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그 사람을 생전에도 헐뜯는 소리가 영산댁은 듣기 싫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 고인이 된 사람에게 그놈, 그 새끼라는 발언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어무이요, 만주 쪽에서 쳐들어와 가꼬 노략질을 하는 오랑캐들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오랑캐라고 허지, 누가 그 사람이라고 부른대요? 글고 옛날부터는 남해안을 노략질한
일본놈들을 왜구라고 했지, 누가 일본 사람이라고 부른대요?”
“근식아! 사람이 말을 사용할 때, 상스러운 말을 쓰다 보면 그 사람은 상스러운
사람이 된단 말이다. 사람이 심는 대로 거둔다 안 허더냐? 좋은 씨를 심으면 좋은
열매를 얻는담 말이다. 말을 사용할 때 곱고 순한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라야 순하고
착한 사람이 되는 거라니까.”
어머니인 영산댁이 말하는 뜻을 근식이 다 알아차렸다. 그렇지만 도적질하는 도둑에게
도적놈이라 해야 어울리는 말이지 다른 말로는 오히려 말이 어색한 단어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일찍이 우리나라에 노략질을 일삼다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데다 이윽고 우리나라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우리를 욕보인 그들을 왜구(倭寇) 또는 개 같다는 의미로 왜구(倭狗)라든지
왜놈이나 도적놈이라고 불러야 완전체 우리말이 되는 것이라고 근식은 내다봤다.
“그러믄 근식이 너는 그 사람이 죽기 전에 정신을 잃었더냐?”
“내가 앞에 정신을 잃었으니까 내가 모르는 거 아닌가요.”
근식과는 반대로 시작과 끝말을 장영팔이나 그놈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시종일 그 사람이라고 칭하는 어머니가 한 말이 근식은 못내 듣기 싫었다.
“근식아 느그 아부지가 시방 발산 집에 와 있단다. 어저께 낮에 풀려났담 말이다.”
“어무이 그러니까 꿈이 아니그만요. 영팔이 그 새끼한테 들었는 거 같기도 해요,
그러지 않아도 어무이한테 아부지가 풀려났는지 물어보려고 했던 참이라니까요.”
아버지가 유치장에서 풀려나 집에 왔다고 들었는데 꿈이었는지 장영팔에게 들었는지
도무지 가닥이 잡히지 않았었다.
평소에 아버지가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던 꿈을 수없이 꾸었던 터라 여느 때처럼 꾼
꿈인 줄 알고 어머니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저 온 가족이 바라던 것이라 눈감으면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출소하는 꿈이 꾸어진
거로 알았는데 꿈이 아니고 현실이다 하니 두 주먹을 쥐고 근식이 환호했으나 어머니인
영산댁은 무표정이었다. 내일이라도 퇴원하면 만나 볼 수 있다 하니 정말 꿈만 같았다.
조금 전에 냉수를 두 컵이나 마셨지만, 근식은 입천장이 바싹바싹 마르는 바람에 한마디
말하기가 힘들었다. 어머니에게 반박하고 싶었으나 긴말을 하기 싫어 꾹 참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근식은 잠을 자고 일어나는 거로 생각되었다.
눈을 뜨고 잠이 깼을 때는 그가 죽었다고 꿈에서 기쁨과 환희가 넘쳐 환호하다가
눈을 뜬 거로 기억되었다.
자신이 4홉들이 맥주병으로 심기력 타법을 가해 죽인 것이라고는 전혀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그보다는 먼저 술에 취했고 먼저 정신을 잃고 쓰러진 거로 기억되었다.
오로지 앞으로 고꾸라져 죽은 걸 보고 정의의 사자가 그에게 천벌을 내린 것이라며
쓰러져 죽어있는 모습을 쳐다보며 환호하다가 꿈을 깬 것 같았다.
“어무이 자꾸만 목이 마르는구먼요, 글고 머리도 깨지려고 하고요.”
목이 마르고 두통이 오는 현상은 만취자가 술이 깰 때 일어나는 현상인데 근식이 겪고 있다.
지금까지 입에도 대지 않았던 술을 정신을 잃고 기절할 정도로 마셨으며 꼬박 14시간 만에
깨어났으니 당연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봐야 맞다.
영산댁은 당직 간호사에게 근식이 깨어났다고 알렸다. 머리가 심하게 아프다는 것도 말했다.
물 두 컵을 게 눈 감추듯 한 근식에게 간호사가 진통제를 투여하고 다시 수건을 물에 담가 짜고
머리에 얹어주자 근식은 다시 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들 근식이 깊은 잠에 빠져들자 소파에 기대앉은 영산댁도 잠이 쏟아졌다.
다음 날 날이 밝았지만, 모자가 똑같이 잠들어 있었다.
영산댁이 장영팔과 함께 푹신푹신한 침대서 뒹굴며 한창 즐기고 있는데 인기척에 잠이 깼다.
이경안 수사과장이 출근에 앞서 병원에 들렀다가 근식이 새벽에 깨났다는 말을 듣고 확인
목적으로 들어온 것인지 병실로 들어왔다.
“안 여사께서 잠자고 있는디 내가 너무 일찍 왔나 보그만요.”
광주서부경찰서 특실에서 같이 술을 마실 때는 어정쩡한 반말을 했던
이경안이 깍듯한 예의를 표했다.
“아침 일찍부터 웬일입니까요?”
광주경찰서 유치장 특실에서 지낼 때처럼 시숙이라고 할까 아니면 이 과장님이라고
호칭을 할까 하다가 아들 근식이 있음을 인식했다.
호칭은 사용하지 않고 “아침 일찍 웬일이냐?”고 말했다.
그러나 곧바로 자신이 늦잠을 자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다만 어제 오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불똥 튀도록 열애했던 대로 재연하던 중이었던 것이 아쉬웠다.
“출근하다가 들렸고만요.”
“날 샐 무렵에까지 뜬 눈으로 있었는데 시방 시간이 이러케롬 돼 뿌렀그마라.”
“아들이 깨어났다고 허등마요?”
“예, 아까 막 새벽에 2시쯤이구먼요. 눈을 떠 보등만은 그 사람이 죽어 뿌럿는디 어찌
된 거냐고 헝게 자신은 그 사람보단 앞에 쓰러져 뿌러 가꼬 모르겠다 허등마요.”
‘아들놈 알리바이를 성립시키기 위한 모정이다니까.’라고 이경 안이 맘속으로 일축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아들이 깨났다가 시방은 잠을 자는 것이그만요.”
“목이 얼매나 많이 탔는가 찬물을 세 컵이나 묵드란게요. 글고 머리가 쪼개지려고 한다고
헙디다. 근식이가 깨났다고 간호사들한테 알렸등마는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진통제를
놓아주니 다시 잠이 들었고마라.”
장영팔보다 먼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는 소리를 깨어난 아들에게 들었다고 했다.
어제 낮에 술자리서 술을 너무 많이 마신 아들이 장영팔보다 먼저 쓰러졌으니
용의 선상에는 제외해 달라는 정황설명이라고 해야 맞다.
“시숙님요, 어저께 당직 의사한테 들었더니, 쇼크사도 일종의 하품 현상이라고 허등마요.”
쇼크사도 일종의 하품 현상이라고 하더라는 발음을 유독 힘주어 크게 말했다.
그리고 근식이 잠이 든 걸 확인하고 시숙이라는 호칭을 영산댁이 일부러 사용했다.
“우리도 시방 의사의 소견을 확보해 놓고 있고망요.”
“그러믄 경찰로서는 어찌크롬 생각하여요?”
“아들이 깨어나면 진술을 들어보고 현장조사를 해 사건을 일찍 종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걱정은 마씨요, 아들 근식은 다치지 않게 헐 테니까.”
당직 의사는 사망자를 살펴보았으나 외부충격이나 독극물로 인한 사망 흔적은 없었으니
외부인에게 둔기로 충격받고 사망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하품 현상을 예를
들어가며 쇼크사도 전염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설명을 영산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건강하며 활력이 넘쳤던 사람이었지 않은가? 말하자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과 뜨거운 열애를 펼치고 난 후 얼마지 않아 죽음으로 나타난 것은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당직 의사에게 사망 원인을 물어보았었다.
그가 죽은 것은 두고두고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아들 근식이 최후까지 사건 현장에
있었으니 자칫 잘못되면 범인으로 지목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발동했다.
“우리 직원들이 근식 학생이 깨어나면 자백을 받아내겠다는 걸 내가 엄포를 놓았다니까요,
근식이를 아예 수사대상에 올리지 말라고 지시했다니까요.”
“참말로 고맙고만요.”
사건을 잘 마무리 해주고 아들 근식에게 문제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이경안은 아예 수사 대상자목록에 포함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숙요, 어저께 저녁에 당직 의사한테 그이를 보고 싶은데 보여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가족하고 담당 경찰 외에는 보여 줄 수가 없다고 그러더군요?”
“담당 의사가 잘못 알고 허는 거그만요, 사망자 시신은 시방은 가족도 염할 때 외에는
못 보게 되어있고만요. 사건담당 경찰 외에는 맘대로 볼 수 없담 말입니다."
“그 사람을 좀 보고 싶고만요.”
“어저께 오전까지 봤다고 안 했소?”
“시방은 어찌케 생겼는가 한번 봤으면 싶구먼요.”
“보기는 멀라고 보려고 그러요, 볼 필요 없다니까요.”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에 눈도 못 감고 가면 안 된다니까요, 나라도 그 사람 눈을 감겨주고 싶으당게요.”
“그건 걱정하지 마씨요. 어저께 벌써 내가 그 친구 눈을 감겨주었고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