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제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성경 에베소서 2장 1-10절
찬송 436장
성경은 모든 사람을 향해 너희는 다 허물과 죄로 죽었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듣는 모든 이에게 충격입니다. 사람들 가운데 죽었다는 말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가운데 죽음이라는 말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 다 살고 싶지 죽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살아있으니 계속해서 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 힘들어 합니다.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왜요? 죽음이 얼마나 큰 절망과 슬픔을 안겨주는지 너무나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죽음이 얼마나 큰 절망을 우리에게 안겨주는지 들려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직접 들어보십시오.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스올(죽음)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욥7:9-10)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죽음)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시6:5)
그렇습니다. 죽음의 실상이 이와 같으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살고 싶어 합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말씀합니까? 너희가 다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말씀합니다. 때문에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은 다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철저하게 부인하려 합니다.
아니, 내가 이미 죽어 있다고? 죽을 것이다도 아니고, 이미 죽어 있다고? 내가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는데 죽었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아니야. 그런 일은 없어. 절대 그렇지 않아.
하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성경을 크게 오해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모든 사람을 향해 너희가 다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말씀하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육체의 죽음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육체가 맞이하는 죽음이 모든 사람들 앞에 항상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보십시오. 인생으로 태어나 죽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그 죽음은 죽음의 전부가 아닙니다. 육체가 맞이하는 죽음은 그보다 훨씬 더 크고 근본적인 죽음의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그럼 육체가 맞이하는 그 죽음보다 훨씬 더 크고 근원적인 죽음이란 어떤 죽음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2:2)
여기 말씀을 자세히 들어보십시오. 무슨 뜻입니까? 모든 사람들은 다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모두 다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아갑니다. 이 세상 풍조? 그게 뭡니까? 사람들이 따라 사는 이 세상 풍조는 하나님을 거슬러 살아가는 것입니다. 곧 모두 다 자기 욕심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살아가는 모습, 그것을 일컬어 성경은 이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아간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사람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어디에 관심을 두고 살아갈까요?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에게 좋으면 그것이 그들에게 선입니다. 반대로 자기에게 나쁘면 그것이 악입니다. 이런 사람 속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욕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3)
여기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의 모습을 어떻게 말씀합니까? 자기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 곧 오직 자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만을 하며 사는 사람이라 말씀합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선한 일에 욕심을 내며 살아가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열심을 내며 살아가면, 이는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성경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이라 일컫는 사람은 그냥 무슨 일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죄로 심히 오염되고 부패한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 결코 선하지 않고 더러운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욕심을 부리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슬러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가지셨던 거룩하고 아름다운 소원과는 아무 상관없이 사는 사람, 자기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기꺼이 내어주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일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 오직 자기 자신의 욕심과 영광만을 구하며 사람, 죄로 심히 오염되고 부패한 자기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이런 저런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바로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미 어떤 상태 가운데 있다고요? 죽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왜요?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의 지배 아래 살고 있습니다. 죄와 정욕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섬기는 주인은 사탄입니다. 그럼 이런 사람들에게 약속된 것이 무엇일까요?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선물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사탄은 그를 따르는 무리에게 무엇을 선물해줍니까? 죽음을 선물해줍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떠나 사탄을 자기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자리에 생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오직 죽음뿐입니다. 맞지요?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향해 성경은 죽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이에 더하여 하나님을 떠나 사탄을 자기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쏟아 부으십니까? 저주와 진노를 쏟아 부으십니다. 그 진노는 영원한 저주와 형벌입니다.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저주와 형벌을 받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죄와 사탄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거역하며 사는 인생을 향해 허물과 죄로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선언합니다.
나의 어리석은 생각을 내려놓고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다시 들으십시오. 모든 사람은 다 허물과 죄로 죽어 있습니다. 모두다 죄로 심히 오염되고 부패한 이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아갈 뿐입니다. 모두 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기 영광을 구하며 살아갈 따름입니다. 하나님 대신 사탄을 자기 왕으로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하였으므로 결코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 절대 영생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저주와 진노, 곧 영원한 지옥 형벌뿐입니다. 이런 인생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소망도 없습니다. 오직 깊은 절망과 탄식과 슬픔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을 위해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그들을 살리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그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2:5-6)
그리하여 다시는 죽지 않게 하셨습니다. 영원토록 생명 가운데 살게 하셨습니다. 다시는 사탄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게 해주셨습니다. 다시는 죄로 심히 부패하고 오염된 자기 욕심을 따라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살게 해주셨습니다.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일이 그들 가운데 일어난 것입니까? 그러므로 이 큰 구원과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서는 늘 감격과 찬송이 쉬지 않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2:7)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6)
아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사람으로 지으셨습니다. 더 이상 우리 자신의 욕심을 따라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새 사람으로 지으셨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엡2:8-9)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어떻습니까?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모습으로 살고 계십니까?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데 어떻게 선한 일을 위해 사느냐고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늘 힘들고 고단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어떻게 한가하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삶을 사느냐고요?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우리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마음의 눈을 밝혀 우리 자신의 참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은 우리 자신의 영광스럽고 복된 모습을 다시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천지의 창조주를 우리 하늘 아빠로 모시고 사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사람, 천하보다 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우리는 우리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인생이라고요? 너무 가난하고 보잘 것 없어 선한 일은 꿈도 꿀 수 없는 저급한 인생이라고요?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우리는 선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우리를 살려주셨을 뿐 아니라 하늘 보좌 우편에 앉게 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친히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사탄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을 거슬러 살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도 아닙니다. 그와 반대로 온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서로를 격려합니다. 쉼 없이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고백과 사랑고백을 하며 선한 일에 힘쓰는 사람으로 온전히 살아갑시다. 온 세상 모두가 우리 때문에 복을 받는 그런 삶을 꿈꾸며 살아갑시다. 얼마든지 우리는 이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욕심 내려놓고 하나님의 소원을 품고 나아갈 때, 우리가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보다 더욱 놀라운 삶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오! 주님, 기대합니다.
주 예수님, 제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제 안에 계십니다. 하오니 저를 통해 주님 소원 이루시옵소서.
저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일 이루시옵소서.
저를 통해 하나님 영광 받으시고 온 세상이 복을 받게 하옵소서.
저를 통해 제 가정과 교회가, 그리고 이웃이 복을 받되 놀라운 복을 받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