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7:8-16
8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9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10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하여
11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1. 들어가는 말
여러분들은 Raiders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까? raiders라는 단어는 추적자라는 뜻인데, 그 영화의 제목은 “인디아나 존스와 잃어버린 법궤를 찾아서”(Raiders of the lost Ark) 입니다.
이 영화의 소재가 된 법궤는 바로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내려온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을 넣어 보관한 일명 '언약의 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법궤는 실제로 유대인들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에 보관했으나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없어지고 맙니다.
전세계의 종교적 문화 유산을 찾는 고고학자들이 이 법궤를 찾기 위해 애를 썼는데 결국 아무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는 사람들이 이 법궤에 무슨 신비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서로 찾아 손에 넣으려는 과정 속에서 나치스 일당과 미국 정보기관의 도움을 받는 인디아니 존스 사이에 벌어지는 흥미 진진한 모험이 펼쳐집니다.
거의 마지막 장면에 가면 주인공인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가 법궤를 찾아내었지만 결국 나치에 의해 빼앗겨서 드디어 나치에 의해 법궤를 개봉하는 순간 그 법궤 안에서 신비한 빛과 힘이 쫙 나와서 나찌 병사들을 다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만 보아도 사람들은 실제 이 법궤가 무슨 신령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언약궤가 영화의 소재로 사용된 것은 사실상 이스라엘 역사 속에 이 법궤 때문에 수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 것을 보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언약궤를 어디로 보낼 것인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만나주시기 위해 광야에서 이동식 성막을 만들라고 명령하시고 그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갔으며 언약궤가 안치되어 있는 지성소 안에는 일 년에 한번 대 속죄일에 대제사장 만이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이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구름기둥이 그 위에 항상 임하였고 그 법궤 안에는 실제로 십계명의 두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광야에서 내린 만나 담은 항아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할 때에 이 법궤를 앞장 세우고 나아가서 싸웠습니다. 그러면 전쟁에서 승리하곤 하였지요. 그러나 이 법궤에 무슨 힘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법궤가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상징이었기에 하나님이 법궤를 앞세우고 나아가라고 명령하실 때에는 그 명령을 내리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차 이 언약궤가 마치 고대 근동의 이방 나라에서 섬기는 우상과 같이 어떤 신통한 힘을 지닌 미신적인 물건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우상 숭배를 금지한 이유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그 신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제사의식에 그 우상을 사용한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당시 언약궤는 그와 똑같은 위험에 처하게 되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치 이 법궤를 미신에서 부적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여 법궤만 있으면 자동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한 예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자신의 승리를 확실시 하기 위해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그러한 교묘한 조종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언약궤가 오고 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그들은 전쟁에서 패하고 하나님의 궤는 블레셋 군대에게 빼앗기고 비느하스는 전쟁에서 죽고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아내가 아기를 낳으면서 그에게 붙인 이름이 ‘이가봇’인데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갔다’라는 뜻입니다.
빼앗긴 법궤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방 신 다곤의 신당에 갖다 두었는데 다음날 아스돗 사람들이 일어나서 다곤의 신당에 들어가보니 다곤 우상이 법궤 앞에서 엎어져서 얼굴과 두 손목이 뿌러지고 몸뚱이만 남아 있게 됩니다. 이 것은 우상이 하나님의 신 앞에 굴복하여 힘을 쓸 수 없게 된 것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독한 종기의 재앙을 내려 아스돗 사람들을 치게되니까 그 사람들이 이 이스라엘 신의 법궤 때문에 우리에게 화가 임하니 가드로 옮겨가자고 합니다.
그런데 가드에 갔더니 역시 그 성에 독종이 나게 되고 그들은 다시 법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 에그론 사람들이 다 소리질러 법궤가 오는 것을 막습니다. 이들은 할 수 없이 이 법궤를 다시 돌려보낼 생각을 하고 혹시 하나님에 의해 재앙이 내린 것이 아닐 수도 있으니 만일 이 재앙이 하나님께로서 임한 것이면 스스로 자기 갈 길로 갈 것이다 라고 생각하여 새끼가 있는 두 마리의 암소를 한데 묶고 몰이꾼도 없이 그 소위에 법궤를 싫고 블레셋 밖으로 내어 몰자 이 두 암소는 스스로 알아서 벧세메스로 향하여 곧바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벧세메스 사람들이 함부로 그 궤를 들여다 본고로 그들도 죽음을 당합니다. 할 수 없이 법궤는 기럇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보내어 져서 이십년 동안 그 곳에 있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궤는 인간 마음대로 조정하거나 인간 마음대로 가지고 가고 가지고 오고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친히 하나님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시며 인간의 욕망에 따라 좌우되거나 우상적인 존재처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이제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난 후 아비나답의 집에 있는 하나님의 궤를 다윗이 살고 있는 성으로 옮겨 오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윗 역시 이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다윗은 자기 자신 왕정의 정통성을 세우고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 왕위를 굳건히 하기 위해 인간적이 생각으로 법궤를 자신의 성에 유치하려는 마음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4장에 보면 이 법궤는 오직 제사장들만이 옮길 수 있되 궤 사면에 있는 고리에 두 개의 막대를 끼워 어깨에 메고 운반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 안의 성물을 함부로 보거나 만지면 죽을 것이라고 규례를 정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법궤를 메고 온 것이 아니라 수레에 싣고 오다가 도중에 소들이 뛰고 법궤가 막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자 웃사가 법궤를 보호하려고 함부로 법궤에 손을 대니 하나님께서 저를 치심으로 저가 궤 곁에서 죽고 맙니다. 다윗의 축제 행렬은 순식간에 초상집 분위기에 휩싸이고 맙니다.
결국 다윗은 언약궤를 가져오는 것을 잠시 보류하고 오벧에돔의 집에 그 법궤를 가져다 놓습니다. 그러자 오벧에돔의 집에는 석달 동안 그 법궤로 인하여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법궤를 개인적인 용도나 어떤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루어져야 했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상징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어떤 신령한 힘을 발휘하는 미신적인 도구로 취급하였던 것입니다.
즉, 또한 법궤는 인간의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으며 인간의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우상과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인간이 어느 한 곳에 고정시켜 놓거나 자기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유로운 분이시며 어디든 이동하실 수 있는 분이셨던 것입니다.
2. 성전을 세우려고 마음먹는 다윗
이제 삼하7장에 와서 하나님께서 다윗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들을 파하시고 다윗 왕국에 평안을 주십니다. 다윗은 어느날 자신의 백향목 궁궐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궤가 성막 휘장 가운데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제 그 하나님의 궤를 위해 하나님의 집을 지어서 그 안에 안전하고 확고하게 해 두어야 겠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나단을 불러다가 말합니다.
“선지자 나단이여, 나는 이렇게 호화로운 백향목 궁에서 잘 지내는데 하나님의 궤는 저 천막 안에 있으니 내가 하나님의 궤를 위해 집을 지어드리고 싶소...”
그러자 그 날 밤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였습니다. 너는 내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기를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때부터 지금까지 장막과 회막을 내 집으로 여기면서 옮겨 다녔다. 그렇지만 한 번도 너희에게 백향목 집을 지어달라고 한 적이 없다.”
결국 다윗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위해 집을 짓겠다는 제안은 하나님께 거절을 당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다윗의 이러한 기특한 생각을 거절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소에 대한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성소는 모세시대 때는 회막이라고 불리웠으며 그곳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는 장소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장막은 텐트를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리 저리 옮겨 다녀도 그들과 함께 거하실 수 있도록 이동이 가능한 실제의 텐트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어느 곳에라도 계실 수 있고 또 떠나실 수 있으나 항상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임을 그들에게 보여주신 것이지요.
이처럼 ‘성소’는 움직일 수 있는 이동식 처소였던 반면 다윗이 지으려고 했던 ‘집’은 고정적이고 영구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낼 때부터 지금까지 장막과 회막에 거하였으며, 내가 언제 너희더러 나를 위해 집을 지어달라고 한 일이 있느냐?“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한 곳에 고정되어 계실 수 없는 자유로운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성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성소의 본래 의미는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장소입니다.(신12:1-14; 출20;22-26).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신12:5)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출20:24)
그러므로 성소는 여호와의 이름을 두어 거하게 할 곳으로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선택한 장소에 세우도록 되어 있는 것이지요.
즉, 하나님은 성소에 자신의 이름을 두시고 그 곳에 임재하셔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알게하시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에 따라 움직이시거나 어느 한 곳에 고정되어 있으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과 주권대로 행하시며 자유롭게 움직이시는 분이시지만,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심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성소를 구별하여 그들에게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위해 집을 짓겠다고 하는 제안을 거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니다. 나는 집에 거하지 아니할 것이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집이지 내가 거할 집은 아니다.” “나는 여태껏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야외에서 노숙하였다. 언제 내가 너희더러 집을 건축해달라고 한 일이 있느냐.”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집을 짓겠다는 다윗에게 11절에 보니까 오히려 그를 위하여 집을 이루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11) 여기서 ‘집’이란 단어 베이트(tyIB')는 ‘집, 가문, 왕조’를 지칭하는 말로서 하나님께서 오히려 저에게 왕조를 주시고 그 다윗의 왕조가 영원하리라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16)
이렇게 다윗의 제안을 일단 거절하신 후에는 하나님이 오히려 다윗에게 7가지 약속을 제시하십니다.
그 약속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는 너를 이 땅 위의 위대한 사람들만큼 네 이름을 유명하게 해 주겠다.
2)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한 곳을 정하여 거기에서 내 백성들이 정착하여 자기들 집에서 살 수 있게 하겠다. 그래서 그들이 더 이상 옮겨다니지 않게 하겠다.
3) 나는 너의 모든 원수들을 물리쳐서 너에게 평화를 줄 것이다.
4) 네 자손들이 너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할 아들을 주겠다.
5) 그리고 바로 그가 나를 위하여 성전을 지을 것이다.
6)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만일 그가 죄를 지으면 다른 사람들을 채찍과 막대기로 삼아 그에게 벌을 줄 것이다.
7) 그러나 내가 사울에게서 마음을 돌렸던 것처럼 너의 아들에게서는 나의 은총을 빼앗지 않으리라. 너의 집안과 너의 나라는 내 앞에서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이와 같은 약속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비슷합니다.
첫째,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와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삼하7:9)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 와 병행을 이룹니다.
둘째,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을 장소를 약속했습니다(10). 그런데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내린 땅을 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과 비슷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그 땅이 안전한 장소가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0-11) 이것은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를 하나님이 저주하겠다는 약속(창12:3)을 생각나게 합니다.
따라서 이 하나님이 다윗에가 하신 언약은 일차적으로 아브라함과 하신 약속과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언약과 다른 점은 하나님이 다윗의 후손과 함께 아비와 자식과의 관계를 설정하여 만일 저가 죄를 범하면 그를 징계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은 다윗의 후손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불순종할 경우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폐하여 지는 것은 아니다. 실상 다윗의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하신 약속은 역사적으로 볼 때에는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부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 마태복음 1장 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하신 말씀은 이상적인 다윗 자손의 왕으로서 그리스도가 탄생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다윗 왕조를 통하여 영원히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의 왕을 세워주시리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궤를 위해 하나님의 집을 짓고자 하였던 다윗의 제안은 거절되고 오히려 하나님이 다윗에게 집, 즉 다윗 왕권을 세워 주셔서 그의 이름이 영원히 유명하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고, 그에게 자손을 주어 그 자손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은 그 나라의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해 주시리라는 약속을 받는다.
약속대로 다윗은 그 당대에도 이방 모든 나라에서 유명한 자가 되었고 그의 아들 솔로몬 대에 와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또한 다윗은 그의 후손을 통해 다윗의 이름의 왕조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됩니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 언약의 조건을 다 만족시키는 분으로서 진정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왕국이 견고하게 세워지는 길을 예비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단순하게 하나님의 궤를 영원히 안치할 집을 짓고자 했으나 하나님은 그 제안을 거절하셨습니다. 선지자 나단은 처음에는 그 생각이 하나님을 위한 생각이므로 찬성을 합니다. 그러나 곧 하나님으로부터 그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도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을 위하여 좋은 일이라면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단순한 생각과 다르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이스라엘 백성이나 다윗처럼 하나님을 한 곳에 고정시켜 놓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분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으로 조정하거나 제한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며 당신의 생각과 뜻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행할 때 이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가를 항상 생각하며 하나님께 물어야 할 것입니다. 무조건 좋은 일이라고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거나 허락하시는 일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높고 더 넓고 긴 안목을 가지신 것이며, 놀라운 섭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생각과 마음으로 성전을 지을 계획을 제안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은 더 높고 깊은 데 있었습니다. 오히려 다윗이 하나님께 무엇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윗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시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 영원한 왕조를 세우시고, 다윗을 통해 영원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는 메시야를 탄생시키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내 인생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무슨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먼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인생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내 뜻보다 훨씬 좋고 훨씬 높으시며, 헤아릴 수 없는 놀라운 섭리를 가지고 계신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하겠다고 말씀드리기 전에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일을 해주시기를 원하시는 지를 물어야 합니다. 그 것은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이루어 가는 일에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시는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에게 아비가 되시고 그들은 자녀가 되어서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그들을 사람을 통해서 징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을 버리신 것과 같이 하나님의 자비를 온전히 거두시지는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약속만큼은 언제나 견고하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언제나 내 자신이 이 약속하신 영원한 나라의 자손으로 선택받은 사실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를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우상처럼 취급했던 어리석은자들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올바르게 이해하고 알아서 그 뜻대로 행동하며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이 임하는 사실을 잊으면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마치 우상을 대하듯이 점을 치고 미신을 믿듯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을 조정하거나 이용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내 욕심대로 무엇을 기도해놓고 안되면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 의심하고, 하나님을 시험하거나 내 마음과 생각대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일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날마다 살피고 성경을 통하여 배우고 기도를 통하여 묻고 함으로서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 속에 늘 살아가는 백성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혹시 사람을 통하여 괴로움이 있다면 하나님이 어떤 일로 나를 징계하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을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이미 그 언약 안에 들어온 백성들이며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모든 약속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디로 가든지 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은총을 거두지 아니하시며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잊지말고 그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다윗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와 우리 학생들 그리고 교사들에게 깨달음을 주셔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그리고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면서, 내 뜻대로 하나님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조정하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여 주시고,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까를 생각하기 전에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무엇을 하시기를 원하실까를 생각하게 도와주시고, 내가 기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과 나는 서운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날마다 성경을 통해 배우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되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나를 통해서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