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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작년 2월 강원도 화천에서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김모(27)씨는 "군대도 하나의 사회라서, 학교에서 애들이랑 지내는 거랑 똑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기가 잘하면 남들과 웬만큼 어울려 지낼 수 있지만, 남한테 피해만 주고 잘 못 어울리면 괴롭힘 당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하사로 지난해 11월 전역한 방모(24)씨도 "보통 좀 문제가 있는 애들을 '고문관'이라고 부르는데, 고문관 때문에 나머지 전체가 힘들어진다"며 "당연히 짜증이 나면 고문관한테 뭐라고 하게 되고, 고문관이 더 주눅 들수록 점점 더 괴롭히게 된다. 학교에서 애들 왕따시키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강원도 고성 전방사단에서 장교로 전역한 안오현(30)씨는 "이런 사고방식은 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가 맞을 만하니까 맞은 것이라는 생각인데, 그런 생각 자체가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안씨는 "그런데 점점 이런 생각을 가진 병사들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중대장으로서 병사들을 보면 개인주의적인 학교문화에서 생활하다 온 대원들이 많고 낙인찍는 문화에 익숙한 그들에게 군대에서의 폭력 문제 역시 비슷하게 인식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방관자'가 많은 것도 학교와 군대가 비슷하다. 지난해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이모(23)씨는 "학교에서 폭행당하거나 왕따당하는 걸 교사에게 알려도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으면 위에 알릴 생각 자체를 못 하게 된다. 군대에서도 괜히 잘못 고자질하면 군 생활만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신고를 안 한다"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가정과 학교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런 교육에도 불구하고 집단에는 늘 사이코패스 같은 '악마'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군대에도 왕따와 폭력의 조짐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내 아버지가 깡패… 네 아버지 사업 망하게 할수도"
[尹일병 폭행 선임병의 협박]
주범 李병장, 제왕적 권력 휘둘러 - "네 엄마도 섬에 팔아버릴 것"
직속 상관인 하사도 굽실… 尹일병, 피해 두려워 제보 못해
尹일병 사건 외 다른 가혹행위 - 두번 자살 시도한 병사 방치
부대 화장실에서 결국 자살… 후임병이 '하극상 구타'도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을 집단 폭행해 숨지게 한 선임병들은 윤 일병의 부모까지 해치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4일 군 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본지 통화에서 "윤 일병을 집단 폭행해 숨지게 한 선임병 가운데 주범인 이모 병장은 윤 일병에게 '내 아버지가 깡패다. 만약 구타 사실을 알리면 네 아버지 사업을 망하게 하겠다. 네 어머니도 섬에 팔아버리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이 병장이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며 부모에게까지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하는 데다 직속 상관인 하사까지 이 병장에게 굽실거리는 상황에서 윤 일병이 부대 지휘관이나 부모 등에게 폭행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혼자 전전긍긍했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윤 일병은 이 병장의 감시 때문에 인터넷 등으로도 피해 제보를 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군대 내 폭언·폭행 등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병사들은 윤 일병뿐만이 아니다. 현재의 군대 내 조직 문화는 '제2, 제3의 윤 일병'이 언제든지 또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가혹 행위로 반복된 자살 시도 방치, 끝내 사망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계속된 폭언과 가혹 행위, 지휘관의 관리·감독 소홀로 3번째 자살 시도 끝에 숨진 병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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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尹일병은 이렇게 폭행당했다… 軍, 현장검증… 군 당국이 육군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과 관련해 4일 실시한 현장검증에서 선임병이 윤 일병(대역)에게 엎드려뻗쳐를 시키고(왼쪽), 목을 누르며 구타하는 장면(오른쪽)을 시연하고 있다. /KBS
국민권익위에 따르면 지난 2011년 5월 육군에 입대한 김모 일병은 자살 우려로 입원 치료와 항우울제 처방을 받았다. 그러나 선임병의 폭언과 가혹 행위는 계속됐고, 중대장은 술에 절어 김 일병의 약 복용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방치했다. 김 일병은 항우울제를 한꺼번에 복용해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이에 실패하자 며칠 후 커터 칼로 손목을 그어 자해했다. 그럼에도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던 김 일병은 2011년 12월 끝내 부대 내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중대장은 병사들에게 "매일 김 일병과 상담했으며 약 복용도 확인했다"고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 해당 부대 간부들은 이 병사의 조의금까지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후임병에게도 하극상 구타당해지난 2008년 6월 최전방소초(GOP) 경계근무를 하던 전모 상병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수류탄을 터뜨려 사망했다. 권익위와 법원 등에 따르면 전 상병은 군 입대 후부터 선임병들에게 구타를 당했고, 후임병들까지 전 상병을 구타했다. 소대장은 이를 보고받고도 묵살했다. 지휘관들은 또 전 상병이 후임병과 경계근무를 설 때 사수가 아닌 부사수로 편성하기도 했다. 전 상병 인성 검사에서 '특별 관심 대상자'로 선정돼야 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휘관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들은 전 상병 사망 후 헌병대 조사 때도 병사들에게 "최대한 숨겨야 나머지 사람들이 편하게 마무리하고 살 수 있다"면서 사실을 왜곡했다.◇6사단 의무부대에서도 가혹 행위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육군 6사단에서 의무병으로 복무했던 임모(21) 상병은 부대 전입 후인 2012년 11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5개월여간 선임병들로부터 욕설과 성추행, 폭행 등 가혹 행위를 당했다. 선임 의무병들은 임 상병에 대해 "일을 잘 못한다" "샤워를 오래 한다" 등의 이유로 수시로 머리 박기, 성기 발로 걷어차기 등의 가혹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임씨는 이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았지만 관리·감독은 이뤄지지 않았다. 임 상병은 지난 1월 전역, 민간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