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7년은 대한 민국 근 현대사에 있어 가장 오래 기억되고 가장 큰 영광스런 해가 아니었나 생각 합니다.
80년대로 정부에서 계획했던 어린시절 100억불 수출만 되고 80년대만 되면 모두가 잘 살고 유토피아 같은
이상적인 국가가 될 것 이라 기대했던..
100억불 수출이 3해 앞 당겨 1977년 만년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변환 하게 되는 국가의 백년대계가 좌지우지
될 만한 천지 개벽이 이루어 졌던 해 였습니다.
이해 여름 현 삼성 라이온스 사장으로 재직 중인 당시 한일은행 감독 이셨던 김응용 감독이 이끄는 대한 민국 야구단은
중남미의 국가 니카라과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일본,미국,도미니카,니카라과,콜럼비아,,등을 격파하고 결승에서 유남호(아마 롯데)와 좌안 이선희(농협)의 역투와
김봉연(연세대)-故 심재원(한국 화장품)-김재박(한국 화장품)-이해창(롯데),,등의 활약으로 아마 최강 큐바가
정치적인 이해 관계로 불참 미국과 맞 붙은 결승에서 5-4로 승리하며 사상 최초 세계 대회 패권을 차지 하게 됩니다.
11월엔 74년 밴텀급 세계 타이틀을 획득 했었던 홍수환이..
콜롬비아의 카라스카에서 20승 20 KO의 무시 무시한 성적으로 '지옥에서 온 악마'라는 닉넴을 가졌던 가난한 국가 콜롬
비아의 국가 영웅 카라 스키야를 2회에 4번 다운 당하고 3회에 KO로 승리하는 낭보를 100억불 수출 당성의 목표의 기쁨
이 가실만한 무렵 홍수환이 지구 반대편에서 대한 민국의 77년 기적의 쾌거를 마침표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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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5월 10일부터 제11회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가 벌어집니다.
모두 18개팀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는 76년 황금사자기 우승팀 신일고가 전년도 우승팀
군산상고와 광주상고를 연파하고 4강에 올랐으나 유격수 김경수가 선수자격시비가 걸
리면서 중도에 대회를 포기하면서 물러납니다. 김경표는 당시 팀 동료였던 김정수와 함
께 훗날 MBC청룡에 입단하는데 모두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공주고는 준결승에서 신일고와 연장 12회까지 3-3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는데 앞서 말
한것과 같은 이유로 신일고가 기권을 해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부산고는 준결승에서 선린상고를 4-0으로 완파하고 결승에 올랐습니다만 결승에서 공주
고가 4-3으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11회 대통령배는 당시 공주고의 우승은 충청도 팀으로서는 첫 우승이었다고 합니다.
프로원년 조범현과 함께 OB의 포수였고 현재는 두산의 감독으로 재직중인 공주 김경문이
당시 최우수선수상을 비롯 타격상(7/15, 0.467)과 최다안타상을 휩쓸며 최고의 스타로 떠
올랐던 대회 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등 대 도시 지역에 소재했던 고교 야구 우승팀들이 읍,군 단위의
작은 소 지역 이었던 공주에 소재한 공주고가 투수 오영세의 호투와 김경문의 맹활약으로 쎈세이션급의
큰 이변을 연출하며 당시 정권의 실세였던 공주고 출신의 김종필 국무총리의 큰 지원과 관심이 이런 큰
결과를 나았었다는 후일담도 있었을 정도로 공주고의 우승은 또 다른 볼거리와 지방에 소재한 작은 도시
에서도 이런 여건과 토양만 좋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훌륭한 사례를 남겨준 대회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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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청룡기 고교야구대회는 13개팀이 참가한 가운데 6월 11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운동
장에서 벌어졌습니다.
당시 청룡기는 패자부활전을 통해 최종승자를 가리는 독특한 방식으로 대회가 진행되었는
데 인천 동산고는 이상윤이 마운드를 지킨 광주일고를 8-4로 꺾고 11년만에 최종결승에 올
랐고 대구상고는 패자조에서 부활해 패자결승에서 광주일고를 11-3으로 이기고 최종결승
에 올랐습니다.
동산고는 승자조에서 계속 올라왔기 때문에 결승 두판중 한판만 이기면 되는 유리한 조건이
었지만 대구상고의 저력이 앞섰습니다. 결승 1차전에서는 대구상고가 이만수의 역전 결승타
로 3-1로 승리를 거둬 최종 결승전으로 승부를 몰고갔고... 2차전 역시 박영진과 이만수의 투
타에 걸친 활약으로 오세인이 역투한 동산에 7-2 승리를 거두고 70년에 이어 7년만에 패권을
거머쥐었습니다.
대구상고의 이만수는 최우수선수를 비롯 타격, 최다안타, 타점의 4관왕에 올랐습니다.
최우수선수 = 이만수(대구상)
우수투수상 = 박영진(대구상)
감투상 = 오세인(동산)
미기상 = 박경호(동산)
감독상 = 정동진(대구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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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황금사자기는 전년도 우승팀 신일고등 20개팀이 참가한 가운데 7월 11일부터
서울운동장에서 막을 올렸습니다.
준결승에서 인천고는 신일 김정수에게 8회말 투런홈런을 맞았지만 9회초 신일투수 김정
수를 상대로 허승문, 대타 민경식, 김진관의 안타와 최광묵의 역전 2루타로 3점을 뽑아
3-2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에 선착했습니다.
이어 벌어진 경기에서 광주상고는 대통령배 우승팀 공주고를 맞아 김대식의 호투와 박상
진, 채희주의 적시타로 2-0으로 이기고 역시 결승에 진출하죠.
7월 18일 벌어진 결승에서 광주상고는 연장 11회 접전끝에 채희주의 기민한 주루플레이로
결승점을 뽑아 3-2로 승리를 거둬 팀을 재창단 한지 7년만에 값진 전국무대 첫 우승을 기
록했습니다.
우수선수상 = 박상진(광주상고 유격수)
우수투수상 = 김대식(광주상고)
감투상 = 김경남(인천고)
수훈상 = 채희주(광주상고)
미기상 = 허승문(인천고)
타격1위 = 김남수(신일고 5/10)
타격2위 = 최광묵(인천고 7/15)
타격3위 = 이종호(신일고 3/7)
최다안타상 = 최광묵(인천고 7개)
타점상 = 손영주(인천고 4)
지도상 = 이한구 감독(광주상고)
공로상 = 권남일(광주상 교장), 김종태(야구협전남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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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회 화랑대기 (7.27~8.2)
4강 : 배명, 경남
준우승 : 부산상
우승 : 세광(창단 첫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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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봉황대기가 8월 8일부터 서울운동장에서 개막됩니다.
8강에 오른 팀은 진흥 ,성남, 재일동포, 동산, 충암, 신일 ,선린상, 서울이었습니다.
준결승에서 충암고는 서울고에 5-3으로 역전승을 거뒀고, 72년에 팀을 창단한 진
흥고는 예상을 깨고 강호 재일동포에 3-2로 이겨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당시 충암고의 감독은 바로 현 SK 감독인 김성근 씨로 김감독은 창단 9년째인 팀을
처음으로 우승시킴으로서 충암고 야구를 명문의 반석위에 올려놓게 됩니다. 김성근
감독과 충암의 인연은 만년 유망주에 불과했던 LG 트윈스 야구단의 충암출신 신
윤호를 최고투수로 탈바꿈 시킨 것에서 보듯 뗄레야 뗄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시 진흥고 감독은 백대삼씨인데... 이분은 프로야구 출범후 심판으로 오래동안 활
약하다가 지금은 한화이글스 스카우트 부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아무튼 결승에서 충암은 기세봉의 6안타 완봉역투와 조범현의 2타점 2루타, 정용락
의 2타점 적시타등으로 5-0으로 쾌승을 거둬 창단 첫 우승의 기쁨을 맛보게 되고
진흥은 김정수, 이대진, 임창용등 많은 스타들을 배출한 강팀이면서도 김진우에 의해
2000년 봉황기를 우승할 때 까지 한번도 정상에 서지 못했습니다.
참고로 몇가지 더 말씀을 드리면 당시 충암고 2번타자 정용락은 한동안 모교 야구부
감독을 지내기도 했고... 충암의 이근식은 원년 OB에서 활약했던 두명의 이근식(편의상
큰 이근식과 작은 이근식으로 구별하곤 했었죠)중 '작은' 이근식 이었습니다. 큰 이근식
은 공주고 출신으로 77년 대통령배 우승 때 투수 겸 외야수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최우수선수 = 조범현(충암고)
최우수투수 = 기세봉(충암고)
우수투수 = 전인수(진흥), 김충부(재일동포), 편은식(서울)
감투상 = 김성영(진흥)
수훈상 = 김동우(충암)
타격1위 = 정용락(충암 8/15 0.533)
타격2위 = 이근식(충암 8/16 0.500)
타격3위 = 차의철(진흥 8/17 0.471)
타점상 = 이승희(서울, 7개, 전 OB-쌍방울, 현 대불대코치)
최다안타 = 김경치 (재일동포, 10개)
감독상 = 김성근(충암), 백대삼(진흥)
지도상 = 김태식(충암), 조호현(진흥)
응원상 = 배재고
일본의 甲子園(고시엔) 대회 와 유사한..
지역 예선과 관계없이 대한 민국에 소재한 모든 야구부가 있는 고교가 예선 없이 바로 본선에 진출 자웅을 겨뤘던 고교 야구대회중 최고의 권위와 수 많은 이변과 황당함으로 실력 이외에 어린 선수들의 땀과 눈물이 늘 드라마틱한 장면을 수 없이 연출 했었던 봉황대기 고교 야구 대회 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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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회 전국체육대회 (전남)
고등부 우승 서울(선린상고) 4-2
준우승 전남(광주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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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야구사에 큰 발전을 가져다 주신 故 풍규명 선생님이나 경남 야구의 대부로 훗날 소년 중앙 만화에도 등장했던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 故 장태영 선생님에 관한 자료 조차 번번하지 못 합니다.
이런 연감을 부탁 받고 기록하고 쓰다 보면 1977년 이 대회 하나만 취재하고 기록 하는 시간만도 거의 5~6개월의 시간이
소요 될 정도로 대한 야구 협회가 가지고 있는 기록 조차 미미 하기에 여간 어려운 것 아닙니다.
대부분 그때의 선수들과 진학한 대학에 찾아가 당시의 상황과 이야기들로 역사를 조명 한 다는 자체가 아이러니기도 하지만
지금 이런 연감 조차 만들어 놓지 못하면 우리 후대들 에게는..
프로 야구의 출범과 함께 사라져 버린 6~70년대 한 여름밤을 뜨겁게 달군 서울 운동장 야구장의 고교 야구의 향연을 기억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을 것 같기에..
더 늦기전에 인터넷 상에라도 기록하고 역사를 만들어 주고 싶기에 이 어려운 부탁을 수락 했던 겁니다.
이상 77년의 고교 야구 대회 결과를 정를 마감 하면서..
2010.04.17일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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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찬이슬 대장님 77년 당시의 각 고교 선수들,감독 선생님들에 대한 표현은 아련한 제 머리속의 기억, 해당 학교의 기록과 현역 프로 야구 선수들의 조언만으로 기록한 연감 이다 보니 때론 정확치 못한 인물의 이름이나 잘못된 표기도 있을 겁니다..잘못된 사건이나 등장 인물들은 바로 잡아 주시고 담에 기회되시면 강화도에서 다 못한 이야기들 더 나누었음 합니다..^^
동기분 중에 포수를 봤던 윤종오 선수와 장호연과 동기였던 후배 김경갑 선수의 기록이 전혀 없어 안타 까운 선수들 입니다.
아이구 머리야...... 성민님은 정말 모르는게 없다니까
첨하고 끝만 읽었어요
대단한 열의입니다 성민님 그렇게 하시죠 ㅎㅎㅎ
중학교때 광주일고와 선린상고의 팬들이 서로 나뉘어 응원을 하던 기억이 새롭네요..지금은 이름도 가물거리지만 저는 배재고의 하기룡,신언호,이광은이 기억납니다...그때 그 옵하덜이 얼마나 소녀들의 가슴을 들 쑤셔 놓았었던지..ㅎㅎㅎ
성민님 덕분에 그때의 시절로 잠깐 돌아가 동대문 운동장의 함성소리에 잠깐 빠져보았습니다...
7월20일 새벽에..ㅎㅎㅎ
천안 북일고홧팅
난 선린상고에 다니고있는 남학생이랑 잠깐 사귈때 선린상고 응원을 했지요 그중에 박노준선수가 있었던것 같은데~~~~
난 한참 선배인 이길환을 조아라 했었는데..ㅎㅎㅎ
성민님 ? 만나서 반가워요 ! 저는 을지로 게림극장앞 털보집에서 밤세지넷어요! 우리 공주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