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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자 전도방법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1. 불교권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전도 대상입니다.
복음 전도는 기독교인들이 온 힘을 기울여 실천해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신 지상명령이며, 기독교인이 아닌 모든 사람이 다 전도의 대상입니다. 그 가운데 불교권은 기독교의 전도 대상 가운데 커다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경우 불교신자의 비율이 기독교인의 비율과 비슷한 전 인구의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인을 제외한 나머지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수많은 불교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교권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전도 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불교신자들에게 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불교라는 종교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신자가 "불교는 우상숭배의 종교다"와 같은 단순한 표현으로 불교를 비판하며 전도할 때, 혹은 불교의 교리를 불교에서 주장하는 의미로 말하지 않고 왜곡하여 비판할 때, 이를 듣는 불교신자는 자신의 종교에 대한 반성보다는 "저들이 불교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저런 허튼 소리를 한다"고 불만스럽게 생각하며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도하려는 기독교인을 향해 자기가 믿는 종교에 대해 옹호하려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복음을 전하려는 기독교인의 말이 전도 대상자인 불교신자의 가슴에 전달되지 않을 것이고, 그 전도는 결실을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상대방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지지 않는다"(知彼知己면 百戰不敗라)는 말이 있듯이 불교신자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전도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도 불교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습니다. 불교에 대해 공격적인 비판을 하기보다는, 불교신자와 대화하면서 그로 하여금 불교의 한계를 인식하게 하고 나아가 참 생명, 참 자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진리를 깨닫도록 한다면 보다 효율적인 복음전도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불교의 사상, 역사, 문화에 대해 개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하여 불교신자 전도를 위한 교회 전도특공대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IV. 전도 현장에서의 세미나 적용하기
1. 불교신자의 상황 파악하기
현장에서 전도는 대상자에 대한 파악으로부터 시작된다.
복음을 권면하고자 할 때 <저는 절에 다닙니다> 와 같은 말로 자신이 불교신자라고 밝힐 경우에 그냥 돌아서 나올 것이 아니라,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친근감을 조성하면서 상황을 파악하도록 한다.
(상대방의 말에 대해 받아들이는 듯한 자세로)
다니고 있는 사찰에 대한 파악 (예문)
- 아, 그러세요. 어느 절에 다니세요?
-○○사(寺)요, ○○에 있는 절이지요? (또는, 어디에 있는 절이지요?)
-절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신자가 얼마나 되지요?
-승려는 몇 분이나 계신가요?
신앙 형태에 대한 파악 (예문)
-절에는 자주 가시나요?
-언제부터 절에를 다니셨어요?
-가족분들 모두가 절에 다니시나요?
2. 관련 사항 기록 및 지속적인 전도 계획 수립
1) 참조사항 기록 : 전도를 마친 후에 돌아와 대상자에 대한 참조사항을 기록한다.
2) 지속적인 전도 계획 수립 : 전도 대상자의 담당자를 지정하고, 앞으로의 지속적인 전도 계획을 세운다.
3) 정기적인 검토 및 수정 보완 : 월 1회 정도 정기적으로 전도특공대의 활동사항을 점검하면서 그 성과를 살펴보고, 계획을 수정 보완하도록 한다.
3. 대화 이끌어 가기 : 불교신자 스스로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반문, 회의하도록 하기
주 1회 정도 정기적으로 심방을 하면서 전도 대상자의 신앙에 적절한 불교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이끌어 가도록 한다. 대화를 통해 전도 대상자인 불교신자로 하여금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반문하고, 회의하게 함으로써 참 생명, 참 소망은 불교 안에서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한다.
여기서 전도자가 유념할 것 가운데 하나는 불교신자와 대화를 하면서 불교 이야기만 하다가 대화를 끝내지 말고, 불교의 한계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 다음 관련된 성경의 가르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대화를 종결짓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전도자는 빠른 시일 내에 열매를 맺고자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다리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4.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되고 영원한 생명, 참 행복, 참 소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도록 인도한다.
5. 관심어린 양육
불교신자가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고 그에 대한 영혼 구원의 사역이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불교를 믿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마음에 확신을 하기까지에는 교회 문 안에 들어와서도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 시간 동안 옆에서 성도들이 그의 신앙 성숙을 위해 기도하며 도와주어야 한다.
V. 세미나 내용 : 주제 및 전도 현장에서 적용하기
(현재는 목차를 적은 세미나 내용에 대한 개요이며, 교재에서 보다 상세하게 서술할 것입니다.)
1. 부처와 보살은 신(神)적 존재인가?
1.1 기독교의 하나님 이해
-스스로 존재하는 무한하신 분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
-역사를 주재하시는 분
-인간을 아들, 딸로 만나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오신 분
1.2 불교의 신(神) 이 해 : 부처와 보살
1.2.1. 근본불교의 무신론적 이해
1.2.2. 대승불교의 유신론적 경향
1.3 전도 현장에서 적용하기
1.3.1. 예수 그리스도와 부처는 동등한 신이며, 각자 자기에게 맞는 신을 섬기면 되는 것인가?
*응답하기 : 유신론적 사고를 지니고 있는 불교신자에게는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싣달타가 무신론적 주장을 하였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참 신에 대한 가르침은 성경에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임을 설명한다.
1.3.2. 하나님은 없는데,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이 신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없는 하나님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응답하기 : 무신론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불교신자에게는 먼저
(1) 아미타사상이나 미륵사상이 하나의 방편으로 가르쳐진 것이 아니라, 절대적 존재에 대한 자각(인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설명한다. 그런 다음
(2) 화엄경의 "모든 것이 마음에서 지어낸다"(一切唯心造) 가르침을 말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임을 이해시킨다 : "어리석은 자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 14:1). 그리고 참 신에 대한 가르침은 성경에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임을 강조한다.
2. 과연,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가?
2.1. 기독교의 인간 이해
창조→타락→징벌(심판)→구원
2.2. 불교의 인간 이해
2.2.1. 인연화합
2.2.2. 인과응보와 윤회(삼세, 육도)
2.2.3. 해탈(解脫) : 윤회로부터의 해방
2.3. 전도 현장에서 적용하기
2.3.1.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가?
*응답하기 : 부처의 길은 출가 수행하여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만 열리고, 불교신자에게는 이 생에서 부처가 될 가능성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구원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2)고 가르친다. 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롬 10:10)고 가르친다. 이처럼 기독교에서 제시하고 있는 구원의 조건은 인간의 수행이나 노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열린 마음 자세이다. 당신도 마음의 결단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구원의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2.3.2. 그러면 불교신자는 생의 마지막 갈림길에서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는가?
*응답하기 : 현실적으로 그는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다. 자신의 행위대로 따를 것이라는 업보윤회의 굴레에 갇혀서 두려움으로 떨어야만 할뿐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이에게만 영원한 생명과 하늘나라에의 소망이 주어진다.
* 부설 : 기독교가 불교보다 배타적이고 폐쇄적인가?
(요약적 결론) 기독교와 불교라는 두 종교에서 각각 추구하고 있는 지향점(구원 - 성불)에 도달하기 위한 조건들을 살펴볼 때, 불교는 기독교보다 폭이 좁고 어려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불교는 기독교보다 훨씬 더 닫혀 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가 불교보다 훨씬 더 개방되어 있다.
3. 모든 것이 그저 헛되고 헛된 것인가?
3.1. 성경의 가르침 :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것이 헛되다"(전 1:14). 그러나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전 3:14).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룰 때에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믿을 때에만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3.2. 불교의 무상(無常)과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
3.2.1. "모든 것이 영원하지 못하다 : 제행무상(諸行無常)"
이 "모든 것이 영원하지 못하다 : 제행무상(諸行無常)"는 불교의 가르침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함으로써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러한 가르침은 슬프고 괴로운 것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니 희망을 갖고 참고 견디라는 긍정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 효과보다는 주변에서 볼 수 있듯이 삶을 소극적이고 체념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3.2.1. 모든 것이 주고받는 관계 가운데 존재한다 :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
3.3. 전도 현장에서 적용하기
3.3.1. 모든 것이 과연 무상한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고 체념해야만 하는가?
*응답하기 :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렇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영원한 길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곧 사람-자연-하나님 사이의 바른 관계를 회복할 때 영원한 생명, 참 행복, 참 기쁨, 참 소망을 얻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4. 불경은 정말 부처의 가르침인가?
4.1. 기독교 성경의 권위
교회공동체에서 오랜 기간을 두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체험으로 확증하고 66권을 기독교의 정경으로 채택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의 최고의 규범이며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다.
4.2. 불교 경전의 권위
불교 경전은 주전 6새기로부터 주후 4-5세기에 걸치는 오랜 세월 동안 불교 승려들이나 학자들, 또는 공동체에서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교공동체 전체에 의해 정경으로 채택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종류의 불교 경전들이 존재하며, 그것들 가운데 대표적인 일부 경전들을 제외하고는 불교 공동체에서 책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4.3. 전도 현장에서 적용하기
4.3.1. 예수님께서 불교의 법화경을 인용했는가?
*응답하기 : (요약결론)
<법화경의 편찬 연대>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이전의 시기인 1세기 초반은 법화경이 아직 편찬되지 않은 시기이다. 대부분의 불교학자들은 법화경의 최종적인 성립 연대를 2세기 후반으로 본다. 즉 기원전 50년경부터 법화경의 일부가 성립되기 시작하여 서기 150년 이후, 곧 2세기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현재와 같은 형태의 법화경이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2세기 후반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보다는 100여 년이 지난 뒤이고, 복음서 편집도 끝난 이후이다. 다시 말해서 법화경은 예수님 시대보다는 물론이고 복음서보다도 뒤에 나온 책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혹자가 예수님께서 인도 지역에서 법화경을 공부하였으며, 신약성경에 법화경을 인용한 점이 너무나 많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법화경이 석존 당시에 성립되었고, 석존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500년 이상 앞에 살았던 분이니까 예수님 당시에 당연히 법화경이 존재했었다고 오해한 상태에서 법화경과 신약성경의 비슷한 부분을 법화경에서 배워간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5. 행함으로 극락에 갈 수 있는가?
5.1. 기독교 : 구원의 길
5.1.1. 믿음으로 구원
5.1.1.1.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완전한 선(절대선)을 이룰 수 없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 7:2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19, 23-25).
5.1.1.2.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롬 10:10)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6-18).
5.1.2. 선을 행함은 하나님의 은혜(성령의 도우심)
인간이 절대 선을 이룰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예수님이 없이도 내가 살 수 있다는 교만이고 불신앙이다. 선을 행하는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고, 성령의 도우심 곧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고, 그런 죄인에게 생명의 길을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성령께 자신이 주님의 뜻에 합당한 선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5.2. 불교 : 해탈의 길
1. 원시불교 : 팔정도(八正道)
-정견(正見) : 바르게 보기
-정사유(正思惟) : 바르게 생각하기
-정어(正語) : 바른 말 사용하기
-정업(正業) : 바르게 행동하기
-정명(正命) : 바르게 생활하기
-정정진(正精進) : 바르게 노력하기
-정념(正念) : 바르게 기억하기
-정정(正定) : 바르게 명상하기
2. 대승불교
2.1. 반야10지 : 행함 강조
*선 : 선 수행에 의한 직관적 깨달음 강조
2.2. 화엄10지 : 행함 강조
2.3. 정토불교 : 염불 강조
(정토사상에 대해서는 아래 6번 내용 중에 다루도록 함)
5.3. 전도 현장에서 적용하기
5.3.1. 불교 조계종단의 갈등을 보게 되면, 행함을 강조하는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평생 산 속에 들어가 수행했다는 승려들이 저자거리의 조직폭력배처럼 싸우는데 왜 그럴까요?
*응답하기 :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절대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만 인간은 죄에서 해방될 수 있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선을 행할 수 있다. 인간의 죄성과 한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한다.
5.3.2. 불교의 오계(五戒), 특히 "술을 마시지 말라"는 조항은 단순히 선언적 조항인가요?
*응답하기 : 불교신자들 가운데 생리적으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술을 마신다. 불교신자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오계 가운데 이 조항은 분명 오늘날 한국 불교에서 선언적 조항으로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키지는 못할지라도 선언적 조항으로 여기지는 안는다.
6. 아미타불, 미륵불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6.1. 인간의 죄인 됨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6.2. 정토사상과 미륵사상
6.2.1. 정토사상
6.2.2. 미륵사상
6.3. 전도 현장에서 적용하기
6.3.1. 아미타불과 미륵불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응답하기 :
6.3.2. 한국 불교에서 정토사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떠한가?
*응답하기 :
6.3.3. 미륵사상과 천년왕국설은 그 내용에 어떤 유사점이 있는가?
*응답하기 :
6.3.4. 미륵사상이 한국 민중들에게 미친 영향-민중운동과 미륵
*응답하기 :
7. 49제나 천도제를 지내면 정말 왕생극락하는가?
7.1. 기독교의 제사 이해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믿는 자들에게는 하늘나라가 허락되지만, 믿지 않던 영혼들에게는 지옥의 형벌이 주어진다. 후손들이 기도한다고 그 영혼의 길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7.2. 불교에서의 제사
7.2.1. 칠제(七祭)와 사십구제(四十九祭)
7.2.2. 천도제(薦度祭)
*참조 : 불교와 기제사(忌祭祀)
7.3. 전도 현장에서 적용하기
7.3.1. 절에서는 해마다 음력 7월 15일이 되면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위해 영혼 한 분당 삼만 원 정도씩 돈을 받고 천도제를 지낸다. 그런데 지난해에 천도제를 지낸 조상을 금년에 또 지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 승려들이 천도제를 지내면서도 그 영혼이 나쁜 곳에서 벗어났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금년에도 지내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나쁜 곳에서 좋은 곳으로 갔다고 생각하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금년에 다시 천도제를 지내는 것인가? 두 가지 경우 중 어떤 이유에서든 이건 명백히 불교신자를 우롱하는 처사가 아닌가?
*응답하기 : 이 문제는 질문으로 끝.
8. 불교에 관한 참조 사항들
(1) 왜 승려들은 삭발을 하는가?
(2) 예수재(豫修齋)
(3) 사리
(4) 부도와 탑
(5) 향과 초
(6) 염주
(7) 사찰의 일용 법구들-목탁/목어, 종, 법고/북, 운판, 죽비
(8) 방생
(9) 연꽃의 의미
(10) 부적
(11) 이성철 스님의 열반송
(12) 사찰에서 승려의 교육 과정
-목사직은 성직자로서의 훈련과정을 마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지만, 불교 승려 신분은 불교 수행자로서 첫 발을 내딛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기독교 목사와 불교 승려는 같은 반열의 성직자가 아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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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희 지역이 유난히 불교가 성한 곳인데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