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비 산악회 2017, 해파랑길 2,000리-보리밭
친구들!
누군가 그대들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정교 친구는 전남 광주라 할 것이고 한성이 친구는 전북 전주라 할 것일세.
그리고 내 고향은 다들 경북 문경으로 알고 있을 걸세.
내 하도 문경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그럴 테지
일단은 맞는 것처럼 보이네.
그러나 그것은 조건부 답일 뿐이네.
친구들!
국어사전에서는 ‘고향’이라는 단어를 어찌 풀어놓았는지 아시남.
곧 이리 풀어놓고 있네.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처음 생기거나 시작된 곳.’
그렇게 4가지의 의미가 있네.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내 고향이 어디인지 짚어볼라치면, 태어나 세 살까지 산 곳이 경북 예천이었고, 6.25전쟁으로 피난을 가서 초등학교를 4학년까지 다니면서 산 곳이 대구였고, 거기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 내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때에 엄마의 친정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해서 중학교까지 다닌 곳이 경북 문경 점촌이었고, 울 엄마 죽고 집안이 갑자기 몰락하는 바람에 어디 갈 곳 없어 찾아가서 막내 삼촌 자취방에서 1년 정도 얹혀 산 곳이 부산이었고, 울산에서 33개월의 군 생활을 한 뒤로는 곧장 서울로 올라와서 살았으니, 내게 있어서는 예천, 대구, 점촌, 부산, 울산, 서울, 그 모든 곳이 고향이랄 수 있는 곳들이네.
또 더 있네.
일제 강점기 이전의 우리 조상들은 전라남도 화순 곡성 지역에 살았으니 거기가 또 내 고향이랄 수 있는 곳이고, 우리 아버지 대에는 경북 상주에서 사셨으니 거기가 또 내 고향이랄 수 있는 곳이고, 우리 기(奇)의 본이 경기 행주(幸州)이니 거기가 또 내 고향이랄 수 있는 곳이네.
그래서 하나하나 짚어가다 보면, 결국은 대한민국이라는 우리나라 땅덩어리 그 모든 곳을 고향이라 할 수밖에 없네.
친구들!
내가 만약 국어사전 편집에 참여를 했었다면, ‘고향’에 대해서 아마 이렇게 풀었을 것이네.
‘푹 정든 곳’
땅에도 정들고, 친구들에게도 정들어야, 그곳이 곧 고향이 아니겠나싶어서 내 그러네.
그렇게 풀었을 때, 내게 있어 고향이라 하면,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닌, 울 엄마의 친정 땅인 경북 문경 점촌이 되는 것일세.
간혹 오르긴 했지만 동네 뒷산인 재골산에도 정들었었고, 들판 한 가운데 작은 마을인 동천마에도 정들었었고, 그 너머 앞강인 영강에도 정들었었고, 녹슨 철길 따라 누랬던 보리밭에도 정들었었네.
그 중에서도 특히 내 정든 것은 보리밭이었네.
점촌역에서 영강 자갈밭으로 뻗어간 기찻길이 있었는데, 그 기찻길 왼쪽으로 보리밭이 이어지고 있었어.
보리가 익는 유월이면 천둥벌거숭이 친구들과 어울려 그 보리밭으로 나가서 메뚜기도 잡고 깜부기도 따먹고는 했었지.
그랬으니 그 보리밭이 정들 수밖에 없었지.
친구들!
그 보리밭에는 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하나 있어.
아내와 함께 했던 추억이지.
내 그 날도 잊지 않고 있어.
잊지 않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잊을 수도 없고, 결코 잊혀 지지도 않을 날이 곧 그날이야.
39년 전으로 거슬러, 아내와 결혼하던 날인 1978년 6월 3일 바로 그 다음날이기에 그래.
부산 태종대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딱 하룻밤만 자고 그 다음날로, 아내로서는 시집인 내 고향땅 문경 점촌으로 왔었지.
신부를 보고 싶다는 집안 어른들의 성화를 내 이겨내지 못해서였어.
지금 같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지만, 내 그때는 어른들의 말을 거역하면 안 되는 줄로 알았어.
아내도 그런 줄 알고, 덜렁 따라와 줬었지.
그렇게 내 고향땅을 찾은 김에, 아내를 데리고 내 어린 시절에 정든 곳인 바로 그 보리밭으로 나갔었어.
그때 아내 사진을 한 장 찍었었는데,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마음이 한도 끝도 없이 편해지고는 해.
환하게 웃는 아내의 얼굴 풍경이 편해 보이니까, 내 마음도 따라 편해질 수밖에 없는 거지.
친구들!
아내와 함께, 대구 경산의 임당역에서 색소폰을 불고 있는 내 중학교 동기동창인 김종태 친구를 찾아가는데, 그 친구 말고 내 생각 속에서 떠오르는 또 한 친구가 있었어.
바로 초등학교 중학교 동기동창인 천송길 친구였어.
그 친구도 색소폰을 불기 때문이었지.
그런데 생각은 계속 이어가서 보리밭 풍경까지 떠오른 거야.
지난 10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밤에, 중학교 동기동창 친구들이 고향땅 점촌에서 어울려 장기자랑으로 한 판 잔치판을 벌였는데, 그때 그 친구가 연주한 곡 중에 하나가 바로 ‘보리밭’ 그 곡이었거든.
그렇게 생각을 잇고 이으면서 김종태 그 친구를 찾아갔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