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깊이 제 2권
제1판 저자서문
나는 {한국문학비평의 혁명}을 탈고하고, 해발 812 미터의 천마산의 정상에 올라설 수가 있었다. 희뿌연 아침 안개와 흐린 날씨 때문에 밝은 태양과 좀 더 멀리 멀리 이 세상을 바라볼 수가 없었지만, 동쪽으로는 마석의 읍내와 천마산의 스키장이 한 눈에 들어오고 있었고, 서쪽으로는 수락산을 비롯하여 북한산과 오남리의 은항아리 계곡이 한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방한모와 장갑을 벗고 눈을 한 움큼 뭉쳐 먹으면서 니체의 다음과도 같은 글을 떠올려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씌어진 모든 것들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정신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리라.
타인의 피를 이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책읽는 게으름뱅이들을 증오한다.
독자들을 아는 사람은 그 독자를 위해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독자에게 또 한 세기를, ----그러면 정신 자체가 악취를 풍기게 되리라.
모든 사람들이 다 읽는 법을 배우게 된다면, 그것이 오랜 뒤엔 결국 저술 뿐만 아니라 사고까지 망쳐 놓으리라.
일찍이 정신은 신이었고 그 다음엔 정신은 인간이 되었고, 지금은 천민으로까지 되었다.
피와 경구警句로 쓰는 사람은 읽혀지길 원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외어지기를 원한다.
산맥 중에서 가장 가깝게 가는 길은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까지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긴 다리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 경구는 산봉우리여야 한다. 그리고 그 경구를 듣게 되는 자는 몸이 크고 키가 큰 자라야 한다. 희박하고 순수한 공기, 가까운 위험, 즐거운 악의로 가득찬 정신. 이런 것들은 서로 잘 맞는다.
나는 내 주위에 요괴를 갖고 싶다. 나는 용감한 사람인 까닭이다. 유령들을 겁주어 내쫓아버리는 용기는 스스로를 위해 요괴를 만들어낸다. 용기는 비웃고 싶어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너희들이 느끼듯 느끼지 않는다. 이 구름을 나는 내 밑으로 내려다 보고 있고, 나는 그 어두움과 무거움을 넘어서 웃지만, 그러나 바로 이것이 너희에게는 번개 구름인 것이다.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천마산의 정상에는 아직 한 사람도 올라와 있지 않았고, 까마귀 두 마리가 어렵고 힘든 길을 헤쳐온 나를 환영이라도 한다는 듯이, 천마산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를 선희하고 있었다. 나는 방한모와 장갑을 다시 끼면서, 산 아래의 설경과 눈꽃이 하얗게 피어난 나뭇가지들을 바라다 보았다. 때 이른 11월의 폭설과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와 수천 년, 혹은 수억 년의 만고풍상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참고 견뎌 온 천마산과 그 우거진 숲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천국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마산의 설경은 천마산이 붉디 붉은 피로써 쓴 경구이었고, 나는 그 경구를 판독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유일한 종교철학자였다. 천마산의 아름다운 설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나의 붉디 붉은 피 자체가 또 하나의 천마산을 형성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타인의 피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내가 타인의 피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천마산이 아름다운 천국으로서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천국이 되어서 천마산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나는 천마산과 손을 맞잡고 수많은 산봉우리와 산봉우리 사이를 건너 뛰어 다니고 있었고, 이 세상을 아름답고 넓고 풍요롭게 바라다 보고만 있었다. 모든 낙천주의자들은 희박하고 순수한 공기, 가까운 위험 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되었고, 다른 한편, 즐거운 악의로써 모든 유령들을 겁주어 쫓아내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한국문단에서 영원히 생매장을 당하는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지만, 또다시 부활하는 기쁨을 맛볼 수가 있었고, 존경하는 스승과 친구들을 잃어버리는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지만, 위대한 단독자로서의 사상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기쁨을 맛볼 수가 있었다. 나는 외디프스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었듯이, 진정한 낙천주의자가 되기 위하여 한국 사회의 제3세계적인 문화적 풍토병과 비평의 만장일치제도를 발밑으로 깔아뭉개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어중이 떠중이들과 어울려 살 수밖에 없었던 지난 세월의 때를 씻어버리기 위하여 해발 812 미터의 표지가 붙어 있는 암벽에 기대서서 시원한 오줌줄기를 갈겨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총과 칼과 화약 냄새를 피우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고 있었고, 그것보다는 가장 찬란하고 화려한 인식의 전쟁을 더욱더 좋아하고 있었다. 징기스칸이나 나치의 예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무기의 성과는 더 좋은 무기에 의해서 순식간에 사라져 갈 수도 있지만, 문화의 성과는 인류의 역사가 소멸되지 않는 한 영원히 사라져 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쇼펜하우어와 니체처럼, 철학자가 지배하는 세계를 꿈꿀 수밖에 없었으며, 현대의 문화 전쟁은 어차피 철학자들에 의해서 주도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철학자는 모든 학자와 모든 사제들과 모든 인간들을 그들의 노예, 혹은 군졸들로 취급해 버리는 오만불손한 두뇌의 소유자이며, 선악을 넘어서서 모든 법과 도덕과 질서와 가치들을 재창조해낼 수가 있는 미래의 인간이기도 했다. 내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라이프니츠,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 호머, 아리스토파네스, 셰익스피어, 괴테 같은 세계적인 대석학들을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은 그들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언젠가는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스승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좀 더 강력한 적을 사랑하고 있는 용감한 전사이기도 했고, 지식을 사랑하고 있는 지식을 위한 전사이기도 했다.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고 왜소하지만, 앎은 더없이 건강하고 키가 크고 사시사철 늘 푸른 소나무처럼 청정하고 변함이 없었다. 나는 천마산의 정상에서 시원한 오줌줄기를 갈기고 있었지만, 그 오줌줄기는 벌써 대청호의 푸른 수면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대청호의 푸른 물과 그 숲 사이를 거닐면서, 수천 년을 찍어누르듯이 나의 붉디 붉은 피로써 거대한 사상의 신전을 세울 수가 있을 것이었다. 나는 낙천주의의 창시자로서 한국인의 미래의 희망이었고, 나의 독창적인 사상과 이론은 또하나의 대청호의 푸른 물과 그 숲을 이루게 될 것이었다. 나는 한국문단에서 영원히 생매장을 당했지만, 이 세상은 아름답고 넓고 풍요로웠다. 또한 나는 존경하는 스승과 모든 친구들을 잃어버렸지만, 이 세상은 아름답고 넓고 풍요로웠다.
이 {한국문학비평의 혁명}이라는 글을 연재하면서 나는 너무나도 어렵고 힘든 처지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첫째도 공부, 둘째도 공부, 셋째도 공부...... 나는 공부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한 사람의 공부벌레였다. 이 공부벌레가 제일 견디기 힘들고 참기 어려운 것은 무엇보다도 가난의 굴레였다. 공부하기에 알맞게 조련이 되어 있고,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는 나의 몸에 언제쯤 羽化登仙의 날개가 돋아날 수가 있을까? 하루에 열 시간씩, 열두 시간씩, 오오, 天馬 페가수스처럼, 오오, 天馬 페가수스처럼!
1992년 {시와 시인}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 이후, {행복의 깊이}에서부터 최근에 연재를 끝낸 {한국문학비평의 혁명}에 이르기까지, 나의 모든 문학비평 행위는 그 스승들에 대한 도전의 형태----왜냐하면 그것만이 그 스승들의 훈도에 대한 최선의 보은이기 때문이다----를 띠고, 또 그것을 넘어서서 한국문학 이론의 정립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나는 신성모독을 범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세계는 나의 범죄의 표상이다, 고로 행복하다’라는 두 개의 명제를 동시에 밀고 나가면서 {행복의 깊이}----이 책은 다시 한 권의 이론서로 쓸 예정이다----를 천착해낸 바가 있고, 시의 네가지 효과----진정제 효과, 강장제 효과, 흥분제 효과, 영생불사의 효과----를 명명하고,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와 니체의 건강한 염세주의를 전복시키면서 내 나름대로의 낙천주의를 양식화시킬 수가 있게 되었다. 언젠가 나에 대한 배은망덕한 놈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지고 ‘신성모독’에 대한 사면복권이 이루어진다면, 제1장 [영원불멸의 삶에 대하여], 제2장 [앎에의 의지], 제3장 [무지에의 의지], 제4장 [진실에의 의지], 제5장 [거짓에의 의지]로 되어 있는 {한국문학비평의 혁명}이 빛을 보게 되고, 한국문학사상 최초로 한국문학 이론을 정립한 책으로 읽혀질 수 있기를 대청호반을 거닐면서 기대를 해본다.
그러나 매우 착잡하고 불안해 진다. 한국 사회의 교육제도는 유태 사회의 반대방향에서, 살아 있는 참 교육은 커녕, ‘스승은 진리이며 진리는 신성하다’라는 나의 말대로 ‘비평의 만장일치제도’가 양성화되어 있고, 수많은 천재와 미래의 주인공들의백만 두뇌를 가장 확실하게 무력화시키는 어중이 떠중이들의 생산에 여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사회는 앎이 육화되지 않은 사회이며, 타인의 두뇌와 심장으로 움직이는 교육제도에 의해서 박제화된 사상과 이념만을 가르치고 있는 사회라고 해도 틀림이 없다. ‘나는 읽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결코 정당하게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다’라는 확신과 함께, 그러나 돌멩이 하나를 힘차게 호숫가에 던져본다. 맑고 잔잔하고 푸른 수면에 자그만 파문이 일어난다. 어쨌든 기분이 좋고 최고급의 지혜에 대한 사랑과 함께, 앎에의 의지가 증폭되어가고 있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인류의 역사상, 새로운 사상과 이론이 제대로 받아들여지고 수용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국문학이 문화선진국의 수준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살신성인의 자세로 자기 한 몸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독창적인 사상과 이론은 제일급의 지식인에게는 언제나 야심만만하고 도전적인 과제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학연, 지연, 그리고 모든 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한 사람의 인간이 그 과제를 온몸으로 이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이 {한국문학비평의 혁명}이라는 책을 이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1997년 가을, 대청호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