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나무와의 인연
우리 집 텃밭과 꽃밭은 생태학습장이고 식물들의 운동장이다. 텃밭 한켠에 엄(嚴)나무가 한 그루가 있다. 음나무라고도 부른다. 이 나무는 날카로운 가시로 자신을 무장하고 살아가고 있다. 가시를 달고 살아가는 이유는 엄나무에는 좋은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단다. 초식 동물들이 새 봄에 올라오는 새순을 뜯어 먹기 때문에 이러한 동물들의 접근을 방어하기 위해 가시를 가지고 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장미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한 보신책으로 가시를 사용한다. 이렇게 무서운 가시가 달려있어 사람들도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귀신들까지도 가시가 무서워 접근하지 못하거나 도망친다고 한다.
엄나무는 두릅나무과의 목본류로 전국 각지의 산기슭이나 골짜기에 많이 분포되는 나무이다. 개두릅이라고도 부르는 엄나무는 이름이 많다. 식용 및 약용 등 다양하게 이용된다. 한방에서는 관절염, 신경통, 만성 간염 등에 효능이 탁월하다고 한다. 새봄에 올라오는 새순은 독특한 맛과 향이 일품이다. 4월 중순부터 채취하는 새순은 나물로 무쳐 먹거나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은근한 매력에 더욱 정감이 가는 우리 토속 나물로 입맛을 돋운다. 닭고기와 궁합이 좋아 삼계탕이나 백숙을 할 때면 그 잎이나 나무 가지를 함께 넣어 삶으면 음식의 풍미와 격이 높아지는 지혜로운 나무이다.
우리 내외는 엄나무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 그 효용 가치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새순을 채취할 줄도 몰랐고 섭생은 더욱 몰랐다. 어느 날 내가 볼 일이 있어 집을 비운 사이 남편이 특수 장갑을 끼고 톱으로 나무 가지를 다 제거해 버렸다. 몸통만 남은 나무는 그래도 신기하게 봄이 오면 새순을 내밀었다. 친하게 지내는 선배 한 분이 우리 집에 놀러왔다가 이 나무를 보고 반색을 했다. 씀씀이가 많은 나무라고 소개를 하며 특히 새순의 맛에 대해 자신의 특별한 경험치를 누누이 설명하는데 그제야 귀가 솔깃했다. 노령의 시어머님이 요양 차 맏아들 집(우리 집)에 두 달 간 계셨을 때도 엄나무를 보시곤 귀한 나무라고 예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해마다 새봄에 새순이 올라오면 어머님께도 보내드리고 그 나물의 진가를 아는 선배에게도 약간 보낸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맛이었다. 두 번째부터는 그 쌉싸름한 매력을 알 것 같았다. 올해엔 그 나물 맛의 진가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올해엔 그 선배의 며느리가 시모를 위해 한 상자나 선물로 보내왔다고 정중히 사양하기에 주일 날 공소 어르신네 점심상에 초고추장과 올렸더니 인기가 하늘까지 치솟았다. 자연스레 점심상을 차리는 사람으로서 자긍심도 높아진다. 사는 재미중의 하나다.
첫댓글 시댁 마당에 엄나무 있어서 저도 한번 먹고는 반했어요. 새순 날때 따면서 매년 가시에 손 찔려요 ㅠㅠ
나무에서 나물을 얻는게 제법 많습니다. 엄나무순, 두릅, 가죽나무순, 초피나무순 등등 김창희 선생님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