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속았다구요? 그건 핑계가 아닙니다.

[최익제]

* 영화감상후기

정치에 속았다구요? 그건 핑계가 아닙니다.

    조금 늦었지만 지인 여러 명에게 표를 사서 나눠주고 함께 <건국전쟁>을 관람했다. 누구든 지금까지 영화를 보고 한 번쯤은 감동해서 눈물을 흘린 경우는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모든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끼고 누군가는 손수건을 꺼내 회한의 눈물을 닦아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물론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면 객석에서 박수가 터진다는 그런 영화를 본 적도 없을 듯하다. 개봉관마다 예외가 없다고 하는데 지나친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영화보고 박수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내가 이승만 대통령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반응을 쏟아낸다. 아마 이들의 박수는 역사적 편견과 무지에 대한 자책,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반가움이 가득 담긴 박수였을 것이다. 많은 관람객들이 다시 한번 더 보는 ‘N차 관람객’, ‘나만 보기 아깝다.’라며 표를 사서 주변에 돌리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생애와 업적을 다룬 다큐 영화, ‘건국전쟁’이야기다. 이 영화가 누적관람객 50만, 전국 상영관 400을 넘어섰고 네이버 실검 점수는 9,46이다. 이 정도면 흥행만 기준으로 하더라도 다큐영화로서는 초대박을 넘어 영화사의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게다가 결코 우연일 수 없어 보이는 것은 이 영화를 만든 김덕영 감독이 이승만 대통령이 임종하던 바로 그날 태어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 역시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이승만을 오랫동안 모르고 오해만 했다. 그래서 팩트만 보여줘도 이승만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이 바뀔 것이다.’라는 확신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일찍이 정치학자 티머시 스나이더(Timothy Snyder)는 ‘선거가 끝난 곳에서 폭정이 시작된다.’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지난 몇해 동안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난장판을 보면서 그의 명언을 실감하며 살았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이제 우리 국민들은 다시 그 시험대 위에 올라서 있다. 혹자들은 ‘서울의 봄’에 이은 ‘건국전쟁’을 영화정치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영화관람 후 좋은 글을 올린 유명 연예인에게 ‘이찍이~정떨어진다’로 시작되는 온갖 악플로 공격하는 사람들이 그 본색을 드러낸다. 이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불쌍한 군상들은 그대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건국전쟁’이 총선 판도를 뒤집는 스모킹건 이전에 잃어버린 한국인의 기억을 되찾는 ‘역사의 전쟁’이라 부르고 싶기 때문이다. 본시 영화는 장르에 따라 품격이 천양지차(天壤之差)다. 배우의 연기로 가득한 일반영화는 픽션이 전부지만 증언과 증인으로 가득한 다큐영화는 설명력과 호소력을 갖춘 팩트다. 작품성에서 이미 영화의 백미(白眉)라고 할만한 <건국전쟁>을 <서울의 봄> 따위와 비교한다는 건 웃기는 얘기다.

   아직 영화를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사전지식으로 이 글을 올린다. 그동안 이 나라 각계에 뿌리내린 좌파 선동세력들이 끊임없이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폄하하고 공격함으로써 국민들의 역사인식을 오염시킨 아이템들이다. 오늘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나치의 괴벨스가 울고 갈 사악한 혓바닥들이 지금 이 땅에 널려있다. 누구든 한번쯤은 속을 수 있다. 순진한 탓이다. 하지만 두 번 속으면 그때부터는 ‘바보’라고 부른다. 그래서 폴란드 정치학자 레세크 코와코프스키(Leszek Kolakowsky)는 ‘정치에 속았다는 것은 핑계가 되지 않는다. (In politics, being deceived is no excuse)’ 라는 말을 남겼다. 이제 이 영화가 밝힌 이승만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정리해 보겠다.

   (1) 이승만은 ‘정읍선언’으로 남북분단을 야기한 책임자다.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1945년 8,9월 먼저 38선에서 남북간 통행과 우편을 차단했다. 스탈린은 그해 9월 20일 북한주둔 소련군 사령관 슈킨에게 ‘한반도 북부에 소련의 이익을 영구히 구축할 정권을 수립하라.’고 지령을 내린다. 아직 이승만이 귀국하기도 전의 일이다. 이에 따라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사실상의 북한정권이 들어서고 토지국유화를 추진한다. 남한만의 단독정부라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승만의 정읍선언은 그 이듬해 4월에 나왔다. 분단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다고 해야 할까?

    (2) 친일파를 등용했다.

   이승만 정부의 부통령 이시영, 국무총리 이범석, 법무장관 이인, 문교장관 안호상 등 대한민국 초대내각 각료 대부분은 다 쟁쟁한 항일, 독립운동가들이다. 반면 북한은 공산주의에 협조한 인물이라면 과거를 묻지 않았던 결과 그들 내각에는 강양욱, 이승엽, 정국은 같은 친일 경력자가 상당수 있었다. 그런데 좌파들은 이승만 정부가 친일파 정권이었다고 억지를 부린다. 신생독립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던 암적 존재였던 좌익공산당 척결을 위해 노덕술같은 일제 악질경찰 조차 활용할 수밖에 없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비슷한 사정을 따진다면 이 나라 좌파들 역시 선대의 이력을 벗겨보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당시 총독부 관리를 제외하면 당장 나라의 행정을 담당할 훈련된 인적자원이 전무한 상태였고 이런 사정은 이미 미 군정에게도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어쩌면 이승만은 반일(反日)에 생애의 전부를 다 바친 인물이었다.

   (3) 6,25전쟁 때 서울을 버리고 혼자 도망간 런승만이다.

   미국 CIA 감청부서에서 기록한 1950년 6월 27일 이승만의 라디오 연설원본을 분석한 결과 연설 어디에도 ‘서울 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켜달라.’는 내용은 없다. 당시 무초 주한 미국대사가 ‘한반도를 떠나 망명정부를 세우라.’고 권유하자 이승만은 권총을 꺼내들고 ‘인민군이 들어오면 이 총으로 그들을 쏘고 마지막 한발은 내게 쏘겠다.’라고 말하며 끝까지 국토를 사수한 대통령이었다. 개전초 이승만의 한강도강은 국군통수권자로서 당연한 조치였다. 유사시 대통령이 공격전면에 서지 않는 것은 현대전의 상식이다. 하지만 김일성은 전쟁을 일으켜놓고 전세가 불리해지자 자신은 곧바로 중국 땅을 눈앞에 둔 압록강변 강계까지 도망갔고 가족은 모두 만주로 피신시킨다. 도대체 누가 도망자일까?

   (4) 미제의 앞잡이였다.

   미국은 당시 한반도에 관심이 없었다. 당시 미국인에게 한국은 지금 우리에게 아프리카 어느 구석이 끼어 있는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작은 나라 수준이었다. 이승만은 이런 미국을 상대로 한미동맹,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루어 내는데 성공한다. 주한미군 주둔, 한국군 증강, 8억 달러의 경제원조 등 약소국이 초강대국을 상대로 얻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다 받아낸 타고난 외교적 자질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70년 이상 100명 이상이 죽는 전투가 한반도에서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는 평화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건국 이후 지금까지 미국은 그 어떤 나라와도 이 정도의 파격적 동맹조약을 체결한 적이 없다. 어쩌면 그는 친미(親美)가 아니라 철저한 용미(用美)주의자였을 뿐이다. 그래서 다 망가진 나라를 잿더미 위에서 되살릴 수 있었다. 게다가 6.25전쟁 때 미국은 끊임없이 미국에 맞서는 이승만을 제거하기 위한 ‘에버레디 작전’까지 계획했다. 그런데도 좌파들은 이승만이 미국의 앞잡이였다고 억지를 부린다.

   (5) 독재자였다.

   만약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뒤엎는 독재체제였다면 의회와 언론의 역할이 철저하게 봉쇄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이승만 시대는 그 어떤 정권보다 가장 많은 선거를 통해 민의를 물었다. 또 한국 언론사에서 언론의 자유는 노태우 정권때 만큼 자유로웠다. 그가 독재자였다면 그의 장례식 때 서울 거리에 조문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아낙네들이 목놓아 통곡할 수 있었을까? ‘독재자 이승만’이라는 프레임은 당시 야당의 정치구호 속에서만 주로 등장할 뿐이지 국민들에게 이승만은 여전히 국부(國父)였다. 이승만은 평화선과 독도수호, 전체예산 20%를 배정했던 교육정책과 기적같은 6년 의무교육, 원자력 사업의 초석을 마련하는 등 1950년대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엄청난 업적을 이루어냈다. 해외원조를 가장 투명하게 민생에 쏟아부은 국가지도자는 이승만이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하다. 그리고 이승만은 하와이 망명 이후 모든 생계를 동포들의 도움으로 이어갔다. 하늘 아래 그 어떤 독재자도 자신의 치부(致富) 이외는 절대로 다른 흔적을 남길 수 없는 법이다.

   (6) 부정선거의 원흉이었다.

   1960년 4대 대통령 선거는 당시 민주당 조병옥 후보의 죽음으로 이승만의 당선은 이미 확정적이었다. 3.15부정선거는 이승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유당 극렬세력들이 벌린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공작이었다. 이승만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나이는 팔순을 훌쩍 넘긴 고령이었다. 평생을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독립운동에 바친 그에게 무슨 권력욕이 있어 이런 부정선거를 주도했겠는가? 부정선거를 막지못한 책임을 물을 수 있으나 원흉으로 몰아가는 것은 억지다. 이승만은 4.19가 일어난 뒤 부상당한 학생들을 병원으로 찾아가 위로하며 ‘내가 맞아야 할 총을 우리의 귀한 아이들이 맞았다.’라며 울었다. 그리고 곧바로 스스로 하야하는 용단을 내렸다.

   ‘이승만이 만든 레일 위를 박정희라는 열차가 달렸다.’ 마침내 100분 다큐의 클로징 멘트가 스크린에 떠올랐다. 클로징 멘트는 좌파의 끈질긴 선동 나팔에 여전히 졸고 있는 우리 시대의 수많은 뒤틀린 역사인식에 죽비처럼 내려치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자 상영관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 일행은 하나같이 이구동성(異口同聲)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아니 젊은 사람들이 봐야되는데’라고.....

   패역의 무리들이 토해내는 악다구니를 넘어서서 이제 이승만이 그토록 사랑했던 대한민국의 하루가 또 저물어간다. 그런데 오프닝 영상으로 나온 한반도의 야간위성사진 한 장이 머릿속을 맴돈다. 70년 전 이승만과 김일성으로 출발한 남과 북, 그런데 북은 여전히 암흑천지다. 3대 세습독재 아래 여전히 침묵, 굴종하는 2,500만 북한 인민들은 그대로다. 누가 한반도를 이런 천국과 지옥을 갈라놓았는가? 누가 한반도 남쪽 절반을 풍요와 자유의 나라로 만들었는가? 정답은 하나다. 출발선이 달랐고 건국의 기초공사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 건국 1세대, 아니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지우고선 절대로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없다. 자신들이 그 물을 마시고 잔뼈가 굵은 우물에 침을 뱉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 엄청난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에는 여전히 이승만을 기억하는 그 흔한 동상하나 기념관 하나 없다. 배은망덕(背恩忘德)이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악랄한 윤리적 야만을 이 시대 한국인들은 반성해야 한다. 2024년 2월의 오늘, 이같은 풍요와 자유를 누리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는 누구인가? 이승만이 만든 레일을 달린 박정희의 열차를 타고 온 사람들과 그들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다큐 <건국전쟁>은 졸고있는 우리 시대를 내려치는 죽비였다. * 2024.2.16. 글/최익제(敎博)

[정용운]

건국전쟁이란 영화도 있는가? 한번 보고 싶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