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26편
올라가는 노래(7) "꿈꾸는 것 같았도다"
본 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120-134) 중 그 일곱 번째 노래이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이 백성이70년 만에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그 사실이 "믿을 수 없는 꿈만 같은 사실"임을 고백하며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성전으로 올라온 우리 성도들의 심정도 사실 그러해야 한다.
1.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1-3)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 신사참배의 억압에서 벗어난, 36년 만에 신앙의 자유를 되찾은 조선의 신자들이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 갔을 때도 꼭 같은 놀라움과 감격과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느낌은 평생 우상과 탐욕과 거짓과 음란의 부끄러운 죄악 가운데서 살던 교만하고 뻔뻔하던 사람이 회개와 사죄의 은혜를 받은 후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 올 때 가지는 느낌이다.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1).
믿을 수 없는 사실이 현실로 나타날 때 우리는 꿈꾸는 것 같다는 표현을 한다.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2).
너무 좋아서 입에서는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우리는 기쁘도다 "(3).
진정한 기쁨은 구원의 은혜를 체험할 때 생긴다.
"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이키실 때에" (1).
포로 귀환과 성전 등청은 저들의 공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조국의 힘으로 된 것도 아니었고 바벨론의 특혜로 된 것도 아니었다. 역사의 주재자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저들을 돌이키신 것이었다.
그래서 저들은 그것을 고백했다. 여호와께서 이루신 대사였다. 그것을 열방도 인정했고 저들도 인정했다.
2. "우리의 포로를 돌리소서" (4)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성전으로 올라가는 이스라엘은 감사와 기쁨에 넘쳐 있으면서도 저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호소가 있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동족 포로들이 빨리 돌아올 수 있게 해 달라는 간절한 호소였다.
진정한 신자는 자기가 받은 은혜만을 인해서 기뻐하는 자가 아니다. 아직도 같은 은혜를 받지 못한 이웃과 세계를 위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저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호소하는 자들이다.
남방 시내들이 우기에 물로 가득 차서 다시 흐르는 것처럼 동족 포로들도 다시 흘러 돌아오게 되기를 간구했다.
3.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5-6).
"여기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아직 포로에서 돌아오지 못한 자를 가리킬 수도 있고 포로에서 돌아온 자를 가리킬 수도 있다.
포로에서 돌아왔다고, 성전으로 올라왔다고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눈물 흘릴 일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는 항상 고난과 눈물이 있었다. 그러므로 성급한 낙관주의는 금물이다.
너무 빨리 웃어 버리면 않된다. 그러나 성급한 좌절도 금물이다. 너무 쉽게 울어 버려도 않된다.
기독교는 비관주의와 함께 궁극적인 낙관주의를 보여 준다. 울면서 밭을 갈고 눈물로 씨를 뿌리면 분명히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될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웃기 위해서는 먼저 울어야 한다.
심음의 비밀
(시 126:1-6)
찬송 270장
시편 126편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생생한 구원의 감격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온시로서 저자는 제2차 귀환시 인도자인 에스라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1-3절은 해방을 회상하며 벅찬 감격을 노래하면서, 4-6절은 아직도 해방되지 못하고 바벨론에 남아있는 백성들의 완전 귀환을 간구합니다.
3절에서 말하는 대사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구원의 대역사를 예표한다는 점에서 우리들도 예수님의 구원의 은총을 그렇게 기뻐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5-6절처럼 사람의 할 일은 눈물을 흘리는 악조건에서도 믿음으로 열심히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말씀을 묵상할 뿐 아니라 이웃에게 전하여 온전한 구원의 은총 가운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한국강해설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