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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동국대 문창과와 세종대 국문과에 합격한 문장 6기생 이승희입니다.
동국대 문창과 최종합격이 서울권 대학 치고는 빨리 나온 편이었어요. 동국대 발표가 나던 주 토요일이 숭실대 면접이었고 그 다음 주 토요일이 명지대 면접이었는데 마음 편히 안 갔어요. 근데 대학부자 연서를 보니 괜히 부러워지네요. 아무튼 동국대 결과가 빨랐던 덕분에 일찍 수능에 대한 부담도 덜어내고 심지어 수능 보면서도 푹 잤네요. 물론 7기 후배들은 그러지 말아요. 감독관 선생님들이 도장 찍어 주기도 전에 국사 ③으로 찍고 자는 저를 정말 한심하게 보셨거든요. 사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수능에 대한 압박감이 상상도 못할 만큼 컸어요. 제가 수능을 이렇게 마음대로 보고, 친구들 대학 잘 가라고 밑바닥 깔아 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단 한번도요.
중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나름 유망주였는데 고등학교에 와서 성적 떨어지는 게 정말 한순간이더라고요. 근데 자존심이 센 편이었던 저는 제가 고3이 되면 공부를 할 줄 알았어요. 그래서 별 생각 없이 2년을 보냈어요. 참 한심했죠. 그러다가 고3이 되기 전 마지막 방학이 왔어요. 성적은 오를 기미가 안 보이고, 매일 쏟아지는 잠과 전쟁하기도 바쁘고, 이러다가 내가 대학은 갈 수 있을지 모르겠고, 친구들과 그렇게도 개무시하기 바빴던 전대 조대가 얼마나 높은 대학이었는지 이제야 알겠고. 고3을 앞두고 나니까 정말 떡하니 현실이 보이더라고요.
그때 친구 연습장을 빌렸다가 우연히 문장 노트를 보게 됐어요. 예전부터 글 쓰는 거나,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또 외국어는 자신 없지만 언어는 어느 정도 성적을 유지했던지라 혹한게 사실이에요. 친구들도 네가 이 학원하고 잘 맞을 것 같다고 적극 추천해줬고요. 그때가 1월 초였어요. 공책 보니까 1월 달에 학원 다녀서 대학 가신 언니 오빠들이 몇 분 보이더라고요. 우물쭈물 하다가는 정말로 영영 기회를 놓치겠다 싶어서 그 날로 집에 가서 엄마와 아빠를 설득했어요. 그 다음날에 부모님이 학교에 오셔서 선생님들을 설득하셨고, 바로 학원을 등록했네요. 공책을 보고 학원에 등록하기까지 삼일 정도 소요된 것 같아요. 그만큼 한시가 급했거든요. 가장 좋았던 건, 문학에 대해 무지했던 제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게 된 거였어요. 솔직히 학교 문학시간에 배우는 건, EBS문제들이지 문학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학원에 왔을 때 진짜 문학을 배우는 구나 싶어서 좋았어요.
하지만 역시나 학교 선생님은 참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셨어요. 저 예체능으로 빠지겠다고 할 때 저희 엄마한테 그러셨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님~ 승희 그렇게 해서 절대 대학 못 가요! 전 분명히 말씀 드렸어요. 승희 절.대.로 대학 못 간다고. 나중에 저 탓하시지 마세요!”
네. 여기서 키포인트는 바로 절대로에요. 절대로 대학 못 간다던 제가 대학을 가고 말았거든요. 선생님이 어찌나 확신에 차서 말씀 하셨던지 저희 엄마는 아직도 저 말이 기억난다고 하시네요ㅎㅎ 뭐, 그때 교무실을 같이 가줬던 심화반인 친구는 입사제는 교수 자식들이 대학 가려고 있는 건데 네가 그걸로 대학을 가는 게 말이 되냐며 제게 핀잔을 줬을 정도니 말 다 나온 거죠. 게다가 학교 국어선생님이 제게 했던 말씀은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승희, 조대 문창과에 나희덕 시인 계시는 거 아는가?” 이러시기에 제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랬더니 그러시더라고요.
“그래, 조대 문창과 괜찮지. 나희덕 시인도 계시고. 나쁘지 않아~ 근데, 승희! 조대 문창과 나와서 뭐 할 건가?”
그래요. 나희덕 시인을 비하하신건지, 조대를 비하하신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참 기분 나빴어요. 그렇게 글 써서 고작해야 조대 가면 잘 간 거다. 근데 잘 가봤자 조대인데, 조대 나와서 뭐할 거냐고 비아냥거리시는 것 같아서 정말 기분 나빴습니다. 심지어 나중에 저 대학 합격한 거 아시고는 “그래서 승희는 조대 갔나?” 이러고 물어보셨다고 하더라고요. 끝까지 저는 조대 이상의 대학은 가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셨나 봅니다. ^^;
저희 학교에 문장인이 3학년만 4명 있었는데 그 중의 3명이 같은 반이 됐어요. 네. 담임선생님께는 아마도 저희가 눈엣가시였을 겁니다. 한번은 저희에게 그러시더라고요. 너희를 예체능으로 인정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렇게 백일장 한 번 가는 것도 저희는 목숨 걸고 다녔어요. 그만큼 제약도 심했고, 눈치도 많이 보였고요. 무엇보다 저희 바로 위에 선배가 없고 저희가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예체능으로 인정받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진짜 어쩌다가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글 쓰는 그런 게 뭐 예체능이냐 하는 소리 들으면 친구고 뭐고 절교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그런 대접 받고 분노할 때마다 학원 선생님들이 다독여주시고, 오히려 더 화내주시고 하셨던 게 저한테는 큰 위안이 됐던 것 같아요.
글을 쓰려는 저를 인정해주지 않으려는 주위 환경 때문에 정말 이 악물고 학원 다녔던 것 같아요. 근데 그런 것들 덕분에 더 열심히 글을 썼는지 고작 4개월을 다녔는데, 5월 달부터 상이 조금씩 터지기 시작했어요. 그 중에서 여러모로 가장 기억에 남는 상은 아무래도 세종 날 산문부 1등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 다녔던 백일장은 거의 2시간 반에서 3시간 정도는 줬었거든요. 근데 세종 날 글짓기는 한시간 반을 주더라고요. 글 쓸 자리 잡는데 30분 허비하고 나니까 딱 한 시간이 남는데,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이렇게 써서, 저렇게 써야지, 하는 생각조차 사치라고 느껴질 만큼 시간이 부족해서 정신없이 썼거든요. 근데 후배님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말고 쓰셨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깨달았는데, 나한테 시간이 부족하면 남한테도 부족한 거잖아요? 내가 시간이 부족해서 조금 덜 다듬어진 글을 냈다면, 남들도 그만큼 덜 다음어진 글을 내는 거에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기본기가 어느 정도냐에요. 평소에 필사 열심히 하고 선생님들이 알려주신 백일장 팁 같은 거 귀담아 듣고 그랬으면, 분명 도움이 되요. 자기 자신은 모르겠지만,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분명 어느 정도의 구색은 맞춰진 글을 낼 수가 있는 거죠. 세종 날 1등이라고 연락 받고 학교에서 친구 붙들고 소리 지르고 울먹이던 게 생각나네요. 연신 감사하다는 말만 해대서 저한테 연락 주신분이 엄청 웃으시더라고요ㅎㅎ 솔직히 아직도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몇 년간 글을 써왔던 아이들이나 예고아이들 틈에서 글 쓴지 네 달된 제가 산문부 1등을 할 수 있었던 건 정말로 모두 다 선생님들께 잘 배운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세종 날 글짓기에서 받은 산문부 1등상으로 세종대학교 국문과 문학특기자 전형에 원서를 낼 수 있었어요. 세종대에서는 보는 상이 워낙 적기도 했고, 1명밖에는 뽑지 않아서 별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됐으면 하는 마음은 있었죠. 동덕여대 1차를 붙었는데 세종대 면접과 겹치는 바람에 결국 세종대 면접을 보러 갔어요. 세종대 합격날 예비1번이란걸 확인하곤, 차라리 동덕여대를 갈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치더라고요. 예비 1번이라곤 하지만 이미 뽑힌 한 명이 다른 대학에 가지 않는 이상 제가 될 리도 없고 해서 별 기대는 안했는데, 운 좋게 제가 추가합격으로 붙게 됐네요.
백일장 다니면서 느낀 거지만,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데서 상이 터지고, 그 상 하나로 인해 대학을 가느냐 못 가느냐가 판가름 날 수 있는 것 같아요. 후배님들도 매 순간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상 하나에 울고 웃을 수 있잖아요.
여름방학 때부터 남쌤과 노쌤께서 고3을 맡으셨는데, 솔직히 말하면 저는 참 글을 지지리도 못 썼어요. 쓰기 싫은데 억지로 써서 저 스스로도 한심하다 생각되는 글을 썼던 적이 있는데, 남쌤이 그러셨거든요. 너는 어떻게 날이 갈수록 글을 못 쓰냐고. 그 말을 들은 게 여름방학 끝나갈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포기하긴 이른 것 같아서 실기 준비 묵묵히 했어요. 명예의 전당에 올라온 좋은 작품들 읽고 문장 같은 것도 좀 배우고, 좋은 묘사도 배우고, 또 남쌤께서 꽁트 써오라고 숙제 내주실 때는 꼬박꼬박 써갔고요. 정말로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숙제 잘 하는 거. 꼬박꼬박 글 쓰는 거. 9월초만 해도 정말 글을 못 쓰는 편이었는데, 못 써도 매일매일 꽁트를 한 편씩 쓰고, 혼나고, 고칠 점을 배우고 하다 보니까 저도 모르는 새 늘었나 보더라고요. 동국대 실기 보기 일주일 전이었을 거에요. 꽁트 두 편이 명예의 전당에 올랐는데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레 자신감이 붙었어요. 글을 쓰는 것도 재밌어지기 시작했고요. 실기보기 전에 갑자기 컨디션이 좋아진 것 같았어요. 길조였죠.
그런데 실기는 동국대학교 한 군데만 봐서 솔직히 기대를 안 하고 있었어요. 부모님이 서울권 대학만 원하셔서 단국대와 서울예대는 원서도 못 쓰게 하셨고, 숭실대는 세종대 면접과 겹쳐서 부득이하게 동국대학교만 실기를 보게 됐거든요. 경쟁률도 어마어마했고, 저는 제가 글을 못 쓴다는 걸 알고 있었고, 심지어 실기 보기 이틀 전에 많이 아파서 학교도 못 가고 학원에서 실기 준비도 못했던지라 실기를 포기하려고 했어요. 근데 실기 가기 바로 전날 밤에 씻은 듯이 낫는 바람에^^…… 그때 조금만 더 아파서 실기 보러 안 갔으면 어땠을지 아직도 아찔하네요.
정말로 기대 하나도 안하고 갔던 실기였고, 저는 실적 넣은 거에 희망을 걸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경험상 간 거였거든요. 사실 그래서 모험을 좀 했어요. 원래는 명예의 전당에 올라갔던 글을 실에 맞춰서 수정하려고 했는데, 막 쓰려고 하기 직전에 물건 하나가 떠오르는 거예요. 왜 전 실이라는 글제를 받고 탐폰에 달린 실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네요ㅋㅋ 미쳤나 봐요. 근데 결국 고민하다가 그걸로 글을 썼어요. 거의 모험이었어요. 어떻게든 수습해야겠다 싶어서, 남쌤이 백일장과 실기 팁으로 알려주신 것들은 모조리 다 동원하려고 애 많이 썼어요. 잘 기억은 안 나도, 소재가 흔한 소재는 아니다 보니, 수습만 잘 했으면 왠지 1차는 붙을 수 있겠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역시 남쌤의 백만불짜리 팁이 통했는지 믿기지도 않게 동국대 1차를 합격하고, 결국은 최종합격까지 하게 됐네요. 그저 경험삼아 가 보고 만족하려 했던 동국대였는데……. 사실 여쌤이 동국대는 3등급이 안정선이고 5등급은 글을 정말 잘써야 합격한다고 하셔서, 4.5등급인 저는 거의 반 체념하고 있었어요. 게다가 면접이 끝나고 교수님이 어디를 가든 계속 문학 하고 글 열심히 쓰란 식으로 말씀하셔서, 전 동국대 말고 다른 대학교 가서 글 쓰란 말로 알아들었거든요ㅋㅋ 진짜 조대 갈 내신으로 동국대를 갔다는 게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네요.
합격하고 작년 선생님들 계신 교무실에 찾아가서 당당하게 대학에 붙었다고 말하고, 동국대학교에 붙었다고 말했어요. 동국대학교에 붙었단 말에 작년 학년부장 선생님은 애써 평정심을 되찾으시며 1차 붙은 거냐고 물어보시다가 제가 최종합격이라고 하니까 넌 이제부터 작가라고 해주시기도 하셨고, 제가 절대로 대학 못 갈 거라고 확신하셨던 작년 담임선생님은 이제 서울여자 된 거냐고 참으로 싱그럽게 웃어주셨어요. 축하한다며 안아주시기까지 했고요. 물론 선생님들이 절 걱정하셔서 뜯어 말리셨던 거지만, 그래도 그 걱정에 어긋나는 좋은 결과 들고 교무실을 찾아가게 돼서 얼마나 행복하던지. 수능 보기 전까지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최종합격 한 사람은 전교에 저 하나 뿐이었는데, 아이들이 정말 많이 부러워하더라고요. 심지어 자기도 진작 문장이나 다닐 걸 그랬다고 신세한탄 하는 친구까지 있고요. 역시나 대학을 붙고 나니까 선생님들 태도부터가 달라지더라고요. 학교 선생님들 아마도 글 써서 대학 절대 못 갈 거라고 장담하실 텐데 그 말 믿지 마세요. 참고는 하되 믿지 말아요. 전국에 있는 대학이며 과가 모두 몇 갠데, 선생님들도 그거 다 아는 거 아닙니다. 오히려 전문적으로 문창과 준비를 해주는 학원 선생님들 말씀을 머릿속에 새기는 게 훨씬 도움될 거예요.
선생님들께서 학원 선생님으로 몇 년을 계셨는데요. 고작 고등학교 3년 다닌 저희가 알고 있는 지식하곤 비교할 수도 없죠. 게다가 혼자 글 쓰면 뭐가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잖아요. 또 누가 시키는 게 아닌 이상 잘 안하게 되기 마련이고요. 특히나 저는 누가 시키지 않으면 그냥 안 해버리는 스타일인데, 학원 선생님들 무서웠던 것도 도움이 컸어요. 게다가 나만의 글이 아닌, 다른 친구들의 글도 보게 되니까 나는 뭐가 잘못됐는지, 내게 부족한 건 뭔지, 나는 없는데 저 친구만이 가진 장점은 뭔지, 뭐가 좋은 글인지, 확연하게 알게 되요. 말로 수 백번 설명을 들어도 눈으로 한번 보는 거하곤 비교가 안 되잖아요. 명예의 전당 게시판의 가장 좋은 점은 그거인 것 같아요. 문장만의, 가장 큰 메리트랄까요?
무엇보다 대학을 떠나서, 그동안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문학적인 지식들을 알게 된 게 가장 좋았어요. 보통 막연하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만 하지, 그 과정을 자세히 알지는 못 하잖아요. 대부분 수박 겉핥기식으로 문학을 접하고요. 문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들 밑에서 문학을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또 잘 알지 못 했던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된 것도 좋았고요. 무엇보다 문학의 길을 걷기에는 그 길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던 제가, 용기내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려요. 그리고 제가 너무 못 미더워서 아빠가 불안한 마음에 학원에 자주 전화를 하셔서 귀찮게 해드린 것 죄송해요. 절대 학원이 못 미더웠던 게 아니라, 제가 못 미더우셨던 거랍니다ㅎㅎ
저는 문장을 다니길 잘 했다고 생각해요. 열 달 동안 제가 못 미더웠던 적이나, 제 길에 확신이 서질 않아 불안했던 적도 물론 있었지만 지금은 문장을 다니기로 했던 그 때의 제 선택이 무척이나 옳았다고 생각해요. 4.5등급의 내신으로 학원을 열 달 다니고 서울권으로 대학 간 게 아직도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문장을 다녔던 열 달이, 중요한 기로에서 많이 마음고생 한 만큼 가장 값진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저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했고, 제 부족한 점도 돌아보게 됐고, 또 평생 함께 글을 써 나갈 좋은 친구도 알게 됐고, 정말로 짧았지만 많은 걸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소중한 시간이었던 만큼 값진 추억 가지고 대학 가는 것 같아요. 후배님들께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값진 시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겪든, 그건 후배님들의 자산이 될 테니까요. 정말로 최금진 선생님, 문지원 선생님, 노양식 선생님, 박세미 선생님. 네 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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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축하한다. 어째 수기마다 학교의 탄압과 불신이 심했는지. 멀고 먼 길을 다 와서 듣는 얘기지만 네가 했을 마음 고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구나. 그런 만큼 크게 되어야 한다. 크게 이름 빛내고, 여보란 듯이 장학금도 받고, 잘 살아야 한다. 원장님이야 항상 애들 글 못 쓴다고 타박하는 ^^ 분이니잖냐. 늘 더 잘 쓰게 하려고 부족한 걸 채워주려고 하시느라 그런 거지, 내겐 우리 학원에서 너 소설 잘 쓰는 애 중 하나라고 얘기하셨다. 원장님 포스가 좀 장난이 아니잖냐. 거기에 네가 속았을 뿐. 대학 가서 봐봐라. 너만큼 글 잘 쓰는 애들 드물 것이니, 지금처럼만 노력하면 네가 원하는 건 얻을 것이다. ^^
추카추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니 너무 축하드려요.!!><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부러워요 흑흑..
언니 축하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