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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정재현이 내게 쓸데없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쇼핑백을 건넨다.
“뭐야?”
“..... 일단 열어봐.”
의심쩍은 표정으로 쇼핑백을 여니 그 안에는 상상치도 못할 선물이 들어있다. 이게 뭐야…? 내가 묻자 정재현도 초면이라는 듯 쇼핑백 안을 들여다본다. 그러더니 입을 떡 벌린다. 소고기?!??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시 쇼핑백을 돌려줬다. 안 믿어요. 안 사요.
아 그런 거 아니라고!! 정재현이 단호한 내 행동에 당황한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누가 강의 시작 전에 한우를 선물로 줘!!! 이 씹……. 정재현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형. 어디야. 뭐어? 백화점? 거긴 또 왜 갔……. 아 됐다.
“야 너 그거 갖든지 버리든지 해.”
“너 나 좋아하냐??”
“그거 내가 주는 거 아니거든?”
“그럼 누가 주는 건데. 나 사채 쓸 마음도 없고 사이비 믿을 생각도 없고 장기도 기증할 생각 없어!”
나도 네 돈 필요 없고 사이비 아니고 장기도 안 필요해. 그러니까 그냥 받아. 아 못 받아!! 이걸 어떡하라고! 어떡하긴 뭘 어떡해. 친구 불러서 같이 먹어! 이씨…. 누가 주는 거냐니까? 그건 말 못 해. 왜? 그거 말하면 나 죽는다고!! 죽긴 뭘 죽어! 누가 너 괴롭혀? 막 협박해? 내가 대신 신고해줘?
아 됐어! 앉아서 수업 준비나 해!
Day 2.
정재현과 강의가 겹치는 날, 또 정재현이 내게 쇼핑백을 건넸다. 이번에는 받지 않았다. 누가 주는 건지 말 안 하면 나도 안 받겠다고. 너 뒤지든지 말든지 알 바 아니라고. 그랬더니 정재현이 성질내면서 억지로 내용물을 꺼내보게 했다.
“헐. 야 이거 비싼 거 아니야?”
“.....아니야. 얼마 안 해.”
“얼마 안 하긴! 이거 택도 안 뗀 거 봐. 이…. 이백사십??? 이백 사십만 원???”
그랬더니 그 안에 이백사십만 원짜리 가방이 들어있는 게 아닌가. 고기는 어찌어찌해서 먹긴 했지만 이건 진짜 아니다. 누군지는 몰라도 내게 이런 일방적인 선물을 보내는 건 분명 불순한 목적이 있는 행위일 것이다. 나는 이백사십만 원짜리 가방을 다시 소중히 쇼핑백 안에 담았다.
나 이거 못 받아. 안 받는 거 아니고 못 받는 거라 전해. 뭐어? 안돼. 나 형한테 죽는다고. 형? 이거 나한테 주라고 시킨 사람이 너 형이야? 너 외동이잖아. 정재현이 머리를 벅벅 긁는다. 아 몰라! 그냥 받아. 그 형 돈이 넘쳐나다 못해 썩어서 그래. 아니 아무리 돈이 썩어난다 해도 이런 걸 선물로…….
정재현은 절대 돌려받지 않겠다는 심상으로 팔짱을 굳게 낀다. 그렇담 어쩔 수 없지. 나는 쇼핑백을 정재현의 앞으로 밀어놓고 후다닥 튀었다. 야!! 김여주! 강의는 듣고 가야지! 뭐래. 강의 다 들으면 가지고 가는지 아닌지 감시할 거면서.
정재현의 끝없는 외침을 무시했다. 예쁘긴 더럽게 예뻤지만, 저런 걸 쉽게 받았다가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진짜 장기매매, 사이비 뭐 이런 거 아니야? 사람 포섭하려고 막.
Day. 3
또 정재현과 강의가 겹쳤다. 이번에는 시작할 때 아무것도 없는 척 가만히 있다가 강의가 끝나자마자 나를 붙잡고 자신의 가방에서 작은 쇼핑백 하나를 쓱 꺼낸다. 아악! 또 뭐야! 내가 손대지 않을 걸 예측했다는 듯 본인이 친히 쇼핑백 안에서 물건을 꺼내어 언박싱한다.
우와. 정말 예쁜 시계 아니니? 여주 너 요즘 시계 망가졌다고 했잖아. 정말 널 위한 찰떡 선물이다. 얘. 그러더니 로봇같이 입력된 말을 쏟아낸다.
“솔직하게 말해. 너 나 좋아하는데 선물 주기 부끄러워서 지금 이러는 거지.”
“미쳤나 진짜. 내가 널 왜 좋아하냐고!”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걸 줄 이유가 없잖아앜!!!”
“내가 주는 거 아니라고오!!!!!!!!”
서로를 째려봤다. 그랬더니 정재현이 홱 시계를 케이스에서 빼내 내 손목에 채우는 거 아닌가. 야! 뭐하냐고! 빼려 손목을 마구잡이로 움직였지만 이미 채워진 후였다. 이씨……. 누가 주는지도 모르는 선물 받기 불편하다고.
정재현은 그냥 무료 이벤트에 당첨됐다고 생각하란다. 자기도 이런 짓 진짜 하기 싫고 귀찮은데 돈 줘서 하는 거라고. 너한테 돈을 준다고? 나한테 선물 전달해달라고? 정재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접는다. 한번 해줄 때마다 4만 원. 헤엑. 미쳤다 미쳤어.
그러니까 예쁘게 잘 차고 다녀라~ 그 낡은 골동품 시계는 버리고~ 내 왼손에 채워진 낡은 시계를 가리킨다. 이 씹새끼야 이거 우리 엄마가 선물 해준거야. 그러니 알아서 무릎을 꿇는다. 야야. 일어나. 깔끔하게 한대만 맞아라.
Day 4.
정재현이 막무가내로 채운 시계의 가격이 삼백만 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듣게 된 후로 시계를 차지 않았다. 대신에 집에 고이 모셔두었다. 내 몸값보다 비싼 시계. 한숨만 나온다. 오늘 또 정재현을 만나면 기상천외한 걸 주겠지.
강의실에 도착하자 정재현이 날 보며 손을 흔든다. 일부러 다른 자리에 앉자 친히 자신의 짐을 챙겨 내 자리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야. 재현아. 너 그 시계 삼백만 원 넘는 거 알고 있었어? 내가 묻자 정재현이 대답한다. 엉. 그럼 그 형이라는 사람이 내게 그 시계를 준다 할 때 말릴 생각은 없었어? 미쳤다고 생각했다던가. 정재현은 또 대답한다. 엉. 이런……. 금수저 새끼. 너는 삼백만 원이 그냥 옆집 개 이름이지.
정재현은 자신의 팔에 채워진 시계를 내게 보여준다. 이건 팔백만 원이야. 헛웃음이 나왔다. 너 진짜 재수도 없고 싸가지도 없다. 엉. 덕담 고마워. 오래 살게~ 도저히 말이 통하질 않는다.
“그래서 오늘은 뭔데.”
“오늘? 내가 미리 봤는데 오늘은 네가 좋아할 만한 거더라.”
“뭔들…….”
정재현은 품속에 잘 간직하고 있던 쇼핑백을 내게 건넨다. 이제 더는 두려울 게 없었다. 어쩌면 해탈한 걸지도 모른다. 쇼핑백 속 들어있는 작은 상자를 열었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야.”
“엉? 왜? 막 너무 감동받았어??”
“나 지난주에 탈덕했어.”
“뭐???”
“지난주에 탈덕해서 앨범, 포스터, 포카 다 불태워버렸다고.”
내 (구)오빠인 도시 오빠의 포카와 앨범이 잔뜩 들어있는 게 아닌가. 너 나 놀리냐?? 진짜 죽고 싶어? 내가 정재현 멱살을 잡자 당황한 정재현이 속사포로 쏟아낸다. 뭔소리야! 너 도시랑 평생 갈 거라고 막 그랬잖아아!! 나한테 콘서트 티켓팅도 부탁하고, 앨범도 대신 받아달라하고!!! 너 도시 공방 뛴다고 엠티 안 간거 우리과 애들 다 알어!!
그래 씨발. 그래서 더 아픈 과거라고. 정재현의 멱살을 더 꽉 잡았다. 넌 인터넷도 안 하냐? 실검도 안 봐? 아악! 야! 나 숨!! 숨 막혀! 도시 오빠 지난주에 열애설 터졌다고!!! 너무 흥분한 탓에 정재현을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씨발! 넌 알잖아!! 내가 얼마나 유사에 미쳤었는지!
한국대학교 문창과 보다 더한 상상력을 가진 나는 도시 오빠와의 결혼계획까지 짜놓은 여자였다. 그러나 도시 오빠가 인기 걸그룹 엔젤과 열애설이 터졌을 때, 나는 한강에서 깡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도시 오빠 유사 쓰던 계정을 폭파시켰다. 집에 있는 모든 굿즈를 태웠다. 오빠 포카 시세 진짜 너무 비싸서 태울 때 눈물도 조금 났다. 지켜보던 엄마가 유난이라고 했다. 뭔 연애 한다고 그렇게 청승맞게 구냐. 도시인지 도사인지도 사람이잖어!! 아 엄마! 도사 아니라고!!! 도시라고!!!
태운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도시 오빠는 팬기만을 아주 맛있게도 해 드셨다. 럽스타를 아주그냥 작년부터 하셨더라? 저혈압이 저절로 치료됐다. 오빠가 꼈다고 해서 손민수 한 까르띠에 반지는 오빠와 여친의 커플링이었다. 나는 졸지에 커플링을 따라 산 여자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모든 걸 태웠다. 한 여자의 복수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지. 따위의 말을 하기에 그 오빠는 내 이름도 몰랐기 때문이다.
나랑은 다르게 포카를 전부 판 슬기는 내게 소고기를 사줬다. 포카 팔아서 백만 원 벌었다고 한다. 어쨌든 내 인생을 바쳐 좋아했던 (그래 봤자 3년 좋아했으면서) 오빠를 떠나보낸 이후 도시의 모든 소식을 차단했다.
그러고 좀 잊으려고 했더니 이렇게 나타나다니. 이를 갈았다. 대체 누구야. 대체 누가 내게 이런 잔인한 짓을 하냐고!!! 상자 속에 들어있던 도시 오빠의 포카를 한 장 들어 북 찢었다. 순식간에 10만 원이 공중분해 됐다. 한 장 더 들어 찢었다. 아악. 이건 전 세계에 200개밖에 물량 안 풀린 거라 100만 원 넘는 건데. 실물로 처음 봤다. 그래. 이건 차마 찢을 수 없다. 조심히 내려놓고 그 아래 시세 2.0짜리 포카를 북 찢었다.
“김여주……. 화 많이 났냐?”
“말 한 번만 더 걸면 찢어지는 건 도시 오빠 포카가 아니라 네 모가지일 거야.”
정재현이 입을 다문다. 그리고 난 그 자리에서 스페셜 포카를 제외한 모든 포카를 다 찢었다.
Day. 5
오늘은 기필코 내게 선물을 주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야겠다 싶었다. 정재현이 또 어떤 물건을 들고 올지 두려웠다. 그래서 일부러 정재현이 학교에 도착하기 전에 학교에 갔다. 그러곤 정재현이 수업 시작하기 전에 꼭 들리는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었다. 선글라스와 잡지로 얼굴을 가린 채로.
30분 지났나 정재현이 카페로 들어왔다. 그러곤 아아메 시킨다. 마시고 가려는지 자리에 앉는다. 다행히 날 등지고 앉는다. 그러곤 누구랑 짧게 전화한다. 잠시 후 한 남자가 들어온다. 모자를 써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손에 들고 있는 쇼핑백으로 저 남자가 내가 찾는 사람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정재현이 남자에게 무어라 말한다. 귀 쫑긋 세우고 들었다.
“형. 이제 그만하자. 나 김여주 그렇게 화내는 거 처음 봤어.”
“그럼 어떡해에…….”
“번호라도 따라고!!! 내가 얼마나 더 도와줘야 해!!! 이렇게 백날천날 해봤자 김여주 눈치 없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정재현을 노려봤다. 내가 눈치가 없어서 뭐 어쩌고 어째?
“근데 재현아. 너 내가 준 4만 원 다 받아놓고…….”
“......”
“진짜 나빴어……. 나 이런 거 처음인 거 알잖아아…….”
그러곤 울먹인다. 아니 저 남자 누구야? 어이가 없다. 남자는 진짜 서러웠는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고 끅끅대며 운다. 이젠 익숙한지 미동조차 없는 정재현은 덤덤하게 말한다. 술자리라도 만들어줘? 아니……. 나 술 잘 못 마시는 거 알잖아아……. 아 형! 누가 술 마시랬냐고!! 그냥 토킹! 어? 토킹 하는 자리인 거지! 힝. 화내지는 마아.
형 여주랑 잘되고 싶은 건 맞아? 남자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김여주는 이런 남자 싫어해. 걘 도시같이 상남자 스타일 좋아해. 차갑고, 날카롭고, 예민한.
“나두 알어!!!! 그래서 그렇게 행동하고 있잖아아!!!”
“맞다. 그래서 맨날 연기하고 있었지? 까먹을 뻔.”
“나 진짜 서운하다아…….”
알겠어. 형. 울지마. 내가 도와준다니까? 우리 과에서 내가 김여주랑 제일 친해. 정재현이 개소리한다. 난 슬기랑 제일 친한데. 암튼 정재현은 남자에게 무어라 지시한다. 너무 작게 속삭여서 듣지 못했다. 정재현의 말을 듣고 무언가 결심한 듯한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쥔다. 그러곤 울어서 답답했는지 쓰고 있던 모자를 벗는다.
어……?
잠깐만.
“재현아 형이 맛있는 거 사줄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됐어. 걍 형이 좋아하는 초밥집으로 가.”
“웅.”
선글라스를 벗고 눈을 비볐다. 시력 1.5 2.0인 내 눈이 잘못됐나. 눈 비벼도 달라지는 건 없다.
“김……. 김……. 김…….”
너무 놀란 나머지 벌떡 일어나서 소리쳐버렸다.
“김도영 선배!???”
정재현과 김도영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김여주!??? 정재현이 놀란 나머지 김도영에게 모자를 씌운다. 거꾸로 씌워진 모자는 제 기능을 상실한다. 헉. 정재현이 벌떡 일어난다. 야. 야. 어디까지 들었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정재현이 한숨 쉰다. 김도영은 손톱 깨물며 눈치 본다.
“그럼 설마…. 지금까지 나한테 선물 준 게 김도영 선배님이야?”
“.......엉.”
“미쳤다. 이거 몰래카메라니? 오늘이 만우절이었던가?”
듣고 있던 김도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로 다가온다. 갑작스러운 대면이었다. 이 선배랑 말 한번 해본 적 없지만, 유명하단 건 도시 오빠에 미쳐있던 나와 슬기도 알았다. 그리고 난 김도영이 날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정재현과 함께 다니며 오다가다 마주쳤던 김도영은 절대 웃는 법이 없었다. 또한, 얼른 집에 가고 싶다는 귀찮은 표정, 시간 아깝다는 몸짓. 술자리에서도 바짝 찡그린 미간.
“그… 저 여주야, 많이 놀랐……. 놀랐지?”
그 모습들과는 정반대인 김도영이 손 덜덜 떨며 말 더듬는다. 정재현이 옆에서 입술을 꾹 깨문다.
“선배님.”
“어. 어!??”
“저 좋아하세요?”
김도영이 어……. 어……. 말 더듬으며 한참을 멀뚱히 서 있다가 에라 모르겠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쇼핑백 내 손에 쥐여주고 튄다. 형! 어디가!!! 정재현이 소리쳐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는 당황한 것보다 도망치는 순간에도 내게 쥐여주고 간 쇼핑백 속 뭐가 들었나가 그렇게 궁금했다.
쇼핑백 속을 봤다. 허. 헛웃음이 나왔다. 작은 꽃다발과 시집 두 권이 들어있다. 정재현한테 어지간히 구박을 받았구나 싶었다. 정재현이 내게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꽃다발만 챙겨 들고 카페 밖으로 나갔다. 야. 나 간다. 어딜!??? 김도영 선배 찾으러! 뭐어어어!??? 김도영이 있을 법한 곳으로 갔다. 애들이 항상 말하던 그가 있는 곳. 주차장.
김도영은 주차장 자기 차 옆에 주저앉아 있었다. 설마. 울어? 저 사람 지금 우는거야?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흑흑 거리는 게 내가 잘못한 것만 같다. 주차장에 사람이 없어 다행이다. 저 선배 이미지 메이킹 해놓은 거 다 망할 뻔했어.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훌쩍이는 소리가 꽤나 애처롭게 들린다. 간간이 자책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김도영 바보……. 이 바보야……. 으헝헝……. 그 모습에 픽 웃음이 났다. 내가 김도영에게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낀 김도영이 딸꾹질한다. 헉. 여. 여주. 히끅. 여주야아?
“선배님. 저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요?”
달래줘야겠다는 마음보다 궁금증이 앞섰다. 내 순수한 물음에 김도영이 가뜩이나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뜬다. 내, 내가. 너를!?
“네. 저번 종강 파티 때 지에스 앞에서 마주쳤던 거 기억해요?”
김도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제가 넘어질 뻔했는데 완전 귀찮고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면서! 손도 닿기 싫다는 듯이 완전 옹졸하게 손 끝으로 저 잡아주셨잖아요!”
옹……. 옹졸. 김도영이 마른세수한다. 그러곤 차분히 말한다.
“귀찮고 한심하단 눈빛은……. 오해야.”
“오해요?”
“네가 도시 같은 나쁜 남자 스타일을 좋아한다 들었어. 그래서 그렇게 행동했을 뿐, 뿐이고.”
뭐어어어?? 정재현은 대체 김도영한테 무슨 말을 한 거야. 김도영이 말 더듬는 걸 보니 차분한 척하나 보다. 김도영의 아랫입술이 덜덜 떨리는 걸 보고 알 수 있었다. 이 사람 지금 엄청 긴장하고 있구나.
“그리고……. 옹졸하게 널 잡아줬다는 것도 오해야.”
“그건 또 뭔데요.”
“혹시라도 나랑 맞닿아서 기분 나쁠 수도 있으니까아…. 최대한 안 닿으려구…….”
그런 배려까지 챙기는 사람 처음 봤다. 웃음이 실실 나왔다. 말끝을 늘리는 습관이 있나. 말할 때마다 말끝을 늘리는 게 이젠 귀여워 보인다.
정재현은 김도영에게 완벽하게 틀린 정보를 알려줬다. 내가 상남자 스타일의 나쁜 남자를 좋아해? 도시 오빠 같은? 그 새끼는 도시 오빠를 제대로 본 적이 없나 보다. 내가 도시 오빠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나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태도인데.
순둥하고 착하며, 아기 같고 배려가 넘치고 애교가 많고 눈물이 많은 도시. 난 차갑게 생겨서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도시를 좋아했다. 특히 나와 슬기는 도시의 우는 모습을 사랑했었는데, 계속해서 김도영의 우는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 한쪽이 찌르르하다. 지켜주고 싶어진다. 괜히 골려주고 싶어진다.
“그럼 왜 고백 안 했어요? 부끄러워서?”
“.......아니.”
“그럼요?”
“네가 도시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서. 차마 고백하지 못했어……. 당연히 내가 도시에 밀릴 거라 생각했으니까안.”
“내가 그 정도로 좋아했나.”
음. 그런가보다. 그 정도로 좋아했나 보다. 일단 도시 공방 뛴다고 엠티 안간 게 떠오른다. 미친 새끼였네. 김도영의 앞에 주구려 앉았다. 선배. 으응? 내가 좋아요? 고개를 또 끄덕끄덕.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충돌에 휩싸였다.
그럼 선배 돈 많아요? 또 끄덕. 나 선배가 준 선물 다 부담스러워서 안 썼는데. 부…. 부담스러웠구나. 미안. 진짜 미안해. 재현이가, 재현이가 그러니까 재현이가, 김도영이 당황한다. 다시 눈이 빨개진다. 어허. 미안하단 말 말고요.
“나랑 잘 되고 싶으면 작전을 좀 바꿔봐요.”
“......”
“난 도시 오빠의 나쁜 남자 같은 매력을 좋아한 게 아니라, 귀여운 매력에 좋아한 거니까. 선배도 괜히 연기하지 말고 지금처럼.”
푹 젖은 김도영의 앞머리를 정리해줬다.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귀엽다. 귀여워. 처음에는 부담스럽고 짜증 나기만 했던 선물의 주인이 이런 귀여운 계략을 가진 김도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평생 간직하고 싶어진다.
김도영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내가 앞머리를 정리해준 탓이다. 김도영이 준 꽃다발을 김도영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이거 선배가 직접 골라서 산 거예요? 그 와중에 거짓말 같은 거 못하는 김도영은 어어…. 꽃은 내가 고르고 조합은 사장님께서 해, 해주셨어.
나 이런 선물 되게 좋아하는데. 잘 받을게요. 처음으로 선물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들은 김도영이 입을 틀어막는다. 그러곤 뚝뚝 눈물을 흘린다. 으헝. 으헝헝. 끕. 끚....... 진짜 좋아해에........
이 하얗고 귀여운 남자를 어쩌지. 정재현은 바보다. 그딴 이상한 컨셉질 안 해도 이렇게나 귀여운 사람을. 내가 이런 남자를 안 좋아할 수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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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겟다
하 개귀엽다 미췬 개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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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8.13 20:06
ㅁㅊ....개맛집이에요.....ㅠㅠㅜㅜ 개귀엽
귀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