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톤 : 티파니 블루와 스타벅스 그린, 컬러 비즈니스를 개척하다
롱블랙 | L 2022.12.29
롱블랙 프렌즈 L
올해도 어김없이 나왔더라. 팬톤PANTONE이 선정한 올해의 컬러. 비바 마젠타Viva Magenta야. 조금 밝고 크리미한 빨간색이지. 삶을 축하하는 힘을 가진 색이래. 팬데믹으로 오랫동안 힘들어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선정했다고 해. 색을 보니, 힘이 나는 것 같기도 하네.
팬톤은 도대체 어떤 기업이길래 매년 색으로 영향력을 행사할까. 팬톤을 한번 파봤어. 짧지만 팬톤의 리트리스 아이즈먼Leatrice Eiseman 색채연구소 소장을 서면 인터뷰도 했어!
Chapter 1.
팬톤, 컬러 제국이 되다
팬톤은 1963년 로렌스 허버트Lawrence Herbert가 만든 기업이야. 많이 들어는 봤는데, 뭐 하는 기업인지 모르겠다고? 간단해. ‘색을 분류하고 판매하는 기업’이야. 2021년에 약 2800만달러(약 355억원)*의 매출을 낸 걸로 추정돼.
*출처 : Zoominfo
색으로 어떻게 돈을 버냐고? 팬톤은 팬톤만의 색 체계를 라이선스로 만들어 판매해. 바로 컬러칩color chip. 1만 개가 넘는 색 하나하나에 고유 번호를 매긴 색상표야. 잉크 회사나 페인트 회사, 패션 기업, 가전 기업 등이 팬톤에 돈을 주고 컬러칩 라이선스를 구매해. 그런 다음 팬톤 컬러를 제품이나 서비스에 이용하지.
기업의 상징색도 웬만하면 팬톤의 컬러칩을 쓴다고 보면 돼. 스타벅스의 초록색은 팬톤3425C, 맥도날드는 팬톤123C, 삼성은 팬톤300C, LG는 팬톤207C야.
팬톤은 기업에 고유한 색을 만들어 주기도 해. 대표적인 예가 보석 브랜드 티파니앤코TIFFANY&CO. 그 유명한 ‘티파니 블루’는 팬톤이 티파니만을 위한 컬러 코드 ‘PMS 1837’을 부여해 만들어준 고유한 푸른색이야. 여기에 명시된 ‘1837’은 티파니앤코의 창립연도야. 상표권을 등록해 오직 티파니만이 쓸 수 있고, 덕분에 티파니앤코는 대중이 색깔만 봐도 회사를 떠올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브랜드 중 하나가 됐지.
기업에 컬러 컨설팅을 해주고 돈을 받기도 해. 2022년 8월부터는 어도비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에서 무료로 제공하던 팬톤 컬러 북Color Books에도 비용을 받기로 했어. 월 15달러, 연간 90달러에 말이야.
디자이너들 세계에서 팬톤은 바이블 같은 시스템이래. 왜 노란색도 누런색, 노르스름한 색, 누리끼리한 색 등 천차만별이잖아. 부연 설명 없이 색의 고유 번호만 말하면 전 세계 어디서나 소통이 가능한 셈이지. 거의 만국 공용어야. 그래픽 디자인, 패션, 제품 시스템 등 세 범주에서 팬톤이 주로 쓰여.
요즘 팬톤은 대중에게도 유명해. 매년 12월 발표하는 ‘올해의 컬러’ 덕분이지. 기업들이 하나같이 마케팅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촉각을 세우거든. 비바 마젠타도 그래. 벌써 로에베Loewe, 구찌GUCCI, 질 샌더JIL SANDER 같은 패션 브랜드가 마젠타색 제품을 출시했고, LG전자는 비바 마젠타색 냉장고를 출시했어.
팬톤의 대표 제품인 컬러칩. 색에 번호를 매겨, 전 세계 어디서든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팬톤
Chapter 2.
아르바이트생, ‘색의 공통어’를 만들다
팬톤이 번호를 매긴 색은 1만 개가 넘지만 처음엔 단 열 가지 색에 불과했어. 열 개가 어떻게 1만 개가 됐는지 알려면, 팬톤의 역사를 짚어봐야 해.
팬톤의 창업자 로렌스 허버트는 원래 화학 전공이야.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해 레빈 애드버타이징M&J Levine Advertising이라는 광고 회사가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
허버트는 ‘컬러 매칭 담당자’로 일했어. 고객이 광고 인쇄물 컬러를 고를 수 있도록 색을 미리 인쇄해 주는 역할이었지. 허버트는 색을 정확하고 일관되게 담기 위해 연구했어. 60여 가지 잉크를 일일이 섞어서 색을 만들었지.
문제는 잉크 제조사마다 색소가 조금씩 다 달랐던 거야. 광고주들이 밀색Wheat이나 크림색을 주문해서 만들어보면, 항상 미묘하게 다른 색이 나왔대. 본인이 생각했던 정확한 색을 구현하고 싶은데, 안 되니까 계속 수작업을 더 해야 했어. 작업할 때마다 잉크를 뒤집어썼고, 바닥은 온통 엎질러진 잉크 천지고… 너무 힘들었대.
시행착오를 반복하던 허버트는 ‘공통어universal language’라는 단어를 떠올렸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색의 언어’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지. 당시 디자이너들 서랍엔 컬러북이 대여섯 권씩 들어있었대. 이 컬러북을 한 권으로 통일해 보자고 생각했지.
“뉴욕에 있는 사람이 도쿄에 인쇄를 맡길 때 컬러북을 펼치고 ‘팬톤123(daffodil yellow‧수선화 노란색)’으로 해주세요, 라고 주문하는 걸 상상해 봤어요. 팬톤123은 전 세계 어디서 누가 보든 똑같은 색깔이 되는 거죠.”
_로렌스 허버트, 2013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서
그 무렵 허버트가 다니던 광고 회사는 5만 달러(약 6500만원)의 부채를 떠안아. 허버트는 과감하게 광고회사를 인수하고, 회사 이름도 팬톤으로 바꿔. ‘Pan’은 모두, ‘tone’은 색상이란 뜻이래. 모두를 위한 색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지.
허버트는 일단 60여 가지에 달했던 기존 색소를 열 개로 단순화했어. 그리고 열 개의 색을 조합해 500가지의 색을 만들었어. 각각의 색에 특정 기호와 번호를 붙이고, 인쇄 잉크 공식을 만들지. A색 20%와 B색 30%를 섞으면 C색이 나온다는 식이야. 그리고 이 공식을 기재한 샘플 페이지에 ‘팬톤 컬러 매칭 시스템(PMS:PANTONE Matching System)’이란 이름을 붙이고, 잉크제조업체 20곳에 돌렸어.
반응이 엄청 좋았대. 2주도 안 돼서 업체들로부터 로열티를 받아낼 정도로. 내친김에 허버트는 광고도 해. 1964년엔 팬톤 컬러 일람표PANTONE Color Specifier를 만들어. 팬톤은 점점 유명해지면서 1970년대까지 라이선스 비용으로만 연간 백만 달러(약 12억원) 이상을 벌어들여.
팬톤의 창업자인 로렌스 허버트. 화학 전공생이던 그는, 공통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색의 언어를 만들었다. ⓒ호프스트라대학
Chapter 3.
색의 기준을 만들면 돈이 된다
팬톤은 점점 ‘색의 대가’로 이름을 알렸어. 브랜드들로부터도 요청이 쏟아졌지. “우리 브랜드 고유의 색을 만들어 달라”면서 말이야.
그렇게 코카콜라의 빨간색인 팬톤484, 티파니의 파란색인 팬톤1837, 바비 인형의 진한 분홍색인 팬톤820이 만들어진 거야. 애써 만든 색이잖아. 브랜드들은 여기에 상표권을 붙여 다른 회사가 사용할 수 없게 했어.
이런 행보를 보고,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당시 팬톤을 이렇게 평가했어. “로렌스 허버트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색상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팬톤은 색의 기준을 소유한다”고. 아, 그러니까 봉이 김선달 같은 사업가라는 거네.
팬톤은 브랜드들의 인쇄 오류도 해결해줬어. 대표적인 게 필름 카메라 브랜드인 코닥이야. 코닥의 공식 색인 노란색을 써서 필름 패키지를 만들었는데, 인쇄 업체마다 색을 다르게 인쇄한 거야. A업체는 밝은 노란색, B업체는 누리끼리한 색, C업체는 노르스름한 색.
재밌는 건 소비자들이 밝은 노란색만 집어 갔다는 점이야. 누리끼리한 패키지는 제품이 오래돼 빛이 바랬다고 생각한 거지. 코닥은 깨달음을 얻고, 팬톤 매칭 시스템을 도입했어. 균일한 밝은 노란색으로 패키지를 인쇄하며 문제는 바로 해결됐지.
“색은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도구예요. 인간 경험의 약 80%가 눈을 통하기 때문에, 시각적 단서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필수적이에요. 브랜딩도 마찬가지입니다. 색은 소비자가 기억하는 아이덴티티identity를 만드는 데,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예요. 모든 색상은 고유한 메시지와 의미를 전달합니다.”
_로리 프레스먼 팬톤 부사장, 2021년 스타일파크 인터뷰에서
티파니의 파란색은 팬톤1837이라는 고유 번호를 갖고 있다. ⓒ티파니
브랜드에서 사회로 영역을 확장시키다
팬톤을 필요로 하는 건 브랜드만은 아니었어. 국기의 색도 팬톤 컬러매칭 시스템을 따라. 한국의 빨간색(186C), 미국의 빨간색(193), 일본의 빨간색(032C)이 모두 다르다는 거야.
의료계에서도 팬톤 컬러를 사용해. 컬러 매칭 시스템으로 간의 지방 수치를 색으로 측정하는 거야. 특히 간 이식 수술 전 중요한 자료로 사용된다고 해.
일본에선 팬톤 컬러를 활용해 의료진의 유니폼을 만들기도 했어. 유니폼 제조업체 포크Folk가 팬톤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팬톤 컬러 병원복’을 만든 거야. 빨강, 파랑, 보라, 오렌지, 노랑 등 색색의 유니폼이야. 의료진이 매일 다른 색 유니폼을 입어서, 환자들이 색깔별로 요일을 인식하도록 의도했지. 파란색을 입은 날엔 주사를 놓고, 보라색을 입은 날엔 문진을 오는 식이야.
브랜드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팬톤 제품이 쓰이고 있다. 의료 업계에서도 사용된다. 사진은 팬톤의 여러 색으로 유니폼을 만든 일본의 포크. ⓒ포크
Chapter 4.
팬톤 색채연구소 : 색은 해석이다
초기 팬톤이 색의 기준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색에 의미까지 부여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빨간색은 뜨거움을, 파란색은 차가움을 상징하지. 또 우리는 우울함을 표현할 때 ‘블루blue’라는 단어를 쓰잖아? 팬톤은 색을 인간의 정서적 가치와 연결하기 시작해.
그 시발점은 1999년 설립된 팬톤 색채연구소PANTONE Color Institute야. 창업자 허버트는 색채 전문가 리트리스 아이즈먼Leatrice Eiseman을 소장 자리에 앉혔어. 가구회사에서 20년 동안 일하던 로리 프레스먼Laurie Pressman까지 부사장으로 합류하며 색채연구소는 공식 출범했어.
색채연구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트렌드야. 특정 색이 어느 시점에 왜 자주 쓰이는지 연구하지. 그러다 2000년부터 ‘올해의 색’까지 발표하기 시작했어.
“우리는 항상 ‘색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색은 하나의 언어이자 동시에 우리 문화에서 일어나는 일을 반영하니까요. 돌이켜 보면 색상을 통해 특정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적할 수 있어요. 선거철엔 거리에 빨간색이 유독 많이 보이는 것처럼요. 색에 있어 빨강은 검정 다음으로 중요해요. 이렇듯 색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해요.”
_로리 프레스먼, 2019년 innovation strategy 인터뷰에서
팬톤이 ‘올해의 컬러’를 선정하는 방식은 독특해. 자연과 문화, 심지어 세계 경제 상황을 기준으로 색을 선정해. 팬톤의 글로벌 색상 전문가 팀이 수년간 전 세계를 돌면서 유행이 될 만한 색을 조사하는 거야. 패션계 동향뿐 아니라 대중문화, 월드컵 같은 이슈도 소스가 돼.
“우리 팀은 전 세계를 여행해요. 얻어지는 모든 걸 공유하죠. 이미지라던가 유행어라던가. 그냥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게 아이디어가 돼요.
색상을 고를 땐 굉장히 순수한 방식으로 접근해요. 상업적 의제나 개인적인 취향을 가져오진 않아요. 수정 구슬로 점쳐서 나오는 색도 아니고요. 정말 많은 고민과 생각을 거듭하고 연구한 끝에 나오는 색상이에요. 어쩌면 팀이 수행하는 모든 작업의 정점일 수도 있어요.”
_리트리스 아이즈먼, 2020년 보그 인터뷰에서
허버트는 색이 어떤 심리를 주는지 궁금해졌고, 색채연구소를 설립한다. 그리고 색채전문가인 리트리스 아이즈먼을 영입한다. ⓒ리트리스아이즈먼
Chapter 5.
시대를 반영하는 컬러, 팬톤이 던지는 메시지
팬톤은 이렇게 정한 ‘올해의 컬러’를 “특정 시점에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가장 잘 전달하는 색”이라고 말해.
“색은 인간 심리를 대변해요. 특정한 순간에 사회가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것이 색으로 표현되죠. 그 분위기는 사회적 사건에 따라 변할 수 있겠죠.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 ‘시대정신’을 연구하고 이를 가장 잘 반영하는 색을 선택하는 겁니다.”
_리트리스 아이즈먼, 2022년 롱블랙 인터뷰에서
그럼 팬톤이 정한 각 색이 시대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볼까? 먼저 2021년. 얼티밋 그레이Ultimate Gray와 일루미네이팅 옐로Illuminating Yellow가 선정됐어. 두 가지 색을 올해의 색으로 선정한 건 2016년 로즈 쿼츠rose quartz와 세레니티serenity 이후로 두 번째였지. 회색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노란색. 팬데믹이 막 들이닥쳐 힘들어하던 사람들에게 팬톤이 던지는 위로였어.
“표현해야 할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색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함께 모일 수 있는 두 가지 독립적인 색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혼자서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_리트리스 아이즈먼, 2020년 보그 인터뷰에서
그런데 왜 회색과 노란색을 선택한 걸까? 아이즈먼은 이렇게 말해.
“인간의 의지와 희망에 대한 보편적인 색을 골랐어요. 회색은 수백만 년 동안 존재해왔으며 결코 사라지지 않을 바위와 돌의 색이에요. 불굴의 의지를 나타내죠. 당신이 의지할 수 있는 건 항상 당신을 위해 거기 있을 거라는 의미입니다. 노란색은 어렸을 때부터 희망, 긍정, 기대할 만한 것을 의미해요. 인간의 정신에 필수적인 희망, 아름다운 햇살이 내리쬐는 하늘 등을 의미하죠.”
_리트리스 아이즈먼, 2020년 보그 인터뷰에서
2022년은 베리 페리Veri Peri. 은은한 보라색을 선정했지. 특이하게도 기존 팬톤 컬러북에서 고르지 않고, 두 가지 색을 조합해 만든 색이었어. 보라색이 뭐야, 파란색과 빨간색을 섞은 거잖아. 팬톤은 “블루와 레드의 활기차고 역동적인 느낌을, 글로벌 시대에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전환의 상징으로 봤다”고 말했지.
“베리 페리는 극심한 고립의 시기에서 벗어나면서, 우리의 개념과 기준이 변하고, 우리의 물리적 삶과 디지털적 삶이 새로운 방식으로 융합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색이기도 합니다. 게임, 메타버스 등 디지털 공간과 잘 어울리죠.”
_리트리스 아이즈먼, 2022년 롱블랙 인터뷰에서
2023년은 앞서 말했듯 비바 마젠타야. 그런데 이 색의 모티브가 신선해. 0.5cm짜리 작은 곤충, 연지벌레! 우리에겐 딸기 맛 우유의 핑크빛 색소를 내는 데 사용되는 곤충으로 알려졌지.
얘 좀 대단하더라. 북미와 남미 일부 지역에 살고 있는데 지구에서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거래. 눈에 띄기 쉬운 빨간색인데도, 끈질기고 강인한 생명력을 보인 거지. 게다가 연지벌레가 생산하는 카민Carminic*은, 천연염료 중 가장 밝은 성질을 지녔대. 팬톤은 이 작은 벌레가 지닌 놀라운 능력을 컬러로 표현한 거야.
*카민은 연지벌레에서 추출되는 염료로 붉은색이 필요한 대부분의 메이크업 제품에 들어가는 대표적인 동물성분이다.
“이 벌레는 우리에게 살아남는 법을 보여줍니다. 그 단단한 껍질이 우리가 지난 2년 동안 얻었던 용기와 두려움을 말해주는 것 같아요.”
_로리 프레스먼, 2022년 일렉트린트렌드 인터뷰에서
일각에선 팬톤이 색에 있어서 권력을 휘두르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와. 팬톤은 고개를 저어.
“올해의 컬러로 지정된 색은 인기가 높아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특정 색상을 미는 게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 주세요.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기업과 소비자가 색이 가진 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우리는 색의 힘과 표현력을 활용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계속 사람들에게 공유해나갈 거예요. 누구나 개인의 정체성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해 색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_로리 프레스먼, 2022년 Press Kit중에서
2023년 올해의 색인 비바 마젠타. 연지벌레의 강인함을 색으로 담았다. ⓒ팬톤
Chapter 6.
팬톤 유니버스를 확장하다
올해의 컬러 말고 팬톤이 B2C로 소비자들과 만나는 방법은 또 있어. 팬톤 유니버스PANTONE Universe라는, 팬톤의 컬래버래이션 제품들이야. 컵, 다이어리, 쿠션, 시계, 아이섀도 등 품목이 다양하지.
팬톤의 유니버스는 제품에서 그치지 않아. 팬톤은 호텔과 카페도 연 적이 있어. 2011년에는 건축가 올리비에 아나에르Oliver Hannaert와 디자이너 미셸 펜망Michel Penneman과 함께 벨기에 브뤼셀에 팬톤 호텔을 만들었어. 빨강, 보라, 초록 등을 포함한 7개 포인트 색으로 각 객실을 꾸몄어. 승객은 원하는 색의 객실에 머물 수 있지. 객실 안에는 팬톤 유니버스의 다양한 제품이 구비돼있어.
2015년, 2016년에는 유럽 모나코에 팝업으로 팬톤 카페를 열기도 했대. ‘색을 맛보다’라는 주제로, 모든 음료와 스낵에 팬톤 고유 번호를 붙였지. 피스타치오 그린(13-0221)색을 한 팬톤 디저트 에끌레어, 캐롯 오렌지&진저(16-1361)색을 한 슬러시, 망고(17-1446)색 아이스크림 등을 맛볼 수 있었어.
팬톤이 만든 호텔. 7개 색으로 객실을 꾸몄다. ⓒ팬톤 호텔
마치며 : 색으로 세상과 호흡하다
팬톤의 콜라보는 제품이나 공간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아. 팬톤은 이제 색으로 메시지를 만들어 내고 있어.
2022년 3월에는 세계 물의 날을 기념해 비영리단체 채리티 워터Charity: Water와 협력했어. 전 세계에는 깨끗한 물을 이용할 수 없는 7억 7100만명의 사람들이 있어. 이들이 강제로 마셔야 하는 물에서 모티프를 따와 ‘더러운 물의 색’을 만든 거야. 유백색, 겨자색, 초록색 물이라니 정말 끔찍해.
“색상은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입니다. 단순히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을 때마다, 팬톤과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_린제이 샤인버그 팬톤 소셜미디어 최고 책임자, 2022년 애드위크 인터뷰에서
이런 일도 있었어. 팬톤은 2019년에 올해의 컬러로 리빙 코랄Living Coral을 선택했거든. 살아있는 산호초의 역동적인 핑크색이었지. 그런데 “현실 반영이 전혀 안 된 색 선정”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어. 얼마 전 아키리프 노트에서도 봤겠지만, 지금 산호색은 핑크빛이 아니잖아. 기후변화로 인해 색을 잃고, 죽어가고 있지.
팬톤은 비판을 받아들이고, 산호초 보호단체인 ‘디 오션 에이전시The Ocean Agency’ 그리고 어도비Adobe와 함께 세 개의 색상을 선보였어. 형광빛이 도는 파란색과 노란색, 보라색이야. 형광색 산호는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 걸 보여주는 지표인데, 이를 색으로 보여준 거지. 자연을 색이라는 언어로 표현했고, 또 색을 통해 지금 자연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어.
다만 팬톤은 매출*이 줄어들고 있어. 더불어 그 영향력도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다는 얘기도 나와. 그럼에도 당분간은 ‘올해의 색’이 나오면, 어김없이 들여다보게 될 것 같아. 이게 바로 팬톤이 말하는 색의 힘이겠지?
*2006년 매출은 4200만달러(약 485억원), 2021년 매출은 2800만달러(약 335억원). 팬톤은 2007년 색상계측장비회사인 X-라이트에 인수됐다.
“특정 색이 목소리를 내는 고유한 의미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우린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요. 보다 밀접하게 연결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색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까지 말해내고 있거든요.”
_로리 프레스먼, 2022년 Press Kit 중에서
팬톤은 색으로 세상과 호흡하기도 한다. 세계 물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더러운 물의 색을 만들었다. ⓒCharity : Water
롱블랙 프렌즈 L
매년 선정하는 색에 특정한 의미가 담겨있는지 여태 몰랐네. 좋았어. 2023년을 힘차게 보내기 위해, 나도 비바 마젠타색 옷을 사볼까 봐.
오늘의 노트를 요약할게.
1. 팬톤은 색의 공용어를 만든 기업이야. 1만 개가 넘는 색에 고유 번호를 매겨 전 세계 누구나 같은 색으로 소통할 수 있게 했지.
2. 대표적인 예가 기업의 로고색이야. 스타벅스의 초록색, 맥도날드의 노란색도 모두 팬톤의 컬러 매칭 시스템을 활용한 거야.
3. 팬톤은 색의 기준을 세우는 걸 넘어 색에 의미까지 부여했어. 1999년 팬톤 색채연구소를 세워 ‘올해의 색’을 발표하기 시작했지.
4. ‘올해의 색’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색을 선정해. 2023년의 비바 마젠타는 생명력 강한 연지벌레처럼 강인한 한 해를 보내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았어.
5. 팬톤은 환경, 젠더 등 사회적 메시지에 색이라는 언어로 힘을 보태는 활동도 하고 있어.
롱블랙 피플,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컬러 ‘비바 마젠타’ 마음에 들어? 슬랙에서 이야기 나눠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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