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박진성
주치의 춘천으로 발령나서
새 병원 찾아가는 길
잘못 나온 꽃잎 몇 개
안녕,
대기실 의자에 앉아
아까 본 목련 꽃잎을 자꾸만 바라보는데
간호사 하나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거라
허만하 시집 갈피 사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모래알.
안녕, 이라고 애써 고개 파묻고 있었는데
박진성님…… 카운터로 걸어가는데
뒷덜미를 꽃이 잡아끌었는데
저기, 진성이 아니니…… 간호사가, 안녕,
고등학교 동창 선경이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표정으로
안녕,
미래 신경정신과 수간호사가 되어 있는거라
상습 불면, 자살충동, 공황발작,
차트를 오래오래 쳐다보는거라
조제실에서 알프라졸람과 바리움을 봉지에 넣고 있는
스물일곱의 네 손가락은
기다란 의자에 앉아 약을 기다리는 스물일곱의 내 엉덩이에
근육이완제를 주사하겠지
엉덩이를 까고 창문을 바라보는데
바람을 못 이긴 목련이 툭, 떨어지는거라
자주 보겠네, 그 말 한 마디가
입 안에서 궁글고 있는 알약처럼 서걱거리는거라
안녕, 안녕,
병원 문 열고 나오는데
목숨 끊고 거리를 자유 비행하는 목련 한 꽃잎
안녕,
박진성 1978년 충남 연기 출생. 2001년 〈현대시〉신인상에 ‘슬픈 바코드’ 외 3 편의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 시작.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 시집 『목숨』(2005, 천년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