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벽·계단 불길이 휩쓸고가 ‘처참’... 빌라 현관 입구 부근 멀티탭 발화
막내는 구출… 현재 병원서치료중, 2년전 경험한 ‘화재의 아픔’ 반복
金지사 “할수있는 후속조치 약속”
27일 안산시 한 다세대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로 나이지리아 국적 4남매가 숨졌다. 화재 진압이 마무리 된 현장 주변에 잿더미로 변한 잔해와 함께 장난감이 놓여 있다. 조주현기자
“이미 1차례 위기를 넘겨 여기까지 왔는데…또 다시 이런 비극이..”
27일 오전 3시28분께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의 한 빌라에서 발생한 화재로 나이지리아 국적의 어린이 4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이들 가족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30분께 고대안산병원. 이번 화재로 세상을 떠난 나이지리아 국적 아이들의 부모 A씨(55)와 B씨(41), 막내 아이인 1세 여아가 치료를 받고 있었다. 엄마인 B씨는 화마 속에 아이들을 두고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허망한 표정으로 말없이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화재 사고의 사망자는 11·4세 여아와 7·6세 남아로 A씨와 B씨의 자녀들이다. 거실에서 불길을 발견한 이들 부부는 막내를 대피시켰으나 다른 자녀들은 미처 구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불은 출입문 부근 벽면 콘센트와 연결된 멀티탭에서 시작된 걸로 확인됐다.
이들이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나이지리아 친구 린씨(45·여)는 “(11세 여아는) 참 똑똑하고 동생들을 잘 보는 착한 아이였다”며 “우리집에 자주 놀러왔는데 밝고 당찼다. 그런데 어쩌다가…”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지인 등에 따르면 A씨 부부는 지난 2009년 ‘코리안 드림’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타지 생활은 생각보다 가혹했다. 남편 A씨(55)는 오디오, 중고차 등 고물과 헌옷 등을 수거해 외국으로 수출하는 일을 하는 등 밤낮 없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곱 식구의 생계를 책임졌다.
이처럼 고된 생활이 이어졌지만 A씨 부부는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희망을 잃지 않고 다섯 아이들과 행복한 가정을 유지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A씨 자녀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 화마 사고는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2021년, 이미 A씨 가족은 화재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아픔을 경험했다. 이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거처를 옮긴 이 곳에서 또다시 동일한 비극이 이어진 것으로 확인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A씨의 친구 마이클씨(58)는 “전에도 집에서 불이 나 아이가 다쳐 이곳으로 이사 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버텨온 이들에게 이 같은 불행이 다시 찾아왔다는 사실이 너무 가혹하다”고 어두운 표정으로 울먹였다.
같은 날 화마가 휩쓸고 간 현장의 모습은 처참했다. 불이 났던 빌라는 1층에서 3층까지의 외벽과 계단은 불길에 잠식돼 있었던 듯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또한 화재가 난 2층 세대 안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거나 녹아있었으며 바닥엔 깨진 유리 파편들이 흩뿌려져 있어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이곳 주민들 역시 당시 상황은 참혹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곳 주민 이금자씨(73·여)는 “새벽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와보니 불길이 치솟아 있었다”며 “누군가가 외국어로 ‘불이야’라고 말하는 듯 계속 소리쳤다. 소방차가 이미 와 있어서 아이들이 모두 대피한 줄 알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사망자들에 대한 부검을 의뢰할 계획이다.
한편 나이지리아 대사는 사고 소식을 접하고 이날 오후에 화재 현장과 유가족이 있는 병원을 방문해 애도를 표했다. 안산다문화교회, 안산 나이지리아 공동체 등은 대책위원회를 꾸려 이들 가족의 장례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구재원 기자 kjw9919@kyeonggi.com
김은진 기자 kimej@kyeong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