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식의 면회를 받으며 기철은 할 말이 없다.
따지고 보면 자기가 이렇게 되는 단 초를 제공한 것이 영식이지만 이제 그를 탓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영식도 의례적인 인사말 외에 별말이 없다. 하지만 기철의 느낌인지 모르나 영식의 말과 행동에서 의연 중 무게감이 실린다.
이제는 도저히 영식을 따라갈 수가 없을 것이다.
운이었던지 실력이었던지 어찌됐던 지금까지는 열심히 영식의 뒤를 쫓아가며 따라갔는데 순식간에 자기는 절벽으로 추락하고 영식은 튼튼한 사다리를 타고 높이 높이 오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기를 보며 기철은 한편으로 놀라고 한편으로는 쓴웃음이 난다.
영식의 회사에서의 위치를 알기 전까지는 자기 발전을 위해 좋은 경쟁자로 여겼으나 영식의 회사에서의 위치를 알고부터는 자기는 아니 누구도 영식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라이벌 의식을 버렸다가 00도로 건설공사 1공구 발주 시 자기 힘으로 수주가 가능할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되면서 잠시 영식을 라이벌로 의식했다가 00도로 건설현장 1공구 소장으로 발령받으며 그런 생각은 접었었는데 오늘 영식을 보며 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이 씁쓸해진다.
그러면서도 함께 자괴감이 든다.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는지?
영어의 신세가 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는가?
이런 상태에서도 영식에게 라이벌 의식이 고개를 드는 것은 또 무엇인가?
아니 이것은 라이벌 의식이 아니라 영원히 따라갈 수 없는 상대를 대하고 느끼는 패배의식과 그런 패배의식을 인정하여야 하는 자기가 싫은 감정이 일기 때문인가 보다.
영식은 어찌됐던 항상 한 발짝 뒤지만 자기 쫓아가던 사람이기 때문인 것인가?
이제는 회사를 위해서 한 일이지만 그 일로 죄를 짓고 형무소에 있는 몸,
한때는 경쟁자였지만 이제는 영원히 따라갈 수 없는 상대를 보며 기철은 깊은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심리인가 보다.
“박전무! 고생이 많소. 그러나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 말고 건강 돌보며 잘 있다 나오시오. 회사에서는 박전무 자리는 항상 비워 놓을 테니까?”
기철을 보며 영식이 한 말이다.
“회사에 누를 끼쳐서 죄송합니다.”하는 예의적인 인사에
“별 말을 다하시오. 그런 생각 말고 건강이나 잘 돌보시오. 몸이 상하지 않게, 박전무 가정은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 집 걱정도 마시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고 영식은 돌아갔다.
기철을 위해 충분히 영치금과 사식을 넣어주고
그리곤 돌아와서 마침 법무부 쪽에 아는 사람이 있어 그를 통해 기철의 교도소 생활이 되도록 편할 수 있게 손을 써놓았다.
그래서인지
그 후로 기철은 교도소에서 신체적으로는 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
교도관들이 표나지 않게 다른 사람들보다 예우해주며 사역이나 근로 사업에 동원될 때에 무슨 핑계를 대서도 기철을 열외 시켜주고 또한 기철의 집과 지인 그리고 회사 등에서 넣어주는 사식이 많았고 그 사식이 들어오는 대로 기철이 자기 감방에 동료들과 같이 나누기 때문에 이것이 기철을 더 편하게 하여 주었고 신체적인 고통은 거의 당하지 않았다.
교도소에는 영식의 배려가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기철을 정신적으로 힘들게 했다.
신체적으로 고되면 정신적으로 이런저런 생각할 겨를이 없을지도 모르는데, 신체적으로 편하게 되니 자연 생각이 많아지고 자기의 처지를 돌아보게 되고 가족들을 생각하게 된다.
사고가 나서 조사를 받을 때부터 수감될 때는 물론이지만 지금도 기철은 회사에 대한 것보다는 가족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아니 미안함도 미안함이지만 이제껏 자기의 출세보다는 가족을 위해 열심을 다해 살아왔고 사회적인 입지도 그 결과에 대한 보상이라고 자부했는데 결국은 자기로 해서 가족들을 힘들고 어렵게 되게 하였다는 생각에.
처음 사건 사고로 기철이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영희는 놀라 혼절하고 딸은 울기만하고 아들도 황당한 사건에 당황해하고 또 걱정하며 울먹이는 것을 볼 때 기철은 마음은 갈가리 찢기는 것 같았다.
자기도 모르게 처리된 일로 발생한 사고이지만 어찌됐든지 결과적으로는 현장소장인 자기가 현장관리를 잘못하여 사고가 발생하였고 그 사고로 인해 사람들이 죽고 다쳐 자기는 전과자가 되고 자기 가정도 최상의 어려움에 처한 것을 생각하면 또 이제 사회 생할이 얼마 안 된 아들애의 사회생활과 딸아이에 결혼에도 전과자의 자식이라는 낙인이 붙어 다닐 것이고 그 일로 자식들에게는 괴로움을 주는 무능한 아버지로 아니 자식들에게 고통을 주는 아버지로 전락한 것을 생각하면 살아있음이 짐이 되는 것 같다.
산다는 것이 이렇게 허망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00도로 건설공사 1공구 현장 준공 시 석탑산업훈장을 받았을 때는 자기 집안에 이런 훈장을 받은 전례가 없다며 가문에 영광이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지금은 전과자가 되어 집안사람들의 외면당하고 처와 자식에게는 더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존재로 전락했으니 생각하면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왜 그때 공기를 단축한다고 할 때 더 완강하게 반대하지 못했는지
반대해도 안 되면 현장소장을 그만두든지 하지 무슨 미련에 그 자리를 지키다가 이런 꼴이 됐는가?
후회가 막심하지만, 이제는 후회해야 소용없는 일
그래서 늦가을에 진창에 떨어져 밟히고 찢기어 더럽혀진 가랑잎 같은 마음으로 나날을 보낸다.
매일같이 걱정과 근심에 싸여 울먹이며 집과 경찰서를 오가며 기철의 뒷바라지를 하던 영희는 기철이 재판이 끝나고 교도소에 수감 되면서부터 오히려 꿋꿋해졌다.
가장이 없는 집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영희를 강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희가 그렇게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재판에 따른 모든 비용을 회사에서 부담해주고 기철의 직책도 그대로 두어두고 전처럼 매달 월급도 지급되어 경제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회사의 배려인지? 아니면 영식의 도움이 컸는지?
그래서 영희는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기철의 교도소 생활이 편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뒷바라지를 할 수 있었다.
면회 왔던 영식에게 들었지만, 면회 온 영희에게서 다시 회사의 처우를 듣고 회사를 위해 일하다 교도소의 들어온 대가인가 하는 생각에 기철은 엷은 미소만 지었다.
가끔 엄마를 좇아서 아버지를 면회 오는 아들애는 대학생이라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 같이 속으로는, 속앓이를 하는지는 모르나 겉으로는 명랑한 척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주려고 애쓴다.
그런 아들의 마음 씀이 기철을 또 가슴 아프게 한다.
아직 피지도 못한 젊은 애가 아버지의 잘못으로 커다란 시련을 겪게 되었으니 그 심정이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과 영어의 몸이 된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이렇게 찾아와 위로하는 아들애가 고맙고 자기 자신이 부끄럽다.
아빠를 면회 올 때마다 아빠를 붙잡고 눈물을 펑펑 쏟는 딸아이에 대한 죄책감은 더욱 크다.
딸이어서인지 붙임성이 많은 애, 특히 아빠를 사랑하고 좋아하던 애, 그래서 가끔은 엄마에게 시샘을 받던 애, 그런 딸애는 아빠 생각이 나면 아빠의 사진을 꺼내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기철도 딸애가 보고 싶다.
그러나 두어 번 면회와 아빠의 죄수복을 입은 모습을 보면 너무나 섧게 울어 실신할 정도가 되는 딸애의 모습을 보고 너무 애처로워 그 후부터 면회를 오겠다는 딸애를 엄마가 달래서 집에 남겨 놓고 온단다.
그런 딸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만나고 싶고, 보고 싶은 아빠와 딸이 만날 수가 없다니 아니 만나는 것이 더 고통이라니 어쩌다 자기의 처지가 이 지경이 되었나 생각하면 한이 쌓인다.
현장관리를 잘못한 자기의 잘못도 있지만 실제적으로 빌미를 제공한 것은 정치 논리로 공사 기간을 6개월씩이나 단축하게 한 것 아닌가.
공기가 그렇게 단축되지 않았으면 공사를 돌관작업(공사를 공사기간 내에 맞추기 위해 법적으로 정해진 시간 외 밤일을 하는 것)으로 시행하지 않았고 그렇다면 여유가 있어 충분히 집고 넘어갔을 것을 돌관작업 관계로 발생한 결과를 모두 기철에게 잘못이 있는 것처럼 하는 사회구조가 원망스럽다.
가슴 속에서 불길이 일어난다.
누군가가 당신의 말이 사실이지만 그렇게 되면 여러 사람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 당신이 그들 모두의 책임을 지게 된 것이라고 하는 말이라도 해 준다면 아니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철의 생각을 누가 들어주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만이라도 하여 준다고 해도 이렇게 섭섭하지는 않을 것 같다.
커다란 바위에 눌리는 무력감이 든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 회사 동료들에 대한 패배감, 사회에 대한 원망과 분노,
자신에 대한 자괴감 이런 것들이 범벅이 된 기철의 교도소 생활은 늘 우울함 그 자체이다.
그냥 단순하게 현실을 받아드리고 감내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주위의 여러 사람의 배려로 교도소 생활도 그렇게 어렵지 않고 2년이라는 시간도 잠깐이면 갈 터이니 그다음 다시 회사에 복귀하여 다시 충실한 건설인으로 살아가자고 현실을 받아드리면 될 터인데 평생을 나라의 기초를 세우는 충실한 건설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오다 뜻하지 않게 사고로 죄인이 되어 상해버린 자존심이 그리고 건설인답지 않게 감성이 많은 기철에게는 현 상황이 단순하게 받아 드려지지 않는다.
사회에서 별 어려움 없이 출세의 가도를 달리던 사람은 생 가운데서 감당하기 어려운 어려움이 닥치면 그것을 잘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기철이 그런 사람 중 한 명인가보다 기철이 지금의 상태를 감내하지 못하고 이렇게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
이렇게 신체적으로 편한 교도소 생활이 기철에게 자연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그 생각의 꼬리에 자연스럽게 지나온 과거가 따라 올라온다.
첫댓글 즐~~~~감!
무혈님!
감사합니다. 날이 점점 더워집니다. 건강에 유의 하세요.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