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은행나무 스폿을 여러 군데 정해놓고 경주에 다다르니 어쩐 일인지 은행잎은 기대했던 모양새를 보여주지 못한다.
은행잎이 연두색에 머물러 아직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도 있고 잎이 노랑으로 물은 들었으나 생기가 없고 낙엽으로 뒹구는 것도 있어 때가 아닌지 기상조건 때문인지 추측만 난분분하다.
경주로 내려오는 고속도로변에 밀집군락은 아니지만 억새가 억세게 자라 은빛으로 하늘거리는 모습으로 가을풍경과 인사했다고 치고 은행잎 단풍 보기에 대한 기대를 접고 문화 역사 답사로 초점을 바꾸기로 한다.
□ 첫째 날(11/13)
1) 정혜사 13층 석탑.
다보탑, 회엄사 사사자석탑과 더불어 신라시대 이형 석탑으로 인정받는 석탑이다.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 크고 높은 1층 몸돌에 비해 2층부터는 크기가 급격하게 줄어든 12개층이 연결되어 마치 1층탑 위에 덧붙여진 머리모양 같은 특이한 형태와 느낌을 주는 탑이다.
1층은 네 모서리에 장방형의 돌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 다시 보조기둥을 붙여 공간을 확보한 모습으로 이 부분은 다보탑의 느낌이 난다,
각층의 지붕돌은 위층의 몸돌과 히나의 돌로 만들어 지붕만 겹겹이 쌓은 것처럼 보인다.
국보 40호로서 탑 주위로 펜스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데 가까이 접근하면 경고방송이 자동으로 나온다.
아마도 cctv도 촬영되지 않을까 싶디.
정혜사는 없어지고 폐사지로만 남은 절터에는 연두색 잎의 푸른 은행나무만 계절을 잊고 있다.
2) 옥산서원
영주의 소수서원, 안동의 병산서원, 도산서원, 달성의 도동서원과 함께 경북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5개 서원에 속한다.
김굉필, 정여창, 퇴계 이황, 조광조와 더불어 동방5현이라 불리는 회재 이언적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1572년 경주부윤 이제민이 지방 유림의 뜻을 모아 건립하였으며 1574년 옥산서원으로 사액되었다.
이언적의 학설은 퇴계 이황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의 중요한 성리학설이 되었다.
강당인 구인당에 걸려있는 옥산서원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며 옥산서원이 1839년 화재로 소실되고 중건한 이후 헌종이 다시 사액한 것이다.
옥산서원
3) 독락당
회재 이언적이 벼슬을 버리고 본가인 경주 양동으로 낙향하지 않고 이곳에 별서를 짓고 7년동안 성리학 연구에 매진한 곳이다.
옥산천이 흐르는 옆으로 집의 구조를 낮게 지어 양반의 위용을 풍기는 분위기를 한껏 낮추었다.
처마는 보에 바로 얹혀져서 지붕마저도 낮아졌다.
냇가를 향한 토담에는 살창을 내어 바람이 대청으로 불어 들어오도록 운치를 내었다.
독락당 옆을 흐르는 옥산천에 가을이.
4) 운곡서원
커다란 은행나무가 솟아 있는데 잎은 듬성듬성하여 시선을 끌지 못하는 모습으로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5) 성산서당과 수재정
조선시대 문신 정극후를 모신 서당과 정극후가 후학을 교육하기 위해 지은 별장이다.
은행잎은 볼 수 없고 주홍색 감이 푸른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달려있다.
성산서당
수재정
6) 경주 양동마을
일정에 없던 양동마을이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로 추가되었다.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재된 양반마을.
안강평야를 곡창으로 양반마을이 형성되었다.
안동 하회마을이 평지에 조성된 마을이라면 양동마을은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형성되었고 하인들 초가가 가까이 있다.
○ 무첨당
이언적의 종가에 16세기 중엽에 지어진 제청 (祭廳)으로 그의 맏손자인 무첨당 이의윤의 호를 따라 집의 이름을 지었다.
누마루 앞의 지게가 이채롭다.
마침 이날 종가에 제사가 있어 종손으로부터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무첨당 누마루와 지게
○ 송첨종택
경주 손씨 큰종가이다.
서백당 앞의 마당에 수령 500백년의 대형 향나무가 시선을 압도한다.
서백당은 참을 인자를 백 번 쓰며 인내를 기른다는 뜻이다.
입향조 손소의 외손자 이언적이 여기에서 태어났다.
송첨종택 향나무
양동마을 단풍 든 산
토석담의 풍치
향단. 행랑채, 안채, 사랑채가 한 몸체로 지어진 특이한 구조다. 이언적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병환중인 모친을 돌볼 수 있도록 중종이 지어준 집이라 한다. 이언적의 조카 손자 향단 이의주의 호를 따라 집 이름을 지었다.
관가정. 중종때 청백리였던 우재 손중돈의 집으로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본다라는 의미이다. 누마루에서 안강평야를 내려다 보면 그 기분을 알 것 같다.
직선과 곡선의 담장
토석담 위로 높이 솟은 회화나무
하인 초가
이엉을 엮는 모습
□ 숙소인 옥산서원 게스트하우스에서 새벽 3시에 잠이 깨어 밖에 나가 첨성대의 고장 경주 밤하늘의 별을 찍어보았다.
새벽 3시 숙소인 옥산서원 게스트하우스 지붕위로 보이는 별. 사진을 확대하면 별이 많이 보인다.
신라병사의 행군같은 경주의 불빛
□ 둘째 날(11/14)
1) 흥덕왕릉
이른 아침 흥덕왕릉의 안개를 기대하며 0550에 출발하였으나 기상조건이 안개를 형성하지는 못 한듯 하다.
왕릉 주변에 남산지, 대통지, 대곡지 등 못이 있어 기상조건이 맞으면 새벽안개를 기대할 수도 있겠으나 전날의 일교차가 크지는 못한 늣하다.
대신에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소나무 실루엣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날이 밝자 왕릉 숲속의 꾸불꾸불한 안강형소나무 군락이 연출하는 곡선의 나무줄기군의 미학적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복잡한 곡선의 소나무 줄기는 침묵의 아우성을 지르는 듯한 분위기다.
흥덕왕릉 여명의 소나무
흥덕왕릉
흥덕왕릉 숲의 안강형 소나무들의 침묵의 아우성
흥덕왕릉의 서역인 무인석
신라왕릉은 대체적으로 평지에서 봉분이 연결되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신라 말기로 오면서 무덤형태도 변화가 생겨 42대왕인 흥덕왕릉은 둘레석과 난간석이 설치되었고 둘레석에는 12지신상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난간기둥 사이에는 상하 2개의 둥근 구멍을 뚫어 관석을 끼우게 되어 있는데 다 망실되었다.
무덤 아래쪽에는 서역인의 모습을 한 석상도 있어 당시 서역과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오후에 찾은 35대 경덕왕릉도 둘레석과 난간석이 설치되어 있고 난간기둥 사이에는 흥덕완릉과 달리 관석이 끼워져 있다.
경덕왕릉의 둘레석과 난간석
경덕왕릉 둘레석의 십이지신상 부조
조식을 하러 숙소로 돌아오는 옥산서원길에 3그루의 명품송이 일렬로 고고히 서있어 잠시 차를 세우고 셔터를 누른다.
옥산서원길 명품송
2)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斷石山神仙寺磨崖佛像群)
화랑 김유신장군이 수련을 하고 칼로 바위를 내리쳐 바위가 갈라졌다는 전설의 단석산.
초입부터 마애불상군이 있는 곳까지 끊임 없이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마애불상군은 ㄷ자형을 이루는 4개의 바위에 10기의 불상을 조각하고 기와지붕을 씌웠을 것으로 추측되는 석굴형식을 취하고 있다.
북쪽 바위에는 삼존불상이 옆 바위에 새겨진 미륵부처를 향하여 왼손을 가리키고 있어 본존불로 향하는 독특한 자세를 보여준다.
국보 199호로 지정된 이 불상군은 마멸을 방지하기 위하여 위쪽에 투명지붕을 씌워 놓았다.
신선사 경내에는 지도앱에도 표시되는 약수터가 있는데 대롱을 따고 가늘게 떨어지는 약수맛은 연수에 가깝다.
지붕없는 박물관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경주는 곳곳에 마애불상이 있고 아래에 나오는 옥룡암 탑곡마애불상도 예외가 아니다.
삼존불상이 옆 바위 미륵불로 왼손을 향하는 모습
ㄷ자형 4개의 바위에 10기의 마애불상이 새겨져 있고 기와지붕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석굴이다.
마애불상군이 있는 신선사의 약수터.
맑은 물은 연수맛이다.
3) 경주남산 탑곡 마애조상군(慶州南山塔谷磨崖彫像群)
높이 9m, 둘레 30m의 거대한 바위군에 석가모니부처, 삼존불, 보리수나무, 승려상, 삼층석탑, 비천상, 수행자, 입불상, 주작, 현무, 암수 사자등 35개의 부조상이 새겨져 있는데 부처바위라고도 한다.
북쪽 면에는 7층탑과 9층탑이 새겨져 있는데 9층탑은 황룡사 9층목탑의 원형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있다.
4) 경북 천년숲 정원
넓은 부지에 다양한 계절별 식물을 감상하면서 산책할 수 있는 정원이다.
남천에 연결된 개천 양쪽으로 메타세콰이어가 높다랗게 단풍이 들어있다.
경북 천년숲 정원의 메타세콰이어길
기대했던 은행단풍은 만족스럽지 못했으나 자연현상을 인력으로 어떻게 힐 수 없는 법, 덕분에 유적 탐방, 역사 답사를 아우르는 우문현답(우리 문화유산 현장 답사)의 시간이 되었다.
첫댓글 단풍보다는 역사 답사 여행!~
경주의 모습이 찐한 가을 단풍은 아니지만 나름의 단풍으로 물들어져
같이 동행하지 못한 제가 보기에는 다 좋습니다.
경주의 마애불의 사진들을 보여주셔서 좋으네요.
내가 단석산 신선사에 언제 갔던가~~~ㅎㅎㅎ
경주는 남산이며 마애불 등의 역사기행을 몇 날 며칠을 걸려서 다니곤 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소나무의 모습도 참으로 멋지옵니다.
저 용마루는 어느 담장에 올리려는지, 이엉, 마람, 용마루 등의 이름이 있는
짚풀을 가지고 만드는 사람의 손길이 있다는 것에 반갑기 그집없습니다.
탑골, 절골, 그리고 한옥골과 정자골, 그를 둘러싼 담장과 귀한 나무들~~~
세세한 설명과 함께 사진들이 정겹고 반갑고
제가 여행지를 둘러보는 마음으로 즐감했답니다.
감사드려요~^^ 늘 건행하소서~^^
55년전 쯤 경주 석빙고에 들어갔다 나오니(지금은 석빙고 출입이 안 되지만) 거기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초원에서 지금 반월성터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지요.
거기에서 개뼈도 나오고 많은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합니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경주, 지상뿐 아니라 땅속에도 어떤 유물들이 숨어 있을지 궁금합니다.
산마루님, 언제 또 만나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경주, 언제 가 보아도 좋지요!!
신라 천년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경주는
지나온 영화를 누렸던 역사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답사지이기에...
절정기의 은행나무를 보지 못한 아쉬움...
예측할 수없는 날씨 탓을 해야 겠지요?
안강형 소나무가 우거진 흥덕왕릉의 소나무 숲도 좋구요^^
아주 오래전 (거의 30년전)에 무심재님과 남산 달빛 기행을 하였던
특별한 답사가 기억 납니다.
환한 보름밤에 맞춰 후레쉬를 켜들고 산에 오르던 감동의 시간들...
많은 사진 정리 하면서 자료와 기억을 되살려 쓰신 경주 여행기.
수고 하셨습니다!!
보름날 달빛기행, 말만 들어도 낭만이 넘쳐흐릅니다.
경주 밤하늘 별을 찍은 날은 그믐밤이었습니다.
우포늪 아침과 낮풍경을 찍으러 우포늪에 왔네요. 간밤에 눈이 내려 눈모습도 좀 담을 수 있었습니다. 여명의 하늘과 안개 낀 아침, 왕버들 줄기의 그로테스크한 뒤틀림 등.
갈대에 눈이 살짝 얹히기도 하고.
목포제방을 건너 목포늪과 우포늪 일주를 하며 사지포 제방, 주매제방을 다 도니 2만보가 되었습니다.
민박집 할머니는 붕어즙을 마시라며 주시네요.
추운 날씨에도 진정한 여행하고 계시네요 ~~
십수년전 처음 우포늪에서 철새랑 그 풍경을 접했는데 거기서 1박하며 안개낀 새벽풍경은 정말 멋있어 꿈뀠지만 무심재여행선 힘들었지요~~
덕분에 경주답사 후기로 복습 제대로 합니다^^
이번 답사에 새벽 별보고 나간 흥덕왕릉이 잴 가슴에 아 닿았네요^
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 ㅎㅎ
폰으로 별시진 찍는 베스트 웨이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포늪은 언젠가 숙박하면서 실펴보리라 마음 먹었습니디.
@문항 제가 밴드에 동영상을 올려놨었네요.
갤럭시로 별사진 찍는 법! https://youtube.com/shorts/4xe_K59P0-4?si=taITwf9nuUHkhtyH
몇년전에 무쌤과 다녀온 경주를 추억소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답사 후기는 문항님!!!
은행나뭇잎은 우리아파트가 예쁘답니다ㅋㅋㅋ
건행합시다
고려와 조선보다 왕조의 역사가 길었던 신라.
세습이 아니라 호족간 다른 성씨가 왕위를 계승했던 신라.
여성이 왕위를 물러받았던 나라.
서역의 유리세공품이 왕릉에서 출토되는 나라.
밤하늘의 별을 관측했던 첨성대의 나라.
4계절의 사각과 27대 선덕여왕의 27단, 1년 365일의 365개 돌로 앃아진 첨성대.
세월이 흘러 지진으로 뒤로 경사져 버린 첨성대.
일본이 반출하려다 실패한 성덕대왕 신종의 낮고 긴 공명.
아사달과 아사녀의 무영탑에 얽한 이야기.
(셔블 발기다래)
ᄉᆡᄫᆞᆯ ᄇᆞᆯ긔 ᄃᆞ래
밤드리 노니다가
드러ᅀᅡ 자리 보곤
가ᄅᆞ리 네히어라
둘흔 내 해엇고
둘흔 뉘 해언고
본ᄃᆡ 내 해다마ᄅᆞᆫ
아ᅀᅡᄂᆞᆯ 엇디 ᄒᆞ릿고
의 처용가의 나라
참 많은 신비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서라벌의 나라 신라
매력덩어리의 나라 신라는 언제고 가고 싶은 박물관의 나라입니다.
@문항 뒤로 경사진 첨성대
@문항 볼수록 매력적인 경주입니다
댓글 내용에 새로운 사실을 접하게 되어 심쿵~~잊었던 내용들에 감사합니다
(4계절의 시각과 27대 선덕여왕의 27단 365일의 365개 돌로 쌓아진 첨성대)
경주여행은 꼭 가보고 싶은곳인데...
역사 공부 하듯
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경주
언제나 새로운것을 발견할수 있는
경주..
문항님께서 올려주신 후기 보며
옥산서원 마당에서 서성거렸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감사 합니다
문항님께서 올려 주시는 후기는
나머지 공부 하기에 최고입니다
감사 합니다
역사이야기는 디테일을 쓰자면 길어지고 사람들이 읽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적당히 축약한 선에서 타협해 쓰자니 스스로 불만이고, 언제나 완성도 낮은 스토리를 쓰지만 깊이 통찰해 주시옵소서.
사진과 함께 후기를 자세히 올려주셔서
저도 자세히 살펴가며 잘 읽었습니다.
국보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서
우선 그 사진과 설명에 오래 머무르게 되네요.
국보 제40호 정혜사지 십삼층석탑과
국보 제199호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송첨종택의 향나무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언젠가 그 근처를 지날 때
놓치지 않고 눈여겨 보게 된다면
문항님 덕분이겠지요.
고맙습니다.🙏
비바람에 노출된 마애불은 오랜 기간 풍우에 마멸되고도 그 표정이 아직 살이있음을 봅니다.
그것이 국보이든 이름 없는 옹기조각이든 질박한 표현기법이 남아있음에랴 하나같이 소중한 유적이겠지요.
지금 발굴하고 있는 반월성터도 어릴 적 제 기억에 넓은 초원이었는데, 땅속에 어떤 유물이 얼마나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흥덕왕릉의 새벽안개도 기대를 모으는데 행운을 잡을지는 천운에 맡겨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