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T 헤이즈(43)는 집안 분위기에 순응하며 미시시피주 고린스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유명한 카레이싱 선수였던 덕에 기름이 끈적대는 집 차고에서 자동차 부품을 만지작거리며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자동차를 설계하고 조립하는 방법도 그때 배웠다. 10세쯤부터는 스스로 자동차경주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결국 소형 자동차경주에 출전해 지역대회와 전국대회에서 500차례나 우승했다. 90년대 초에는 전미개조자동차경기연맹(NASCAR)이 주최하는 윈스턴컵대회의 우승컵도 안았다. 그러나 자동차 경주대회의 트로피와 화려함 이면에는 고통스러운 비밀이 한 가지 있었다. 그는 늘 자신이 여성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모습도 여성스럽고, 체격도 가냘펐다(168㎝의 키에 53㎏). 신체 구조만 남성일 뿐 늘 마음속으론 자신을 여자로 여겼다. 유년기 이후 그는 그 문제로 고민했다. 때로는 침대 밑에 숨겨둔 “여자옷”을 입고 화장도 해봤다. 그러나 보수적인 동네라 마을 사람들의 도움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1991년 헤이즈는 진실의 순간을 맞았다. 리틀록의 진흙 경주장에서 소형 레이스카를 몰다 차체가 완전히 뒤집혔을 때다. “몸이 거꾸로 된 채 차에 갇혔다. 엔진이 말을 듣지 않아 휘발유가 경주로와 내 몸을 흥건히 적셨다”고 그는 회상했다. “당시 겁은 나지 않았지만 나의 본모습과 동떨어진 생활을 해왔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날 밤 그는 완전한 여성으로 변신하겠다고 다짐했다. 병원을 들락거리고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서도 자동차 경주대회는 계속 참가했다. 자꾸 커지는 가슴은 밴드와 펑퍼짐한 티셔츠로 가렸다. 마침내 30세이던 1994년 헤이즈는 멤피스에서 토요일 밤 경기에 출전한 뒤 그 이튿날 성전환 수술을 받으러 콜로라도주로 차를 몰았다. 수술비용은 값비싼 자동차를 팔아 마련했다. 헤이즈는 테리 오코넬이란 여자 이름을 선택한 뒤 여성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카레이싱 선수 시절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앞으로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막막했다. 결국 오코넬은 쇼핑몰에서 시간당 8달러에 여성용 핸드백을 파는 일자리를 구했다. 지금도 다시 경주에 출전하고 싶지만 그것이 요원한 꿈이란 사실을 잘 안다. “트랜스젠더와 직업적인 모터스포츠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젠더(사회적 의미에서의 성)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출생증명서에 기록된 ‘남성(M)’ 또는 ‘여성(F)’ 분류를 당연시한다. 집중적인 단기 다이어트만 제외하면 세상이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바지든 치마든, 여성용 목도리든 재킷이든, 아니면 굽 높은 힐이든 운동화든 말이다. 그러나 자신을 스스로 트랜스젠더로 여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태어난 성과 자신이 스스로 인식하고 표출하는 방식 사이에 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수는 비교적 적다. 전미트랜스젠더평등센터(NCTE)의 가장 후한 추산에 따르더라도 75만~300만 명(전체 미국인의 1% 미만) 정도다. 그러나 이들 중 다수가 최초로 자신들의 은밀한 투쟁을 공개적으로 밝히기 시작했다. LA 타임스의 스포츠 기자 마이크 페너는 지난 4월 자신의 칼럼에서 앞으로 휴가에서 돌아오면 여성(크리스틴 대니얼스)으로서 칼럼을 쓰겠다고 발표했다. 9개 주와 워싱턴 DC는 트랜스젠더를 보호하는 반차별법을 제정했고, 추가로 3개 주는 입법을 앞뒀다고 인권운동(HRC) 측은 밝혔다. 미 하원도 5월 초 ‘성 정체성’을 포함한 혐오범죄 예방 법안을 통과시켰다. 트랜스젠더 미국인들은 요즘 기존의 고정관념(예컨대 ‘로키 호러 픽처 쇼’에서와 같은 모습)과는 판이하다. 그들은 사커 맘이고, 목사이고, 교사이며,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중엔 어린아이도 있다. 관용과 수용을 촉구하는 이들의 노력은 기업·스포츠·학교·가족의 모습을 바꾼다. 동시에 이들의 노력은 인간을 남성이나 여성이 되도록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지 새로운 의문을 제기한다. 젠더는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분명 생식기의 차원을 뛰어넘는 문제다.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젠더는 해부학보다 더 미묘하고 복잡하다(젠더는 우리가 어느 성에 이끌리는가를 결정하는 성 지향성과는 별개다). 젠더는 우리가 세계를 남녀 두 집단으로 구분하게 할 뿐 아니라 거리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을 재빨리 판단하는 수단이 된다. “젠더는 세계를 안전하게 만드는 한 가지 방식”이라고 캘리포니아대(버클리)에서 수사학을 가르치는 페미니스트 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말했다. 버틀러 등 일부 학자는 젠더를 주로 사회적 개념으로 파악하지만 생물학·유전자·호르몬·문화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바라보는 학자도 갈수록 는다. 창세기는 젠더를 원천적으로 이분법적 시각에서 바라본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미국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뚜렷하다고 여겨졌다.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받는 남성은 저녁에 먹을거리를 가져오는 공급자·전사이자 강하고 말 없는 집단이었다. 반면 모성애의 원천인 옥시토신 호르몬뿐 아니라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받는 여성은 남성이 가져온 재료를 요리하는 양육자·의사소통자이자 부드럽고 정서적인 집단이다. 현재는 젠더의 차이를 거론하는 행위조차 우려스럽다(래리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은 2005년 여성은 태생적으로 수학·과학적 재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가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가장 고집 센 페미니스트조차 남녀가 똑같지 않다는 데는 동의할 듯하다(생식기의 차이는 별개로 치더라도). 우리의 습관·자세, 심지어 옷 입는 방식 등 문화적 기준에서도 남녀 차이는 자주 나타난다. 트랜스젠더들이 전에 비해 더 눈에 띄는 동시에 전통적인 성 구분에 도전하면서 또 다른 논쟁이 제기됐다. 과연 젠더가 두 가지뿐이냐는 문제다. “사람은 모두 생물학적으로 남성이거나 여성이고, 그 두 가지 범주밖에 없으며, 그 범주가 겹치는 존재는 없다는 기존의 구분법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뉴욕시립대(스토니 브룩)의 마이클 키멜(사회학) 교수는 말했다. “이 모든 해묵은 구분이 보다 유동적으로 바뀐 듯하다.” 용어 자체도 혼란스러워졌다. ‘트랜스섹슈얼’은 대개 호르몬이나 수술을 통해 자신의 성을 바꾸려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반면 ‘트랜스베스타이트’(요즘은 보다 점잖게 ‘크로스 드레서’라고 부른다)는 자신과 반대되는 성의 옷을 간혹 입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트랜스젠더’는 수술 여부에 관계없이 자신의 성 정체성이나 표현이 타고난 성과 다른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포괄적 용어다. 트럭이나 인형을 향해 달려드는 자녀를 지켜본 부모라면 익히 알 듯 성 정체성은 유아기 때부터 문제가 된다. 일부 아이는 자신의 몸과 뇌가 따로 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혼란을 겪기도 한다. 북부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유치원생 조나 로즈(6)는 어느 모로 보나 여자아이 같다. 여자옷을 입고, 분홍색과 자주색을 좋아하며, 동물인형에도 모두 여자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로즈에겐 남성 성기가 달려 있다. 로즈는 4세 때 어머니 팸이 드레스를 사주자 너무 흥분돼 숨을 가쁘게 몰아쉴 정도였다. 로즈는 유치원에 갈 때마다 드레스를 입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러나 처음엔 쉽지 않았다. “우리는 이 문제로 매일 밤 고민했다”고 로즈의 아버지 조엘은 말했다. 그러나 두 부부는 마침내 아들이 여자아이로 살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부부는 로즈가 아들로 태어난 사실을 감출 필요도 없고 여자아이처럼 편안하게 여자옷을 입고 여자화장실을 이용해도 되는 사설 유치원을 택했다. “아이는 애초부터 ‘나는 여자아이’라는 생각이 확고했다”고 조엘은 말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처음엔 모습이 꽤 비슷하다. 어떤 배아를 남성이나 여성으로 자라나게 하는 요인은 유전자다. 그러나 각 배아는 남녀 어느 쪽으로도 발달할 여건이 마련돼 있다. 각 배아는 남성의 생식기로 자라나는 볼프관뿐만 아니라 여성의 생식기로 자라나는 뮐러관도 함께 지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신 8주께부터 복잡한 유전적 과정을 거쳐 X염색체와 Y염색체가 작동하면서 생식기가 정소(精巢)가 될지, 난소가 될지를 결정한다. 정소와 난소는 곧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시작하고, 성장하는 태아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 사이 뇌가 형성되고 남녀 간에 회로가 서로 다른 수용체로 충만해지면서 나중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이 인체에서 이용되는 방식을 결정한다. 이런 변화는 출생 후에도 계속된다. 새로 태어난 수컷들이 성적·행동적 특성을 결정지을지 모를 급격한 호르몬 증가를 경험하는 종(種)이 많다고 캘리포니아대(샌프란시스코)의 신경과학자 니라오 샤는 말했다. 쥐의 경우 생후 첫 주 동안 테스토스테론을 주입하면 어린 암컷이 다 자란 뒤 보다 수컷처럼 행동할지 모른다. “이 같은 변화는 돌이키기 힘들다”고 샤 교수는 말했다. 생후 1~5개월 사이의 남자 영아에게도 급격한 호르몬 증가가 일어난다. 이 같은 호르몬 증가가 뇌에 정확히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변화는 부모가 새로운 아이의 탄생에 기뻐하는 바로 그 시기에 일어난다. 바로 이 시기에 문화가 개입한다. 연구에 따르면 부모들이 남아와 여아를 대하는 방식은 매우 다르다. 예컨대 남아에겐 젖을 더 오래 먹이고, 여아에겐 말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런 습관은 아기의 뇌가 폭발적인 성장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된다. “아기의 뇌는 생후 첫 5년간 두 배로 커지며 그 과정에서 뇌세포 간의 상호작용이 수백 배 활발해진다”고 브라운대의 생물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앤 파우스토-스털링은 말했다. 부모의 이 같은 행동 차이가 매우 어린 아이의 성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연구 중인 그녀는 “아이의 뇌는 생후 첫날부터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트랜스젠더들은 무엇이 다를까. 과학자들은 확실히는 모른다. 호르몬 수치는 일반인들과 같아 보이지만 두뇌가 호르몬에 반응하는 방식이 다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도 있다. 남녀의 두뇌가 서로 다르듯 말이다. 그러나 이를 증명하려면 수십 년 정도 더 연구해야 한다. 1997년 일반 남녀와 성전환자 두뇌의 구조적 차이를 어느 정도 시사하는 연구가 나왔지만 그 뒤로 같은 결과를 뒷받침하는 연구는 아직 없다. 일부 트랜스젠더는 환경적 요인을 탓한다. 환경오염으로 개구리를 비롯한 동물의 생식기능에 이상이 생겼다는 연구결과를 내세운다. 그러나 사람도 똑같은 영향을 받았다는 연구결과는 아직 없다. 트랜스젠더 문제는 현재 정신의학 매뉴얼 DSM-IV에서 ‘성 정체성 장애’로 분류된다. 여기에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동성애자 권익운동가들은 그 매뉴얼에서 동성애를 제외하려 오래전부터 운동을 펼쳐 왔다. 사람들이 성적 가변성을 항상 충격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은 듯하다. 데보라 루다실이 쓴 ‘성의 수수께끼(The Riddle of Gender)’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와 로마뿐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을 비롯해 많은 토착사회에서도 이성의 의류를 착용하는 복장도착이 흔했다. 1629년 미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 정착지의 법원에는 남녀 양성을 지녔다고 주장한 토머스 홀 사건의 기록이 남아 있다. 물론 남성성과 여성성의 판단기준은 오래전부터 가변적이었다. 미 건국의 아버지들은 오늘날 장발이나 귀걸이를 한 남성을 보고는 안 놀라겠지만 바지를 입은 여성에겐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종종 성경을 앞세워 트랜스젠더를 비판했다. 신명기 22장 5절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여자는 남자의 옷을 입지 말고, 남자는 여자의 옷을 입지 말아라. 너희 하나님은 이렇게 하는 사람을 싫어하신다.” 지난 2월 플로리다주 라고시 지역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14년간 시정담당관으로 근무한 스티브 스탠턴이 여성으로 성전환을 계획 중이라는 말이 나돌면서다. 스탠턴 해고를 둘러싼 공개회의에서 등대 침례교회의 론 샌더스 목사가 비판자로 나섰다. 그는 예수라면 “그가 삶을 마감하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스탠턴은 해고됐으며 이번 주 수전 스탠턴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의회에 출두해 차별철폐법 입법 로비를 펼칠 예정이다). 샌더스 목사는 성전환도 동성애와 똑같다며 “지극히 혐오스럽고 역겨운 행위”라고 표현했다. 성직자의 생각이 모두 똑같지는 않다. 침례교 목사인 존 네메섹(56)은 2003년 어느 주말 아내가 남의 집 잔치에 갔을 때 웹을 검색 중이었다. 오랫동안 마음속 깊이 억눌렸던 여성적 느낌의 실마리를 찾으려 헤매던 끝에 한 의학전문 사이트에서 성 정체성 장애에 관한 글을 접했다. 성전환수술을 권하는 내용이었다. 곧 네메섹은 자신도 수술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처럼 큰 변화를 겪으면 많은 가정이 파탄을 맞지만 33년간 함께 살아온 네메섹의 부인은 그의 곁을 지켰다. 그러나 15년간 봉직한 스프링 아버 대학(미시간주 기독교계 인문대학)은 그를 내쳤다. 네메섹에 따르면 학교 측은 트랜스젠더주의가 학교의 기독교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네메섹과 재계약하면서(이때 그는 호르몬 주사를 맞으며 ‘줄리’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교내에선 여자옷이나 귀걸이를 착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업무와 급여도 삭감됐다고 한다. 그녀는 차별이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훗날 중재를 통해 합의가 이뤄졌다(대학 당국은 이 건에 관해 논평을 거부했다). 네메섹은 자신의 성전환과 신앙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내 안의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됐다.” 다른 성전환자들은 그보다 운이 좋았다. 현재 49세인 캐런 코프리바는 턱수염을 밀기 전까지는 남자였다. 여자가 된 뒤에도 일리노이주 레이크 포리스트의 고등학교 교사 자리를 잃지 않았다. 프루덴셜 파이낸셜의 마크 스텀프 부사장은 2002년 마거릿이란 이름으로 출근해 동료들에게 성전환 경위를 설명하는 메모를 보냈다(제목: 나). “이젠 팬티스타킹을 입어야 하겠네, ‘내 상태’가 전염되지는 않을까하며 모두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소란이 가라앉자 모두 정상적인 업무로 돌아갔다.” IBM과 코닥 같은 기업에선 현재 트랜스젠더와 관련된 의료비를 지원한다. 현재 포춘 500대 기업 중 125곳이 업무상 트랜스젠더 직원의 차별을 금지한다. 2000년엔 그런 회사가 3개에 불과했다. 차별은 트랜스젠더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아닐지 모른다. 폭력과 혐오범죄 피해의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 아마 스포츠계만큼 성별 문제를 두고 논란이 많은 분야는 없을 듯하다. 남자선수가 여자 행세를 하려 하거나, 여자선수가 근력을 강화하려고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맞는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1960년대 올림픽에 참가하는 여자선수들은 성별확인 검사를 받아야 했다. 기본적으로 의사들 앞에서 옷을 모두 벗고 여성 성기가 있는지 확인하는 방식이다. 그 방식은 곧 유전자 검사로 대체됐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몇 가지 형태의 유전자 이상을 두고 혼란이 일었다. 외모는 영락없는 여성인데 통상적인 XX가 아닌 다른 염색체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실험실 성별검사 의무규정도 폐지했다.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남녀를 구별할 검사기법이 없음을 알게 됐다”고 아르네 륭크비스트 IOC 의료위원단장은 말했다. IOC는 최근 다시 논란에 휘말렸다. 2004년 IOC는 성전환 수술을 받고 2년간 호르몬을 투여한 경우 성전환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해도 좋다는 규정을 발표했다. 전문가 위원회를 소집해 의견을 듣고 난 다음, 여성으로 성전환한 사람이라도 수술과 호르몬 투여를 받으면 원래 지녔던 호르몬이나 근육의 강점이 약화된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남성으로 성전환한 선수는 테스토스테론 투여가 허용되지만 체력증강을 유발하지 않는 범위 내로 제한된다). 륭크비스트에 따르면 성을 전환한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한 사례는 아직 없다. 1977년 성전환 수술을 받은 후 여성으로 테니스 경기에 출전할 권리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르네 리처즈가 그 IOC 규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한 사실은 역설적이다. 개별적인 사안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는 이유에서다. 리처즈를 비롯한 선구자들은 한 세대 동안 성전환을 바라보는 문화적 관점이 얼마나 크게 바뀌었는지 보여준다. 이제 70세에 이른 리처즈는 트랜스젠더라는 용어뿐 아니라 거기에 담긴 모든 가변적 뉘앙스를 거부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보낼 때 성적 다양성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청소년들이 그런 실험을 해선 안 된다. 나는 어중간한 상태로 있고 싶지 않았다. 트랜스 어쩌구 저쩌구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단지 남자나 여자 중 하나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전통적 관점에서 이도 저도 아닌 상태를 받아들이는 젊은이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매년 성전환 수술을 받는 미국인은 1000~2000명에 불과하다(NCTE의 마라 키슬링은 증가추세라고 밝혔다). 돈이 많이 들고 손이 많이 가는 수술인 데다 결과가 안 좋을 경우(특히 여성이 남성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노스웨스턴대에 다니는 마이클 밀러는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지금은 자신을 남성으로 여긴다. 특수 제작된 조끼로 가슴을 감추고 다닌다. 언젠가는 호르몬 주사를 맞고 유선(乳腺) 절제수술을 받고 싶지만 현재는 돈이 없다. 그래도 자신이 남성이란 확신에는 변함이 없다. “모든 남성이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나는 굳이 가장 크고 가장 강한 남자가 되려 애쓰지는 않는다.” 한 세대 전 여권운동의 발원지였던 매사추세츠주 노탬턴의 스미스 칼리지만큼 이 문제가 절박한 곳은 없다. 스미스 칼리지는 원조인 ‘세븐 시스터즈’ 여자대학(미국 동북부 명문여대 그룹) 중 한 곳이었지만 재학생들은 곧잘 자신들이 다니는 대학을 “주로 여자들이 다니는 대학”이라고 부른다. 입학한 뒤 남성으로 전환하는 ‘트랜스맨’의 증가가 한 가지 이유다. 2004년 학생들은 투표를 통해 학생회칙에서 대명사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그녀’가 아닌 트랜스젠더 학생을 배려하려는 취지에서다(트랜스젠더 학생들을 보호하는 차별금지 규정을 둔 학교도 스미스 칼리지를 포함해 70곳에 이른다). 현재 스미스 칼리지에 적을 둔 학생은 누구나 졸업이 가능하지만 입학하려면 일단 생물학적으로 여성이어야 한다. 2003년 졸업생인 토비아스 데이비스는 여성으로 입학했지만 ‘트랜스맨’으로 졸업했다. 처음 저녁식사를 하면서 친구들에게 “내가 남자인 것 같다”고 말하자 친구들은 즉각 지지를 보내며 “그래! 이름은 아직 안 정했니?”라며 호응했다. 데이비스는 이탈리아에 교환학생으로 갔던 3학년 때는 호르몬 주사를 맞지 않고도 남자 행세를 했다. 그러다 지난해 가을 유선 절제수술을 받았다. 현재 25세인 데이비스는 스미스 칼리지에서 근무하며 트랜스젠더 경험에 관한 연극을 쓴다. 데이비스의 작품 ‘벌거벗긴 나(The Naked I: Monologues From Beyond the Binary)’는 ‘버자이너 모놀로그(The Vagina Monologues)’의 트랜스젠더 판이다. 성 불일치로 고민하는 청소년의 연령이 갈수록 낮아짐에 따라 의사·심리학자·부모는 당면한 욕구와 장기적 욕구 간에 균형을 잡아줄 방법을 고심한다. 조나 로즈 같은 많은 아동은 2~4세부터 이성의 장난감과 옷에 애착을 보이며 자신의 성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성이 생물학적 성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밝힌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의 다섯 배에 이른다고 에드가도 멘비엘 박사는 말했다(정신과의사인 그는 미 국립아동의료센터에서 성 불일치로 고민하는 아이들을 돕는 프로그램의 책임자다). 아마도 여자아이들은 선머슴 행세를 하며 남자아이들과 어울리기 쉽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아이들 다수는 언젠가는 거기서 벗어나 자신의 생물학적 성을 받아들인다고 멘비엘은 말했다. 더 큰 세상에서 벽에 부닥치거나 사춘기에 분출하는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뒤에도 성 정체성 문제의 징후를 보이는 비율은 약 15%로 줄어든다고 토론토 소재 중독·정신건강 연구소의 켄 주커 성 정체성 과장은 말했다. 과거엔 자녀들에게 성별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행동하도록 지시하라고 부모들에게 조언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커는 지금도 보다 중성적인 행동(예컨대 미식축구 대신 체스 클럽)을 시켜보라고 부모들에게 말한다. 그러나 요즘엔 아동 스스로가 주도하도록 놔둬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아이가 계속 이성이 되고 싶어 하면 호르몬 ‘억제제’를 처방해 사춘기를 늦추는 방법도 있다(억제제의 효과는 일시적이다). 그러나 더 지속적인 처방을 내리는 의사들도 는다. 여성으로 태어난 아이삭 브라운은 16세에 남성호르몬을 복용하기 시작하다가 17세에 유선 절제수술을 받았다. 콜린 빈센테(44)는 아이가 주도권을 쥐는 편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둘째아이 M(아이의 사생활을 보호하려 이니셜을 사용해 달라고 요구했다)은 여자로 태어났다. 그러나 말을 시작하자마자 남자옷을 달라고 고집했다. 인형이 많았지만 ‘사내아이들의 물건’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곧 머리도 빡빡 깎아 달라고 했다. “우리는 아이가 요구하는 대로 따랐다”고 빈센테는 말했다. “하나의 성장단계라고 판단했다.” M이 두 살 반이던 어느 날 부모는 아이를 여자아이로 불렀다. 그러자 M은 이렇게 말했다. “아냐, 나는 남자야. 나를 가리킬 때는 ‘그’라고 해야 해”라고 말했다고 빈센테는 돌이켰다. “우리는 아연실색했다.” 유치원에 들어가서도 자신이 남자라고 우기며 이름까지 바꾸겠다고 했다. 빈센테는 남편 존과 함께 상담치료사를 찾아갔다. 치료사는 지금까지처럼 아이가 하는 대로 따라주라고 조언했다. 이제 9세가 된 M은 사내아이로 생활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M이 생물학적으로 여자란 사실을 모른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아이의 본래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빈센테는 말했다. 그렇게 하면 가정에도 큰 발전이지만 나머지 세상에는 더 큰 진보가 될 듯하다. with Reporting from LORRAINE ALI, MARY CARMICHAEL, SAMANTHA HENIG, RAINA KELLEY, MATTHEW PHILIPS, JULIE SCELFO, KURT SOLLER, KAREN SPRINGEN And LYNN WADDE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