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를 하면서 음반을 별로 사지 못했다
음악을 가끔 듣긴 했지만 새로운 음반을 산다는 것은 왠지 부끄럽고 창피했다
인생의 유령 주제에 앨범을 구입하여 음악 감상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모르고 벌리는 사치스러운 행위인 듯 했다
재수 시절엔 새로운 음악을 거의 듣지 못했지만
한 친구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헤비메탈 음악을 들을수 있었다
수퍼맨 시리즈의 주연을 맡았던 핸썸한 외모의 소유자 크리스토퍼 리브와 너무나도 비슷하게 생겼던 그 친구는
재수학원 시절 같은 반에서 단짝으로~
고딩 시절 일렉기타를 연주했고 메탈리카,오지 오스본,잉베이 맘스틴,라우드니스등의 밴드들을 추앙하던 산뜻한 청년이었다
그 친구는 기타리스트답게 잉베이 맘스틴과 랜디 로즈,제이크 이리,아키라 다까사끼 등을 좋아했는데
보컬리스트는 놀랍게도 오지 오스본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엔 다른 락 보컬리스트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그로테스크한 감동이 담겨 있다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특히 블랙 사바스 시절 목소리가 감동에 감동을 자아낸다고 열변을 토했다
어느날 그는 나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음반이라며 테이프 하나를 녹음해 주었는데
그 앨범은 다름아닌 Sabbath bloody sabbath였다

타이틀곡 사바스 블러디 사바스는 고딩시절부터 익히 알고 있던 노래였지만 다른 곡들은 상당히 생소했다
물론 2년전 악마의 방에서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지만 집중해서 들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지라 상당히 신선했다
특히 수록곡중 로버트 드 니로,메릴 스트립 주연의 월남전 무비 '디어 헌터'의 테마였던 까바티나를 연상케하는 아름다운
연주곡 '더 플러프'는 블랙 사바스의 새로운 면을 노출하여 나를 잠시동안 어리둥절하게 하였지만 나는 이내 '더 플러프'의
고감도 선율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또한 후반에 돌입하면서 재지한 피아노가 인상적인 (예스의 릭 웨이크먼이 세션으로 가담했던) '사브라 카다브라' 또한 매우
재밌었으며 전혀 사바스답지 않은 밝고 경쾌한 '루킹 포 투데이' 같은 노래들 역시 느무 느무 신선하고 유쾌했다
고딩 시절 악마주의의 대표곡으로 낙인 찍혔던 '후 아 유??'의 마력적인 선율 또한 좋았으며 후반부 갑자기 등장하는
피를 토할 정도로 유치하고 귀여운 리프가 매력 만점인 (나는 이런 사운드를 참 좋아한다) '어 네셔널 아크로뱃' 역시 좋았지만
커트 코베인의 자살(??)에 영향을 주었다는 '킬링 유어셀프 투 리브' (기타 리프가 너바나의 '컴 애즈 유 아'랑 쫌메 비슷하다)
라는 노래가 짱으로 좋았다
당시 나의 친구는 이 노래를 열라 띄워줬다

"그로테스크라는 단어는 바로 이럴 때 쓰이는 거야
오지 오스본의 보컬에는 '혼'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괜시리 멋지고 유창하게만 보이려는 여타 락 보컬리스트와는 달리 오지의 보컬에는 진정한 어둠의 '혼'이 담겨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난 그가 좋아~~
그의 매력인 괴기함이 가장 잘 묻어나는 음악이 바로 이 노래야~~
가끔은 이런 노래를 들으면서 팔목을 긋고 싶은 충동도 느껴지더군 ㅋㅋㅋ"
지금 와서 들어보면 걍 젊고 매력있는 남자의 목소리에 불과하지만
꽃다운 18 라이프 시절에는 오지의 목소리가 참으로 근사하게 들렸다
이 앨범이 담긴 테이프를 좋아했고 90년대 중반 CD로 구입할 때까지 자주 청취했다
지금도 사바스 블러디 사바스 앨범을 자주 즐겨 듣는데
이 음반을 들을 때마다 나의 기억은 재수 시절 노량진의 학원으로 리와인드 되곤 한다
모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재수 생활이었지만 사바스 블러디 사바스 테이프를 녹음해준 그 친구 하나만은 쩜메 인상적이었다
첫댓글 그로테스크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