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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베스트셀러 <정글만리>를 펴내고, 다시 새로운 작품을 위해 행복한 글 감옥에 갇힌 조정래 작가. 일흔 작가의 내공과 그만의 인생 지혜를 공개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소재로 한 소설을 주로 쓴 조정래 작가가 특별한 외출을 했다. 위스타트 운동본부에서 주관하는 위대한 토크에 강연자로 나선 것이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기부 행사라는 말에 선뜻 그도 시간을 냈다. 나눔의 마음으로 마련된 자리인 만큼, 나눔에 대한 가치와 인문학에 대한 중요성, 본인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까지 편안하게 들려주는 자리가 마련됐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타공인 머리가 좋은 사람이 그것을 본인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머리가 좋은 것은 능력이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태어난 것뿐이에요. 운이 좋았던 거죠. 같은 형제라도 머리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어요. 인간으로서 노력한 것, 그 대목이 능력이에요.” “석가모니는 자비를 내놓았어요. 예수는 박애를 이야기했죠. 석가모니가 조금 다른 점은, 끝없이 베풀되 베풀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라는 개념이 더해진 거예요. 이렇게 따뜻한 나눔의 마음을 가질 수 있길 바랍니다.” 인간다운 인간을 만들어주는 것, 인문학 그는 인간답게 사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베풂의 양극인 욕망으로 점철된 자본주의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크다. “성인에게는 다섯 가지 욕망이 있어요. 재물욕, 식욕, 성욕, 명예욕, 수면욕. 이 다섯 개의 욕망 중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재물욕이에요. 사유재산에 대한 욕구가 강력하고, 그 욕구에 뿌리를 둔 것이 자본주의예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 속에서 무언가를 갖고 싶어 욕망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을 창출할 수 있지만, 그것이 끝없이 치달아 가버리면 나 아닌 사람은 돌보지 않게 되어버립니다.” 조정래 작가는 그 동물적인 소유 욕구를 인간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종교라며, 여기에 인문학을 하나 더했다. 인간다운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문학, 역사, 철학을 포괄적으로 두는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발견이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사는 우리의 존재를 서로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이고요. 인간에 대한 존엄, 가치를 알게 됩니다. 인문학의 소양은 끝없이 필요한 것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지금을 ‘인문학을 잃어버린 시대’라고 말한다. 경제성장에 포커스를 맞춘 시대, 국문학과를 없애는 대학이 생겨날 정도로 인문학에 대한 인식이 낮다. 소설가인 그는 이런 현실에 경종을 울렸다. 우리가 잘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경제발전을 한 것은, 사람으로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는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유도 끝없는 탐욕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일상에 허덕이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잠깐씩 읽는 밑줄 친 책이 장롱 크기만큼 늘어나면, 나아가 그걸 자식들과 함께 읽으면, 그 자식은 공부 1등 안 해도 잘 삽니다.” 내가 대하소설을 쓰는 이유 “제가 국문과를 지망할 땐 ‘굶을과’였어요. 밥을 굶는다는 의미죠. 그때가 1960년대 초반인데 당시 서울에는 전쟁의 상흔이 많이 남아 있었어요. 독자가 없었던 시절입니다. 너무 가난해서 소설을 써봤자 읽을 사람이 없었어요. 그땐 책을 한 권 사면 돌려가며 읽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 내려가던 것이 미덕인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래도 그때는 그나마 나았다고 말을 잇는다. 1920~1930년대 식민지 시절에는 문학이라는 카테고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었다. 소설가의 형편이 좋을 리 없었다. 그는 대한민국 100년 소설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이라며 채만식과 염상섭 작가를 언급했다. ![]()
그런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는 ‘굶어도 좋다, 문학을 해야겠다’라는 결심을 했다. 할 만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고, 가장 잘하고 싶은 자신감이 있었고, 한 번뿐인 인생을 걸어도 괜찮을 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국문과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화두가 있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다. 조정래의 고민은 우리 민족의 처절한 아픔의 역사를 쓰겠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슬픈 역사를 지닌 나라에 태어난 작가로서의 의미가 없지 않은가라는 마음이었다. “한반도라는 땅은 슬픕니다. 역사가 처절합니다. 흔히 5천년 역사라고 하잖아요. 그 기간 동안 모두 9백31번의 침략을 받았어요. 그중 70~80%가 중국, 나머지는 일본이었죠. 나라를 잃어버리는 비극을 당했어요.” “우리가 지금은 경제 발전을 해서 잘살아요. 25~30년 정도 이렇게 살다 보니 계속 그렇게 잘살았던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부모 세대가 어떻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광주 민주화를 모르는 세대인데, 식민지는 더 모르죠.” 그는 소설 문학은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탐구라고 말했다. ‘인간에 대한’에는 역사, 종교, 과학, 경제, 정치 모든 것이 포괄된다. 작가는 그 시대의 산소이고 그 시대의 스승이고 등불이고 나침반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는, 그래서 대하소설을 쓴다. 연애소설은 그가 생각하는 소설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망각이라는 것이 본능적으로 있습니다. 지나간 일, 사소한 일은 다 잊어버리게 되어 있어요. 망각이 없다면 99%가 미쳐버리겠죠. 미치지 않게 해주는 기제가 망각이에요. 그 기제로 역사의 처절한 상처나 고통도 망각한다, 그렇게 되면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죠.” 단재 신채호 선생이 한 말을 거들면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역사를 모르면 또 나라를 빼앗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간의 망각이 아픔을 덮으면 그 망각의 딱지를 뜯어내서 소금을 뿌리고 피를 흘리게 하고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이 소설가의 임무라고 생각한고 덧붙였다. 2030을 위한 <정글만리> 그의 최근작 <정글만리>는 경제 강국으로 급성장한 중국에 대한 이야기다. <아리랑>을 쓰기 위해서 중국 취재를 하던 그는 중국의 건재함에 충격을 받았다. 중국이 지금 G2로 급부상하게 된 이유를 유심히 살폈다. “1990년에 취재를 시작했어요. 그때는 우리와 수교하기 2년 전이었어요. 천안문 사태가 터진 시기이기도 했고요. 기자, 작가는 절대 못 들어온다고 해서, 상인 비자를 만들어서 갔습니다. 옛 소련은 몰락했는데 여전히 건재한 중국의 거대함에 위기의식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는 백성을 굶주리게 하고 헐벗게 하는 왕조는 무조건 망한다고 강조했다. 20세기가 끝나는 시점에 러시아와 중국이 적나라하게 입증해줬다. 앞으로 20~30년이 지나면 중국은 어떤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인가 하는 위기감이 왔다. 또 하나의 소설 소재를 얻었다. 그렇게 <정글만리>가 나왔다. “<정글만리>는 중국의 실태를 보여주는 소설이 아니에요. 내 조국, 민족, 미래가 앞으로 어찌 되어가야 할 것인가를 고심하는 소설이에요. 우리 민족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예요. ‘중국에 모범적인 입문서다’라는 표현은 일부일 뿐이에요. 일본과 중국, 한국의 문제, 통일 북한과의 문제도 언급함으로써 총체적으로 어떤 정신 상태로 올바로 서야 할 것인가, 그 이야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이 소설을 4050세대가 아니라 2030세대가 더 많이 읽기를 원한다고 한다. 40대 중후반의 사람이 주인공이지만, 조카 세대가 헤쳐나가야 할 미래의 이야기를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세대의 인식이 바뀌기를 바란다. “우리 인생은 나그네예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요. 사람들은 그 일회성을 늘 망각해요. 마르고 닳도록 살 줄 알지만 그거 아니잖아요.” 그는 10년 전부터 물건을 박스에 싸서 묶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죽는 준비를 하는 것이란다. 죽을 때까지 욕심을 줄이는 마음,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는 일을 잊지 않을 것이라며, 일흔의 작가가 마지막으로 인생의 지혜 한마디를 남겼다. “인생이란 자기 스스로를 말로 삼아 끝없이 채찍질을 가하며 달려가는 노정이고, 두 개의 돌덩어리를 바꿔 놓아가며 건너가는 징검다리예요. 외롭지 않고 고달프지 않은 삶이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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