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은 제가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곧이곧대로 사는 그 성격과 심지어는 바보스러움마저 느끼지만 결국은 그가 승리하는 권선징악적인 면마저 느끼게 합니다. 현재 서점에는 등소평 평전과 같은 등소평에 관한 책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적보다는 그의 어록을 통하여 그의 인생을 고찰하고자 합니다.
등소평은 사천성 객가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객가는 중국화교들도 고개를 흔들 정도로 화교권에서는 유태인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지며 자기들의 고유 언어를 각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객가로는 이광요 수상, 섭검영 등이 있습니다. 특색으로는 등소평을 나중에 사인방 축출에 지대한 공헌을 한 섭검영 등이 개고기를 좋아합니다. 등소평은 청년기에 프랑스에 유학하고 거기서 주은래를 알게 되고 공산당에 입당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의 국제적인 감각과 경제에 대한 감각은 이때부터 키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어록을 살펴보면
“흰 고양이던 검은 고양이던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
그의 실리주의적 성향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입니다. 국민을 배불리 먹이는 데는 단간풍(개인 소유의 집 앞 텃밭)이라는 자본주의적 방법의 도입마저 주저하지 않았던 실리주의자입니다. “오줌이 나오지 않는데 노인이 화장실을 오래 차지하고 있는 것은 좋지 않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연령이 높을 때까지 고위직에 있는 것이 일반적 관례인데 모택동을 지목해서 한 말입니다. 등소평이 세 번의 실각과 복원을 거듭했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왜 주덕 총사령관 만세는 하지 않는가? 이것이 역사이다” 연안장정을 소재로 한 연극을 보고 마지막에 모(택동)위원 만세라고 외치며 끝나자 연안장정을 같이 이끌었던 주덕 총사령관 만세는 하지 않느냐고 좌석에서 일어나 외치며 그것이 역사라고 말할 정도로 고지식하고 역사를 두려워 할 줄 아는 인물입니다.
그 외 그의 행적에서 특색이 있다면 그의 마당발입니다. 그는 연안장정 시절 유명한 이는 유백승과 전쟁을 치룸으로써 군에 자기계열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행정부에 해당하는 부서의 부총리, 당 사무국인 서기처의 부서기, 군사위원회 부서기 등 한번도 탑의 자리에 오른 적이 없지만 부책임자의 자리를 몇 개씩 겸직함으로 그를 통하면 못할 일이 없을 정도로 마당발이었습니다. 한 예로 유소기와 모택동의 권력투쟁인 문화혁명에서도 등소평이 끝내는 모택동 편으로 돌아서 유소기가 긍극적으로 패배했다는 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