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김씨가 흉노의 휴도왕의 아들 김일제의 후손이라는 주장에 듣는 솔직한 심정은 우리의 뿌리 깊은 중국 병을 보는 듯하여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에게 비롯된 모든 것이 중국에서 비롯되었다는 사고 방식이 없어지지 않는 한 우리의 올바른 역사를 되찾기는 요원한 일로 보인다.
우선 신라 김씨가 김일제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말하는 왕망 페망 이후의 한반도와 각지로의 이동에 대한 증명으로서 내놓은 오수전(五銖錢)은 그야말로 당시의 국제 화폐라 하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각지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요서, 요동, 한반도, 왜는 물론 지금의 베트남과 실론(스리랑카)과 인도에서도 발견된다. 이것은 당시 현금과 다름 없었던 비단의 교역과 중국과 북방민족과의 교역의 산물이지 이것이 발견되는 모든 지역에 왕망의 페방 후의 이주민이 건너간 것이 아니다. 단지 오수전이 발견된다고 해서 그것을 중국의 이주민의 흔적이라고 한다는 것은 당시 동아시아는 물론 서역, 멀리는 로마까지 이어지는 교역을 몰랐다는 것밖에는 안 된다. 당시의 한나라에서 생산되는 비단이 로마에서 대유행을 하였음은 이미 상식인 것이고 그 교역의 증거인 오수전이 아시아 각지에서 발견되는 것도 이상한 것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오수전이 발견되는 것은 교역의 흔적일 뿐인 것이다.
또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 허황옥을 구지 한나라의 허황후와 끼워맞추는 것은 억지스럽기 그지없다. 분명 아유타국이라 했는데 왜 억지로 한나라의 허황후와 끼워맞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인도에 위치한 아유타국의 공주가 어찌 신라까지 왔겠는가 라고 묻는다면 문명 교류사에 대한 공부를 좀 하라고 권하고 싶다. 신라에서 발견되는 로마 유리가 어떻게 왔겠느냐고 되묻고 싶다. 또 진나라가 한나라에 망하고 난 뒤 이들이 서역으로 가서 흉노가 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구지 할 말이 없다. 분명 중국과 다른 독특하고 뛰어난 문화를 지니고 있던 흉노를 진나라의 후손이 건너간 것이라 하는 주장은 우리에게 중국병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