국군서울지구병원에서 박 대통령이 이미 숨을 거두었다는 것을 확인 한 김계원비서실장은 정문을 나와서 택시를 잡았다. 주머니를 뒤지니 5천원밖에 없었다. 김 실장은 청와대로 가자고 했다.
주인이 집을 비워 더욱 적막감이 감도는 청와대는 만추의 밤속에 잠 겨 있었다. 저녁 7시30분을 조금 넘어서 대통령의 집무실과 침실이 있 는 본관 경호데스크의 전화벨이 울렸다. 본관 뒷 초소에서 온 보고였다.
"이상한 물체가 본관 청기와 위에 앉아 있습니다.".
본관 경호책임자인 함수용경호과장은 퍼뜩 1·21사태를 연상했다.북 한이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청와대를 기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M16소 총으로 무장시킨 경호원들과 함께 뛰어나가 보았다. 작은 어린애 만한 크기의 물체를 자세히 보니 그것은 새였다. 부엉이 같아 보였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몇번 기분 나쁜 울음을 토하더니 날아가버렸다. 함과장은 오싹해졌다. 그가 본관으로 돌아오자마자 드르륵 드르륵 하는 총성. 함 과장은 "오발사고로는 심한데…"라고 생각했다. 연발로 나는 오발은 드물다.
곧 경호데스크의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청와대를 둘러싼 여러 초 소에서 일제히 "총성이 났다"는 보고를 하는 것이었다. 총성은 인왕 산 방향, 즉 서남쪽에서 났다는 보고가 많았다. 텅빈 본관, 어둠 속의 새울음, 연발총성. 함 과장은 불길한 느낌이 확 들었다. 청와대가 흉가 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때 청와대 정문을 지키는 제11초소에서 연락이 왔다.
"비서실장님이 택시를 타고 들어왔는데 이상합니다." "틀림없나. 혼자인가 확인해.".
함 과장은 비서실장이 택시를 탔다면 납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 단했다.
"실장님이 틀림없습니다. 혼자입니다. 그런데 와이셔츠바람이고 신 발은 짝짝이를 신었습니다." "철저히 확인한 뒤에 통과시켜.".
함과장은 이 순간 '변괴가 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경호원들을 본관 현관 앞에 배치시키고 김계원 실장을 기다렸다. 김 실장은 허둥지둥 걸 어올라오고 있었다. 마중나간 함 과장에게 김 실장은 소리쳤다.
"이재전 차장을 빨리 찾아 들어 오라고 해.".
본관으로 실장을 따라들어간 함 과장은 "실장님, 지금 총성은 뭡니 까?"라고 물었다. 김 실장은 그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고 "이재전 차 장을 빨리 찾아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계원 실장은 2층 실장실로 따 라온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빨리 총리 국방 법무 내무장관, 그리고 육군참모총장을 찾아서 청 와대로 들어오라고 해.".
이때 건장한 한 경호원이 꾸벅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전두환 장군의 동생입니다. 전경환입니다.".
김 실장은 "아, 그런가"라고 하더니 "자네 권총에서 실탄 좀 꺼내 줘"라고 했다. 김 실장은 자신의 권총을 찾아서 허리춤에 꽂으려고 했 는데 실탄이 없었다. 전경환경호계장은 권총에서 여섯 발을 꺼내서 실 장에게 건네주었다. 전경환 계장이 그 다음에 한 일은 국군보안사령부 사령관 비서실로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것이었다.
이날 일찍 퇴근한 이재전경호실차장(육군중장)은 저녁식사를 끝낸 뒤에 서재에서 독서를 하던 중 청와대 본관의 경호당직 함수용 과장으 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차장이 청와대에 도착한 것은 밤 8시30분쯤이 었다. 본관 입구에서 함과장이 대기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모르겠습니다. 아까 인왕산쪽에서 한 열발의 총성이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차장은 본관2층 비서실장실로 들어갔다. 김계원 비서실장의 입술 이 말라 있었다. 김계원 실장은 "이 장군 잘 왔소"라고 하면서 당황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각하께서 큰 일을 당하셨소. 지금 내가 병원으로 모셔다드리고 오 는 길이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김계원은 대답을 회피했다. 이재전 차장은 강하게 말했다.
"정확한 내용을 알아야 조치를 취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실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용은 차차 알게 될 것이오. 경호실장 하고는 연락이 안될테니까 이 장군이 실장대리로서 경호실을 장악하시오. 경계를 강화하고 각하의 유고내용이 외부에 알려지면 군에 혼란이 생기고 적의 도발을 초래할 염려가 있으니 발설치 말고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경호실을 장악하시오.".
이재전경호실 차장은 김계원실장이 '각하를 병원에 모시고 왔다'고 하는 말을 듣고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의미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외부에 알려지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으로 알았다. 본관에서 경호실 건물로 내려온 이재전 차장은 자신의 집무실 바로옆에 붙은 실장 부속실로 들어갔다. 이석우부관이 권총을 넣은 작은 가방을 들고 있었다.
이 차장은 "실장을 찾으라"고 했다. 이부관은 궁정동 정보부장 의전비서 윤병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 비서는 "각하 와 실장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셨다"고만 하는 것이었다. 이차장은 경호 실당직사령인 강태춘정보처장과 상의한 뒤 간부들만 비상소집하고 경계 강화를 지시했다.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장 장세동대령은 경복궁내단장실에서 총성 을 들었다. 총성은 10시 방향이었다. 1968년 1월21일 북한 124군부대의 청와대 기습 때 30경비단의 전신인 30경비대대의 작전장교로서(당시 대 대장은 전두환중령) 초기대응을 지휘한 바 있는 장대령의 대처는 빨랐 다. 경비단에 출동대기명령을 내린 장대령은 엔진이 걸린 지프에 몸을 던지듯 실었다. 잠시 후 그는 약 3백m 떨어진 궁정동 안가 정문 앞에 도착했다. 그때 막 정문을 빠져나온 승용차의 꽁무니 신호등이 보였다 (피흘리는 박정희를 태우고 병원으로 가는 크라운 슈퍼살롱이었던 것으 로보인다).
장대령이 궁정동 안가 앞 골목에 도착하여 지프에서 내려 문쪽으로 걸어가는데 어둠 속에서 사복차림의 중정경비원이 튀어나왔다. 그는M16 소총을 장 대령의 가슴팍에 들이댔다. 장 대령의 가슴에는 레인저 휘장, 경호-공수 휘장, 여러 훈장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무슨 총소립니까." "비상훈련연습….".
"비상연습하는데 무슨 총소리가….".
경비원은 "안에 들어가서 확인해보겠습니다"라고 하더니 철제문을 잠가버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첫댓글 감사합니다..저 요즘 박정희대통령님을 더 알고 싶어..찾던 자료들인데..내일정도면 다 읽을수 있을것 같네요.. 저는 겨울속으로입니다..이상한 회원아닙니다...ㅋ
진짜바보님 좋은 글 올리느라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아직 다 읽어보지 못했지만 시간이 나는대로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놓치기 아까운 자료입니다.전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옛날 월간 조선에서 연재했던가? 하여튼 여기서 일게 돼였네요 진짜바보님 고맙습니다./
진짜바보님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읽는 내내 가슴이 너무 아파습니다. 현시국이 박정희 대통령님을 더욱더 그립게 만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