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되어야 할 제사
손 원
제례는 고유한 미풍양속이지만 이를 번거럽게여겨 개선해 보고자 하는 공론이 일고있다. 하지만 조상대대로 내려온 전통이기에 변화도 쉽지 않지만 일부 집안에서는 과감히 변화를 도모하기도 한다. 연간 수회 지내던 것을 모아서 한 두번으로 지내기도 하고 부모제사만 지내고 마는 경우도 있다. 상차림도 간소화 하는 등 시대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를 도모하려면 자손들간의 합의가 있으면 좋지만 이 또한 쉽지가 않아 머뭇거리기도 한다. 다행히 관련단체가 나서서 그 기준을 정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우선 명절 차례상에 대한 변화의 움직임이다.성균관유도회에서는 최근 “현대 유교가 조선시대 유교를 그대로 가지고 온 느낌인데 시대에 맞게 현대화하겠다”고 밝혔다.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내용 중 하나가 차례상의 간소화다. 이후 국민정서를 감안하여 제사에 대해서도 간소화를 추진한다고 했다.
유도회에 따르면 주자가례와 경국대전에는 3품 이상은 고조부모까지 4대를 제사 지내는 제례규정이 있다고 한다. 6품 이상은 3대까지, 7품 이하는 조부모까지, 서민들은 부모만 제사를 지내는 게 기존 관례였다. 그러나 1894년 갑오경장으로 신분제가 철폐되고 제사에 제약이 없어지면서 가장 화려하게 지내는 차례를 따라가게 되면서 오늘날로 이어졌다. “제사가 많은 집안에서 빨리 간소하게 해 달라고 한다”면서 제사상의 간소화 방침도 밝혔다.
70년대 까지만해도 제사는 일가는 물론 이웃집까지 관심사였다. 이웃집에서 제사를 지낸 다음 날이면 아침일찍 제사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떡 등 군것질꺼리는 물론이고 따뜻한 밥과 나물을 주어서 어머니는 별도로 아침밥을 짓을 필요도 없어 우리 형제들은 제삿밥을 먹고 학교에 가기도 했다. 한낮에는 마을 사랑방까지 푸짐한 제사음식이 제공되기도 했다. 이런 제사를 한 달에 한번꼴로 지내는 집안도 있었다. "없는 집 제사 돌아 오듯한다"라는. 말이 있듯 궁핍한데 쓰임새가 계속 생겨 나기에 생겨난 말인 듯 하다.
제사는 세대별로 변화를 거듭하는 듯하다. 앞의 경우는 70년대까지 할아버지 세대의 경우이고 아버지 세대는 조금 달랐다. 삼이웃 간에도 식사까지 배달하지는 않았다. 간단한 제사음식을 나눠 먹었다. 그렇다면 지금세대는 어떠한가? 도시의 경우 이웃간 제사모시는 어떠한 징후도 없다. 다만 늦은 시간 엘리베이트를 타고 오르내리는 앞집 손님이 눈에 띄면 제삿날로 짐작할 정도다. 시골의 경우는 이튿날 경로당에 한 상 차려내기도 한다. 요즘 스스로 제사를 간소화한 집안이 더러있다. 조부모까지가 일반적이지만 어떤 집안은 부모제사로 축소한 경우도 있다. 부모제사도 합쳐 한 날에 지내기도 한다. 먹거리가 넘쳐나는 지금 갖은 음식을 갖추지도 않는다. 자식들 몇몇이서 초저녁에 지내고 같이 저녁을 먹는 정도다. 남는 음식도 거의 없어 나눠먹을 여지가 없고 설사 나눠줘도 탐탁찮게 여겨 제사음식 나누기는 없어 진 듯 하다.
시대상황에 맞게 제사문화가 변화됨을 탓할수는 없다. 하지만 제사가 축소되고 위축되어 감에 따라 다소 걱정이 앞선다. 누군가는 말했다. 제례문화도 산 사람 위주로 바뀌어 자손들이 선호하면 그만이라고도 한다. 이런 사고는 편의주의적이며 얕은 생각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조상을 추억하면서 그 뿌리를 다져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리고 제삿날만큼이라도 자손들이 자리를 같이하여 소통하고 희노애락을 나누는 소중한 자리가 되면 좋겠다. 미풍양속이라며 오랜세월 전승되어 온 제사문화가 지금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조상대대로 이어 온 제사문화가 점점 위축되고 사라질 위기에 있다니 씁쓸하다.
10년 후쯤 되면 제례문화의 전승 여부가 걱정된다. 조부모 제사는 남아 있을지 의문이고, 부모제사도 안지내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아예 제사문화가 사라질 지도 모를 일이다. 이 땅에 유교문화가 들어오면서 제사풍습이 정착되었다고 본다면 적어도 수백년이 전승되어 온 미풍양속이다. 적어도 우리 세대의 대다수는 그렇게 여기고 계승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제사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일리있는 말이지만 분별력 있는 합리적인 주장이면 좋겠다. 단순히 자손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 싫어서 제사를 축소하거나 없애는 것은 깊이 있게 생각 해 봐야 한다. 그러한 결정은 독단적이어도 안되고 성급해서는 안 된다.아직은 과도기이니까 우선은 나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내가 제사지니기 싫다고해서 자식이나 며느리도 같은 생각일까? 당대에 제사를 부모까지 축소한다면 사촌들 얼굴 볼일이 줄어들 것이고, 부모제사도 한번으로 축소하든지 지내 않는다면 자식들, 손주들간에도 만날일이 그만큼 줄어들 뿐이다. 제사는 친인척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미풍양속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조상을 위한 가족행사가 줄어들고 있다.
음력 10월에 지내는 묘사는 일가족 수 십 명이 모이기도 했다. 명절차례는 적어도 사촌까지 함께 했다. 제사는 직계가족의 중요한 날로 사촌까지는 모였다. 산소 벌초를 위해 더위에 같이 땀을 흘렸다. 이제 이러한 현상은 과거의 유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부모제사만 지내고 납골당 문화 정착으로 벌초할 일도 줄어들거나 필요없게 되기도 한다. 이것이 시대적 변화이지만 단순하게 받아들여서도 안된다. 유도회의 권고사항쯤은 존중함이 타당할 것이다. 시대적 변화 중에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도 문제가 되기도 한다. 페스트푸드가 몸에 그렇게 좋지가 않듯이 느긋함과 알찬 생활이 큰 보람을 갖기도 한다.
자식들 손주를 모아 놓고 꼰대가 되어보자. 꼰대의 말에는 전통의 아름다움과 지혜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곤궁한 보릿고개시절 아이들에게는 이웃의 제삿날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잘 하면 그날은 삶은 문어 다리 한 조각을 얻어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가의 제삿날에는 나를 귀여워 해 줄 할머니, 아저씨들도 많이 모이는 잔치 분위기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2022.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