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오니 저를 이끌어 주소서!
나의 참 주인이시고 참 아버지께 드리는 사랑의 송가
이종희 마리아 64세 청주교구 영운동 성당
저의 집은 작은 시골 마을 큰 부농은 아니어도 화목하게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뿐 아니라
고모 삼촌들, 오빠 둘 그리고 고명딸인 저 이렇게 삼대가 함께 모여 사는 대가족이였습니다.
북적북적 해도 대가족 속에 정이 많았으며 할아버지의 밥상머리 교육으로
어른들로부터 예의 바르다는 말씀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저는 친정아버지를 미워하지는 않았지만 대가족 살림에 ‘입성이 날개다’ 하시며
할아버지 의복을 손질하시는 옆에서 잡아드리고 도와드리며 들일과 집안일을 하시는 엄마를
들일에서 빼 주시지 하는 어린 마음에, 엄마를 힘들게 하시는 장본인이 아버지 같아 못마땅히 여겼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다.’
칭송하였지만 욕심도 없어 작은아버지들에게 빼앗기기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이야기를 한적이 없어 아버지가 안 계신 줄 알았다고 사회 친구들이 말할 정도였어요.
아버지를 불러본 기억이 별로 없는 그런 제가 요즘은 ‘아버지’를 입에 달고 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우리 동네에 엄마와 우리 삼남매만 성당(공소)에 다녔습니다.
본당의 외국신부님은 어느나라에서 오셨는지는 모르지만 파란눈의 ‘미국신부님’으로 불렀으며
너무 좋으신 신부님을 일년에 한번 정도 뵈었던것 같아요. 엄청 아쉬웠습니다.
제 기억에는 중1때 본당을 처음 가보았는데 나중에 그것이 일일피정 임을 알았고
여름방학 때는 서울 우이동 명상의집으로 1박2일 피정도 보내 주셔서
그때 처음 서울 구경을 한 촌뜨기입니다.
어릴적부터 오랫동안 성당을 다녔음에도 교리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하느님’은 나중에 죽은 후에 심판이 있으니 죄를 지으면 안 된다는 것과
잘못하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심판론에 사로잡혀 두려움의 대상이셨습니다.
어느 날, 엄마는 어떻게 성당에 다니게 되셨느냐고 여쭈어보니
할머니께서 5일장에 다녀오셔서 장에서 들었다고 하시며 너나 다녀 봐라 하셨답니다.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입 하나 덜자고 어린 나이에 시집온 엄마는
성모님을 엄마라 부르고 마음속에 모시며 의탁하며 열심히 묵주기도로 사셨습니다.
주일 공소에 나가 예수님과 성모님과 함께하신 그 시간이 엄마에겐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이라고 하셨지요. 대 가족 맏며느리로 집안 살림과 들일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해방의 시간이며 생명이고 숨통이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희들 다 크고 나면 음성 꽃동네에서 봉사하고 싶다고 자주 입버릇처럼 말씀하였고
광 열쇠가 할머님께 있음에도 알뜰히 살림하시고 아껴 모은 절약미와 적은 금액이지만
꽃동네에 꾸준히 기부로 나눔을 실천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TV드라마에서 본 직장의 멋진 여사무원이 꿈인 저는 여상을 졸업하고
서울로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신앙심도 별로 없고 재미도 없이 다니던 성당을
가다 말다 하다가 뜸해졌고 냉담으로 이어졌습니다.
어른들의 주선으로 중매로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며 전업주부로 지냈습니다.
남편이 생활비를 꼬박꼬박 주었기 때문에 전혀 몰랐는데 사업 부진과 지인 빚보증 여파로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 받아 빚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태 큰 어려움 없이 살아온 저는 큰 충격 받았습니다.
다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원금과 이자에 쫓겼고 저의 경력은 단절된 상태고
집에서 고생하면 나중에 시집가서도 고생한다고 생각하신 친정어머니는
저에게 일을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닥치면 다 하게된다 하시며.
그야말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어느날 저의 사정을 아는 이웃이 좋은 곳 가자고 데려갔는데 개신교회였습니다.
몇 번을 갔지만 아무런 울림도 느낌도 없었습니다.
아, 나하고는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 잊고 살았던 성당을 찾아갔습니다.
수녀님과 면담을 하는데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동안 지은 많은 죄를 회개하고 열심히 성당에 다녔습니다.
성당 자매로부터 성령기도회 소식을 듣고 갔는데 처음엔 개신교 기도원에 온 줄 알았어요.
다니다 보니 그 분위기도 익숙해지고 열심히 온갖 기도에 열중했습니다.
앞으로 고령사회로 취업 전망이 좋다고 해 노인복지를 공부하는데
친구가 너는 아이들을 예뻐하고 좋아하니 아이들과 관련된 일을 권하여
특수학교 특수교육실무사로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그때부터 빌고 비는 기도에 맛 들여 각종 기도회며 세미나,
100단 묵주기도에 금요철야 기도에 각종 치유 피정과 타지역으로 원정 피정까지
다니며 하느님만 만난다면 제 현실의 모든 어려움을 단박에 해결해 주실거라는
내 뜻의 욕심으로 가득 차 기도의 노예살이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기도회에서 만난 자매들은 늘 매번 만날 때 마다 자랑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네, 환시를 보았네, 심령기도로 본인들이 만난 하느님을요.
피정때 확 뜨거웠다 식어지는 유효기간 몇일 안되는 그런 만남이 아니라
자매들이 뜨겁게 만난 하느님을 저도 무척 만나고 싶었습니다.
나는 왜 아직... ‘기도가 부족해서 그런가?’하며
너무나 하느님을 만나고 싶었기에 더욱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하느님은 아니 계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휴일인데도 코로나로 기도회도 못 가고 유튜브를 보는데
이해욱 신부님의 짧은 동영상을 보고, 눈이 번쩍! 귀가 쫑긋! 유레카!! 를 외치며
아, 나도 드디어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겠구나. 하며 설렘으로 좋아요를 누르니
거룩한 내맡김에 관련된 동영상이 계속계속... 너무나 희망으로 부풀어
신나게 시청하였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이 짧은 동영상이 거룩하신 아버지의 이끄심이라는 것을요!
정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을 몸이 먼저 알고 반응했나 봅니다.
솔직히 볼 것이 많은데 잘 알지도 못하는 신부님의 1시간 넘는 긴 동영상이였다면
처음부터 클릭도 안 했을 겁니다.
바로 카페에 가입했습니다.
정말 이런 카페는 처음 이였어요.
가입 인사를 하고 성전을 둘러보는 사이 바로 정회원이 되었대요.
다른 곳은 몇일이 걸리던데요.
‘성호경과 주님의 기도’를 꼭하고 들어오라 해서 그렇게 했고
‘필독! 신입회원방’ 1번 글을 꼭 읽어 보라 해서 보니 바로
신부님 말씀에 ‘내맡김의 영성’을 읽어 보지 않고 글을 읽거나 댓글에
참여하는 것은 장님이 지팡이 없이 길을 나서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부족한 저는 아무것도 모르니 처음부터 하라는 대로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책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내맡김 영성’ 글을 처음부터 읽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용어들도 다 친절히 안내되어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1도 의심하지 않고 하라는 대로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노안과 안구건조증이 심해저 모니터를 오래 보기가 불편했는데 책이 도착하여
제일 먼저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정말 너무나도 신기방기 했습니다.
<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의 특징 중의 하나는 어떤 일에든 ‘서두름’이 없다는 것이다. >
(창화살 58쪽)
그러면서 저의 부족함을 여실히 들어내는 일도 있었어요.
하느님을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서 그만, 서두르고 만 것이지요.
<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은 죄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 (창화살 66쪽)
또 이런 일도 있었어요.
<능구 3개월>을 신청하고 몇일이 지났을 때 죄짖고 성사보고 또, 또,
습관적으로 짖던 죄를 더 이상 죄 짖지 않게 죄로부터 보호받는 체험을 했습니다.
창화살에 있은 그대로를 체험했다고 놀랍고 신기하다고 흥분해서 성전지기님께 전화로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신 체험을 말씀드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 시간은 하느님이다! > (창화살 236쪽)
< ‘다음’은 하느님의 시간이다. 하느님의 시간을 넘보는 것은 큰 실례다.
우리의 시간은 오늘도 아닌 ‘지금’뿐이다. 그것도 ‘여기의 지금’일 뿐이다. > (창화살 188쪽)
거룩한 내맡김의 삶을 살기 전에 저는, 과거에 30%, 미래에 70%, 현재 0%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두려움에 떨고 살았습니다.
영적지도 신부님의 ‘하느님의 시간을 넘보는 것은 큰 실례다.’라고 점잖게 표현 하셨죠.
사실 저는 하느님의 시간을 훔쳐 산 도둑년 이였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순간 큰 충격에 휩싸여 철저히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인 지금,
‘지금 여기’를 살기로 결심하고 끊임없는 화살기도 성가를 부르며 노력하며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살이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 공기와 같은 존재가 바로 마귀다. > (창화살 258쪽)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알기 한참 전 일입니다.
성령기도회 피정때 봉사자로부터 받은 망연자실한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잡상인 출입금지 구역’ 기억나시죠.
상징적인 잡상인이 아닌 직접 ‘잡상인’을 만났던 사건입니다.
2박3일 피정때 봉사자 면담을 받던 중 면담이 마무리도 안 된 상태에
대뜸 나를 믿느냐고 질문하기에 “그럼요, 그러니까 면담 받으러 왔지요.” 대답을 하니
핸드폰 ‘자비의 예수님 성화’를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고 구입 하기로 했고
파견미사 때 축복받고 직접 가져가고 싶었지만 집으로 직접 배달해 준다고 해서 받았고,
다녀간 후 업자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와 만났는데 이야기 끝에
좋은 일을 하라고 해서 “어떻게 하는 건데요?” 하니
시골 성당에 제 이름으로 성화를 기증하는 거래요.
그 비용이 천만원 정도라고 했고요.
‘천만원’이라는 말은 듣는 순간 한마디로 ‘이것은 가짜다’ 였습니다.
저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다 아시는 주님께서 그러실 리가 없어.
그리고 일본 성지순례가 곧 마감되니 접수하라는 거예요.
그 당시 방사능 지수가 높다고 시끄러웠었는데 공짜로 가라고 해도
가고 싶지 않은데 막 서두르며 재촉했지만 시큰둥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1주일 전 다녀간 날이 생각나 참으로 어이가 없더라구요.
그제야 1주일 만에 제 정신이 돌아 온거죠.
마치 무당이 하는 행태인 것 같았어요.
저희 가정을 위해 기도를 해 준다고 성수를 뿌리며 심령기도와 해석을 해가며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심령기도가 참 신기하고 저는 못하니 무척 부러워했을 때예요.
성당에서 구입한 것, 교구 행사때 구입것, 성물들을 중국산이니 어둠이 붙었느니 하며,
심지어는 아들이 수학여행 때 사 온 에밀레종도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줬어요.
억장이 무너지는 것은 신부님께 축복받은 것인데 함부로 버려도 되냐고?
말 한마디 못 했다는 것, 그나마 위안이라면 집 근처 골목에 주차할 곳 없으면
평화문화회관(한국SGI)에 주차해도 된다고 했는데 다녀가면서 찜찜하다고 하길래
왕중에 왕, 만왕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인데 뭐가 어떠냐고
한 것이 그나마 아주 넘어가지는 않았네. 하며 위안했습니다.
마귀에 끌려다니다가 눈도 귀도 멀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다가 그야말로 정신을 차린거죠.
그때, 기도회에서 만난 자매가 생각이나 전화를 해서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더니
깜짝 놀라며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며 저보다 더 분개를 하는거예요. 그 자매도 수개월 전
성화를 구입했는데 가격이 터무니 없어 옥신각신 했데요.(기증 이야기는 없었음)
그 자매가 성령회 신부님께 말씀 드렸고, 다음달 피정때 여는 미사와 파견 미사 때
신부님께서 공개 사과 하셨고 봉사자 부부는 추방 되었고 잠잠했던 사람들이 전국 곳곳에서
수면 위로 떠올라 놀랬고, 아무 잘못 없으신 신부님께 나무나 죄송했습니다.
봉사자 남편은 회장도 역임한 나름 열심한 봉사자 부부인데 그렇게 추방되었습니다.
그 일로 저는 죄의식과 죄책감으로 엄청 괴로워했습니다.
하느님을 만나겠다고 몸과 마음이 아파 힘들게 찾아온 사람들에게
봉사자가 그럴 수 있냐며 엄청난 충격과 상처를 입었습니다.
너무나 아리고 아파 꽁꽁 싸매두어 숨도 못 쉬고 내면 깊숙한 곳에 밀쳐 숨겨 두었던,
애써 외면한 상처인데 그날 밤 댓글 쓰면서 엄청 울고울고 울고 울었습니다.
아버지의 때가 되시니 죄책감에 싸여있는 저를, 치유하여 주시고
깊숙이 가라앉았던 죄의 앙금도 한 톨도 남김없이 정화 해 주셨으며
큰 댐도 무너지는 것은 작은 구멍에서 비롯된다시며
“네가 그것을 막았다, 장하다.” 하셨습니다. 그 한 말씀에 해방감으로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입도 뻥끗 못 했었는데 그 이후 남의 이야기 하듯 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거룩하신 아버지의 섭리이셨으며 그 자매가 협력자였음을 알았습니다.
직장에서의 갑질도 아버지의 방식으로...
저는 어떤 문제가 있으면 맞서서 해결하기보다 숨거나 참거나 회피로
껍질 속으로 숨어 들어가 문제를 덮기 급급했습니다.
좋은 게 좋다고, 나만 참으면 되지 뭐, 하면서요.
전능하신 아버지께서는 한 말씀이시면 해결하시는 것을
저에게 “맞서 대응하라. 껍질을 깨고 나와라.” 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였더니 유치부 초임선생님의 실수로 제가 덕을 본 뜻밖의 선물까지 주셨습니다.
그 선물은 참으로 달달했고 제가 아버지의 사랑을 뜸북 받고 있음을 뼈속까지 알게 하셨고
이런 표현 써도 되나요, 밋치도록(오타 아닙니다) 아버지가 좋고 사랑스러우시며
애기들 예쁘면 깨물어 주고 싶잖아요, 꼭 그렇습니다.
제가 몇 사람 앞에서도 얼굴만 빨개지고 말도 못 하던 사람인데
앞이 깜깜해 안 보였는데 앉아있는 사람들이 막 보이고... ...일상이 체험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니 매일이 아버지 체험이며 거룩한 내맡김의 신비며 기적입니다.
직장 갑질 그 이후, 싫으면 싫다. 할 말을 하는 힘이 생겼으며 곳곳에 세워진 오류의
말뚝을 뽑고 이원론에서 벗어나 무경계의 삶으로 참평화를 얻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세상의 평화는 조건부 평화며 유한하여 그 조건이 깨지는 순간 와장창 무너지지만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화는 그야말로 참평화로 무한하고 깊고 안락하며 진정한 쉼, 안식입니다.
하느님을 도깨비방망이로 여기고 달라고만 했고
하느님의 뜻을 헤아린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고 내 힘(뜻)으로 열심히
남에게 피해 주는일 없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살면 잘 사는 줄 알고 살았던 저에게,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하고 내 뜻을 원하고 바라며 드리던 기도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아버지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오니 저를 이끌어 주소서"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오니 저를 이끌어 주소서!"라고 드리는
아버지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원하는 진정으로 최고를 원하는
‘최고의 청원기도’가 된것이지요.
<끊임없는 아버지기도>로 살다 보면 무형 성전에 가고 싶고
식구들의 댓글을 읽다 보면 저의 기도가 되어 아버지께 드려 올려지고
저의 댓글이 아버지사랑에 대한 고백이 되어 온통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주님, 부족한 저를 통하여 당신 마음껏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이 화살기도를 바치면 주님이 부족한 저를 통하여 찬미와 영광을
받으시려고 찬미와 영광 받드실 일만 계속 만들어 주십니다. > (창화살 346쪽)
그야말로 기도가 삶이 되고, 삶이 기도가 되는, 생활이 곧 기도, 인
‘기도의 생활화’로 저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 아버지께 드리는 찬미와 영광이 됩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 5,16~18)
이 모든 말씀이 가능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끊임없는 화살기도> 성가! 였습니다.
극 소심하고 의지도 박약하고 오기도 끈기도 없는 비실비실 나약한 제게
<거룩한 내맡김 영성>의 영적지도 신부님을 통하여 하느님아버지께서 주신,
영적으로 죽어가던 생명을 살리신 만병통치약!!
아무리 발라도 부작용도 없고 덧나지도 않는 <끊임없는 아버지기도>!!!였습니다.
백골난망입니다.
생명의 은인이신 영적지도 신부님의 모든 말씀을 저는,
거룩하신 신부님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받아 안고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하신다 해도,
”돌로 빵을 만든다.“ 하신다 해도,
”지금부터 하늘은 파란색이 아니라 빨간색이다.”라고 하신다 해도
감사한 마음으로 무한 신뢰와 굳센 믿음으로 믿고 따르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영적지도 신부님 삶을 충실한 따라쟁이로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이젠 제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제 안에 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2, 20)
성전에 성배조배실에 성지에 거룩한 어떤 특정 장소에 찾아가지 않아도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의 삶에서
“본래부터 제 안에 계셨던 나의 아버지를 찾아 얻고 그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사랑과 지혜로 ‘지금 여기’를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살이로 삽니다”
저와 함께 사시는 분이 제가 만난 살아계신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오늘도, <끊임없는 아버지기도>로 매 순간을 깨어 살겠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부족한 저의 증언을 통하여,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크게 드러내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이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첫댓글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 ‘다음’은 하느님의 시간이다. 하느님의 시간을 넘보는 것은 큰 실례다.
우리의 시간은 오늘도 아닌 ‘지금’뿐이다. 그것도 ‘여기의 지금’일 뿐이다. > (창화살 188쪽)
거룩한 내맡김의 삶을 살기 전에 저는, 과거에 30%, 미래에 70%, 현재 0%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두려움에 떨고 살았습니다.
영적지도 신부님의 ‘하느님의 시간을 넘보는 것은 큰 실례다.’라고 점잖게 표현 하셨죠.
사실 저는 하느님의 시간을 훔쳐 산 도둑년 이였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순간 큰 충격에 휩싸여 철저히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인 지금,
‘지금 여기’를 살기로 결심하고 끊임없는 화살기도 성가를 부르며 노력하며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살이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
사랑하는 작은강님,
내맡김의 영성을 알기 전에 여러가지 체험을 하며
아버지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기 위하여 아버지께서는 많은 것을
겪게도 하셨네요.
또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하여 여러 곳을 다니며 열심을 다하셨고요.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며 결국은 내맡김의 영성으로 초대해 주시어
지금여기를 살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 곳곳에는 어둠이 도사리고 있으며
그것을 막아주시는 분이 아버지이시며 아버지기도가
그것의 방패막이 된다는 것을 거내영을 통하여 알게 되니
거내영을 떠나서는 살 수 없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사랑하는 작은강님과 함께 식구로서 서로 함께 함이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우리 함께 아버지만을 더 뜨겁게 사랑하며 거룩하고 아름다운
이 길을 기즐행하며 살아요.
사랑하는 아버지,
작은강과 딸랑2 증언을 통하여 무한 찬미영광 받으시고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 선물은 참으로 달달했고 제가 아버지의 사랑을 뜸북 받고 있음을 뼈속까지 알게 하셨고
이런 표현 써도 되나요, 밋치도록(오타 아닙니다)
아버지가 좋고 사랑스러우시며
애기들 예쁘면 깨물어 주고 싶잖아요, 꼭 그렇습니다.
제가 몇 사람 앞에서도 얼굴만 빨개지고 말도 못하던 사람인데
앞이 깜깜해 안 보였는데 앉아있는 사람들이 막
보이고… …일상이 체험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니 매일이 아버지 체험이며
거룩한 내맡김의 신비며 기적입니다.>
아멘 아멘!!!
사랑하는 작은강님, ‘찌찌뽕!’ 이예요!
너무나 동감이예요!
저도 ‘밋치도록(오타 아닙니다)’에 동의해요!
어쩜 표현도 생생히 뼛속깊게 잘 하시는지요!
그때 증언하실 때도 넘 인상적이었지요!
함께여서 너무 좋고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아버지께 미친 자들 속에서 함께해서요!
부족한 저도 아버지께 완젼 미쳐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
증언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읽었지만 마치 생생히 들은 듯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작은강과 딸랑2 증언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세상의 평화는 조건부 평화며 유한하여 그 조건이 깨지는 순간 와장창 무너지지만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화는 그야말로 참평화로 무한하고 깊고 안락하며 진정한 쉼, 안식입니다. >
처음 사랑하는 작은강님을 뵈었을 때.
얼굴에서 빛이 났습니다.
겸손을 담은 그 모습!
아직도 선합니다.
유한한 인간이기에 유한에 만족하고,
스스로 조건을 만들어 조건에 안주하던 우리들의 삶 가운데,
무한이시고 전부이신 분 안에서 살아가는 기쁨을
생생이 귀엽고 사랑스럽게 증언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드려요!
매번 포럼때마다 식구들 앞에서 아버지
사랑을 뿜어 내실 때 제 가슴도 막 몽골 몽골
사랑이 샘솟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거쳐온 삶의 현장을 모두 다 사랑으로 품으시고,
날로 날로 아버지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으신
사랑하는 작은강님의 귀엽고 사랑스런 증언으로!
아버지를 찾아 헤메이는 영혼들이 아버지를 뜨겁게
만나게 될 것 임이 느껴져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귀한 증언 너무나 잘 정리해서 올려주심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작은강과 딸랑2 증언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삶을 살기 전에 저는, 과거에 30%, 미래에 70%, 현재 0%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두려움에 떨고 살았습니다.
영적지도 신부님의 ‘하느님의 시간을 넘보는 것은 큰 실례다.’라고 점잖게 표현 하셨죠.
사실 저는 하느님의 시간을 훔쳐 산 도둑년 이였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순간 큰 충격에 휩싸여 철저히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인 지금,
‘지금 여기’를 살기로 결심하고 끊임없는 화살기도 성가를 부르며 노력하며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살이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선물은 참으로 달달했고 제가 아버지의 사랑을 뜸북 받고 있음을 뼈속까지 알게 하셨고
이런 표현 써도 되나요, 밋치도록(오타 아닙니다) 아버지가 좋고 사랑스러우시며
애기들 예쁘면 깨물어 주고 싶잖아요, 꼭 그렇습니다.>
아멘!
작은강님의 거룩한 증언 참 편안하게 읽었습니다.
작은강님안에
“본래부터 제 안에 계셨던 나의 아버지를 찾아 얻고 그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사랑과 지혜로 ‘지금 여기’를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살이”를 사심에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따리쟁이하고 싶습니다.
<생명의 은인이신 영적지도 신부님의 모든 말씀을 저는,
거룩하신 신부님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받아 안고>
저도 예전에 근10년간 저를 상담해주시던 수녀님을 이렇게 생각하며 따랐지요.
그 수녀님께 지금도 감사하지만 어릴 적 상처를 파헤치고 분석하고 상처의 뿌리를 찾아내느라 근본 원인은 알았지만 제 상처를 보둠고 도닥여주지 못하고 버얼건 속살만 드러내놓고 치유는 되지 못했지요.
거내영에서는 이렇게 상처를 분석하지도 않았고 상담받지도 않았는데 <화살기도>로 아버지께 내맡기기만 했는데 상처들이 어떻게 치유가 될까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뜨거운 아버지의 사랑이 충만히 차오르면, 자기자신의 꼬라지도 보이고, 그동안 어디에서도 위로받고 공감받지 못하고 부둥켜안고 어쩔줄 모르던 상처들이 아버지의 충만한 사랑으로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 저절로 치유되는 현상을 보았습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지도사제의 말씀이 예수님이 지도사제를 통해 하신 말씀>이다 생각하고 철부지앵앵이로 따라쟁이하면 영적 성장이 훨씬 빠르다는 걸 압니다.
저도 이제 지도사제의 진심을 조금씩 느껴가고 있습니다.
처음엔 왕창!
그리고 아주 더디고 헤멨지만
@참생명.끊지
이제는 묵묵히 가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딸랑2>와 작은강의 모든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제가 몇 사람 앞에서도 얼굴만 빨개지고 말도 못 하던 사람인데
앞이 깜깜해 안 보였는데 앉아있는 사람들이 막 보이고... ...일상이 체험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니 매일이 아버지 체험이며 거룩한 내맡김의 신비며 기적입니다.>
아멘 아멘!!
사랑하는 작은강님,
님의 모습을 보면서 같이 했기에 공감이 갑니다.
작은강님 처음 만났을때의 이미지가 예의바른 생활이 몸에 베였고 다소곳한 모습과 세심하고 수줍은 소녀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정말 많이 활달하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에 말씀도 얼마나 잘 하시는지 몰라요.
처음의 작은강님이 아니라 많이 달라진 모습에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지요.
맡은일에 겸손되이 정확하게 협조하시는 님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보게 하지요.
너무나 순수하고 해맑은 애기같은 고운 마음을 지닌 소유자 작은강님 ~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
겸손하고 순수한 아름다운 내맡긴 영혼답게 잘 살아가시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울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작은강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오니 거룩하신 아버지를 닮은 영혼되게 이끌어 주소서.
아버지의 완사 완영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극 소심하고 의지도 박약하고 오기도 끈기도 없는 비실비실 나약한 제게
<거룩한 내맡김 영성>의 영적지도 신부님을 통하여 하느님아버지께서 주신,
영적으로 죽어가던 생명을 살리신 만병통치약!!
아무리 발라도 부작용도 없고 덧나지도 않는 <끊임없는 아버지기도>!!!였습니다. ]
[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세상의 평화는 조건부 평화며 유한하여 그 조건이 깨지는 순간 와장창 무너지지만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화는
그야말로 참평화로 무한하고 깊고 안락하며 진정한 쉼, 안식입니다. ]
[ 성전에 성체조배실에 성지에 거룩한 어떤 특정 장소에 찾아가지 않아도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의 삶에서
“본래부터 제 안에 계셨던 나의 아버지를 찾아 얻고 그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사랑과 지혜로 ‘지금 여기’를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살이로 삽니다”
저와 함께 사시는 분이 제가 만난 살아계신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
아멘!아멘!
사랑하는 작은강님,
올려주신 거룩한 증언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구절 구절 너무나 공감되어 다 옮겨오고 싶은 거를 참았네요~^^
너무나 맛깔나게 표현해주신 부분에서는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그 어느누구보다도
가입초기부터 충실한 따라쟁이로 잘 따라와 주셨음을 알기에
지금 이렇게 삶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삶이 되는
땅을 밟는 천국생활을 하시게 되신 거지요.
아버지 영광을 드러내드리는 복된 증언에 함께 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행복한 하루살이 살아가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작은강과 < 딸랑 2 증언 >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끊임없는 아버지기도>로 살다 보면 무형 성전에 가고 싶고
식구들의 댓글을 읽다 보면 저의 기도가 되어 아버지께 드려 올려지고
저의 댓글이 아버지사랑에 대한 고백이 되어 온통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
아멘!아멘!
사랑하는 작은강님,
감동의 증언에 감사와 사랑을 드립니다.
갑자기 이토록 좋은 곳을 버리고 나가는 이들이
너무도 불쌍한 마음이 듭니다.
사람 때문에 다쳐서 병원에 왔으면서도 그것이 그리워?ㅠㅠ
아버지를 안 보고 사람을 보니 그리 되겠지요.
아버지만 바라보는 작은강님과 함께라
작은강님의 표현대로 밋치도록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지리산 피정 때 그 밋치도록을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으셨던
사랑스런 모습이 감동으로 저에게 남아 있습니다.
죽도록 아버지만을 뜨겁게 사랑하며 끝까지 함께 갑시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작은강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크게 드러내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성전에 성체조배실에 성지에 거룩한 어떤 특정 장소에 찾아가지 않아도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의 삶에서
"본래부터 제 안에 계셨던 나의 아버지를 찾아 얻고
그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사랑과 지혜로 '지금 여기'를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살이로 삽니다"
저와 함께 사시는 분이 제가 만난 살아계신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멘아멘!
사랑하는 작은강님,
거룩한 증언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보,끊 피정때 님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만남이 떠오르네요.
그때도 님의 증언이 마음 깊이 남아 감동이었네요.
어린이 철부지 똥싸개가 되어 아버지만 졸졸 따라다니며 미주알
고주알 사랑을 속삭이신다고 하신
참으로 고운 아버지 사랑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지요.
함께여서 너무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부족하지만 아버지만 죽도록 사랑해 드리며 함께 해요.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거내영>과 작은강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극 소심하고 의지도 박약하고 오기도 끈기도 없는 비실비실 나약한 제게
<거룩한 내맡김 영성>의 영적지도 신부님을 통하여 하느님아버지께서 주신,
영적으로 죽어가던 생명을 살리신 만병통치약!!
아무리 발라도 부작용도 없고 덧나지도 않는 <끊임없는 아버지기도>!!!였습니다. ]
아멘!!! 아멘!!!
사랑하는 작은강님,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통해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소중한 증언글로 함께 나눠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철부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아버지께 충실히 이끌려 드리는 님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감이 되는지요~
부족한 저도 님의 따라쟁이가 되어
생명을 살리는 명약이며 만병통치약인 끊임없는 화살기도 안에서
더더욱 아버지만을 죽도록 뜨겁게 사랑해드리며
아버지 영혼 구원사업의 충실한 일꾼으로 이끌려 드릴게요.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작은강과 <딸랑 2중언>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거룩한 증언을 통하여 사랑을 보여주는 자애로우신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이것을 깨달은 순간 큰 충격에 휩싸여
철저히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인 지금,
‘지금 여기’를 살기로 결심하고 끊임없는 화살기도 성가를 부르며 노력하며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살이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세상의 평화는 조건부 평화며 유한하여
그 조건이 깨지는 순간 와장창 무너지지만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화는 그야말로 참평화로
무한하고 깊고 안락하며 진정한 쉼, 안식입니다.>]
아멘, 아멘!
사랑하는 작은강님, 거룩한 증언 나누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은 부분 공감하면서 맞아, 맞아 하면서 읽었어요. 어쩌면 그렇게 표현을 잘 하셨는지요.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과 안배로 ‘지금 여기’에서 아버지의 평화로 살고 있으니
저희는 찐 복자 입니다.
[<능구 3개월>을 신청하고 몇일이 지났을 때 죄짓고 성사보고 또, 또,
습관적으로 짓던 죄를 더 이상 죄짓지 않게 죄로부터 보호받는 체험을 했습니다.]
아멘! 아멘!
저도 최근에 이런 경험이 있었어요.
고해성사에 습관적으로 고해하던 죄를 더는 안 짓도록, 이끌어주시는 체험을 하였어요.
글을 읽으면서 작은강님의 아버지에 대한 순수한 뜨거운 사랑이 느껴져서
너무 행복해집니다.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저희 죽도록 아버지만 뜨겁게 사랑하며
서로 공명하여 끝까지 함께 가요.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작은강과 <딸랑 2 증언>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귀한 한 영혼의 증언을 이끄신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 선물은 참으로 달달했고
제가 아버지의 사랑을 뜸북 받고 있음을 뼈속까지 알게 하셨고
이런 표현 써도 되나요, 밋치도록(오타 아닙니다) 아버지가 좋고 사랑스러우시며
애기들 예쁘면 깨물어 주고 싶잖아요, 꼭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니 매일이 아버지 체험이며
거룩한 내맡김의 신비며 기적입니다.>
아멘,아멘!!!
참으로 순수영혼!
아버지의 젖먹이, 철부지, 똥싸개, 따라쟁이이신
우리 사랑하는 작은강님의 증언은
너무나 생생한 아버지를 향한 사랑가,
그 자체이십니다.
감동으로 잘 읽었습니다.
아버지의 구령사업의 영광의 도구가 되어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만 하실 우리 작은강님을
아주 기쁘고 행복하게 온 몸으로 안아드리겠어요~
사랑하는 아버지!
모든 사제와 <딸랑2증언>과 작은강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크게 드러내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