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농민 “양곡법 당초보다 후퇴… 실효성 의문” 반발 계속
기사입력 : 2023-03-29 20:47:03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했지만
격리요건 완화·예외 조항 등 우려
“쌀 생산비 보장·법 전면 개정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정작 지역 농민들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당초 법 개정안보다 시장 격리 요건이 완화된 데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쌀 재배 면적이 증가하면 시장 격리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예외 조항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자료사진./경남신문 DB>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가격이 5~8% 이상 떨어지면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수매해 쌀값을 안정시킨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당초 의무 매입 요건은 ‘쌀 초과 생산량 3% 이상이거나 가격 5% 이상 하락’이었으나 김진표 국회의장 중재에 따라 수정안으로 의결됐다.
당초 더불어민주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유는 지난해 쌀값이 45년 만에 최대 폭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9월 5일 기준 산지 쌀값(20㎏ 정곡)은 4만1185원으로 전년에 비해 24% 하락했다. 당시 농민들은 강제성 없는 ‘시장격리제’가 쌀값 폭락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양곡관리법 제16조 4항에 따르면 정부는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시장 격리를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는데, 이를 근거로 정부가 적기에 쌀을 사들이지 않아 쌀값이 폭락했다는 것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소속 농민들은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당시 함안군 들녘에서 쌀값 안정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나락을 갈아엎기도 했다. 경남은 2021년 기준 논벼를 재배하는 농가 수가 4만835가구로 전국 17개 시도 중 6번째로 많아 가격 하락에 따른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이번 법 개정으로 일정 요건 충족 시 정부 수매가 의무화됐지만, 경남지역 농민은 당초 안보다 후퇴한 수정안이 통과돼 우려스럽다는 입장이다. 강순중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정책위원장은 “기존 양곡관리법에 명시된 ‘할 수 있다’라는 정부의 재량권 때문에 적기에 시장 격리를 하지 않아 쌀값이 폭락해 개정안이 발의된 것인데, 오히려 격리 요건을 완화하고 정부 재량권을 확대하는 안이 통과돼 실질적으로 적기에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우려했다. 이어 농업생산비가 보장된 쌀 최저가격제를 포함한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부는 야당 주도로 지난 23일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공식 요청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9일 당정협의를 마친 뒤 서울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정부는 쌀 산업 발전과 농업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 요구를 대통령께 건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쌀 소비와 상관없이 초과 생산한 쌀은 정부가 다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매수’ 법안”이라며 “농민을 위해서도, 농업 발전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내달 4일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안 의결 절차를 밟게 된다. 재의요구된 법안은 국회에서 재적 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이지혜 기자·김태형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