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수행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고 어떤 사상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것은 알려진 게 없다. 그저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로 불자는 물론 일반대중에게 잘 알려진 눈 푸른 납자, 화계사 현각 스님이 5월 15일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우리 신학회’초청으로 한신대 신학전문대학원에서 강연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현각 스님은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편집자)
“가르침은 서로가 나누는 것
아무리 좋아도 일방적 강요는 안돼
상대를 무시하는 것, 그것이 문제의 시작”
저는 강의보다 직접 대화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질문거리 많이 준비했다가 솔직하게 질문해 주세요.(어눌한 한국말에 청중들의 웃음이 터졌다)
지난해 길상사에서 법정 스님과 만나 뉴욕에 있는 교민들 이야기를 하다가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그들을 위해 뉴욕에서 법회를 열기로 했어요. 그래서 9월초에 미국행 비행기를 탔지요. 그런데 뉴욕 도착 1시간 30분 정도를 남겨두고 비행장님(기장)이 ‘미국에서 큰 사건이 일어나 비행장이 폐쇄되었고 다른 곳에 내려야 한다’고 하면서 비행기 문제는 아니니 안심하라고 하더군요. 미국에서 국가안보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저는 너무 놀랐어요. 미국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그래서 혹시 비행기에 문제가 있나 해서 창 밖으로 연기가 나는지 확인까지 했습니다.(웃음) 집에 도착하니 전에는 반갑게 맞아주던 부모님들이 본체 만체하고 텔레비전만 보는 거 아닙니까. 미국사회 전체가 큰 충격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9·11 테러사건이지요. 아주 오만스러운 미국이 너무나 큰 충격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상황은 정치·역사적인 것도 일부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종교적 문제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그 말은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테러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 역시 자기의 종교를 아주 깊이 믿는 사람들이지요. 그들은 자기 신앙의 힘으로 일을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부시는 담화에서 ‘우리 하느님의 힘으로 이 나쁜 사람들을 이길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때 저는 이 사람과 오사마 빈 라덴이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기 입장에서는 올바르게 신앙을 이루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하면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우스운지 모르겠어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4000년이나 된 싸움을 계속하고 있고, 인도네시아에서도 기독교인과 회교도가 서로를 죽이고 있어요. 파키스탄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지요. 모두들 자기 상황에서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하고 벌이는 일이지요. 미국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전쟁 가운데 90% 정도는 종교관련 전쟁이랍니다. 돈이나 석유,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종교 때문에 전쟁을 한다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땅, 성스러운 땅, 즉 성지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싸우는가요. 종교 때문에 그렇게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 맹목적인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국지주의적 생각보다는 아주 넓고 관대한 신학과 신앙이 필요합니다.
저는 가끔 서울 지하철을 탑니다. 미국 지하철보다 깨끗하고 좋지요. 그곳에서 저를 너무나 사랑하고 내가 가는 길을 너무나 걱정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웃음) 1년전 어느날, 지하철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할렐루야, 할렐루야’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사람은 제 앞에 멈춰서서 얼굴을 보더니 ‘미국 아저씨, 코 큰 미국 아저씨! 왜 안 믿어, 왜 안 믿어’하는 것입니다.(웃음) 어우! 나 그때 충격 받았어요. 그 사람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그 목이 걱정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한 마디 했지요.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안 믿어’(폭소)
열린 마음만이 갈등 극복 가능
가르침은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면 아무리 좋은 것도 나눌 수 없게 됩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상대를 아주 하찮은 수준으로 취급하는 것, 그것이 문제의 시작입니다. 자기 생각에만 집착하면 전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간디는 맹목적인 믿음과 배타주의, 우월주의가 아니라 열린 마음 하나로 영국을 이겼습니다. 이점 모두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청중:버클리에서 젠 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불교나 기독교를 바라볼 때는 기복 신앙적인 면이 너무나 많았는데 그곳에선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현각 스님:종교의 역사를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항상 혁명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는 유대 사상이 기복적이고 형식적이고 배타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상 생활속에서 사랑이 있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지요. 불교도 한국불교가 미국으로 전해지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인 것 뿐 입니다. 가르침은 같은데 한국불교의 문화를 벗어나서 미국으로 전해지면서 평등하게 보여지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어떤 경계를 갖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봐 주세요. 외국인 스님들이 모여 사는 화계사나 계룡산에서도 당신이 말했던 그런 신앙모습이 있습니다.
청중:스님은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 불교를 만났습니다. 지금도 삶 속에서 기독교와의 만남이 계속되고 있는지요.
현각 스님:저는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이 싫어요. 왜냐하면 내 안에서 그 구분이 없는데 그걸 자꾸 만들라고 하니까요.(웃음) 이건 제일 낮은 수준이예요. 내 속에서 불교인과 기독교인을 구분 지어서 내보여달라는 것이 싫어요. 한 때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던 시절에 평등과 자유를 원한다고 했더니 우파라고 하더군요.(웃음) 사회의 평화와 노동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인데 좌파 우파로 구분을 하지요. 그리고는 자꾸만 나누고 만들고 싸우고 교육하고 그러지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인정하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두려움은 생각이 만들어낸 것
청중:출가는 진리를 찾아서 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요.
현각 스님:(질문한 청중에게 자신이 마시던 물컵을 내밀며) 마셔봐. 정말 마셔봐.(청중이 물컵을 받아 마신다) 바로 그것이 진리예요. 단순해요. 진리는 우리의 눈, 귀, 코, 혀 앞에 있어요. 그런데 믿지를 않아요. 고통받는 사람 나타나면 도와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주고, 옷 없는 사람에게 옷을 주는 것. 매 순간 순간 나타나는 그것을 인식하는 게 진리이고 이것을 인식하면 자유롭게 됩니다. 예수는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가고 싶으면 어린아이가 되라고 했어요. 그렇죠? 단순해요. 어린 아이 같은 마음. 불교에서는 이것을 빈 마음, 텅 빈 마음이라고 하죠. 저는 그래서 늘 참선을 합니다.
청중:기독교인이었을 때는 꿈속에서 하느님이 나타나고 스님이 되신 지금은 꿈속에서 부처님이 나타나는가요.
현각 스님:예 전에는 하느님 많이 나타났고, 지금은 부처님 많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똑같은 말을 합니다. ‘너는 나에게 집착하지 말라’고.
청중:스님은 두려움이나 무서움이 없습니까.
현각 스님:두려움은 생각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아주 가까이 인식하면 오직 생각이 만들어 낸다는 것이지요. 물론 저도 두려움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통해서 새롭게 보고 또 새롭게 보고하면 사라집니다. 이것이 수행입니다. 모든 두려움은 현실이 아니라 생각이 만들어 낸 망상인 것입니다.
청중:왜 인간은 존재해야만 합니까. 즐거움이나 고통도 싫은데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현각 스님:존재의 이유는 순간 순간에 새롭게 찾아야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오고 지옥에서 그리고 땅에서, 책에서 나오는 그런 존재의 이유는 없습니다. 자신의 삶을 안 믿고 의심하기 때문에 책 속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고 그것을 믿으려 합니다. 늘 변화하는 일상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힘을 믿지 않고 밖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하면 문제만 계속 될 뿐입니다.
존재는 내 안에서 찾아야죠
청중:스님이 말하는 깨달음의 진리는 눈앞에 보여지는 현상 그 자체뿐입니까.
현각 스님:이 순간 보는 것 자체가 진리라고 했습니다.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맛 보는 것, 이게 전부예요. 볼 때는 볼뿐이고, 들을 때는 들을 뿐이고, 냄새 맡을 때는 냄새를 맡을 뿐입니다. 말로 표현하는 것은 관념에 불과합니다. 경험한 것을 깨달음, 참나, 진아, 성불, 하느님 등의 다양한 말로 표현할 수 있지만 그 말 자체가 진리는 아닙니다. 다 거짓말입니다. 완벽하게. 그런 말을 통해서 그 경험에 들어갈 수 있으면 충분한 겁니다.
청중:어떤 사람을 도와주었는데 그 사람이 그것을 팔아서 다른데 썼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다시 그 사람이 도움을 청하면 어떻게 합니까.
현각 스님:올바르게 기도하고 공부하면서 자기의 마음을 닦으면 눈앞에 똑같이 보이는 것을 보다 깊이 인식할 수 있습니다. 전세계 모든 종교를 찾아도 내면 깊숙한 곳의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이건 누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니지요. 매일 기도하면서 깊이 있게 명상하면 그 실천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눈, 귀, 코, 혀 등 모든 것을 열면 그것이 가능합니다. 단, 자기 생각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닦아나가야 합니다.
청중:생각은 바뀔 수 있습니다. 지금의 이야기가 10년, 20년 후에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현각 스님:그것은 그때 가서 물어보세요. 살아 있는 종교란 순간을 듣는 생명입니다. 그 물음에 논문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다 개념적인 헛소리일 뿐입니다. 죽음 이후의 문제,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등의 질문은 머리로 조화되지 않은 과거와 미래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질문은 조화되지 않은 것을 말해보라는 것과 같습니다. 순간에 충실하세요. 순간 속에서 눈과 귀와 코를 열고 살 수 있으면 속마음을 다스릴 수 있고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중:종교는 필요한 것입니까.
현각 스님:인간의 삶은 아직 미숙하기 때문에 종교적 힘과 분위기가 필요하지요. 실천하고 수행하는 것도 혼자일 때보다 대중과 함께 더불어 할 때 잘 할 수 있지요. 모든 사람은 각자 종교의 최고 깨달음 자리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장애가 많기 때문에 종교가 없으면 어렵지요. 종교는 한 사람의 삶을 바르게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