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덕항산, 두타산(1,353m)~쉰움산 산행 ♡
(환선굴, 예수원, 두타청옥, 오십정, 천은사, 제왕운기)
1. 산행경로
☆덕항산 : 하사미교 - 예수원 - 장암밭목 쉼터 - 덕항산(1,071m) - 새매기고개 - 새매기골 - 하사미교
(6km/ 1시간 20분 / 원점회귀)
☆두타산 : 댓재 - 햇댓등 - 통골목이 - 두타산(1,353m) - 쉰움산(688m) - 천은사
(약 12.7km / 5시간20분 / 일자산행)
2. 산행일시
2023년 6월 6일 (토)
08:30 ~ 16:00 (7시간 30분)
3. 산행소감
산을 찾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처음에는 오로지 건강을 위해서 찾았다.
목 디스크가 파열되어 웨이트는 할 수 없고,
다른 방법을 찾다 배드민턴도 해 보았지만,
시간 제약과 레슨, 어깨결림이 또 말썽이었다.
어릴 적, 아부지,어무니 따라 그렇게 가기 싫어했던 동네 뒷산(장성읍내 제봉산).
막상 산에 올라 땀 흠씬 흘리고, 계절마다의 각종 산야초를 따러 다니며 자연관찰의 묘미도 있었다.
그 생각이 나면서, 홀로 산을 찾았다.
막힌 가슴이 뻥~ 뚫리면서 반바지가 민망했던 종아리를 탄탄하게 다듬어주고, 허벅지의 뻑쩍찌근함이 왠지 좋았다.
헐떡이는 숨에 몸 구석구석 안 쓰는 근육이 없으니 이게 딱이구나를 느꼈다.
한 가지 더.
야구, 볼링, 축구 같이 단체로가 아니라 나 혼자의 시간만 맞으면 언제든지 즐길 수 있다는 장점.
그렇게 산을 일찍 알아 버렸다.
누군가는 목적의식을 갖고 열심히 정상을 오르고,
또 누군가는 족적을 남기기 위해 미개척지를 생채기 남기며 탐험하고,
요즘 나는 그저 산이 좋아 목적없이 오른다.
산에서의 풀내음과 샛소리, 바스락거리는 낙엽밟는 소리, 계곡물소리, 가끔씩 산죽숲에서의 무명의 동물 발자국 소리...
이런 백색소음이 좋다.
귀를 쫑긋 세울 필요도 없이 자연에서 자연스레 작은 소리에 귀기울려 진다.
계절마다 바뀌는 옷 색깔은 패션에 도무지 관심없는 나보다 훨씬 더 멋쟁이다.
연초록으로 시작해 짙초록의 녹음을 보는 내내 그 어떤 루테인 영양제보다 시선을 맑게 해준다.
눈의 뻑뻑함, 피로함은 5월의 신록과 녹음이 특효약이다.
가을의 노릿한 갈색 다홍 잎새는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색깔을 표현해 내지 못한다.
쌩쌩 달리는 우민 동네에서의 겨울 눈은 치우기가 바쁘고, 녹아버리기 일쑤지만, 산에 올라 보시라.
오히려 헐벗은 나뭇잎새를 하이얀 눈송이들이 포근히 감싸주어 풍성하게 안겨준다.
자연 속의 아이러니.
책에서 또는 가공돼 버린 과채에서 접하는 식물의 이름은 쉽게 잊혀진다.
자연으로 나가 눈을 마주하고, 카메라를 들이밀며 살아있는 식물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마늘, 양파가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피붙이가 있다.
당연히 자연에서 접할 기회가 없었기에 충분히 이해가 간다.
산을 찾으면 그 지방의 유래나 유적, 사적에 자연스레 관심이 간다.
건강 때문에 찾은 산은 이렇게 다양한 앎과 지혜와 체력, 건강을 아무 댓가없이 베풀어준다.
인공섬에서의 술은 위염을 부르지만,
산에서의 이런 여러 안주를 버무려 마시는 술은 엔돌핀을 부른다.
이 날 산에서의 느낌도 다르지 않다.
태백의 부정적 이미지(폐탄광, 진폐증, 가난, 시골, 한산함)는 직접 마주함에 나의 우둔함을 탓한다.
깨끗한 도로와 잘 정비된 가옥들, 먼지보다는 오히려 신선하고 선선한 공기내음.
덕항산 초입 하사미교(외나무골교)에서 생애 처음 마주한 산마늘(=명이나물)과 그 꽃.
삼겹살집에서 쥐톨만큼 준 그 명이나물이 이렇게 생겼고, 꽃이 대파꽃 처럼 생겼다는 걸 아는 분이 몇이나 될까.
산 속에 들어선 종교시설물, 특히 기도원의 경우 부정적 인식이 강한 터라 "예수원"의 푯말과 표시석, 건물을 대하는 나의 시선은 고울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또한 일반화의 오류 아니던가.
당시 못 살고, 미개한(=덜 문명화 된) 우리 한반도인들을 위해 백인 신부님(고 대천덕 신부님)께서 아내와 함께 아무 조건없이 이 곳 태백 산 속에 예수원을 세우고, 봉사와 복음을 전하며 고인이 되셨다.
그 유지가 현재도 내려와 아드님께서 순수 수도 기도원으로 운영 중이란다.
#예수원
https://namu.wiki/w/%EC%98%88%EC%88%98%EC%9B%90
어느샌가 '성인 예수님'의 이름이 들어간 간판들이 이단, 혹세무민, 재산탕진 같은 부정어로 동급 취급됨을 세뇌당했나 보다.
500km 남짓한 곳 까지 왔으니, 여러곳을 담아가려는 게 인지상정일 듯.
남한 최대 동굴(환선굴)을 품에 안은 덕항산의 묘미는 다음을 기약하며 다음 이정지 두타산으로 향한다.
두타청옥.
개성없이 지은 산이름(특히나 전국의 백운산이라는 이름은 20여 개가 넘는다.)에서 비켜나 너무도 아름다운 이름이다.
백두대간 옆 두타의 아들뻘 되는 '쉰움산'의 이름도 그렇다.
한자어로 정형화된 이름보다 한글로 한번 더 생각케 하는 쉰움산의 작명에 박수를 보낸다.
(두타산 정상을 오르고, 멀리 동해를 보며 절벽을 따라 내려가다 이 곳 쉰움산에서 잠시 쉬어가라는 뜻인줄로만 알았더니, 쉰 개(쉰)의 우물(움)이 있어서 쉰움산 이란다. 五十井山 보다 훨씬 세련되고 멋지다.)
복잡한 고민과 번뇌는 이 곳 두타산(頭陀山)에 다 내려놓으라 했으니, 말 잘 듣고 그리 합니다.
파아란 하늘에 뭉게뭉게 구름도 동참합니다.
쉰움산을 거쳐 천은사까지의 여정은 애국가의 그 말처럼 철갑을 두른 듯 소나무들의 폼새가 너무도 장엄하다.
군데군데의 천년 고사목들도 파란 하늘색 캔버스에 담긴 실사 풍경화다.
(밥 로스 아저씨의 그림이 여기 그대로 있다.)
오늘의 마지막 종착지 천은사(天恩寺).
고려 말,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안타까워 하며 남긴 보물 역사서 '이승휴의 제왕운기' 집필지이다.
중고등학교 때 시험에 나온다고 죽어라 외운 그 책.
천은사 극락보전에서 잠시 생각에 잠기며, 정성스레 삼배를 드린다.
지금 순간만큼은 부처님, 여호와, 알라, 하나님 모두 나를 사랑하시고, 보듬어 주시며, 기도를 들어주시리라.
우리나라가 좁다고 누가 그랬는가.
6시간 동안 올라와 이 두다리로 강원도 태백, 삼척, 동해를 뚤레뚤레 돌아당겼다.
이렇게, 누가 시켜서는 절대 하지 않을 짓(?)을 마무리하고 집에 오니 허리가 움씬거린다.
버스에서 11시간 동안 '생각하는 사람' 이 되었으니, 허리 너도 참 고생이 많았다. ^^~
이렇게 다음을 기약하는 또 하나의 즐거운 목표가 생긴다.
하나는 덕항산 환종주 겸 환선굴 보기.
둘째는 두타산~청옥산 연계산행 하기.
첫댓글 어김없이 대단한 후기!
감동입니다.
그렇게 빠른 산행을 하면서 그 많은 것을...
거의 스캐너 수준!
감사합니다!
깊은 성찰이 담긴 산행 후기 잘 읽었습니다. 👏👏👏
많은걸 스치듯 걸으며 담고 또 담으며 깊이를 느끼게하는 산행기 넘 잘읽었네요.
두문동재에서부터,매봉산,건의령,자암재,황장산,댓재, 두타산 지나 청옥산 그리고 망군대까지
망국의한을 품은 고려왕족과 귀족들의 뼈아픈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역사적인 깊이가 담긴산길입니다.
연두연두하다 미세먼지와 짙은운무속에 산행길이 지나가니
이처럼 짙푸른 산마루금과 파란하늘 뭉게구름을 보는 잊지못할풍경속 산행에 또 하루가 지나가나봅니다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앗!!
별똥별님의 덕항두타산 후기닷!!
오름길에 지나치듯 보고
바쁜 하산하면서 놓친것들이 많았는데
자세히 올려주신 사진들과
일화들까지
별똥별님 후기 덕분에
편하게 누워서 토욜 산행을 다시하고 온듯해요
산행 후 어김없이 기대되는 후기
맞습니다~
산도 잘타고 글도 잘 쓰고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아우님! 산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할려고 했는데, 다시 산을 탈렵니다. 힘차게!! 아우님처럼 멋진 폼을 잡으면서,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