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엽서
카투만두에서 홍콩으로
카투만두의 트리부완(Tribhuvan) 국제공항에서 네팔의 동굴에서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수행을 며칠 더 하는 금당거사와 석 달 동안 인도의 티벹불교 사원에서 수행을 하러 가는 빼마라쵸와 악수를 하며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생각할수록 고맙고 인정 많은 사람들이다.
이런 훌륭한 젊은이와 함께 순결한 나라, 네팔과 부탄을 순례하며 많은 선지식에게 수승한 가르침을 받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성스러운 히말라야를 걸었던 지난 9박 10일 동안의 시공은 얼마나 아름다운 인연인가!
지구촌 곳곳에서 여행 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2층 대합실에서 탑승시간까지 2시간은 기다렸다. 이윽고 우리가 탈 비행기의 편명이 전광판에 뜨고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홍콩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 자리로 찾아가니 내 왼쪽 옆자리에 얌전한 얼굴의 네팔인 젊은 아가씨가 앉는다. 의과대학에서 면역학을 전공하는데 일본에 거주하는 부모님을 뵈러 간다고 한다.
오른쪽의 정광화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눈을 감고 잠을 청하다가, 이어폰을 끼고 홍콩의 노래를 듣다가, 영어 대사의 미국 영화를 보다가, 기내 잡지를 뒤적이다가, 따끈하고 맛있는 기내식을 먹다가 하면서 밤새도록 피곤하게 비행하여 15일 아침 6시경에야 홍콩 공항에 도착하였다.
2015년 1월 15일
홍콩에서 포항으로
홍콩 공항에서 인천 공항으로 오는 비행기를 갈아타려고 이동하다가 게이트를 잘못 보고 반대방향으로 갔다. 다시 되돌아와서 위층으로 올라가 겨우 탑승구를 찾았다. 아침 7시 10분에 이륙하여 인천공항으로 오는 항룡항공(港龍航空, Dragon Air)의 65번 에이좌석은 창가였다. 수경심 선생님과 천안에서 온 김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서 재미나게 이야기를 하며 왔다.
출발할 때 설렘으로 가득했던 풍선에 아쉬움과 현실이라는 바늘구멍이 생겨 마음은 다시 근심걱정으로 쭈그러들고 한편으로 내 집에 왔다는 안도감이 생긴다. 홍콩 항구와 도심이 보이더니 구만 리 검푸른 하늘을 구름과 바다를 헤치며 날아오른 붕새가 어느새 우리나라 상공에 왔다. 맑은 햇살 아래로 서해의 갯벌이 보이고 경기도의 바닷가 마을과 아파트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도로 위에는 사람들이 자동차를 몰고 오늘도 어디론가 바삐 오간다.
인천공항에 내리니 공항경찰이 남 거사님을 찾았다. 비행기 화장실에서 담배 향기를 흠향하셨는가보다. 벌금 오백만원이나 3년 이하의 징역형이 기다리고 있단다. 벌금 내지 말고 ‘국립 무문관’에서 수행하여 번뇌의 니코틴을 빼내고 성불의 인연을 심어보라고 현장 스님이 남 거사님께 권한다. 걱정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던 모두의 표정이 금방 함박꽃 같은 웃음을 터트린다.
공항에서 구미로 가는 수경심 누님과 작별하고 정광화 선생님과 같이 포항으로 오는 리무진 버스를 탔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휴게소에서 우동 한 그릇 먹으며 쉬었다. 부산으로 가는 허 교장선생님과 이 선생님을 그곳에서 다시 만났다.
재회
저녁 8시경에야 포항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아내가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왔다. 정광화 선생님을 지곡으로 모시다 드리고 딸아이가 반기고 따뜻하고 편안한 집으로 왔다.
아내는 1월 9일에 상하이로 가서 중국 자싱(嘉興)대학교에서 1년 공부를 끝내고 귀국하는 딸아이를 만나 상하이(上海)와 쑤저우(蘇州)를 여행하고 나보다 하루 먼저 14일에 귀국했다.
모녀는 상해에서 88층 진마오(金茂) 빌딩의 전망대에 올라가 보고, 후앙푸강(黃浦江) 유람을 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답사하고, 정안사(靜安寺)를 관광하고, 상하이박물관에서 실크로드 출토 벽화를 관람하고, 소동파의 시가 적혀있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셨다.
기차를 타고 쑤저우로 가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원림(園林)인 사자림(獅子林), 유원(留園), 졸정원(拙政園), 호구(虎丘), 고소성 한산사(姑蘇城 寒山寺), 양챙호(陽澄湖), 금계호(金鷄湖)를 유람하였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인데 가족이 함께 여행하지 못하고 히말라야의 남북에서 엇갈린 시간을 보내어 아쉬웠다. 그래도 히말라야의 행복왕국, 부탄을 여행할 수 있어서 나는 더 없이 기쁘고 감사하다.
모녀는 가냘픈 허리에 닳아빠진 혁띠를 차고 다니는 나에게 금색 바클의 유명 브렌드 새 것을 면세점에서 사서 선물하였고, 나는 모녀에게 부탄에서 사 온 수제품 가방과 지갑을 선물하였다. 딸아이는 부탄의 눌트륨 지폐를 단위별로 챙겨서 넣은 지갑을 주어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받지 않는다. 아내는 행복왕국에서 건너온 무지개색 가방에 타멜시장에서 고른 옥빛 비단 까다를 고이 넣어서 주어도 좋다 싫다 말이 없다. 고약하고 섭섭한 여인들이다. 아니, 패션에 민감한 여인들의 섬세한 정감과 자존심을 헤아리지 못하고 내가 선물을 잘 고르지 못한 것일 게다. 아니면 부탄으로 가버리고 중국에서 함께 여행하지 않은 원망의 표현일지 모른다.
그날 뒤로 무려 보름 동안이나 여독을 풀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앉으면 어지럽고 누우면 잠이 몰려왔다. 현실과 꿈속, 기억과 지금 사이를 헤맸다.
그림엽서
한 달 뒤에야 부탄여행자 인터넷 카페에 수백 장의 사진을 골라 올리고 부탄문화원 금당거사님께도 보냈다. 그리고 <<수필시대>> 편집인으로부터 기행문 청탁을 받았다. 내가 팀푸에서 용인(龍仁)의 수희재(隨喜齋)로 보낸 그림엽서를 받은 향안(香岸) 선생님이 주선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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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을미년 새해에는
몸 건강하고
뜻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여라.
중국에서 공부하느라
고생 많았다.
당신도 몸 건강하고
출퇴근길 안전하고
행복한
새해가 되길
빈다.
네팔 카투만두
보드나트 불탑 옆
해피니스 게스트 하우스에서
2015.1.7.
아빠가
우리 아기 만나서
중국여행
즐겁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네.
히말라야의 설산,
청정한 공기,
전통 의상과 가옥,
불교문화
모두가 인류의 소중한 재산이라는
생각이 들어.
좋으신 선생님들과 함께
불국정토를 순례하니
행복해.
우리도 새해에 건강하고
아이들 뒷바라지
잘 하세.
당신이 수고가 많네.
2015.1.10.
부탄 팀푸에서
아빠가
부탄에서 부친 엽서는 2주 만에 도착하였다. 백골부대에서 군복무하는 아들아이도 내가 팀푸에서 보낸 그림엽서를 잘 받았다고 하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카투만두에서 먼저 보낸 엽서는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우표 값만 받고 엽서는 버렸는가보다며 포기하고 잊고 살았다. 우표값에 거스름돈까지 주었건만 우체국이 코앞인데 남의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린 녀석이 고약하기 그지없었다.
퇴근하며 아파트 현관의 우체통을 무심코 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1월 7일에 내가 편지를 맡긴 지 꼭 여섯 달 만인 7월 6일, 카투만두에서 엽서가 배달되어 와 있지 않은가. 6월 21일자 소인이 찍혔다. 애초에 엽서가 모이면 한꺼번에 모아서 천천히 보내겠다고 말하였다. 한글로만 주소를 쓰고 영문자로 국명 ‘KOREA’를 잊고서 쓰지 않았던 내 잘못도 있을 것이다.
4월 25일, 80년 만의 대지진이 일어나 천만 명이 사는 카투만두를 강타하였다는 소식을 범어사 계명암 보덕굴로 올라가려는 오후 2시경에 접했다. 밤낮으로 네팔 사람들이 어서 악몽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하고 구호성금을 두 번이나 보내며 걱정하였다.
우리가 수계식을 하고 나에게도 직메 쬐링이라는 법명을 내리고 재난 구호 단체 ‘Live to Love(사랑하기 위해 살자)’를 설립하고 지도하는 걀왕둑빠 성하의 편지도 카톡을 통해서 전해 받았다.
카투만두 보더나트 불탑 옆 해피니스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로 불침번을 서면서 내 엽서를 접수하여 주었던 눈동자가 빛나고 친절하고 작은 체구를 가진 그 학생은 무사한 지 또 가족들은 무탈한 지 몹시 궁금하던 차였다.
그림엽서에는 히말라야 설봉들의 파노라마 사진이 상하 2단으로 들어 있다. 엽서의 한 귀퉁이가 지진으로 신음하는 네팔 사람들의 눈물인양 젖어 있었다. 나도 몰래 외마디를 내뱉었다. ‘아! 이 엽서 한 장이 카투만두의 안부를 전해주는구나!’ ‘고맙습니다!’, ‘괜찮아요!’ 라고 하는 카투만두의 인사가 묻어났다. 두보의 시, ‘춘망(春望)’이 절로 생각났다.
國破山河在 나라는 망해도 산하는 그냥 있어,
春城草木深 봄이 와서 초목이 우거졌다.
感時花濺淚 슬퍼해 꽃에 눈물 뿌리고,
恨別鳥驚心 이별이 한스러워 새소리에 놀란다.
烽火連三月 봉화가 삼월까지 계속하나니,
家書抵萬金 집에서 온 편지는 만금에 값지다.
白頭搔更短 흰 머리털 긁을수록 자꾸만 빠지고,
渾欲不勝簪 이제는 비녀도 꽂지 못하겠구나.
내가 그림엽서를 샀던 나가르콭 전망대로 소풍을 가서 구름 너머 아득히 하늘로 솟은 랑탕(Langtang)의 설봉을 바라보았다. 신들의 집이고 인류정신을 리더하는 모든 성자의 고향인 히말라야의 성성한 설산을 우러러 보았다.
달러화를 루피화로 바꾸어 명상음악이 흘러나오는 기념품 가게에서 티벹불교의 법구인 종과 금강저, 달력, 엽서, 가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노래를 담고 있는 시디앨범을 샀다.
옴~ 따레 뚜따레~ 뚜레~ 소하~! ......
아니 초잉 돌마(Ani Choying Drolma) 비구니 스님이 비원서린 따뜻하고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관세음보살과 관세음보살의 눈물에서 탄생한 따라보살의 지혜와 자비의 정수인 만트라이다. 부처님과 중생에게 공양 올리는 천상의 음성이다. 앨범의 수익금 전액은 네팔 비구니 승가의 복지기금으로 보시된다. 나는 카투만두에서 부친 눈물 젖은 그림엽서를 받고 기도하였다.
‘불보살님들과 히말라야의 신들이시여! 고통과 비탄에 젖은 카투만두 사람들을 굽어 살피소서!’
회향의 노래
그리운 불국정토, 부탄,
용의 후손이 사는 땅, 둑율
미상불 그곳에 꿈속에서조차
가보고 싶었다.
꿈결 속에서 노닌 도솔천 극락세계
그곳이 아득히 그리워 눈시울 적신다.
이제 우리 순례의 숨결을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하련다.
향 한 심지 사루며
불보살님들과 뭇 생명에
감사와 평화의 기도를
올린다.
향기로운 구름
직메 쬐링 두 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