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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극복하게 한 명산100>
블야와 함께 : 25회
타 산악회 : 10회
단독 : 65회
(내역)
65회의 단독 산행 이동수단은 자차 및 대중교통
100좌 산행거리 약, 900km 이상
100좌 산행시간 약, 390시간 이상
65좌 자차이동거리 추정, 16,000km 이상
자차의 연비 상,(소모 연료 양은 리터당 12km)✕16,000km=
약, 6.5드럼✕300,000원=1,950,000원
통행료 추정=500,000원
단독산행 65회 : 식비 간식 숙박비 기타 등등 ,
당, 20,000✕65회=1,300,000원
소계 : 3,750,000
협조산행 내역
광주 블랙야크 산악회를 통한 25회✕55,000원=1,375,000원
타 산악회를 통한 10회✕50,000원=500,000원
친친들과의 2회✕50,000원=100,000원
소계1,975,000원
명산100좌 산행경비 지출합계 : 8,225,000원
내가 겪은 명산100은 설악의 공룡능선이었다.
들어서면 곁길이 없는 외길이었다.
힘들다고 그만 둘 수 있는 여정이 아니었다.
하기 싫다고 그만 둘 수 있는 여정도 아니었다.
시작한 이상 완주외의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왜?
입이 방정이라...
도전은 늘그막 늦은 봄 아카시아 향과 함께 박수로 시작했었다.
때론 새벽의 짙은 어둠과 맞닥뜨리기도 했지만
일몰의 아쉬움을 안고 돌아서기도 했었다.
역동의 아침을 맞기도 했지만 생각 같지 않을 때도 많았었다.
깡깡이 체력도 세월을 비켜 가지는 못했고
오름의 힘겨움에 때론 포기를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知友들의 응원에 힘을 얻기고 했었다.
야크와 함께한 25회의 산행은 체계적인 산행의 지식을 습득했고
그 지식의 일부를 단독산행에 적용하면서 다행스럽게 명산100을 큰 사고 없이
완주할 수 있었던 기반이 된 것, 감사하게 생각한다.
정해진 기간에 완주를 하려는 욕심에 타 산악회와 함께 했던 10회의
산행도 완주에 많은 도움이 됐었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65회의 단독산행이 주는 외롭고 힘들었던 여정은 이동간의 위험이 늘 따랐었고
운전 중의 졸음을 쫒기 위해서 때로는 뺨을 어찌나 때렸던지 볼이 얼얼하기도 했었다.
졸음이 올 때는 톡 쏘는 콜라를 두 병씩이나 간간이 마시면서 졸음을 쫒은 적도 있었다.
知友들의 격려와 위로는 해이해진 극복의 의지를 다잡게 하는데
감사하게도 큰 힘이 됐었다.
도전 중,
최단코스를 인증하지 않은 도전자가 몇이나 되고 일일 일산만 인증한
도전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격려와 위로보다는 별것도 아닌 것에 유별을 떤다는
일부의 시각을 보면서 자신들이 하면 별것이고 남이 하면 유별인가 고 물어보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냥,
나는 나에 대한 극복의 한 방법으로 명산100과 함께했을 뿐,
명산100이 도전의 전부는 아니었기에 내가 정한 목표에만 충실하자는 생각으로...
절반이 넘어 접어질 때쯤, 극복할 수 있다 로 불타던 열정은 정박지가
가까워질수록 극복의 희열감보다 경험하지 못한 목표의 상실감을
무엇으로 대체하고 수습할 것인지를 걱정하기도 했었다.
설악의 대청에 섰을 때, 우리들의 나라 명산 100좌를 통한 나에 대한 나의 극복의 결과는
자축하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고 새로운 도전의 길을 찾으려는 용기와 열정은 불끈 용솟음칠
것이다.
누구나 그러겠지만 처음 대하는 산악회의 분위기는 집행부가 아무리 신경을 써준다 해도
어딘지 어색하고 쭈뼛거리기 마련이다.
돌아보면 나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또, 산행을 하려고 새벽 1시에 집을 나선다는 것도 생소했다.
광주 블랙야크 산악회와의 처음은 명산100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을 탐방하고 탐방기를 써볼까 싶어서 여기저기
탐색을 하던 중, 지리산 산행을 떠나는 블랙야크 산악회를 발견했다.
크고 듬직한 지리산에서 천왕봉의 정상 석을 보듬고 국립공원 탐방을
시작한다면 큰 의미가 있겠다 싶었었다. 그런 생각으로 인연이 된 것이
광주 블랙야크 산악회와의 시작이었다.
이번 도전 중, 어느 곳 하나 소중하지 않은 탐방 지는 없겠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탐방 지 몇 곳의 산행과정을 돌아보고자 한다.
지리산 백무동 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해 대운사 주차장까지...
헤드렌턴 켜고 진행을 하는데 들머리는 어렵지 않게 진행했다.
가내소 폭포를 조금 지나자 실력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인디님을 알지 못했다.
바로 앞에 가시는 여성분이 인디님인지를...
바로 뒤에서 진행을 하는 내가 본 당시의 인디님의 체력은
동행자가 걱정을 하도록 했었다.
그 걱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됐었다.
인디님이 진행을 못하고 앉아버리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인디님이 지금이야 완존 변화된 모습으로 가볍게 산행을 하시지만
당시에는 저런 체력으로 어떻게 산행을 하지 싶어 걱정을 많이 했었다.
나도 나였다. 26km가 넘고 산행시간도 11시간이상이 소요되는데 무순생각으로
A코스를 선택했는지 지나고 보니 가소로운 욕심이었다.
요즘은 우리 산악회 산행에 보이지 않는 여성회원이신데
당시 세석갈림길 이정표를 배경으로 그분에게 사진을 부탁했었다.
사진의 구도를 잡는데 전문가 수준이었다.
그 회원분이 촬영하는 구도만을 따라 촬영을 하다 보니
나도 전문가?/^^
세석대피소를 건너 촛대봉에 올라 촬영을...
연하봉 지나 장터목 대피소에서 천왕봉을 앞에 두고 휴식시간을 가졌다.
당시, 산쟁이님, 산똘뱅이님 등 여러분이 계셨었고 이것저것 권하셨지만
어딘지 어색했고 섞이지 못했다.
주변을 쭈뼛거리며 맴돌던 나는 천왕봉을 향하여 혼자 출발했다.
6월인데도 추웠다. 인증을 하려고 어찌나 많은 사람이 몰려있는지...
기다리기에는 인내에 한계가 있었다. 하여, 곁가지로 인증을 한 후,
중봉방향으로...
급경사지를 내려오다 우세스럽게 한 바퀴 굴렀었다.
누가 볼까싶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얼른 일어났다.
하지만 다 봤다.
창피했다.
툭툭 털고 일어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출발...
치밭목 대피소에서 물을 충전한 후, 출발했는데...
지금생각해도 치밭목 대피소에서 대운사 아래 주차장까지의 구간은
10여km가 넘는 거리에 너덜과 돌고 돌아도 제자리인 것 같은 코스는
자연스럽게 욕이 나올 정도였다.
한마디로 지루했고 도를 닦는 마음으로 걸어야 했다.
선두는 조폭님, 즐거운 여행님, 글고?, 나 이렇게 넷이서 달렸다.
당시, 여성분이 리딩(leading)을 한다는 것도 신선했지만 그 여성분이
선두를 치고 가는데 놀라웠다. 참, 잘 달리는 구나~~였다.
정말 잘 달렸다.
주력도 놀라웠지만 너덜을 타는 중심이동과 순발력이 놀라울
정도였다. 어떻게 아느냐고? 바로 뒤에서 쫓았거든요...
하산을 거의 했는데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구릅과 섞어졌고 무리를
했는지 무릎 슬개골(膝蓋骨)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선두구릅을 앞세우고 잠시 쉬었다 출발...
뒤로 걷기도 하고 옆으로 걷기도 하면서 조심조심 하산을 마무리 했다.
선두들은 하산 주에 시원한 수박으로 완주를 자축하고 있었고 산쟁이님이 한 쪽의 식당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권했다. 고마웠다.
근데,
처음 나왔다면서 소개를 시키는데 힘들었는지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어쨌든 무난하게 지리산의 백무동 대운사구간 종주를 마무리했었다.
광주 블랙야크 산악회와 함께한 두 번째
(1박 2일 7/2일 명지산과 연인산의 연계산행, 7/3일 화악산)
산행을 통해서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은 산악회 친친들,
스스로 늙은이라는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신 기차여행님,
이분의 연세가 나보다 높으시다는 것을 알고 감사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한 방에서 그것도 여럿이서 잠을 청한다는 것,
나에게는 적잖은 부담이었다.
가장 큰 부담은 화장실이었다.
명산 100을 통해서 얻은 귀한 결과 중 하나가
밖에서 화장실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바뀜이다.
많이 노력한 결과였다.
회사와 가정을 중심으로 엮어지던 구속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일탈감에서 느껴지는 정신적인 해방감은 생각을 마음대로 하게 했고
행동은 팔과 다리가 따로따로 움직여도 어색하지 않은 것 같았다.
처음으로 2일에 3산을 오르는 것,
나에게는 그야말로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 같은 충격적인 신선함이었다.
잘 짜여 진 프로그램에 의한 진행과 집행부의 수고는 감동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았었다. 화악산 중봉 정상 석을 중심으로 회원 다수가 자리한
인증사진은 지금도 고이간직하고 있다.
경북 영덕의 팔각산에서 산쟁이회장과 함께 10좌 기념인증을 한 것이 2022년 07월 30일이었다.
2022년 06월 04일에 시작을 했으니까 56일에 10좌를 완 등한 꼴이다. 나누자면 5.6일에 1좌인데
이런 속도로 광주 블랙야크 산악회와 함께만 한다면 아무나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방법으로는 도전과 극복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부여 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블랙야크에서 선정한 우리나라 100대 명산의 도전이 아닌,
나에 대한, 내가 처해있는 상황에 대한 극복을 목표로 人生 古稀에 懶怠해진 精神과
허물어져가는 건강을 다잡아 바로 세우는 기회로 삼아보자는 생각에서 블랙야크에서 지정한
우리들의 나라 대한민국의 명산100좌 완등을 통해 “나에 대한 극복과 도전으로 제목을 달았고”
12개월 이하로 완등 기간을 정했다.
나정도 나이에 친구들이 모이는 모임에 나가면 일상화 된 대화의
주제가 있다.
하나는 건강이다.
당뇨와 고혈압은 일반적이고 심장에 스텐스를 세 번까지 넣었다는 친구도 있고
판막을 수술한 친구도 있다.
간 질환을 앓고 있는 친구 암을 앓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건강이 주제가 되어 자랑 치듯이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대화들을
한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주제가 자식 또는 손자들에 관한 내용이다.
더러는 아내에 대한 불평도 MSG로 한 술 첨해서 버무리기도 한다.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대화나 사고는 찾을 수 없고 밤 세워 대화해도
씰딱찌 없는 것들 종제기 하나도 안 되는 것들로 시간을 보내곤 한다.
나는 저런 모습들이 혐오스럽다.
이번 모임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대화의 주제를 바꿔보자는 생각에서 내가 하고 있는 산행을 주제로
전국의 명산100 산행얘기를 끄집어냈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들 한다. 어떤 친구는 너 그러다 산에서 걸어서 못 내려온다고 힐난하기도 했다.
관절에 무리가 되기도 하고 특히나 심장에 문재가 생길수도 있다면서 아서라 들을 한다.
현대구릅 창업자이신 아산 정주영 회장님의 어록에 귀감이 된 한마디를
빌려와 일갈했다. 당신! 해보기나 했어?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우리가 그 미친 짓을 마하러
들을 한다.
정 회장님은 자식들에게도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리 의지가 있다고 해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바, 평소 건강을 살피고 관리할 것을 늘 당부했다고 한다.
산행을 두고 교주적인 사고로 접근했던 나 자신을 질책하며 느그랑 가는 길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바, 산행과 관련한 대화는 여기까지...
나는 내가 이번 도전을 얼마나 갈급한 마음으로 진행했었는지를
과정을 돌아보면서 알았다. 어떤 일이든 하고자 하면 그 일에 대한
집착력이 가히 상당한 수준임도 알았다.
나는 운동도 격기를 좋아한다.
레슬링과 유도를 특별히 좋아한다.
레슬링은 상체만을 공격할 수 있는 그레코로만형이 있고, 상 하체 어디든 공격이 가능한
자유형이 있다. 이중 나는 자유형을 좋아한다.
우리들의 나라 대한민국의 레슬링 자유형 선수 중,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62kg급에서
우리들의 나라 대한민국의 레슬링 역사상 처음으로 감격의 금 매달을 안겼던 양정모선수가
있다.
당시, 척박한 경제상황과 엄혹한 사회상황에서 양정모선수의 금 매달은 우리에게 희망의
징소리가 되었고 하면 된다는 도전의식을 품을 수 있는 동기가 되기도 했었다.
양정모선수가 1953년생이니까 지금은 일흔을 넘은 나이다.
지금도 양정모씨는 후진들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유도 역사 중, 우리들의 나라 대한민국의 하형주,
체형 자체가 우리들의 나라 사람들과는 형이 달랐다. 185cm의 큰 키에 체중도 95kg급의
선수였다.
그가 왕성히 활동을 하던 시기에는 유도의 종주국이라는 일본에서도
적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실력과 인성을 갖춘 유명한 선수였다.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8강전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일본의
미하라 마사토라는 선수를 두 번에 걸쳐 매트에 내리 꽂아버리는 연출은 상상이
불가능한 결과였다.
당시, 세계의 유도를 지배하는 국가는 일본이었다.
그 상황에서 하형주의 반란은 한 국가를 전복시킨 전쟁의 결과와도
같았다. 그 경기에서 첫 번째로 매트에 꽂았을 때 이미 한판이었다.
눈치를 보던 심판의 장난으로 미하라 마사토는 억울하게도 두 번씩이나
매트에 꽂히는 수모를 당하고 한판으로 패했던 것이다.
일본의 유도연맹 회장이 경기를 보다가 자신의 제자인 미하라 마사토가 매트에 꽂히는
과정을 보다가 벌떡 일어섰던 상황은 묘한 아이러니의 연출이었다.
하형주 선수의 경기 결과로 국내에서는 안타까운 비보가 이어지기도 했었다. 경기를 보던 시청자 중,
3명이 심장마비로 사망을 했다는 기사는 기쁨과 함께 슬픔도 감내해야 할 우리들의 몫이었다.
22년 08월 14일부터 곡성의 동악산 산행의 과정을 돌아보면서 내가 레슬링과 유도를 좋아하는
성향과 이유를 깨달았다.
당시,
인증을 어디서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었고 정상에 오르면
당연히 인증을 할 수 있고 정상 석은 기다려 주는 것으로 알았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등 로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등 로를 내가 만들어 가겠다는 오만으로
상식에서 벗어난 산행을 하다 처음으로 실패를 하고 돌아섰는데 다음 날 다시 같은 산을 찾아
길이 없으면 찾으면 되고 찾아도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정주영회장님의 어록을 산행에 적용했던 시도,
몰상식이었다.
여기저기 해매는 과정에서 조폭님에게 전화를 했었다.
정상이 어디인지 물었었다.
모르겠다고 했을 때, 조금은 황당했었다.
산행대장인데...
그때는 이해를 못했었다.
산쟁이님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어디로 간다고 사진까지 캡처해 보내줬지만 @-@.
두 번째 도전까지 실패한 후,
처음으로 계곡에서 알 탕을 했다.
위에서 보기에는 얕아 보이는 웅덩이였다.
속옷만 입고 풍덩 뛰어 들었다
죽는 줄 알았다.
물은 위에서 보기보다 깊었다.
수영을 못하는 나는 웅덩이가 짧다는 사실에 그냥 기어서 나왔다.
포도시 나와 한숨을 돌리고 폰을 설치했다. 타임을 맞춘 후, 풍덩~
그렇게 시원한 알 탕으로 추억을 쌓은 후, 실패의 쓴맛을 잊고 돌아섰다.
휴가까지 연장하면서 세 번의 도전 끝에 성공한 곡성의 동악산 인증은
귀한 결과였다. 산행 중, 예쁜 아가씨를 만났었고 그 아가씨 앞에서
생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성공을 자축했던 기억이 새롭다.
산행은 무식한 자가 용기만을 기반으로 할 수 있는 레크레이션(recreation)이 아니라는 것,
치밀한 준비와 체력 그리고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동악산 산행을 통해서 깨달았다.
처음으로 했던 해남의 두륜산과 영암의 월출산 연계산행, 지금도 기억에 남는 두륜산 아래
황금 들녘과 마을의 이집 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나지막이 안개가 피어오르며 포구를
감싸는 연출, 너무도 목가적이고 고즈넉한 모습들이 일상을 탈출해 산행을 하는 나에게 깊은
사색의 시간을 주기도 했었다.
나는,
주변에 적극추천 한다.
두륜산 산행을...
지루하지 않도록 아기자기하고 번잡하지 않은 분위기가 산행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곳이라는 판단에서...
산악회 활동도 사회생활의 일부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2주에 한 번씩 광주 블랙야크 산악회를 통해서 서로를 살핀다.
만나서 해어지기까지의 함께 한 시간을 계산해 보면 평균 14시간 이상을 함께 보낸다.
과정에서 힘든 산행도 함께 하지만 한 잔 술에 서로를 알아가기도 한다.
알몸을 드러내고 부끄럼 없이 목욕을 하기도 한다.
굉장한 역동성과 인상적인 과정들이라는 생각이다.
세상에 어떤 모임이 스스로 자신의 민 낮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그 안에 자신을 용해시킬 수 있겠는가?
가성 비 또한 만점이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적잖이 편도 200km이상을 떠난다.
짧지 않은 여행이다.
가 본이는 목적지의 변화된 모습을 볼 것이고 처음 가보는 이는
산천이 주는 신선함과 경이로움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귀한
기회를 갖기도 한다.
충만한 산행지식으로 무장한 집행부의 리딩(leading)으로 안전한 산행을 담보할 수
있기도 하지만 경험으로 취득한 저들의 산행지식을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일상을 벗어난 여행이 주는 정신적인 해방감이나 운동을 통한 일체감에 먹고 마시고 씻고를
함께 하면서 얻어지는 동질감 등을 다 얻을 수 있는 가성 비 만점인 모임이 세상에 산악회를
통한 산행 말고 어디에 있겠는가?
일체 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다.
모든 일에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산악회 활동도 어떤 마음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얻어지는 결과도
다르리라 생각한다.
광주 블랙야크 산악회만을 통한 명산100을 도전하셨고 도전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타 산악회나 단독산행을 한 번도 안한 도전자들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명산100의 도전자들이 도전하는 이유는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결과는 같은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껴보고 싶음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정한 기간 안에 도전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눈치는 보이지만 부득이 단독산행을 강행할 수밖에 없겠다는
판단으로 좌고우면 하지 않기로 하고 진행했었다.
집행부가 고심 끝에 결정한 산행 지를 뛰어넘어 혼자서 휘젓고 다닌다는 것, 집행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한 사람의 도전이 주는 또 다른 파급의 결과는 다양한 부분에 긍정의
영향을 줄 수도 있는바, 편협(偏狹)한 시각으로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때도 있었다.
칭찬은 곰도 춤을 추게 한다는 생각으로 도량(度量)을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나는,
스스로 정한 도전이라는 주제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100좌를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도전을 마무리 할 때까지
역동성을 유지하면서 진행할 수 있을까를 두고 근거리부터 진행할 것인가 아니면 원거리부터 진행할 것인가를
고심했었다.
실적을 우선시 하는 내 성향 상 숫자를 늘리는 게 우선이라는 결론이었으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도전은
계절을 중시해야 하고, 또, 산의 난이도도 참고의 대상이며 단독산행인 경우 국립공원의 산불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산방기간과 근거리와 원거리 또한 중요한 참고의 요소이기도 했다.
가을을 지나 겨울로 넘어가면서 산행은 상당히 전략을 요했다.
22년 11월 24일 전북 장수군과 진안군에 걸쳐있는 영취산과 장안산,
마이산의 탐방은 겨울의 초입에 들어섰음을 확인하는 산행이었다.
장안산 들머리에서 길을 못 찾아 영취산 쪽에 들어서 어쩔 수 없이 백두대간코스인 영취산의
정상을 인증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지만 장안산 등 로에 흩뿌려진 서릿발을 딛을 때마다 사부작사부작
소리를 내는 얼음 꽃을 보면서 겨울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걱정하기도 했었다.
당시, 마이산은 비 탐 지역이었다.
그걸 모르고 인증 사진을 전송한 후에야 비 탐지역임을 알았었다.
정상까지 오르는 등 로는 간간이 얼음 층이 있었고 위험하다고 느꼈을 때는 관리를 안 한다고
말도 아닌 불평을 하기도 했었다. 한마디로 무식의 발로였다.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에 걸쳐있는 도전 지들을 집중적으로 탐방한지
4개월여 본격적으로 겨울산행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도래했다.
복장과 장비들을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묵은 살림을 끄집어내 점검했다.
고어택스, 아이젠, 장갑, 상하의 등 40여년이 넘은 살림들이었다.
당시에는 돈 허버 많이 주고 구입했던 제품들이다.
지금도 사용하는데 손색이 없는 장구들이지만 이들 중,
아이젠은 지금은 생산이 되지 않지만 지금도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제품이다.
야크님의 추천으로 봄과 가을에 입을 수 있는 옷과 겨울용
의류를 구입해 겨울 산행에 대비했다.
나름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준비는 장비에 국한이 되었지 예측이 불가능한 우발상황이 상존하는
겨울 산에 대한 대비는 많이 부족했다는 것을 산행을 하면서 깨달았다.
강화도 마니산과 경기도 소요산과 운악산 산행은 겨울 산을 대하는
산악인들의 자세와 관련한 살아있는 교육의 기회이기도 했었다.
1일 3산이었다.
계획도 스스로 세웠었다.
나름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고 생각했지만 우발상황은 출발부터였다.
심한 안개로 추정했던 이동시간은 2시간 이상 더 소요됐었고 마니산을 가는 길은 초행인지라
알바를 상당히 했었다.
산행의 순서도 계획했던 순서대로 진행할 수가 없었다.
하여, 부득이 반대로 진행했다. 연계산행을 한다면 체력에 여유가 있을 때 난이도가 높은 산을
먼저 선택하는 게 정석이라는 것, 고생한 후에야 알았다.
마니산은 광주에서는 먼 거리에 위치해 이쪽의 산악인들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산이 아니었다.
마니산이 주는 역사성은 탐방지로서 부족함이 없지만 난이도는 명산 100중 상당히 낮은 코스에
속했다.
당시, 산행을 끝낸 감정은 연계가 쉽지 않은 산을 완등 했다는 생각으로 한겨울 동치미를
들이킨 것 같은 시원한 감정이었다.
지금까지 산행을 하면서 노인들이 가장 많았던 산은 도봉산과 소요산이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접근성에 있었다.
소요산은 소요역이 근접해 있고 난이도가 낮아 무임승차가 가능한 서울시의 노인들에게는
운동과 힐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장소로 최적의 여가 선용지가 아닌가 생각했다.
여기까지여야 했다.
지금생각해도 추가는 과욕이었다.
운악산 들머리 펜션 마당에서 나물을 다듬던 아주머니 두 분에게
물었다. 운악산 정상까지의 산행시간을...바보 같은 질문임은
산행을 하면서 깨달았다.
운악산 들머리에 도착한 시간이 해지기 두 시간쯤 전이었다.
시간상으로 산행을 시작해서는 안 되는 시간이었다.
바보 같은 질문으로 얻은 답에 기반 해서 진행한 산행은 두 가지를 간과(看過)했다.
첫째, 산의 난이도를 감안한 체력
둘째, 시간
난이도가 낮은 산들이기는 했지만 이미 두 번의 산행과 긴 시간 자차로 이동했음을 간과했었고
운악산의 난이도를 감안하지 않은 결정이었다.
겨울 산은 해가 빨리 떨어지기도 하지만 기온도 해가지면서 급격히 내려간다는 것,
랜턴을 준비하지 않은 겨울의 늦은 산행은 눈을 감고 산행을 하겠다는 만용이라는 것,
조난 일보직전에서야 깨달았다.
지금도 당시 정상에서 찍은 인증사진을 보면 섬뜩한 생각이 든다.
콧물이 입술까지 흐르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었고 머리는 산발했고 몰골은 돈 묶어서 버려도
돈만 가져가지 인간 고희는 관심을 안둘 표정이었다.
정상을 인증한 후, 절반도 못 내려 왔는데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다.
능선을 타야 했는데 폭포 쪽으로 알바까지 하다 보니 마음은 100km를 달리는데 몸은 전혀 말을
듣지 않고 헉헉대기만 했었다.
어쩌지~
밧데리가 간당간당 했지만 핸드폰 불을 켰다.
문제는 체력이었다.
움직이기가 싫었다.
밧데리가 떨어지면 조난 신고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있어야 한다는
불안감이 엄습하자 불을 끄고 감으로 진행을 했었다.
힘들게 내려온 날머리는 들머리가 아니었다.
들머리에서 200여m 떨어진 곳이었다.
주변은 짙은 어둠에 쌓여 있었고 고요했다.
차에 올랐는데 쥐(경직)가 나기 시작했다.
발목과 허벅지에서 시작된 경직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었다.
차에서 내렸다 오르기를 여러 번 내일 산행지인 홍천의 팔봉산 초입으로 이동하기 위해
저녁을 뒤로 하고 출발했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더는 이동이 어렵다는 판단으로 주유소 근처에 차를 세우고
시트를 뒤로 젖히고 누웠다. 경직은 몸 전체로 이어졌고 겁에 질린 나는 차에서 내려
젊어서 했던 피티 체조를 했다. 풀리면 차에 오르고 또 경직이 오면 체조를 반복했었다.
당시, 심각하게 119를 고민했었다.
경직이 몸 전체로 이어지는 것은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혈관의 문제다. 혈관이 좁아져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을 때 발생하고
다음으로 극단의 피로가 이어지는 경우, 경직이 전신으로 발행한다는 것이 한의사의 진단임을 생
각해보면 나는 당시 극단의 피로에 의한 경직이었던 것 같다.
차 밖에 부스터를 설치하고 누룽지를 끓여 따뜻한 물을 마시자 피로와 경직은 풀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찾아온 것은 졸음이었다.
돌아보니 어쩌자고 저 무모한 짓을 했는지?
무엇을 얻자고 생명을 담보로 무모한 저 짓을 했을까?
무모한 저 결정의 결과로 다가올 수 있는 다음은 생각이나 했었는지?
자문해 보면 도전이라는 의미를 너무 크고 소중하게만 여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마니산과 소요산 그리고 운악산의 산행은 두고두고 나에게 중요한 산행의 참고서
역할을 하지 싶고 소중한 나의 산행 자산이지 싶다.
3월 12일 유명산과 용문산 산행 후, 13일 강원도 인제군에 소재한
방태산 산행, 힘은 들었지만 나에게는 두고두고 무용담으로 남을 산행 중,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산행이었다.
산행 하루 전, 인제군 상남면 소재지에서 방태산 들머리까지 답사한 20여km의 편도 길은
멀미가 날정도로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이었다.
당시,
사전답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산행을 포기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방태산 5부 능선까지 줄을 그어놓은 것 같은 차별화 된 설경은 환상이었지만 들머리까지의
이동로가 해가 지면서 빙판으로 변하기 시작했었고 다음날 통제가 됐었다.
사전 답사한 정보에 따라 들머리를 처음 결정했던 들머리에서 반대편 들머리로 변경했고
다음날 들머리에 들어선 나는 무릎을 치고 쾌재를 불렀었다.
사람하나 없고 차하나 없는 들머리는 어딘지 어색했었다.
통으로 전세 낸 들머리를 얼마 지나지 않은 등 로에는 눈이 발목을 덮기 시작했었다.
산행이 절반정도 이어질 때부터 눈은 무릎을 덮었고 바람은 설편을 날려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였다. 추위도 상상이 안 되게 추웠었다.
눈이 쌓여 등 로는 사라졌고 주억봉 정상을 1.5km정도 남기고 산행을
포기할까 갈등을 했었다.
러쎌을 하면서 진행을 하는데 바람이 어찌나 불던지 몸이 앞으로 나가질 않았었다.
사투를 하는 진행이었다.
등산객 하나 없는 산에서 눈은 척설같이 쌓였고 바람은 심하고 추위는
감당이 안 될 정도면 조난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이었다.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정상을 가고자 하는 의지가 높았었다.
더 감사한 것은 하산은 내가 남긴 흔적을 참고로 한다면 크게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상 주억봉 삼거리에서 한숨을 쉬었다.
주억봉까지 게처럼 옆으로 걸었다.
바람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심하게 불어 바르게 걸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의 실패 후, 인증을 하고 흔적을 참고로 하산을 하는데 예상대로
편했다.
차에 오른 순간 가슴 벅찬 희열의 성취감에 고희지만 어떤 어려움이나 힘든 일도 할 수 있다는
의지의 힘이 불끈 솟음을 느낄 수 있었다.
힘든 산행일수록 산행 후, 느끼는 감정은 남다르다.
산행당일 방태산 정상의 온도가 -20도가 넘는다면서 걱정을 해주시고 성공을 했을 때 축하와 위로를
해주신 지우(知友)인 현무님의 전화는 많은 격려와 힘이 됐었다.
오대산과 백운산 산행을 하루에 진행하면서 겪었던 몸의 이상반응은 우리가 산행을 하면서
참고할 만한 요소라는 생각이다.
오전에 했던 오대산 산행은 위험 요소는 없었지만 입에서 나온 입김에 코털에 얼음이 맺혔고
머리에서 흐른 땀으로 뒷머리가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었다.
산행 후, 매표소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식당주인으로부터 다음 산행지인 노인봉이
비 탐지역임을 알았다. 하지만 일단 시도해보자는 생각으로 노인봉 들머리에서 기웃거리다 포기하고
다음 산행 지를 백운산으로 변경했었다.
당시, 백운산의 날씨는 울텅을 벗고 산행을 해도 될 정도의 기온이었다.
기온의 차가 오전과 오후가 너무도 다르다보니 몸이 적응을 잘 못하는 것 같았다. 산행 후,
바로 집으로 왔었는데 피로감이 상당히 심했었고 증상이 일반적이진 않았었다.
기온의 편차가 심한 산행은 산행 후, 찾아 올 이상반응도 고려의 대상이라는 생각이다.
도전을 하면서 많지 않은 잠이 진행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됐었다.
연계산행을 하려면 첫 산행의 시작을 겨울은 06시 여름은 05시에 시작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길게는 6시간이 넘는 이동시간이 소요되기도 하는 지정학적인 상황에서 많은 잠은 도전에 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잠 때문에 도전에 차질을 격지는 않았었다.
23년 03월 24일 1일 4산의 경험,
명산100의 도전과 관련하여 도전지의 난이도 및 거리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기준은 없고
정상인증만의 기준이 정해진 결과 단독으로 도전을 하는 도전자들은 최단코스를 기준으로 삼아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
최단코스의 도전은 폄훼 받아야 하는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도전이란,
두 가지의 정해진 방법을 스스로 취사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
타의에 의해서 정해진 방법과 기준을 준용하면서 따를 수도 있고,
스스로 정한 방법과 기준에 따를 수도 있다.
무엇이 옳은가를 제3자가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도전을 성공한 도전자가 받는 느낌이 중요할 뿐이라는 생각이다.
만약, 도전지의 코스 전부를 완주해야만 성공으로 간주한다면
1주일에 1산 이상을 꾸준히 해야 하는 상황을 일반 산악인들이
일상생활과의 병행이 가능하겠는가?
모르긴 해도 저 기준을 적용한다면 명산100의 마케팅 취지는 퇴색되고 도전자는 상상이
안 될 정도로 급감할 것으로 본다.
굿이 인증기준을 정해야 한다면...
정상의 인증을 기본으로 하되, 거리와 코스를 논외로 하는 기준을 마련한다면 필요 없는
소모적인 논쟁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초 계획은 가야산, 용봉산, 오서산까지 1일 3산이었다.
근데 그 3산을 오전에 다 마무리 했던 것이다.
충북 영동의 천태산 영국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경이었다.
천태산은 충북의 설악산이라 부르기도 하고 로프로 암벽을 타야 하는
구간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사고가 잦은 곳이라 했다.
당시,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 도전했다.
잔뜩 겁을 먹었던 산행인지라 완주 후, 느낌은 그다지 겁먹을 코스는
아니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었다.
1일 4산, 추천하고 싶은 산행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특히 자차로 운전을 하면서 단독으로 하는 산행은 산행 중에 얻은 피로도가 이동 간에 더해져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서 산행을 하는 경우, 어떤 상황에도 음주를 하지 않는다.
부끄럽게도 음주로 면허정지가 한번, 취소가 한번, 면허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상실이 한번 했던 전역이 있다. 지금 같으면 교도소 행이었다.
당시 나는 가슴에 화가 가득했었다.
삶이 엎어지든 뒤집어지든 마음대로라는 식이었고 화를 절제 못하고
부린 과신이었고 허세였고 만용이었고 슬픈 자화상이었다.
운전에는 왕도가 없다.
무용담이 아니다.
허세부리는 처신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일 수도 있다는 것, 우리는
각인해야한다.
23년 02월과 03월 34회의 산행을 했다.
횟수도 급격히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명산100을 통한 나의 나에 대한 극복의 마무리를 어디서 어떻게
언제를 두고 고민이 시작됐었다. 그냥 고민에 그치기로 했다.
왜?
나만의 자족을 목적으로 다른 도전자들의 인증 방식과는 그 방식을 달리 했었기 때문이다.
승려가 수행을 하면서 그릇된 분별이나 집착을 떠나 마음이 빈 상태로
구름 따라 물 따라 돌아다니는 승려를 운수납자(雲水衲子)라 한다.
구도(求道)가 목적인 승려와 나를 향한 도전을 통해 공허감과 무력감에 젖어 가만히 있으면 스스로를
책망하며 사그라져 갈 것 같은 몸과 정신의 상태에서 남은 생의 변곡점을 마련하고자 나선 나를 향한 도전,
나는 나를...
구도자는 모두를...이 다를 뿐,
납자여
납자여
길을 떠나라
다시는 뒤를 돌아다 볼 생각도 버리고 길을 떠나라
결국에는 언제나 혼자일 뿐이며
혼자만의 괴로움이며
혼자만의 안타까움이며
혼자만의 고독이며
혼자만의 서글픔이며
혼자만의 넋두리일 뿐
모든 것은 그때뿐
그 때뿐임을 결코 잊지 마라“
여름이 성큼이다.
봄은 여름에 쫒기고
여름 맞은 계곡은 물소리로 시끄럽다.
봄에 안겨 해죽거리던 꽃들 떠나고
푸르른 입들이 만개한다.
여름 짙어지고 소나기 오가면
성삼재 구름도 바람 따라 너울너울 광란의 그림을 칠 것이다.
사십년 지기 등산화에 물이 들어온다.
뒤가 터졌다.
발 등도 터졌다.
끈도 떨어졌다.
바닥도 갈라졌다.
수선이 안 된단다.
새 놈으로 장만하란다.
묵은 정 켜켜이 쌓여 칼칼이 빨아 빛 따라 이리저리 옮겨가며
몇 날을 말렸는디 버리라니요? 한 번쯤 물어보지는,
쉬 버리지 못한 사연을...
“불망비(不忘碑)”
깊고 험하고 높은 산에서 이따금 마주하는 추념비가 있다.
죽은 자에 대한 잊고 싶지 않은 산자의 소망이 담긴 추념의 뜻을 담아
타국에서 유명을 달리한 죽은 자를 기리는 불망비도 있지만 민주지산의
추념 비처럼 사고의 장소에 건립한 추념비도 있다.
어느 것 하나 가슴 아프지 않은 불망비는 없겠지만 민주지산의 불망비는 산행 후,
내내 가슴이 아팠고 지금도 그 불망비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생때같은 젊은이 들이 국가의 부름을 받아 임무에 정진하던 중,
젊음의 허기만을 믿고 부족한 준비를 무시한 채 뛰어든 민주지산,
산은 준비를 허술히 하고 허기만을 믿고 뛰어든 젊은이 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유명을 달리한”
소령 김광석
상사 이수봉
중사 이광암
중사 오수남
중사 전해경
중사 한오환
사랑한다.
또, 사랑한다.
그리고 추념한다.
이루지 못한 뜻 내려놓고 영면하기를...
민주지산은 정말 추웠었다.
바람도 심했었다.
민주지산 정상까지 등 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람이 불었었다.
준비 없이 산행에 나선 결과, 왼쪽 귀에 동상이 들었다.
산행 후, 한참을 동상의 결과로 허물이 벗고 끼기를 반복했었다.
지금도 왼쪽 귀는 이따금 가렵다.
삼도봉 지나서 하산 길에 40년지기 아이젠 앞 이가 하나빠졌다.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 아이젠이다.
이 빠진 저놈을 그 이후로도 계속 함께 하고 있다.
이 빠진 자리에 임풀란트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관두기로 했다.
기우뚱 한 저것도 내가 안고 가야할 산행의 역사려니 싶어서...
산행 후, 마시는 이름 하여 하산 酒는 나름 의미가 있다.
그것도 토박(막걸리)술을 마시는 건 더 그렇다.
갈증을 달래주기도 하지만 힘들었던 산행의 과정들을 복기하면서
서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술이란, 가슴을 열게 한다.
열어진 가슴을 닫게 하는 술은 없다.
“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 벗도 없이 홀로 마신다.
잔을 들어 밝은 달맞이 하니 그림자 비쳐 셋이 되었네...
詩仙 이백의 술 예찬이다.
술은 벗이 있어야 맛이 난다.
더구나 힘든 산행을 함께 한 벗이 곁에 있는 술은 더 맛나다.
더러는 과해서 해롱대는 벗도 있지만 해롱대는 벗의 귀여움은
또 다른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車泊 산행을 하는 건, 산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구미 금오산 산행을 위해 이른 오후에 도착해서 차 박을 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즐거운 기억이다.
주변의 관광지를 둘러볼 여유가 있었고 만개한 꽃들과 그 꽃을 찾는 상춘객들로 인해
나 또한 산행이 주는 긴장감을 조금은 이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었다.
차 박은 장소의 선택이 중요하다.
물과 화장실이 근접해 있어야 한다.
가능하면 우발 치안상황에서도 자유로워야 한다.
취사를 하는데도 주변의 눈치에서 자유로우면 더 좋다.
당시, 차박으로 선택한 장소는 도로 건너편에 공공의 대형 캠핑장이
마련되어 있어서 큰 불편함 없이 하루 밤을 지낼 수 있었다.
조금은 불편했지만 차 박의 추억을 쌓고 새벽 5시경 들머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작은 주차장이 아닌데도 차 댈 곳이 없을 정도로 차들이
가득했었다. 정말 깜짝 놀랐었고 행사가 있는 것으로 알았다.
새벽에 주차장이 붐비고 사람이 많은 이유를 산행을 하면서 알 수 있었다.
산행객들이 사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었고 관리도 수준급이었다.
지자체의 저 정도 관심이면 산행객들이 많을 수밖에...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정확히 안내가 가능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
허접한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덤터기 고생을 하게 된다.
3월 30일 황석산 산행이 주는 교훈이었다.
왕복 6.5km정도의 짧은 산행거리였다.
산행은 자주 돌아보면서 그 등 로의 시그널을 숙지해야 한다.
그 날은 앞만 보고 올라갔었다.
정상 인증 후, 하산을 하는데 바로 정상아래서 길을 잃었던 것이다.
다시 정상을 올라가 내려다보고 살피기를 세 번이나 했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올라왔던 등 로를 알 수가 없었다.
이유가 있었다.
오를 때 등 로가 너덜이었다.
너덜을 이리저리 해매며 오르다 보니 정확한 등 로의 시그널을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측으로 거북바위 쪽으로 진행 중, 연만하신 네 분의 산객을 만났다.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하산을 하려는데 길을 잃었음을 고하고 물었다.
어디로 가시느냐고...
자신들도 하산을 한다는 것이었다.
또 하산 길을 안다기에 뒤에서 따라 갔다.
2km이상을 진행을 하다 보니 산 아래 있는 임도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저 임도에 닫아야 하는데 멀어지는 게 좀 이상했다.
그렇게 1km이상을 더 진행을 했는데 길을 안다는 사람이 이상하다면서
갸우뚱 갸우뚱 하기 시작했다.
해서, 물었다.
아녀요?
분명히 여기쯤 길이 있었는데 없다면서 좀 더 진행을 하자고 한다.
선생님!
그러지 마시고 좀 쉽시다.
물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돌아봅시다.
그때부터 이분들 꼬리를 내리고 내 말에 따라 뒤에 선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임도 방향으로 급경사를 찢고 내려가기로 했다.
이분들 안 된단다.
한마디 했다.
그럼 선생들은 다른 길을 찾으세요...
급경사에 너널이 심하고 낙 옆이 쌓여 푹푹 빠지고 돌과 돌 사이에
다리가 걸려 위험하긴 했었다.
뒤를 돌아보자 허세 남들이 따라 내려온다.
꾀는 있어가지고 내가 내려온 길을 따라 내려온다.
그래도 혼자서 내려오는 것 보다는 뒤에 사람이 따른다는
믿음에 위안이 생겼다.
조릿대 잎에 쓸리고 낙 옆에 빠지면서 없는 길을 찢고 나오다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뱀이 나오면 어쩌지 하는 순간, 몸이 경직되면서 제자리에 서고 말았다.
뒤에 따라오던 분들이 무순일이냐고 묻는다.
아니, 좀 쉬려고요...
나팔을 꺼내 삐리리 삐리리 여러 번 불었다.
안심이 되면서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30여분을 내려와 만난 고로쇠 호스는 구조의 시그널이었다.
호스를 따라 또 30여분, 저 아래 임도가 눈에 들어온다.
마음을 놓고 허리를 펴는 순간 뒤에서 사람이 넘어질 때 나오는
위급의 소리가 들리면서 나이가 가장 많게 보이던 분이 돌과 함께 구른 것이다.
정말 큰일이다 싶었다.
6m가까이를 구른 것이다.
주변에 있던 분들이 일으켜 세웠는데 이분 얼굴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았다.
지금은 아닌 것 같아도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여기저기 통증이 수반되지
싶은데 걱정이 되었다. 30여분을 더 내려가 임도에 들어섰다.
넘어지신 분에게 계곡물에 씻도록 하고 여기저기 주물러 봤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다.
임도를 따라 3km이상을 진행한 후, 마을 급수탱크에서 쏟아지는 물로
머리부터 발까지 깔끔히 씻은 후, 차에 돌아와 허세 남들과 빠이를 하고
산행을 마무리 했었다.
새우젓 장사는 새우젓 파는 얘기만 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라 할지라도 대화의 영역이 단출하면
유식해 보이지는 않는다.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대화는 듣는 사람이 지루함을 느끼게 되고
오래가지 않아 상대는 그 대화의 언저리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남자들이 침 튀기며 하는 말 중에 군대 얘기가 있다.
그 군대 얘기는 남자들만 있을 때 가능하다.
여자들이 낀 대화에서 군대얘기는 진부한 대화가 된다.
듣는 여자들의 입장에서는 공감할 수 없는 일방의 자기 자랑이고
끼리끼리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군대얘기,
고생한 인생의 경험담,
산행의 후일담, 등
어떠한 대화의 주제도 논리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대화는 잡담이며
경험을 거치지 않은 말은 공론이라 했다.
산행과 관련한 대화를 하면서 경험 없이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산행을 대화의 주제로 삼으려면 일단 그 경험을 논리적으로 정리 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는 경우, 그 대화는 잡담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에는 국어책을 읽듯이 말하면 재미가 없고 MSG를 조금은 첨가
해야 드라마틱(dramatic)한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대화 중 MSG를 적절히 첨가 할 줄 아는 것은 대화의 고단위기술이다.
나는 요즘 대화의 주제가 하나 더 생겼다.
산행후일담이다.
산행후일담을 산행을 싫어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가급적 피하지만
명산100 중, 상대에 따라 산행의 후일담으로 소제의 선택 폭이 풍족한바,
그 어떤 대화의 주제보다 공감력이 풍족한 대화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나는,
명산100의 도전의 목적을 명산100의 완등에 둔 것이 아니라
고희의 나를 깨우고 극복하는데 뒀다고 했다.
명산100을 완등하면서 감사했던 것은 완등하기까지 이길 만큼(감기)만 아팠지,
산행을 못 할 만큼 건강이 장예가 되지는 않았었다.
아무리 시간과 열정이 주어져도 건강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
목적이요 목표인데 나에게는 그 건강이 허락됐었고 시간이 주어졌고
이루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기에 너무도 감사했다.
명산100을 하면서 세 가지의 자료를 기반으로 검토하고 체크하면서 진행했었다.
야크님께서 주셨던 우리나라 명산100 전도와 셀 프로그램의 일기 그리고 탐방노트를
활용했었다.
명산100 전도는 연계산행을 계획하는데 큰 도움이 됐었다.
탐방 후, 탐방지에 부착된 비표를 하나하나 제거하면서 연계가 가능한 탐방 지를 선정하고
유튜브를 통해서 사래를 수집하고 인터넷 지도에서 탐방루트를 탐색했다.
셀 프로그램은 명산100 전도와는 별개로 탐방 년 월 일과 동반자와 특이사항을 기록했다.
탐방노트는 탐방지의 특이사항을 기록해서 참고자료로 사용했었다.
명산100 전도에 까마케 붙어있던 탐방 지 비표가 하나하나 제거되면서
전도 본연의 모습을 찾아갈 때, 탐방의 수고로움을 반추하면서 느끼는 그 흐뭇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자랑거리였다.
셀 일기와 탐방노트는 고깃배의 선장이 평생을 두고 그물을 놓았던 장소와 잡힌 고기의
크기와 종류, 걷어 올린 고기의 양들을 세세히 기록한 선상 일기와 같이 산행의 과정들을
기록한 내용이라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금세 백장을 넘기곤 한다.
명산100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늘 다감하게 다가오는 무등산에 올랐다.
지우와 함께 아침 09시에 증심사 주차장에서 만났었다.
08시에 만나기로 했던 것을 한 시간 연장했다.
가까운 무등산인데도 새벽 03시부터 서둘렀다.
좋은 소리 못 들으면서도 아이들에게 반찬을 붙이느라 오늘도 그 일로
처음 약속을 순연해서 09시로 변경했다.
처음으로 버스를 이용했다.
진월동에서 17번 버스를 타고 남광주역에서 내렸다.
도보로 학동방면으로 이동해 50번 버스로 환승하고 증심사 주차장에서 내렸다.
반가운 얼굴과 09시에 만났다.
나는 빵을 네 개 준비했고 지우가 김밥 두 줄에 막걸리 한 병을
준비했다.
증심사 주차장-약사사-약사사 삼거리-서인봉-중머리재-장불재-입석대-서석대-목교
-중봉-토끼등-증심사 주차장으로 원점회귀로 정했다.
주차장에서 중머리재까지 쭈~욱 끄집었더니
뒤 따라오던 지우가 힘들어 했다.
잠시 한숨을 돌린 후, 장불재, 입석대, 서석대에 올라 인증 후,
정해진 코스를 따라 중봉에 올라 한편에 자리를 하고 준비한 점심을 나눴다.
김밥 두 줄, 단팥빵 네 개, 막걸리 한 병으로 허기와 갈증을 달래고
부족한 부분을 정담으로 채워 가슴 가득 만족을 담아 하산 길에 나섰다.
뭔가 부족함이 있지 싶어서 주차장근처에서 막걸리 “딱”한 병을 더 하기로 했다.
증심사 근처 계곡에서 산행의 끄름을 칼칼이 씻고 식당에 앉았다.
정말, 막걸리 한 병에 해물전 하나를 주문했다.
날씨는 산행하기에 그만인 날씨였다.
적당한 바람에 햇볕도 적당했다.
특이한 것은 산행객의 연령층이 많이 젊어졌다는 것이다.
이십대 삼십대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아주 좋은 현상으로 보였다.
안주와 술이 나왔다.
잔을 채웠다.
권주의 정을 담아 잔을 비웠다.
빈 잔에 정담을 반 채우고 남은 반을 막걸리로 채웠다.
산행의 노고를 위로하고 또 잔을 비웠다.
비운 잔은 가슴 언저리에 머물고 말없는 저 병은 가벼워만 간다.
지우는 한 번에 간다는 버스에 올랐다.
나는 환승이 필요한 50번 버스에 올랐다.
한 낮에 배낭을 메고 사람이 많은 곳을 다닌다는 게 좀 민망했다.
아는 사람을 만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편견 있는 사람들이 나를 두고 혹, 백수?
모자 푹 눌러쓰고 시커먼 안경까지 꼈다.
내 생각만이 아니었다.
밝은 대낮에 집에 들어가자 아내가 한마디 한다.
당신은 대낮에 그거 울러 메고 동내를 활보하면 창피도 안하요?
...
남은, 설악산, 계방산, 오대산 노인봉 산행을 위해서는 근육을 놀려서는 안 되고
근육의 긴장과 폐활량을 가급적 유지해야 설악산 공룡능선과 마등령을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서,
아침이면 뒷산인 금당산을 일주로 대비해서
이번 주 북한산까지 일주 4산으로 명산100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작년에 구입한 등산화가 편하지 않았다.
다 해진 등산화를 수선하려고 목포까지 내려갔다.
백점은 아니어도 대충 만족하게 수리해서 남은 산행을 대비했다.
일기예보를 점검하는데 이번 주, 수요일과 목요일이
산행하기에 좋을 것 같았다.
해서,
첫날 계방산과 오대산 노인봉을 인증하고 설악산 인근의 적당한 장소를 찾아 차 박을 한 후,
다음날 새벽에 설악산 오색 탐방지원쎈터를 들머리로 대청봉을 인증한 후,
중청에서 아침을 먹고 무너미 고개 지나 공룡타고 마등령 지나 소공원을 날머리로 정했다.
설악산 산행, 햄버거 두 개를 준비했고
간식은 찹쌀쑥떡으로 준비했다.
이동식은 달달한 사탕과 초코렛으로 준비했다.
음료는 포카리 2병을 준비했고 생수는 중청대피소에서
준비하는 것으로 했다.
준비물, 김장용 비닐 3장, 오리털 조끼, 바람막이, 반팔 티, 긴팔 티, 여벌 양말,
수건, 해드렌턴, 장갑, 비상 구급약, 무릎보호대, 스패츠, 고무벤드, 핸드폰 보조 밧데리,
식염포도당 등을 준비했다.
배낭의 무게는 총, 5kg을 넘지 않도록 최대한 무게를 줄였다.
과연 내 체력이 이일에 삼산 그것도 첫날 계방산과 노인봉 산행거리가 약, 17km
산행시간 약, 6시간 이동거리 약, 540km 이동시간 6시간 50분인데 다음날 새벽 03시부터
험한 설악산 산행이 가능하겠는가?
열정과 각오는 충만한데...산행을 계획대로 마무리 한다고 해도
광주까지 450여km의 심야 운전이 가능하겠는가?
내가 명산100을 계획대로 마무리만 할 수 있다면 체력과
열정만큼은 충분히 검증이 된 것 아닌가 물어보고 싶다.
준비를 마무리 하고 하루를 쉬면서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아내 왈, 이런 산행은 이번만이라는 협박을 뒤로 하고 저녁 10시
계방산 들머리인 운두령 쉼터를 향해 420여km의 여정에 나섰다.
새벽 배송을 하는 트럭들만 가득하지 승용차는 나뿐인 음성휴게소에 들려
방광을 비우고 어두침침한 식당에 들려 물을 받아와 차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음성휴게소를 빠른 걸음과 느린 걸음을 섞어서 세 바퀴를 돌았다.
피곤과 잠을 털어내고 다시 출발...
호법분기점에서 우측으로 영동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여주분기점 지나 구불구불 미명이 트기 시작한 05시에 도착한 계방산 들머리인
운두령 쉼터는 산방기간이 끝났지만 평일이어서 인지 텅 비어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계방산의 잊히지 않는 모습은 전망대에서 정상까지의 약, 1km구간이다.
꽃 천지였고 산행의 피로를 솔솔바람과 함께 날려주는 기억에 남는 모습이었다.
인생을 짧다고들 한다.
순간이고 찰나라고도 한다.
어떻게 살았으면 짧고 찰나일까?
내가 살아온 여정을 살펴보면 결코
게으르게 살지는 않았던 인생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오르고 내림이 많았던 인생이었고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드라마틱한
카타르시스를 느낀 적도 있었지만 그런데도 나는 내 생을 두고 짧다거나
찰나로 느껴지진 않는다.
살아온 여정과 얼마인지도 모르는 남은 생을 두고 짧니 찰나니 하면서
아쉬워만 말고 새로운 꺼리를 찾는 바지런함으로 지혜를 더한다면 담보되지 않은
생이라 할지라도 아름다운 남은 여정이 되리라 생각한다.
전국의 명산을 찾는다는 것,
정신적인 승리일 수도 있고 건강에 남는 장사가 될 수도 있다.
타박과 아쉬움만을 말하기에는 해왔던 일들보다 할 수 있는 남은 일들이
훨씬 겁나게 너무도 많을 수도 있다.
노인봉의 들머리인 진고개 휴게소에 들어서면서 지난겨울
오대산 비로봉을 인증한 후, 노인봉 인증을 하려고 진고개 휴게소에서
신경전을 하다 산방기간이라 등 로에 들어서지 못하고 정선의 백운산으로 코스를
변경했던 기억, 이번은 그때의 아쉬움을 털어내고 당당히 등 로에 들어설 수 있었다.
노인봉은 계단 말고는 힘든 코스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물 병 하나들고 운동화 차림으로도 산행이 가능한
편한 등 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구 팔 팔이라 했다.
노인봉 인증으로 명산100 중, 구구를 했다.
설악산 인증을 못하고 돌아서는 아쉬움이 있기는 했지만
마음은 행복했었다.
지는 꽃은 애처롭다.
사람의 늙어 감을 두고 익어간다고도 하지만,
저런 표현은 사물을 대하는 도리나 사리의 밝음을 표준으로 탐구적인
인생을 살아온 사람을 두고 하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저렇게 살았던가?
지금에 와서 보니 잘 숙성된 곶감처럼 달착지근한 뒷맛이 남는
삶이었다는 말인가?
다 다르더라...
인생의 뒷맛은
꽃은 주주에 붙어있을 때가 아름답다.
꽃이 주주에 붙어있을 힘을 잃으면 떨어진다.
힘 잃어 떨어지는 꽃이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밟히고 바람에 나부끼는 꽃은 잊혀져가는 지난 세월일 뿐이다.
낙화된 아카시아 꽃을 밟으며 북한산 산행을 했었다.
가봤던 산을 다시 찾는 의미는 처음과 다른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얘깃거리가 많은 산은 한 번의 탐방으로 그 산을 말할 수는 없다.
북한산이 그렇다.
얘깃거리가 많은 산이다.
산은 미동도 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찾는 사람이 다를 뿐이다.
처음 찾았던 그 코스를 그대로 또 찾았었다.
처음 찾았을 때 북한산을 대했던 나는 준비되지 않았던 허접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냥 허접했다.
하지만 두 번째 찾았던 북한산을 대하는 나는 달라있었다.
다르고 싶어서가 아니라 본능이었다.
여유가 있었고 산을 즐기려고 했었다. 본능이었다.
이를 두고 탐닉(耽溺)이라는 것 같다.
명산100 도전,
완주의 마무리를 설악산으로 남기면서 걱정을 했었다.
설악산이라는 험한 곳을 혼자서 산행한다는 것, 걱정이 없을 수 없었다.
나름 기대를 했었다. 누군가는 함께 하겠다고 나서기를...
덕을 쌓았는지 희망하는 동참자가 있었다.
하지만 미안했다.
직장을 다니는 분인데 짬을 내서 동참을 하겠다니 너무도 감사했지만
감사함보다 미안함이 앞섰다.
해서, 조용히 혼자서로 결정했다.
일기예보를 매일 점검했다.
계획상으로는 05. 22. 월요일에 출발하여 화요일에 산행을 하는 것으로
계획을 했었는데 화요일에 설악산은 비 예보가 있었다.
해서, 05. 23. 수요일로 산행일정을 변경했다.
2023. 05. 23.
명산100 완주의 꿈을 생각하면서 23. 05. 24. 오전 10시 자차로 출발했다.
이동거리는 집에서 설악산 오색 그린야드호텔 주차장까지 497km
이동시간 5시간 30분
오색 그린야드 호텔에서 숙박을 하기로 했다.
차도 그린야드 호텔에 주차를 해 두고 소공원으로 하산 후,
택시로 이동할 계획이다.
이동거리 36km
택시비 56,300원
숙박비 100,000원(사우나 2회권포함 주차무료)
준비를 마치고 5분 거리의 오색들머리를 탐색한 후,
저녁도 먹고 내일 간식 등을 준비하기 위해서 20km거리의 양양읍내로
출장에 나섰다.
양양읍 식자재마트에 들려 산행 중, 먹을 점심으로 햄버거 2개, 행동
식은 사탕 5개, 자유시간 3개, 양갱 2개, 현무님께서 선물하신 별 사탕 건빵 2봉을
준비했다.
간식으로는 쑥떡 두 팩을 준비했는데 그냥 쑥떡이 아닌 신안 섬에서
뜯은 쑥을 몽땅 넣고 유기농 찹쌀로 만든 약지 손가락 한 매듭만한
크기로 자른 떡이다.
생수는 포카리스웨트 2병, 생수 하나를 준비했다.
부족한 생수는 중청대피소나 희운각 대피소에서 구입할 생각이다.
배낭의 총 무게는 6kg정도 되는 것 같다.
아마, 공룡에 들어설 때쯤이면 배낭의 총 무게는 5kg정도 되지 싶다.
럭셔리한 지하 사우나에서 노천탕 포함 여덟 개나 되는 탕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담그기 놀이 삼매경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몰랐다.
방으로 돌아와 노트북 켜고 컴퓨터 장난질 좀 하다가
노곤한 몸을 뉘고 지난 일 년을 돌아봤다.
이제 뭘 더 해볼 것인가?
자문해 봤다.
한 달 이상씩 바다에 떠서 멸치를 잡는데 그물에 붙은
그 지옥의 멸치 털기 멸치잡이 배의 뱃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할 수 있다. 아니,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일 년을 돌아본바...
또, 청춘의 마음으로 돌아가 새로운 연애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씩 웃었다.^^
미친놈~~
내일 산행은 가급적 느긋이 할 계획이다.
산행코스는 오색을 시작으로 대청봉을 인증하고 중청대피소에서 아침을 먹은 후,
무너미 고개 삼거리에서 공룡타고 마등령 넘어 소공원으로 하산할 계획이다.
산행시간을 새벽 03시부터 오후 18시까지 15시간으로 계획했다.
산행거리가 20km정도 되니까 평균속도 1.333km의 속도로 진행할
계획이다.
우리들의 나라 대한민국의 일등 명산, 설악산에서 탐방의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생각에 감정이 이입이 되어 지난 밤, 잠을 설쳤다.
준비해둔 배낭을 점검하고 마무리 된 배낭을 현관에 뒀다.
따뜻한 물을 두 컵 천천히 마시면서 쑥떡 한 팩에 팥빵 두 개를 먹었다.
이정도면 아침 탄수화물로는 충분한 충전이지 싶다.
현관을 나서기 전, 식염포도당 두 알을 먹고 출발~~
02시 30분 오색 들머리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다.
머지?
02시 50분쯤 되자 젊은이 둘이 나타난다.
들머리 문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열리는 것 같았다.
03시가 되자 사람도 없는데 자동으로 열렸다.
일찍 도착해서 나름 스트레칭을 했던 터라 바로 출발했다.
젊은이들이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따라오지 않았다.
혼자서 랜턴 불빛을 따라 처음 쉼터까지 진행을 했다.
랜턴의 불을 끄고 하늘은 봤다.
너무도 오랜만에 별을 봤다.
어제 밤에 꿈을 꿨었다.
하늘의 별을 보는...
하늘이 맑으니 별도 가까이서 빛났다.
다시 랜턴을 켜고 출발...
정상을 2km쯤 남기고 하늘과 산등성이의 경계인 등고선에
미명이 트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바람이 없는 것 같았다.
일출을 보자는 생각으로 서둘러 진행을 했다.
계단에 들어서자 랜턴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밝아졌다.
랜턴을 벗어 배낭에 넣고 물을 한 모금 했다.
정상을 1km쯤 남겼는데도 바람이 없다.
춥지도 않았다.
500m 이정표를 보고 더 힘을 냈다.
대청봉정상에는 아무도 없다.
우리들의 대한민국 제 일경 설악산의 정상,
구름한 점 없는 대청봉을 통으로 전세를 냈다.
갈급한 자는 하늘이 돕는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너무도 좋은 일기를 허락하신 하나님!
남은 산행에 안전까지 허락하시기를...하면서 기도했다.
대청봉 인증을 하는데 발밑에서 황홀한 태양이 솟았다.
설악산 대청봉을 인증하면서 태양을 딛고 인증한 사람을 봤는가?
인증 후, 서둘러 중청으로 향했다.
중청대피소에는 어제 밤 이곳을 이용한 몇 분의 산객들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물 한모금의 휴식을 취하고 소청으로 향했다.
소청에서 희운각 대피소까지는 너덜너덜했다.
희운각 대피소는 공사 중이었다.
생수 작은 병 하나를 구입했다.
07시 공룡능선과 천불동 계곡 삼거리에서 주저 없이 공룡능선 코스로 진행했다.
오늘 공룡능선의 내리랑 오르랑이 몇 봉이나 되는지 세어보기로 했다.
공룡은 시작부터 공룡이었다.
공룡을 타면서 바라본 사방은
우리들의 나라 대한민국의 일경임이 분명했다.
사람들이 감탄을 안 해도 하늘의 지음이 오묘함은 분명했다.
사람이 이렇게 없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외로웠지만 그 외로움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속으로부터 나오는 감탄을 외로움 따위가 가로막기에는
앙끗도 아니었다.
사진을 찍어 줄 사람이 없다 보니 설치하고 거두기를 반복하면서 찍었다.
문제는 1275봉이었다.
15분여를 기다렸다. 기인이 나타나기를...
기인은 없었다.
1275봉, 올라만 봤다.
정신 줄 놓고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16번 3시간 15분의 공룡놀이를
끝으로 마등령 삼거리에 도착했다.
마등령 삼거리의 산행지도에 비선대 1.5km가 검정색인 이유를
마등령 탈출 후, 깨달았다.
정말 욕 나오게 심한 급경사에 심한 너덜 너덜은 관절을 아야 하게 만들었다.
고생이 지나면 낙이라 했다.
계곡의 에메랄드 빛 청수는 그냥 마셔도 보약이지 싶었다.
풍덩 안기고 싶음이 간절했지만 관뒀다.
신흥사 마당에 연등 꽃이 만개했다.
머가 바쁜지 사람들도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활짝 핀 연등을 지긋이 보고 있는 청동 와 불의 있는 듯 없는 듯 보이는 미소를 뒤로 하고
한 참을 내려가 탐방지원센터 입구에 대기시킨 택시를 타고 오색으로 출발했다.
어제 밤 호텔에서 받은 무료입욕권의 사용시간은 오후 3시까지였다.
오후 1시 30분에 도착을 했으니 사용에는 이상이 없었다.
목욕탕은 정말 디게 컷다.
탕도 여러 개 있었다.
어제 탕 놀이를 심하게 했으니 오늘은 그냥 샤워에만 열중하기로 했다.
깔끔히 씻은 후, 대충 짐을 정리하고 출발.
수용한다.
오늘의 결과를...
만족한다.
오늘의 결과에...
스쳐 지난 산바람에도 감사한다.
스쳐 지난 산 숲에도 감사한다.
휘감아 돌아준 구름에도 감사한다.
호복이 내려준 비에도 감사한다.
피곤에 지친 나랑 놀아준 다람쥐에도 감사한다.
안부를 살피며 스쳐간 산 동료들에도 감사한다.
블야의 모두 모두에게 감사한다.
함께한 모두에게 감사한다.
“아내여~
참아준 너에게도 넘치도록 감사한다.
잊지 못할 감사한 마음을 안고 명산100의 하산을 고한다.
또 바요~~/^^
“百 山”
|
첫댓글 명산100 완등을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그간에 눈으로 보시고 가슴으로 느끼고 담아두었던 그 많은 사연들과 말못할 에피소드까지 깔끔하고 맛깔나게 정리한 후기...
읽어본 자체가 영광입니다.
이제 백산이 되신 고희님!
오래도록 건산과 행산 함께 하시죠!
백산(고희)님 완등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명산100 완등 긴 후기 지만 알찬 내용 잘 읽었습니다. 도전은 누구나 하지만 완등은 아무나 할수없기에 더 빛나고 소중합니다.
고생 하셨습니다
힘들었고 고생했고
때로는 후회했던 소중한 추억들..
명산100을 완등하시면서
꼼꼼히 정리해두신 기록들과
소중한 경험들을 글로 남겨주셔서
읽는 내내
스릴도 느끼고 안타까움도 느끼고
감동적인
간접 경험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산님의 수고로움과 열정에 박수드려요
이제 블랙야크 알파인클럽으로
새로운 인증 하면서 즐기는 산행하시게요~
덕항산 두타산에서 뵙겠습니다~
@悔恨의 古希
긴 글이지만 빠짐없이 재미있게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자타가 인증하는 완등을 진심을 담아 축하드립니다
명산100
완등 기
잘 읽었습니다
제 경험과 똑 같은 도전기
경험 해 보는자가
그 기분 아는법
저 는 어게인 섬산.백두대간
지리산 화대종주 등~
블랙야크
게시물1.200회 이상
등산 경비비용 은
건강으로 복 받기 로
대체 합시다
수고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산행길ㅈ
항상 행복한
인생길
건강하세요
보내주신 대청봉이 완등나진 이었군요
바로 축하하지 못했네요
완등느낌 너무나 잘알지요
그감동 오래오래 기억하시고 또 다른 목표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쭈욱~~~
안전한 산행 즐거운산행 빕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백대명산 완등기 잘 읽었습니다. 100번 이상의 산행동안 큰 사고 없이 안전하게 마무리 하신 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저희랑 함께 하시면서 또 다른 즐거움 찾으시길 바랍니다 ^^
백산 형님.이제야 100산 완등기 다 감상했네요.저도 2년여의 많은 시간들이 새록새록 주마등처럼 펼쳐집니다.소중한 추억을 소환하다 보면 남은 여생도 신명나고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 될듯합니다.다시 한번 감축 드립니다.건강하게 오래오래 산행하며 보시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