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마지막 단풍여행이라는 주제로 여행을 떠납니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지만 새벽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봅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습니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얼마 안가서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이번 여행은 비속에서 가을여행이 될듯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고 바람 불면 바람불어서 좋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기대되기도 합니다.
처음 도착한 나주 수목원에서 메타세콰이어길을 걷습니다. 나는 입구에서 바라다보다가 옆길로 들어섰습니다. 산수유 열매에 맺혀있는 물방울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곧 나주 불회사로 향합니다. 불회사로 들어가는 길. 비가 오는 그 촉촉함 속에서 아련함까지도 느껴집니다.
절 입구에는 숙종 45년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정을 금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문신상인 석장승 한쌍이 떡하니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불회사로 들어섰습니다. 단풍이 좋다는 이 절엔 이미 단풍은 빛을 잃어서,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화려함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빗속에 바라다본 불회사의 대웅전은 명부전, 삼성각, 나한전, 요사채가 동백숲을 뒤에 두르고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요사체 앞의 오래된 단풍나무는 거이 잎을 떨구고 비바람속에 흔들립니다.
불회사를 뒤로 하고 다시 데크길로 걷습니다. 비가 오는 속에 마지막 남은 단풍나무가 빗속에서 우리를 배웅합니다.
화순 운주사 천불천탑을 보러 갑니다.
운주사는 천불산 좌우 산 협곡에 기록에 의하면 일천씩의 석불 석탑이 있었다고 합니다만, 지금은 석탑 17기, 석불 80여기 만 남아 있습니다.
운주사 서쪽 산능선에는 운주사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두분의 와불님이 누워있는데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석불 2구로, 마치 부부처럼 한쌍이며 크기도 조화롭고 다정한 모습입니다.
자연 그대로의 너럭바위를 다듬어 조성하였으며 갈라진 바위 틈을 자연스럽게 활용하여 두 부처의 얼굴을 새겼습니다. 와불의 크기는 각각 12.7m와 10.3m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우고 이 와불을 마지막으로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새벽닭이 울어 중단했다고 합니다. 이 석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운주사는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5년 전 큰 수술을 받고 집에 칩거하던 나를 동생 내외는 대전의 사촌 동생 집에 가자고 하였습니다. 며칠 머물면서 그곳에서 마곡사도 가고 불갑사도 가고 운주사도 가자고 부추겼습니다.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 나섰습니다.
운주사에서 동생은 유명한 와불이 있지만 올라가는 계단이 험하니, 언니는 갈 수가 없다고 하며, 이번은 포기하자고 했습니다. 탑을 보고 대웅전 보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했습니다.
그런 운주사입니다. 나는 이번엔 아무리 험하더라도 다른 것은 모두 포기하고 와불은 꼭 보리라 다짐했습니다.
운주사에 도착하여 기파랑은 안내판에서 돌아볼 곳을 설명합니다. 난 와불 쪽 만 가겠다고 하고 일행과는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몇분이 함께 와불쪽으로 향했습니다.
맨 뒤에 서서 천천히 올라가는 난 부처님에게 기도하는지, 하느님께 기도하는지도 모를 기도를 하며 오릅니다. 그저 감사하다고, 얼마나 험할지 모르지만 끝까지 가서 부처님의 얼굴을 한번 보게 해달라고,. 그러면서 인도의 아잔타, 엘로라 석굴에서 보았던 와불도 떠올렸습니다.
부처님은 부부인양 나란히 누워서 나를 보는 것 같습니다. 와불 주위를 한 바퀴 돌며 또 한번 감사하다고 기도했습니다.
운주사에서 돌아 나오는 길 혼자 뒤 걸어오는 날, 큰 소리로 부르는 까치발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빨리 와서 여기 찍으라고. 여기 너무 예쁘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 정말 참 예쁩니다. 세 사람이 이야기를 하며 걷는 모습이 빗속에서 녹아들었습니다. 내 동영상의 대문사진으로 썼습니다.
장흥 가지산 보림사
먼저 보림사에 들어서기 전 대웅전 뒤편 수령 300년이 넘은 비자나무 500여 그루가 군락을 아루고 있고, 그 밑으로 야생 차밭이 있는 비자림의 산책로를 따라 산책하며 비자나무에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을까 기대도 해 보았지만, 가는 비로 기대가 실망이었습니다. 맑은 공기를 크게 들어 마시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곧 보림사로 들어섰습니다.
가지산문의 중심도량인 보림사는 한국전쟁으로 일주문과 천왕문을 제외한 모든 건물을 잃었는데 ‘선종대가람’ 이름에 걸맞은 명품 석조물들은 답사객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발길을 머물게 합니다.
앞마당에는 삼층석탑 두기가 동서로 마주 서있고 그 사이에 석등이 있습니다. 보림사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남북으로 세워진 삼층석탑은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과 닮았고, 870년(경문왕 10)에 만든 전형적인 통일신라 시대 석탑으로, 기단석부터 상륜부까지 원형이 고스란히 남은 드문 사례라합니다.
강진만
벌써 어둑해지려는데 버스는 속도를 내고 곧 강진만에 도착합니다. 거룩거룩하는 고니의 울음이 들립니다. 마음이 바쁩니다. 고니가 날아왔구나. 그러나 곧 어둠이 밀려들면서 벌써 초승달이 떠 있습니다. 폰을 확대하며 난간에 기대서서 흔들리는 고니 몇 마리를 담아 그것으로 위안삼았습니다.
주작산 휴양림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 잠시 시간이 나서 아침 산책을 하였습니다. 해가 나서 맑고 청명한 공기가 나의 폐 속에 한 가득입니다.
해남윤 씨 종갓집 녹우당으로 향합니다.
녹우당(綠雨堂)은 해남 연동마을의 해남 윤씨 종택을 일컫는데, 녹우는 녹음이 우거진 때 비가 내린다는 뜻과 동시에 선비의 변치 않는 절개와 기상이라는 의미도 담겨져 있습니다.
비자림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마치 초록 비가 내리는 소리와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설도 있습니다.
이곳에 최초 터를 잡은 윤효정이 아들의 과거 합격을 기념하여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500년이 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수백 명의 녹우당 사람들이 태어났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을 나무입니다. 늦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융단과 같이 쌓아서 고택을 아름답게 장식하곤 합니다.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잘 이룬 터에서 녹우당은 조선 500년의 역사를 이어온 것입니다.
세계유산 두륜산 대흥사
대흥사로 들어가는 두륜산 숲길이 시작되자마자 마법처럼 숨이 탁트였습니다. 해도 반짝 납니다. 울창한 구림구곡의 숲길을 지나며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나무 사이로 바람이 오가는 소리가 귀를 씼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꽉 차는 시간입니다.
해남 대흥사는 두륜산의 빼어난 배경으로 자리하여
서산대사가 ‘만년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이라 칭하며 그의 의발을 보관한 도량입니다.
해탈문에서 두륜산을 바라봅니다.
오른쪽 두륜봉은 부처님 머리 형상이고 구름에 가린 가련봉과 고계봉은 살짝 주먹 쥔 한 손에 다른 손 검지를 넣은 지권인을 닮았다고 합니다. 아무런 예비지식이 없는 나의 눈에도 부처님이 누워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는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나는 그냥 대흥사 주위를 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갑자기 비가 옵니다. 준비해 간 우비를 입고 우산을 받쳐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일행이 처마밑에 옹기종기 모여 비를 피하고 있습니다.
비가 차차 잦아들자, 그들도 계획을 바꾸어 대흥사만 둘러보기로 합니다.
보물 320호인 대흥사 ‘삼층석탑’앞에 때를 모르고 연산홍이 예쁘게 피어있었습니다
월출산 무위(無爲)사
비오는 가운데 무위사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점점 비바람이 세어져서 잠시 극락보전 앞에서 비를 피했습니다.
무위사는 화장기 없는 자연스러운 절집이며, 극락보전은 소박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녔습니다.
수차례 전쟁과 화마를 겪고도 극락보전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건축물 자체가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어 있고 그안에 있는 아미타여래삼존벽화도 국보 제 313호로 백의관음도는 보물 제131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진 극락보전의 단아하면서도 소박하며, 특히 극락보전 측면의 기둥과 보가 만나 이루는 공간 분할의 절제된 아름다움도 놓쳐서는 안될 감상 포인트라 합니다.
극락보전 위쪽으로 작년의 불사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습니다.
백운동 별서정원
백운동이란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되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약사암과 백운암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집니다.
조선중기 처사 이담로(聃老, 1627~1701)가 들어와 계곡 옆 바위에 ‘백운동(白雲洞)’이라 새기고 조영(造營)한 원림으로,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배합된 배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을 이루며 우리 전통 원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별서입니다.
천혜의 자연 속에 깃든 그림같은 풍경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유배 중이던 1812년 가을, 초의선사, 윤동 등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 등반 후 당시 백운동 주인 이덕휘의 초대로 백운동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이곳 풍광에 반해 초의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12가지 풍경을 시로 지어
시화첩인 <백운첩>을 남겼으며, 이를 근거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다산이 백운동 경관을 사랑하여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백운동 원림은 사라질 뻔했습니다.
나도 이번을 계기로 백운동 12경을 하나하나 찾아보았습니다.
제11경인 정선대(停仙臺)는 '신선이 머무르는 정자'라는 뜻이며
이곳에 앉아 시 한수를 읆으면 정말 신선이 될 듯합니다. 정선대에서는 월출산 구정봉의 서남쪽 봉우리를 볼수 있는데 바로 이봉우리의 이름이 제1경인 '옥판봉'입니다.
나는 그곳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고 싶었습니다. 그윽한 차향기를 맡으며 아름다운 길벗님들과 함께 옥판봉을 바라다보면 저절로 시 한 수가 나올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따뜻한 차 대신 비가 와서 더욱 운치가 있었습니다.
월남사지
월남사터에 모든 것은 소실되고 오직 삼층석탑만 덩그런히 남아있던 곳입니다.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내 머릿속엔 삼층석탑이 월출산과 기가 막히게 어울려져서 하나의 그림으로 각인되었던 곳입니다. 구름 속의 월출산을 배경으로 삼층석탑이 고고하게 서 있을 모습을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삼층석탑 뒤에 새로 건물이 들어서 있습니다.
복원된 건물 모습이 탑의 고고했던 모습을 훼손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하루를 복기하며 무엇이 옳은 것인지 생각하게 했습니다.
무위사에서 월남사지에서 느꼈던 것입니다.
오늘 보고 온 모습은 작년의 모습은 아닙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마모되고 파괴되고, 하나 남아, 견디어 오던 모습에서 하나씩 복원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무엇이 옳은것일까?
내 머릿속에 각인된 모습은 오랜 시간 견디면서 다행히 하나 남은, 무위사 극락보전의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과 월출산과 기가막히게 조화를 이루었던 월남사지의 삼층석탑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대로 복원하지 않고 그냥 있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복원하는 것이 좋은가?
글쎄...
이번 마지막 단풍 여행은 비오는 날의 가을 산책이었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마치 수채화 속에 내가 있는 듯
촉촉하며 아련하고 은은한 가운데 보낸 이틀이었습니다.
동영상 첨부합니다.
https://youtu.be/7n2a3IKgnb4
첫댓글 한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작품을 쓰셨네요. 따로 또 같이라는 게 이런 건가 봅니다. 함께 했어도 놓쳤던 많은 것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행을 깊숙이 들여다 보시는 시야님은 이제는 여행의 고수가 되셨습니다.
우중 가을산책을 보며 '비오는 날의 수채화' 한 곡을 잘 음미했습니다. 오랫동안 숙고해서 멋진 후기의 정석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음 여행길에서 건강히 만나뵙기를 소망합니다 ~^^♡
여행은 날씨가 중요하지요.
비 내리는 날씨의 차분함을 즐기는 분도 있지만 .
저는 맑고 쾌청한 가을 날씨를 좋아합니다
한적한 늦가을의 분위기가 비가 내려도 좋군요^^
남쪽의 유명한 답사지로 찾아간 일정은 언제 가도 감동을 받지요^^
진정한 여행자의 모습으로 여행을 즐기는 시야님의 감성이
느껴지는 후기... 좋습니다!!
수고 하셨어요!!
이젠
아..
시야님 하면서
반가히 바라볼수 있음이
기쁩니다
"흩날리는 부드러운 가을비 속에
꿈꾸는 눈 하늘을 관조하는
와불
구전에 따르면, 애초에 세 분이었으나 한 분 시위불이
홀연 절벽 쪽으로 일어나 가셨다
아직도 등을 땅에 대고 누운 두 분 부처는
일어날 날을 기다리신다
그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거란다."
어느해 가을날 이 시를 읽고 갔으나 한분이 일어나 절벽쪽으로 가셨다는 이유를 모르겠고
운주사와불을 그저 무심히 바라보고 돌아왔지요
어느 새 시야님 후기 애독자가 되었어요
비오는날의 수채화처럼
화려한 것 같으면서도 수수하고
단아함과 청아함이
고스란히 베어나는 풍경들에 감탄합니다.
남도의 길에서 절집들의 풍경과
남도의 곳곳 풍경들이 가을색과 물들어져
참으로 멋짐을 보여주며
비가 내린 땅바닥의 물길이
가련함으로 아련함으로 다가옵니다.
빨갛게 물든 씨앗도
때를 모르고 피어난 영산홍도
가보지 않고는 말하지못할 마음들이네요.
참으로 차분하게 즐감했답니다.
감사드려요~^^
대흥사 앞에 유선여관(?) 여태 있지요?
시야님
알미님 답글처럼
시야님 ...
감사 합니다
지세히 써내려가신 여행길
저도 함께 한것 같아 행복해집니다
가을비 촉촉히 내려 조금은 힘드신 여행이셨지요
하지만
가을비 낭만속의 여행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언제나
우리들에게 이렇게 하는것이 여행이라고
가르쳐 주시는듯한 모습
아름답습니다
지금처럼 아름답고 건강하신 모습으로
함께 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 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여행길에 몇번 함께하게되어 이제야 닉네임이 각인되었답니다
제가 좀늦어요ㅎㅎ
같이 여행에 동참한것같은 느낌으로 재밌게 읽고 사진감상도
잘했습니다. 감사해요
다음여행길엔 무슨모자를
쓰고오실까~~궁금♡ㅎㅎ
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