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대담원고는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발간하는 <함께 여는 국어교육>에 게재된 것입니다. 고용우 편집위원장(울산제일고)와 서면으로 대담한 것입니다. 아래의 잡지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전국국어교사모임, 함께 여는 국어교육, 2005 가을호(통권 65호), pp.186-230.
질문1. 먼저 좀 포괄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답변도 그런 차원에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현실에서 ‘통합 교과형’ 논술이 학교 교육에 어떤 작용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지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통합 교과형 논술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언급을 포함해도 좋습니다>
답 1. 통합교과형의 논술 시험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서울대학교에서도 아직 구체적인 예제를 제시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처음으로 그런 개념을 제시한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하지만 ‘통합 교과형 논술’하면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2개 이상의 교과 지식을 동원하여 꽤 긴 글로 답하는 시험’입니다.
‘통합교과’라는 용어는 낮선 것이 아닙니다. 흔히 사회나 과학교과를 통합교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동안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통합 교과형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대수능에서의 통합교과형 문제라는 것은 두개 교과 이상에서 학습한 지식을 동원해야 풀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지리교과에서 다룬 내용만으로 문제를 구성한 것은 ‘지리 교과의 문제’로 분류한 반면, 지리와 역사 또는 일반사회 내용을 섞어서 출제한 문제는 ‘통합 교과형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우리가 잘 알다시피 대수능의 문제는 소위 ‘선다형’입니다. 통합교과형 논술이란 바로 이런 선다형의 통합 교과형 문제의 형식이 ‘논술형’으로 변경된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선입견(?)에서 보면, 통합교과형 논술은 현장 학교교육에 상당한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선다형으로 이루어진 대수능에서도 통합교과형 문제를 도입할 때, 학교 현장에서는 상당한 혼란을 경험하였습니다. 어느 교사가 ‘통합교과’에 관련되는 다양한 학문적 지식에 자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각 교과를 담당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자신이 전담한 교과의 진도를 나가기도 벅찹니다. 이런 실정에서 대학입시를 걱정하는 학생들은 어디에 가서 누구로부터 ‘통합 교과형 문제 풀이’를 만족스럽게 배울 수 있겠습니까? 불안한 학생들은 전문 학원으로 달려갈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학교교육에 대한 불만은 증대되고 논술 관련 학원 사업이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질문2. 논술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 예고되면서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 논술 지도 방안을 모색하고 있고, 논술 학원에 학생들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교육 방송에서도 논술 강의 시간을 늘린다고 합니다. 논술을 가르쳐 본[출제해 본] 경험에 비추어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2. 너무나 자주 보아온 현상이라 그저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학부모나 학생의 이익추구 행위를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나는 명품을 소비하는 사람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논하는 것도 싫어합니다. 이왕이면 소비자들이 실질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우수한 ‘상품’을 생산하여 공급할 것은 걱정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이런 엉뚱한 가정을 해봅시다.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대학가면 뭐하나, 공부해서 뭐 하나’ 하면서 소위 교육열이 전혀 없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과도하다거나 ‘왜곡’되어 있다고 걱정하기 보다는 뜨거운 교육열이 있을 때에 우수한 교육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여 공급하도록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사회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회를 활용하여 한국민의 논술 능력-논리적 사고력, 창의적 사고력,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사교육 시장’ 탓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하여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교육 시장의 경제인이나 소비자를 탓하지 말고, 공교육을 통하여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완화내지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질문3. 논술은 독서를 중시하며, 통합교과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학습의 결과가 담겨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단시간에 가르친다는 것은 어쩌면 모순일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답 3. 논술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단기적 접근을 하는 자세에 있다고 봅니다. 글쓰기는 하루 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단시간 내에 ‘완성’하려는 욕구를 버리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가르치는 사람들이 마치 ‘비법’을 아는 순간부터 논술에 대한 걱정을 ‘종말’시킬 수 있는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필요한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공부에는 완성이 없다, 항상 진리에 대한 헝거리 정신을 가져야 한다’를 이해시키기 위한 것 아닐까요?
질문4. 논술과 관련하여 어떤 전략이나 프로그램 같은 것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실제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답 4. 어느 말이나 논리가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언론을 통하여 보도되는 전략들이나 대비책들은 매우 일반적인 수준에서 논의되는 것으로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원론적인 수준에서의 ‘전략’은 학생들이나 교사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질문5. 교육부에서는 학교 교육에서 논술 준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특히 국어과의 독서 작문 시간을 활용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부의 대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해주십시오.
답 5. 당연히 논술 준비는 학교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소위 사교육에 맡겨두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어과의 독서 작문 시간만을 활용한다는 발상을 보면,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이 아직 ‘논술교육’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국어과의 독서 작문 시간에 논술을 지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논술교육의 문제는 ‘국어과’에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논하고 기술할’ 주제나 대상에 문학이나 언어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논술의 핵심이 글쓰기의 형식과 관련된 테크닉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작문 시간에 글쓰기의 기본적인 테크닉을 가르치며, 틈틈이 글쓰기 실습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글쓰기의 본보기가 되는 명작을 읽어볼 수 있는 독서시간을 많이 마련해 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수준에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나는 논술의 핵심은 글쓰기의 ‘형식적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글의 ‘내용’에 담긴 저자의 ‘아이디어’에 있다고 봅니다. 글을 형식적으로 ‘아름답게’ 작성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치’있는 생각을 만들어내고 명확하게 표현해 내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논술교육의 목적은 ‘글쓰기의 잔재주’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현상이나 자연현상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생각하기’의 힘을 기르기 위한 것입니다. 지리, 역사, 경제, 과학 등의 교과를 통하여 학습한 학문적 지식을 활용하여 다양한 자연 및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보다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하여 문제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것입니다.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논술교육을 국어과 교육으로 한정하는 방안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교과’에서 논술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질문6. 질문 5의 내용과 관련하여 일부 교육청에서는 논술 지도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긴급하게 교사 연수를 기획하여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답 6. 크게 문제 삼을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논술을 지도할 수 있는 교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고, 우선 교사 연수를 통하여 논술을 지도할 수 있는 교사를 늘리는 것은 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너무 성급하게 추진하다가 졸속으로 흐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 우려됩니다.
그리고 ‘논술과목’을 새로 늘리거나, 그 과목을 특별히 담당할 ‘교사’를 새로 만들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지리, 역사, 과학, 미술 등 모든 교과에서 각기 주요 학습 주제에 대하여 ‘글쓰기’를 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논술 지도 연수를 받을 대상 교사를 선발할 때, 각 과목별 전공 교사가 고르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국어과 교사들만을 대상으로 논술 지도 연수를 할 것이 아니라, 지리, 역사, 과학, 미술, 가정 등 다양한 교과 전담 교사를 대상으로 연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제의 ‘핵심’입니다. 논술지도와 관련된 문제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현장 학교에서 실질적인 ‘논술 지도’를 하기 어려운 것은 논술을 지도할 수 있는 ‘실력’있는 교사가 없어서라기보다는, 그런 교사가 있다고 하여도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데 있는 것 아닐까요?
학생들의 논술 능력을 제고시키기 위해서는 학생들 스스로가 직접 글을 작성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작성한 글을 교사가 읽고 수정 보완할 사항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나라 교사들이 각기 담당하여 가르치고 있는 학생수가 너무 많아 소위 ‘피드백 서비스’를 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글쓰기 교육은 시간과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교육입니다. 제대로 된 논술 교육을 위하여서는 먼저 기존의 개별 교과목에서 교사가 ‘강의’해야 할 학습내용의 량을 줄이고, 학습주제에 대하여 서로 ‘토론’을 하고, 또 자기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을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학생들이 ‘토론’하고 ‘글쓰기’를 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사가 학생들의 글을 읽고, 수정보완 사항을 적어 학생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후자의 사항은 정부에서 공문으로 ‘요청’하고 ‘명령’한다고 하여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교사의 수를 늘리지 않고는 곤란합니다. 현재도 교사가 처리해야 할 업무가 가중한 상태 아닙니까? 정부에서도 재정의 제한이 있게 마련일 것이므로, 단번에 교사를 증원하기보다는 적어도 10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점차 증원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우선 지리, 역사, 경제, 과학 등의 분야에서 보조교사를 충원하여 해당 교과에서 주요 주제에 대하여 ‘논술’하기 연습을 해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조 교사는 기존의 교과 담당 교사의 ‘강의’와 학생들이 작성한 글을 읽고 ‘피드백’해주는 일을 도와 논술지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질문7. 최근에는 대학에서 실시한 논술 문제에 대해 과거의 본고사와 다를 바가 없다는 지적이 많았고, 특히 서울대학교의 통합교과형 논술과 관련하여 그런 지적이 크게 확산되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답 7. 나는 대학별 본고사를 반대합니다. 과거의 본고사와 다른 논술고사라고 하여도 현재 한국의 몇 개 대학에서 실시하는 그런 시험이나 서울대학에서 앞으로 실시하려고 하는 통합교과형 논술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나는 “대학별 논술고사는 철회해야” 라는 제목으로 한겨레 신문(2005년 7월 26일자)에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주장은 매우 간단합니다. 입학생을 선발한다는 목적으로 각 대학별로 지원자의 학력을 각기 ‘새로운 방법’으로 측정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대학 지원자가 제출한 서류에 나와 있는 ‘학력’ 자료를 ‘신뢰’할 수 없다고 대학별로 추가로 ‘학력’을 측정한다면서 ‘난리’를 치는 것은 대학의 에너지를 쓸데없이 낭비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보통 대학별 고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소위 ‘내신’ 성적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자료만으로는 ‘우수한’ 학생을 판별해내기 곤란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서울대학의 경우에는 내신 1등급과 대수능 1등급에 속한 학생들이 서울대학 모집학생수보다 많은데, ‘새로운 자료’가 없이는 입학생 ‘선발’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문제의식이 깔려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소위 통합교과형 논술시험을 치루면 그 명문대학의 ‘이름’에 부합하는 ‘우수한 자’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이왕이면 여러 가지 종류의 평가 자료가 있으면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문제는 전국의 학생들이 몇 개 대학의 입시방식 때문에 ‘창의적으로 생각해보기’는커녕 ‘입시경향’에 맞추려고 ‘난리’를 치는 과정에서 공부의 열의와 재미를 너무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봅시다. 소위 명문대학에서 뽑으려고 하는 학생들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정말 ‘필기’ 시험에서의 한두 점수 차이를 확인하려고 그렇게 많은 시간과 인력과 비용을 들여 대학별 고사를 치룰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언제부터인가 ‘심층면접’ 바람이 불었는데, 면접으로는 ‘우수한’ 학생을 알아보기가 어려운가요?
나는 이런 질문에 대하여 여러분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본받으려고 애를 쓰는 선진국의 유명대학에서는 우리가 현재 시행하고 있는 이런 식의 논술시험을 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들에서는 입학생을 어떻게 선발하는가를 보십시오. 지원자들로 하여금 입학지원서와 함께 에세이를 작성하여 제출하게 하지만, 우리처럼 ‘학력’을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교과외의 특별활동으로 무엇을 하였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처럼 학생들이 한날한시에 대학에 가서 ‘시험’을 치루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여유를 가지고 글을 작성하여 우편으로 대학에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교과의 ‘필기’ 점수만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과외 활동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리더십이나 봉사정신 등에서 남다른 차이점을 보이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 ‘공부만 잘하면 좋은 대학 간다’식의 유치한 사고를 버리고, ‘좁은 의미에서의 공부개념’을 바꾸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주어진 문제에 대하여 ‘정답’을 잘 정리하는 것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또 작은 아이디어라도 이를 현실사회에 실현하는데 요구되는 끈기와 용기를 높게 평가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질문8. 통합교과형 논술과 관련하여 우리 교육 여건상 어렵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답 8. 통합교과형 논술은 우리교육 여건상 어렵기도 하지만, 여건이 된다고 하여도 그런 논술을 굳이 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여러 교과를 ‘통합하는 사고’가 아니라 어떤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깊이 있게 분석하는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통합교과적 사고는 어떤 ‘전문 교과나 교사’를 통하여 ‘의도적’으로 길러질 수 있는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각 교과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관련된 주제와 문제를 치밀하게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모든 관련 교과의 지식들이 총동원되게 마련이고, 보다 나은 새로운 사고를 만들어나가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길러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8-1 통합교과형 논술이 가능하려면 가장 중요하게 갖추어져야 할 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해당되는 분만 대답)
8-1. 해당 의견 없음.
질문9. 결국은 모든 문제가 입시와 관련을 맺으면 논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학생 선발 방법은 없을까요?
답 9.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간단하게 생각해 봅시다. 논술은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반드시 학교교육에서 논술교육을 잘 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되니 지원체제를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전교과에서 주요 주제에 대하여 논리적인 글쓰기를 해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보조교사를 채용하여 각 교과에서 논술교육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논술 능력이 그냥 길러지는 것이 아니므로 관련 주제에 대하여 토론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보는 발표수업도 강조되어야 합니다. 각 학교의 내신에 글쓰기와 발표능력을 평가하여 반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학수학능력 시험에도 논술 문제를 각 교과마다 적어도 하나씩 출제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채점이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계속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참고로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전교과의 문제가 논술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A레벨 시험, 미국의 SATI(대학능력시험)에도 논술문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채점에 많은 전문가들이 동원되어야 하고 경비가 많이 들겠지만, 투자를 늘리지 않고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각 대학에서는 지원자의 ‘학력’을 보다 더 정확하게 ‘테스트’하기 위하여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시험은 없애야 합니다. 내신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점수를 활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학력만 볼 것이 아니라 교과외 활동 등의 업적을 통하여 리더십이나 봉사정신 정도 등을 평가하여 입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선진국에서 하고 있는 좋은 제도를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직 그럴 상황이 아니다 등의 핑계를 대면서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명문대학만 들어가고 보자’는 식의 사고를 바꿀 수 있도록 우리 각자가 적극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을 들어가고자 하는 우수한 인재들로 하여금 대학을 들어가는 것으로 공부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을 졸업하여 어떤 목표를 이루려고 계속 ‘연구’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가 대학의 졸업장이라는 증명서를 보고 ‘인재’를 뽑기보다는 실제로 할 수 있는 ‘실력’을 보고 인재를 뽑아 쓰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대학은 대학교육에 힘써야 합니다. 우수한 입학생을 고르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회가 믿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졸업생을 배출해야 합니다. 어떤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을 통과한 사람만 골라 졸업생을 배출해야 합니다. 대학은 고등학교에서 배출한 학생들의 실력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하면서 ‘새로운 평가’를 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하고, 기업에서는 대학졸업생의 실력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하면서 ‘특별한 채용시험’개발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상황이 계속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나라의 교육문제는 초등이나 중고등학교 학생의 경쟁력이 낮다는 데 있다기보다는 대학교육에서 경쟁국가보다 낮다는데 있습니다. 앞으로 교육문제에 대한 관심의 축을 대학입학으로부터 대학졸업으로 바꾸어 합니다. 이런 노력들이 쌓이면 학교교육은 자연스럽게 정상화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래도 인간 세상에 어디 ‘완벽한’ 것이 있겠습니까? 계속 점진적으로 문제를 개선해 나가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