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물과 고찰의 3박자가 기막힌 조화를 이룬 곳이 경북 포항의 운제산(480m)이다. 우선 천년고찰 오어사가 있다. 신라 10대 성인인 혜공선사를 비롯해 불교대중화의 기치를 내건 한국불교 최고의 스승 원효선사가 이 절의 법력과 전설, 설화에 깃들어 있다.
부속암자는 보다 구체적이다. 원효대사가 수도에 정진하면서 여러 가지 불경의 주해를 지었다는 원효암이 단아하고, 자장법사가 구름다리를 타고 오갔다는 자장암이 우뚝하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실체보다 설화와 전설이 많다. 오어사는 대웅전만 조선 영조 때 중건됐을 뿐 그 외 당우는 근래에 지어졌다. 규모도 생각만큼 크지 않다. 자장암 역시 마찬가지다.
1천년 넘게 빈터로 남아 있다가 근세에 들어서서 암자로 개축됐다. 원효암은 근대의 양식을 많이 도입하는 바람에 그나마 깃들어 있던 고색마저 퇴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이유가 이곳 명승지에 대한 조그만 누도 되지 않는다. 외려 시간이 갈수록 전국적인 명성이 더해간다. 그런 배경에는 물빛 짙은 오어지와 산세 그윽한 운제산이 있다. 오어지 푸른 물빛으로 오어사가 더욱 창연하고 운제산 천길 벼랑 위로 둥지 튼 자장암이 아찔하다. 첩첩한 골짝 기슭의 원효암은 깊은 산그늘을 닮아 한층 더 적요하다.
운제산은 또 조망의 즐거움이 가득한 산이다. 연오랑 세오녀의 전설처럼 영일만 푸른 바다를 향해 뒤꿈치를 치켜세운 모습은 간구(懇求)의 감동까지 선사한다. 정상에 서면 철강입국의 포항공단이 눈길 가득히 들어오고 땅금 너머 짙푸른 동해바다가 태초의 모습 그대로 아득하다.
바로 이런 맛과 감동 때문에 운제산은 포항시민의 안방 쉼터를 뛰어넘어 전국적인 명산이 됐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파고들면 아쉬운 점도 없잖아 있다. 특히 코스가 짧고 단조로운 점은 운제산의 명성에 작은 티가 된다. 덧붙여 명소를 찾아보기 위해 억지로 짜맞춘 듯한 코스는 가외 수고를 더하는 단점으로 지적된다.
이번주 산&산은 운제산의 이런 부분을 보완하는 기획으로 꾸며봤다. 물론 기존의 코스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며, 이를 전제로 했음을 먼저 밝힌다.
경방기간인 지금의 기존 코스는 오어사를 기점으로 정상이나 대왕암을 둘러보고 되돌아오는 코스가 대부분이다. 아니면 온천장으로 하산하거나 그 반대인 경우다. 이럴 경우 산행시간은 길어야 2시간30분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시간대는 마니아들이 대부분인 부산의 원정 산꾼들에게는 성이 차지 않는다. 해서 운제산과 그 주변의 산릉을 한 바퀴 둘러보는 일주코스로 만들어 봤다.
즉 산여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 산릉들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우선 부족한 산행시간을 채울 수 있고 무엇보다도 운제산 명소들도 자연스럽게 돌아볼 수 있다. 운제산 제1의 절승은 깎아세운 벼랑 위로 위태롭게 자리 잡은 자장암의 모습이다. 바로 그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원효암 가는 들머리다. 이번 코스를 따르면 가외의 수고를 더하지 않아도 산행 마무리 무렵 화룡점정의 감동을 만끽할 수 있다.
또한 이번 기획은 일주코스임에도 표고차가 거의 없어 비교적 유순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점이 또 다른 매력이다.
숨은 매력도 있다. 이번 코스는 도시 근교의 산임에도 불구하고 발을 들여놓으면 놓을수록 심산유곡에 접어든 듯 깊고 그윽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그 농도는 더 진하다. 첩첩한 연릉과 골짝골짝은 오랜 감동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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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답사경로는 다음과 같다.
▷오천읍 항사리오어사주차장~자장암~입산신고소~운제산~이정표삼거리~(홍계리)갈림길~
(경주)갈림길~시루봉~(산여리)고개~422봉(헬기장)~원효암~오어사 순. 걷는 시간만 약 4시간,
휴식을 포함하면 5시간~5시간30분쯤 걸린다. 길은 대체로 뚜렷하나 갈림길 몇 군데서만 주의하면
길 잇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
들머리는 오어사 앞 주차장에서 산자락 비탈 계단길로 열려있다. 이 길은 자장암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입구에 관광안내도와 자장암 입간판이 세워져 있어 참고한다. 8분쯤 급한 길을 올라가면 자장암에 닿는다. 암자에서 오어사와 오어지를 내려다보는 맛이 일품이다.
등로는 자장암을 뒤로 하고 대각리로 연결되는 차도를 따른다. 곧 운제선원을 만나고, 조금 더 가다 차도와 헤어진 뒤 곧 또 다른 차도를 만난다. 이번은 대각리에서 산여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역시 차도를 따르면 곧 산불감시를 위한 입산신고소에 닿는다. 자장암에서 입산신고서까지 6분쯤 걸린다.
입산신고소에서의 등로는 차도를 왼쪽으로 보며 오른쪽 산자락으로 열린다. 이후 포항시민들이 즐겨 찾는 오름길의 산길을 따르면 된다. 길이 훤한 데다 이정표도 군데군데 세워져 있어 길 잇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대각온천 갈림길이 있는 이정표까지 20분, 다시 운제산 정상 직전 이정표 갈림길까지 17분이 더 걸린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정상 직전 갈림길은 이번 산행의 중요한 포인트다. 여기서 육각정 전망대가 세워져 있는 정상이나 집채만 한 바위가 인상적인, 해병혼의 상징인 대왕암으로 가려면 왼쪽의 사면길을 택하고, 일주산행을 위해 시루봉으로 가려면 오른쪽 사면길을 나서면 된다.
정상은 왼쪽의 사면길을 조금 따르다 다시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오름길을 따르면 된다. 3분 소요. 정상은 지난해 가을 세워진 정자가 있어 주변의 조망을 만끽하는 데 조금의 거리낌도 없다. 대왕암은 사면길을 줄곧 이어가면 능선이 꺾어지는 지점에서 만난다. 갔다오는 데 20분쯤 소요된다.
시루봉은 정상에서 되돌아 나와 만나는 이정표 갈림길의 왼쪽(진행방향에서 볼 때), 즉 이정표의 온천장 방향을 따르면 된다. 길은 외길로 능선을 이어가거나 사면길을 따라간다. 샘터까지 1분, 이정표가 있는 온천장 갈림길까지 14분이 더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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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장 갈림길에서의 등로는 진행방향 정면의 직진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110도 정도 꺾어지는 듯한 길로 연결된다. 이정표의 시루봉 방향(3.8㎞)을 참고한다. 이후 임도수준의 넓은 길을 만나는 또 다른 갈림길까지 줄곧 능선길을 따르면 된다. 27분 소요.
임도수준의 넓은 길을 만나는 갈림길에서 등로는 오르막이 약간 있는 왼쪽길이다. 오른쪽(북쪽)은 홍계리로 내려서는 하산로다. 완만히 올라가는 그 길을 따라 8분쯤 가면 야트막한 고개를 하나 넘게 된다. 이어 그 고개 너머 안부로 살짝 내려섰다 다시 다른 고개로 올라서는 지점을 만나게 되는데 이 지점이 두번째로 중요한 포인트다. 시간적으로 2분 소요.
바로 이 고개를 넘어 직진하면 임도를 따라 경주시 왕신리로 가게 된다. 여기서 시루봉 가는 길은 당연히 왼쪽이다. 길은 그러나 능선을 따르지 않고 능선의 왼쪽 사면을 ?아간다. 고개로 넘어서기 직전 오른쪽에 빨간 바탕에 '배느리 가는 길 입구' 팻말이 달려 있어 참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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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길에 접어들었다면 이후 시루봉 직전의 안부4거리까지 부드러운 외길 능선길이다. 진행방향 왼쪽으로 오롯한 운제산 육각정이 눈길을 끈다. 안부사거리까지 35분쯤 걸린다.
안부사거리 역시 독도 유의점이다. 여기서 산여리 고개 쪽으로 바로 가려면 진행방향에서 왼쪽(동쪽)으로 110도쯤 꺾이는 사면길을 택해야 한다. 진행방향 직전의 사면길은 시루봉을 거치지 않고 경주시 추령으로 가는 종주길이다. 시루봉은 진행방향 오른쪽의 오르막길로 연결된다. 밋밋한 봉우리인 시루봉까지 갔다오는 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지만 전망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산여리 고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이후 등로는 옛길 수준의 편안한 내리막길이다. 길 좌우에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초봄께 다시 찾으면 꽃대궐 속을 걸을 것 같다. 고개까지 24분 소요.
대형 헬기장이 있는 422봉은 비포장도로인 고개를 가로질러 맞은편 능선 오르막길로 연결된다. 이후 등로는 대체로 마루금을 이어가지만 몇몇 지점에서 봉우리를 다 오르지 않고 살짝 우회하기 때문에 대체로 뚜렷한 길을 따르면 된다. 다만 422봉은 조망이 시원해 정상 직전 왼쪽 사면길로 우회하는 길이 있지만 올라보도록 한다. 422봉까지 35분쯤 걸린다.
422봉에서 원효암 가는 길은 왼쪽으로 열려 있다. 조금 급하게 내려선 뒤 산 중 못 직전의 갈림길까지 편안한 능선길을 좇으면 된다. 10분 소요.
갈림길에서 등로는 왼쪽의 내려서는 길로 이어진다. 물론 진행방향 직진의 길을 따라도 원효암으로 연결해 갈 수 있다.
왼쪽으로 내려섰다면 곧(1~2분) 오른쪽으로 산 중 못을 만난다. 이곳에서도 못을 가로질러 건너편 능선으로 가서 원효암으로 갈 수 있다. 산&산 팀은 비교적 부드러운 길을 택해 원효암으로 가기 위해 물길을 건너지 않고 진행방향 정면의 길을 따랐다.
원효암으로 내려서는 길은 부드러운 능선을 올라 내려섰다가 다시 부드러운 오르막이 시작되는 안부에서 오른쪽 계곡으로 연결된다. 별다른 표식이 없어 못에서 8분쯤 거리에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 이후 6분쯤 계곡을 내려가면 계곡 오른쪽으로 원효암 지붕이 보이고 원효암을 거쳐 아래로 떨어지는 계곡길을 따르면 15분쯤 걸려 오어사에 닿게 된다.
다리를 건너기 전 자연스레 눈길이 가는 곳은 운제산 최고의 경관인 오어사와 그 왼쪽 벼랑 위의 자장암임은 물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