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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七十四回 囊瓦懼謗誅無極 要離貪名刺慶忌
제74회: 낭와가 비방이 두려워 비무극을 죽이고, 요리가 명예를 탐하여 경기를 찌르다.
話說,費無極心忌伯郤宛,與鄢將師商量出一個計策來,詐謂囊瓦曰:「子惡欲設享相延,託某探相國之意,未審相國肯降重否?」囊瓦曰:「彼若見招,豈有不赴之理?」無極又謂郤宛曰:「令尹向吾言,欲飲酒於吾子之家,未知子肯為治具否?託吾相探。」郤宛不知是計,應曰:「某位居下僚,蒙令尹枉駕,誠為榮幸!明日當備草酌奉候,煩大夫致意。」無極曰:「子享令尹,以何物致敬?」郤宛曰:「未知令尹所好何在?」無極曰:「令尹最好者,堅甲利兵也。所以欲飲酒於公家者,以吳之俘獲,半歸於子,故欲借觀耳。子盡出所有,吾為子擇之。」
한편, 비무극은 백극완을 시기하여 언장사와 함께 상의한 후 한 가지 계책을 꾸며서, 낭와에게 속여 말하기를, “자오(子惡 : 백극완)가 연회를 준비하여 저에게 부탁하기를 상국의 뜻을 알아 달라고 하니, 모르겠습니다만 상국께서 기꺼이 가시겠습니까?” 하니, 낭와가 말하기를, “그가 만약 나를 초대한다면, 어찌 가지 않을 리가 있겠소?” 했다. 비무극이 또 백극완에게 말하기를, “영윤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백극완의 집에게 술을 마시고 싶은데, 그가 기꺼이 술상을 준비하여 자기를 맞이할지 몰라 나에게 알아보라고 부탁했습니다.” 하니, 백극완이 그 계책을 모르고 응답하기를, “저의 지위가 하급자인데 영윤께서 저희집에 오신다면 진실로 영광이지요! 내일 간략한 주연을 마련하여 영윤을 모시겠으니, 번거롭겠지만 대부께서 저의 뜻을 전해주십시오.” 했다. 비무극이 말하기를, “그대는 영윤을 접대할 때 무엇으로 존중을 표할 것입니까?” 하니, 백극완이 말하기를, “영윤께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제가 알지 못합니다.” 하니, 비무극이 말하기를, “영윤께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입니다. 그래서 그대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싶어하는 까닭은 오나라에서 노획한 병장기 중에서 반이 그대에게 돌아갔으니, 그래서 잠깐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가지고 있는 병장기들을 모두 내어 보여주면 제가 그대를 위해 선택하겠습니다.” 했다.
郤宛果然將楚昭王所賜,及家藏兵甲,盡出以示無極。無極取其堅利者,各五十件,曰:「足矣。子帷而寘諸門,令尹來必問,問則出以示之。令尹必愛而玩之,因以獻焉。若他物,非所好也。」郤宛信以為然,遂設帷於門之左,將甲兵置於帷中。盛陳肴核,託費無極往邀囊瓦。囊瓦將行,無極曰:「人心不可測也。吾為子先往,探其設享之狀,然後隨行。」無極去少頃,踉蹌而來,喘吁未定,謂囊瓦曰:「某幾誤相國。子惡今日相請,非懷好意,將不利於相國也。適見帷兵甲於門,相國誤往,必遭其毒!」
백극완은 초소왕에게서 받은 무기와 자기 집에 있던 무기들을 모두 꺼내어 비무극에게 보여주었다. 비무극이 그중에서 견고하고 날카로운 것 50개를 골라 주며 말하기를, “이것이면 충분하겠습니다. 그대는 이것들을 여러 문 앞에 장막으로 가려 놓고 있다가 영윤께서 오셔서 물으시거든 즉시 꺼내서 보여 주십시오. 영윤께서 틀림없이 좋아하고 아끼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바치십시오. 만약 다른 물건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백극완이 그렇게 믿고 생각하여 즉시 문 왼쪽에 장막을 치고 무기를 가져다가 그 속에 두었다. 드디어 술안주와 과일을 성대하게 준비하고 비무극에게 낭와를 모셔 오라고 부탁했다. 낭와가 장차 가려고 하니, 비무극이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은 알 수가 없으니, 제가 영윤을 위해 먼저 가서 연회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따라가시지요.” 했다. 비무극이 간 지 얼마 후에 비틀거리며 오더니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낭와에게 말하기를, “내가 하마터면 상국을 그르치게 할 뻔했습니다. 자오(백극완)가 오늘 청한 것은 좋은 뜻을 품고 한 일이 아닙니다. 상국께서 가신다면 이롭지 않겠습니다. 제가 마침 문 옆의 장막 속에서 무기와 갑옷을 보았습니다. 상국께서 잘못하다가는 틀림없이 그 독수를 만날 것입니다.” 했다.
囊瓦曰:「子惡素與我無隙,何至如此?」無極曰:「彼恃王之寵,欲代子為令尹耳。且吾聞子惡陰通吳國,救潛之役,諸將欲遂伐吳國,子惡私得吳人之賂,以為乘亂不義,遂強左司馬班師而回。夫吳乘我喪,我乘吳亂,正好相報,奈何去之!非得吳賂,焉肯違眾輕退?子惡若得志,楚國危矣。」囊瓦意猶未信,更使左右往視,回報:「門幕中果伏有甲兵。」囊瓦大怒,即使人請鄢將師至,訴以郤宛欲謀害之事。將師曰:「郤宛與陽令終、陽完、陽佗,晉陳三族合黨,欲專楚政,非一日矣。」
낭와가 말하기를, “자오(백극완)는 평소에 나와 원수진 일이 없는데 어찌 그렇게 하겠는가?” 하니, 비무극이 말하기를, “그는 왕의 총애를 믿고, 대감을 대신하여 영윤을 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들으니, 잠읍(潛邑)의 싸움에서 여러 장수가 오나라를 치려고 했으나, 백극완이 몰래 오나라와 통하여 뇌물을 받고, 내란을 틈타 공격하는 것은 의롭지 않다면서 좌사마 심윤수를 강압하여 회군하여 돌아왔다고 합니다. 오나라가 우리의 국상을 틈타 쳐들어왔으니, 우리도 오나라의 내란을 틈타 쳐들어가면 좋은 보복이 될 것인데, 어찌하여 회군했을까요! 그가 오나라의 뇌물을 받지 않았다면 어찌하여 군사들의 뜻을 어기고 가벼이 퇴각했겠습니까? 백극완이 만약 뜻을 얻으면 초나라는 위태로워질 겁니다.” 했다. 낭와가 그래도 믿지 못하고, 좌우의 측근에게 가서 살펴보라고 했다. 측근이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대문 옆의 장막 속에 과연 무장병이 숨어 있었습니다.” 했다. 낭와가 대로하여 즉시 사람을 시켜 언장사를 불러오게 하여, 백극완이 음모를 꾸며 자기를 해치려고 한다고 호소했다. 언장사가 말하기를, “백극완은 양영종(陽令終), 양완(陽完), 양타(陽佗) 등과 진진(晉陳)의 삼족(三族)과 합당하여 초나라의 정권을 잡기로 한 것이 어제오늘이 아닙니다.” 했다.
囊瓦曰:「異國匹夫,乃敢作亂,吾當手刃之!」遂奏聞楚王,令鄢將師率兵甲以攻伯氏。伯郤宛知為無極所賣,自刎而死。其子伯嚭,懼禍逃出郊外去了。囊瓦命焚伯氏之居,國人莫肯應者。瓦益怒,出令曰:「不焚伯氏,與之同罪!」眾人盡知郤宛是個賢臣,誰肯焚燒其宅,被囊瓦逼迫不過,各取禾藁一把在手,投於伯氏門外而走。瓦乃親率家眾,將前後門圍住,放起大火。可憐左尹府第一區,登時化為灰燼,連郤宛之屍,亦燒毀無存。盡滅伯氏之族。
낭와가 말하기를, “다른 나라에서 도망쳐 온 필부가 감히 난을 일으키려 하니, 내가 당장 요절을 내겠다.” 하고, 즉시 초소왕에게 아뢰고 언장사에게 명하여 무장병들을 인솔하여 백극완을 공격하게 했다. 백극완은 비무극의 함정에 빠졌음을 알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그의 아들 백비(伯嚭)는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교외로 달아났다. 낭와가 백씨의 집을 불사르라고 명했으나 백성들은 아무도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낭와가 더욱 화를 내어 명령하기를, “백씨의 집을 불사르지 않는다면, 같은 죄로 다스리겠다!” 하니, 여러 사람이 모두 백극완이 어진 신하임을 알고 있어서 아무도 그 집을 불태우려고 하지 않았으나, 낭와의 핍박에 어쩔 수 없이 각각 볏짚을 한 단씩 손에 들고 백씨의 집 문밖에 던지고 달아났다. 낭와가 친히 그의 가병들을 이끌고 백씨 집의 앞뒤 문을 포위하고는 큰 불을 질렀다. 가련하게도 좌윤부(左尹府) 제일 구역은 일시에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백극완의 시체도 또한 불에 타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낭와는 백씨 종족들을 남김없이 멸족시켰다.
復拘陽令終、陽完、陽佗、晉陳,誣以通吳謀叛,皆殺之,國中無不稱冤者。忽一日,囊瓦於月夜登樓,聞市上歌聲,朗然可辨。瓦聽之,其歌云:「莫學郤大夫,忠而見誅,身既死,骨無餘。楚國無君,惟費與鄢,令尹木偶,為人作繭。天若有知,報應立顯。」瓦急使左右察其人不得。但見市廛家家祀神,香火相接,問:「神何姓名?」答曰:「即楚忠臣伯郤宛也。無罪枉殺,冀其上訴於天耳。」左右還報囊瓦。瓦乃訪之朝中,公子申等皆言:「郤宛無通吳之事。」瓦心中頗悔。
그리고 양영종, 양완, 양타 및 진진을 잡아들여 그들이 오나라와 내통하여 모반을 꾀했다고 무고한 후에 모두 죽였다. 백성 중에 낭와를 원망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낭와가 달밤에 누각에 올라가서 시중에서 부르는 노래를 듣었는데, 노래소리가 또렷하여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낭와가 들어보니 그 노래에 이르기를, “극대부를 본받지 말아라. 충성을 바쳤으나 죽임을 당했다. 몸은 이미 죽었는데, 뼈도 남지 않았네. 초나라는 임금이 없고, 오직 비무극과 언장사만 있을 뿐이라, 영윤은 나무 인형이라, 위인이 스스로를 묶는 누에고치라. 하늘의 뜻을 만약 알고 있다면, 보답을 받아 그의 이름이 드러나겠지.” 했다. 낭와가 급히 좌우시종을 시켜 노래를 부른 사람을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시장의 가게마다 신위를 모시고 향불을 피워 서로 맞닿은 것을 보았다. 시종이 묻기를, “신위는 누구의 것인가?” 하니, 백성이 대답하기를, “초나라 충신 백극완입니다.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죽었으니 하늘에 호소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했다. 좌우시종이 돌아와 낭와에게 보고했다. 낭와가 조당에 나가자 공자 신 등이 모두 말하기를, “백극완은 오나라와 내통하지 않았습니다.” 했다. 낭와가 마음속으로 매우 후회했다.
沈尹戍聞郊外賽神者,皆咒詛令尹,乃來見囊瓦曰:「國人胥怨矣!相國獨不聞乎?夫費無極,楚之讒人也,與鄢將師共為蒙蔽。去朝吳,出蔡侯朱,教先王為滅倫之事,致太子建身死外國,冤殺伍奢父子,今又殺左尹,波及陽晉二家,百姓怨此二人,入於骨髓。皆云相國縱其為惡,怨詈咒詛,遍於國中。夫殺人以掩謗,仁者猶不為,況殺人以興謗乎?子為令尹,而縱讒慝以失民心,他日楚國有事,寇盜興於外,國人叛於內,相國其危哉!與其信讒以自危,孰若除讒以自安耶?」囊瓦瞿然下席,曰:「是瓦之罪也。願司馬助吾一臂,誅此二賊!」
심윤수도 백성들이 교외에 신위를 모셔 놓고 영윤을 저주한다는 소문을 듣고 즉시 낭와를 찾아와서 말하기를, “나라 사람들이 모두 원망하고 있는데, 상국만 홀로 듣지 못했습니까? 비무극은 초나라의 참소꾼입니다. 언장사와 공모하여 초나라를 속여 왔습니다. 조오(朝吳)를 돌려보냈고 채나라 군주 주(朱)를 나라 밖으로 내쫓았으며, 선왕 평왕을 교사하여 패륜의 일을 행하게 하고 태자 건을 나라밖에서 죽게 했습니다. 또한 오사 부자를 억울하게 죽였고, 오늘 또 좌윤 백극완을 죽여서 그 여파가 양(陽)과 진(晉) 두 집안에 미쳐 백성들은 두 사람에게 대한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 있습니다. 모두 말하기를 상국이 비무극의 악행을 방조하고 있다며 원한과 저주가 나라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무릇 비방을 막으려고 사람을 죽이는 일은 어진 사람은 하지 않는데, 더구나 비방하는 말을 만들어서 사람을 죽였습니까? 대감께서 영윤의 자리에 있으면서 간특한 참소꾼을 내버려두어 민심을 잃었으니, 앞으로 초나라에 긴급한 일이 일어나 나라 밖의 적이 쳐들어오거나 나라 안의 백성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상국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참소꾼의 말을 믿어 스스로를 위태롭게 하는 것과 참소꾼을 제거하여 스스로 편안해지는 것은 어느 것이 낫습니까?” 하니, 낭와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내려와 말하기를, “그 일은 나의 잘못입니다. 원컨대 사마께서 저의 한 팔이 되어 도와주시면 그 두 도적을 죽이겠습니다.” 했다.
沈尹戍曰:「此社稷之福,敢不從命!」沈尹戍即使人揚言於國中曰:「殺左尹者,皆費鄢二人所為,令尹已覺其奸。今往討之,國人願從者皆來!」言猶未畢,百姓爭執兵先驅。囊瓦乃收費無極鄢將師數其罪,梟之於市。國人不待令尹之命,將火焚兩家之宅,盡滅其黨,於是謗詛方息。史臣有詩云:「不焚伯氏焚鄢費,公論公心在國人。令尹早同司馬計,讒言何至害忠臣!」又有一詩,言鄢費二人一生害人,還以自害,讒口作惡,亦何益哉?詩云:「順風放火去燒人,忽地風回燒自身﹔毒計奸謀渾似此,惡人幾個不遭屯!」
심윤수가 말하기를, “이는 나라의 복이니, 어찌 감히 명에 따르지 않겠습니까!” 하고, 즉시 사람을 시켜 나라 안에 외치게 하기를, “좌윤 백극완을 죽인 것은 모두 비무극과 언장사의 짓이다. 영윤께서 이미 그 간계를 깨달아 오늘 가서 죽이려 하니 백성 중에서 원하는 자는 모두 나서기 바란다.” 하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성들이 다투어 병장기들을 쥐고 앞장섰다. 낭와가 곧 비무극과 언장사를 잡아 죄를 나열하고 참수하여 시가지에 효수하였다. 백성들이 영윤의 명을 기다리지 않고 비씨와 언씨의 집을 불사르고 그 일당들을 모두 죽였다. 그러자 비방과 저주가 비로소 그쳤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백씨들의 집은 태우지 않고 언씨와 비씨의 집은 태웠으니, 공평한 의견과 마음은 백성들에게 있었다. 영윤이 일찍이 사마와 계책을 의논하였더라면, 참소하는 말이 어찌 충신을 해쳤겠는가?” 했다. 또 다른 시가 있어, 언장사와 비무극 두 사람이 일생 동안 사람을 해치다가 결국 스스로를 죽였으니, 참소와 악행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라는 시를 지어 이르기를, “순풍에 불을 질러 사람을 태워 죽이더니, 갑자기 바람이 돌아 자신을 태웠다. 악독한 계책은 모두가 이와 같이 되나니, 악인이 조난을 피할 수는 없다.” 했다.
再說,吳王闔閭元年,乃周敬王之六年也。闔閭訪國政於伍員,曰:「寡人欲強國圖霸,如何而可?」伍員頓首垂淚而對曰:「臣,楚國之亡虜也,父兄含冤,骸骨不葬,魂不血食,蒙垢受辱,來歸命於大王,幸不加戮,何敢與聞吳國之政?」闔閭曰:「非夫子,寡人不免屈於人下。今幸蒙一言之教,得有今日,方且託國於子,何故中道忽生退志?豈以寡人為不足耶?」伍員對曰:「臣非以大王為不足也。臣聞『疏不間親,遠不間近。』臣豈敢以羈旅之身,居吳國謀臣之上乎?況臣大讎未報,方寸搖搖,自不知謀,安能謀國?」
한편, 오왕 합려(闔閭) 원년은 주경왕 6년(기원전 514년)이다. 합려는 오원을 방문하여 국정을 상의하며 말하기를, “과인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여 천하를 제패하고자 하는데 어찌하면 되겠소?” 하니, 오원이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며 대답하기를, “저는 초나라에서 도망쳐 온 사람입니다. 부친과 형이 억울하게 죽은 원한을 품고 해골은 장사도 지내지 못했으며, 혼백은 제사도 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더러움과 치욕을 무릅쓰고 대왕께 몸을 의탁하러 왔습니다. 다행히 죽임을 당하지 않은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감히 오나라의 정사를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합려가 말하기를, “장군이 아니었다면 과인은 남의 밑에서 몸을 굽히는 처지를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오. 지금 다행히 장군의 한마디 가르침에 따라 오늘과 같이 오나라의 왕위에 오를 수 있었소. 내가 오나라의 국정을 그대에게 맡기려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중도에서 갑자기 뜻을 버리려고 하시오? 과인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오?” 하니, 오원이 대답하기를, “신은 대왕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이 듣기로 ‘소원한 사람은 친한 사람을 갈라놓을 수 없으며, 멀리 있는 사람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갈라놓을 수 없다’라고 합니다. 신이 어찌 감히 나그네의 몸으로 오나라의 신하들 위에 있겠습니까? 하물며 신은 원수를 갚지 못하여 마음이 흔들려서 제 일도 꾀하지 못하는데, 어찌 능히 나라의 일을 꾀하겠습니까?” 했다.
闔閭曰:「吳國謀臣,無出子右者,子勿辭。俟國事稍定,寡人為子報仇,惟子所命!」伍員曰:「王所謀者,何也?」闔閭曰:「吾國僻在東南,險阻卑濕,又有海潮之患,倉庫不設,田疇不墾,國無守禦,民無固志,無以威示鄰國,為之奈何?」伍員對曰:「臣聞治民之道,在安居而理。夫霸王之業,從近制遠。必先立城郭,設守備,實倉廩,治兵革,使內有可守,而外可以應敵。」闔閭曰:「善。寡人委命於子,子為寡人圖之。」伍員乃相土形之高卑,嘗水味之鹹淡,乃於姑蘇山東北三十里,得善地,造築大城,周迴四十七里,陸門八,象天八風,水門八,法地八聰。
합려가 말하기를, “오나라의 신하 중에는 그대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으니 사양하지 마시오! 나라의 사정이 안정되면 과인이 그대의 원수를 갚도록 도와주겠소. 그대는 오직 내 명령을 따라 주시오!” 했다. 오원이 말하기를, “대왕께서 꾀하려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니, 합려가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동남쪽에 치우쳐 있으며, 땅이 험하고 낮아 습지가 많소. 또한 해마다 바다의 조수 때문에 피해가 많으며, 창고가 부족하고 전답이 개간되지 않았소. 그리고 나라를 지키려는 백성들의 확고한 의지가 없어서 이웃 나라에 위엄을 보이지 못하고 있소. 어떻게 하면 되겠소?” 했다. 오원이 대답하기를, “신이 듣기에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은 백성이 편안하도록 다스려야 하며, 패왕이 되기 위해서는 가까운 데서부터 먼 곳을 제압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성곽을 세워 수비 시설을 마련하고, 창고를 채운 후에 군사를 훈련하여 안으로 지킬 수 있고 밖으로 적군에 맞설 수 있어야 합니다.” 하니, 합려가 말하기를, “훌륭한 생각이오. 과인이 그대에게 맡기니 그대는 과인을 위해 도모해 주시오.” 했다. 오원은 즉시 오나라 땅의 높고 낮은 곳을 살피고, 물맛이 짜고 담백한지를 맛본 후에 고소산(姑蘇山) 동북 30리 되는 곳에 좋은 땅을 얻어 큰 성을 축조했다. 둘레는 47리에 달하고 육지에 여덟 개의 문을 냈는데 그것은 하늘의 팔풍(八風 ; 팔방의 바람)을 본받았고, 수문도 여덟이었는데 이는 땅의 팔총(八聰)을 의미했다.
那八門:南曰盤門蛇門,北曰齊門平門,東曰婁門匠門,西曰閶門胥門。盤門者,以水之盤曲也﹔蛇門者,以在巳方,生肖屬蛇也﹔齊門者,以齊國在其北也﹔平門者,水陸地相稱也﹔婁門者,婁江之水所聚也﹔匠門者,聚匠作於此也﹔閶門者,通閶闔之氣也﹔胥門者,向姑胥山也。越在東南,正在巳方,故蛇門之上,刻有木蛇,其首向內,示越之臣服於吳也。南向復築小城,周圍十里,南北西俱有門,惟東不開門,欲以絕越之光明也。吳地在東為辰方,生肖屬龍,故小城南門上為兩鯢,以象龍角。
그 여덟 개의 문은 남쪽에 반문(盤門)과 사문(蛇門)이 있고, 북쪽에 제문(齊門)과 평문(平門)이 있으며, 동쪽에 누문(婁門)과 장문(匠門)이 있고, 서쪽에 창문(閶門)과 서문(胥門)이 있었다, 반문(盤門)은 물이 굽이친다는 뜻이고, 사문(蛇門)은 방위가 사방(巳方)에 있기 때문이며 십이간지로 말하면 뱀띠에 속했다. 제문(齊門)은 제나라가 북쪽에 있기 때문이고, 평문은 물과 육지가 대응하여 균형을 이루었다는 뜻이며, 누문(婁門)이란 누강(婁江)의 물이 모인다고 해서 딴 것이고, 장문(匠門)은 성을 축조할 때 장인들을 이곳에서 모아 일을 시켰기 때문이었다. 창문(閶門)은 가을 기운이 들어오는 문이고, 서문(胥門)이란 고서산(姑胥山)을 향한 문이라는 뜻이다. 월(越)나라는 오나라의 동남쪽에 있는데 정확히 방위가 사방(巳方)에 있었기 때문에 사문(蛇門) 위에 나무로 뱀을 조각하여 그 머리를 성안으로 향하게 하여 월나라가 신하로서 복종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남쪽에 다시 작은 성을 쌓아 그 둘레가 10리이고 서남북에 문을 만들고 동쪽에만 문을 내지 않았다. 그것은 월나라에 밝은 빛을 보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오나라의 땅은 동쪽 진방(辰方)이 되고 십이간지의 용띠에 해당하여 작은 성의 남문 위에 두 마리의 도롱뇽을 조각하여 용의 뿔을 상징하게 했다.
城郭既成,迎闔閭自梅里徙都於此。城中前朝後市,左祖右社,倉廩府庫,無所不備。大選民卒,教以戰陣射御之法。別築一城於鳳凰山之南,以備越寇,名南武城。闔閭以「魚腸」為不祥之物,函封不用。築冶城於牛首山,鑄劍數千,號曰「扁諸」。又訪得吳人干將,與歐冶子同師,使居匠門,別鑄利劍。干將乃採五山之鐵精,六合之金英,候天伺地,妙選時日,天地下降,百神臨觀,聚炭如邱,使童男童女三百人,裝炭鼓橐。如是三月,而金鐵之精不銷,干將不知其故。
성곽이 완성되자 합려를 맞이하여 매리(梅里)로부터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 성안의 앞에는 조당이 있고, 뒤에는 시장이 있었으며, 왼쪽에는 종묘가 들어서고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세웠으며, 창고와 부고 등 없는 것이 없었다. 백성 중에서 군졸을 많이 선발하여 전투 진형과 활쏘기를 가르쳤다. 따로 봉황산(鳳凰山) 남쪽에 성을 쌓았는데 그것은 월나라의 침략에 대비한 성이라고 해서 남무성(南武城)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합려는 어장(魚腸) 검을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고 생각하여 상자에 넣어 봉하고 사용하지 않았다. 우수산(牛首山)에 쇠를 다루는 성을 쌓고, 수천 개의 칼을 주조하여 그것을 편제(扁諸)라고 불렀다. 또 오나라 사람 간장(干將)은 구야자(歐冶子)와 함께 배웠는데, 그를 장문(匠門) 근처에 살게 하고 별도로 명검을 주조하도록 했다. 간장은 이에 오산(五山)의 좋은 쇠를 캐고, 천지의 기운이 어린 황금을 캐내어 하늘과 땅의 형세를 살펴 길일을 신중하게 택하니 천지의 신령들이 내려오고 온갖 귀신이 와서 구경했다. 숯을 산같이 모아 동남동녀 300명을 시켜 숯에 불을 피워 풀무를 돌리도록 했다. 이렇게 석 달을 계속했으나 금과 쇠가 녹지 않았다. 간장(干將)은 금과 쇠가 녹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其妻莫邪謂曰:「夫神物之化,須人氣而後成。今子作劍三月不就,得無待人而成乎?」干將曰:「昔吾師為冶不化,夫妻俱入爐中,然後成物。至今即山作冶,必麻絰草衣祭爐,然後敢發。今吾鑄劍不成,亦若是耶?」莫邪曰:「師能爍身以成神器,吾何難效之?」於是莫邪沐浴斷髮剪爪,立於爐傍,使男女復鼓橐,炭火方烈,莫邪自投於爐。頃刻銷鑠,金鐵俱液,遂瀉成二劍。先成者為陽,即名「干將」﹔後成者為陰,即名「莫邪」。陽作龜文,陰作漫理。干將匿其陽,止以「莫邪」獻於吳王。王試之石,應手而開。今虎邱「試劍石」是也。
그의 처 막야(莫邪)가 말하기를, “무릇 신령스러운 물건을 만들려면 반드시 사람의 기를 받아야만 이루어집니다. 지금 당신이 칼을 만들기 위해 석 달을 노력했지만 이루지 못한 것은 사람의 기운을 기다려야 이루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니, 간장이 말하기를, “옛날에 나의 스승이 쇠에 불을 땠으나 녹지 않자 부부가 화로에 같이 들어간 연후에 쇠를 녹일 수 있었소. 지금까지 산에서 쇠를 녹일 때 반드시 삼베 띠를 머리와 허리에 두르고 풀옷을 입고 화로에 제사를 지낸 후에 불을 때었소. 오늘 칼을 주조하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소!” 했다. 막야가 말하기를, “당신의 스승은 능히 몸을 태워 신기(神器)를 만들었는데 나라고 그것을 따라 하지 못겠습니까?” 하고, 막야가 목욕하고 머리를 짧게 자른 후 손발톱을 정리하고 화로 곁에서 동남동녀로 하여금 다시 풀무를 돌리게 하였다. 이윽고 숯불이 이글거릴 때 막야가 스스로 화로 속에 몸을 던졌다. 삽시간에 막야는 금과 쇠와 함께 녹아서 쇳물이 되었다. 간장이 즉시 쇳물을 부어 두 자루의 칼을 만들었다. 먼저 만든 것을 양(陽)이라 하여 이름을 간장(干將)이라 하고, 나중에 만든 것은 음(陰)이라 하여 이름을 막야(莫邪)라고 했다. 양인 간장 검에는 거북이 문양을 새기고, 음인 막야 검에는 불규칙한 무늬를 넣었다. 이윽고 간장이 간장검을 숨기고 막야검만을 오왕 합려에게 바쳤다. 오왕 합려가 돌에 시험을 하여 내려치니 돌이 둘로 갈라졌다. 지금도 소주(蘇州)의 호구(虎邱)에는 시검석(試劍石)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다.
王賞之百金。其後吳王知干將匿劍,使人往取,如不得劍,即當殺之。干將取劍出觀,其劍自匣中躍出,化為青龍,干將乘之,升天而去,疑已作劍仙矣。使者還報,吳王嘆息,自此益寶「莫邪」。「莫邪」留吳,不知下落。直至六百餘年之後,晉朝張華丞相,見牛斗之間有紫氣,聞雷煥妙達象緯,召而問之。煥曰:「此寶劍之精,在豫章豐城。」華即補煥為豐城令。煥既到縣,掘獄屋基,得一石函,長踰六尺,廣三尺,開視之,內有雙劍。以南昌西山之土拭之,光芒豔發。以一劍送華,留一劍自佩之。
오왕이 간장에게 상으로 많은 돈을 주었다. 나중에 오왕은 간장이 검을 숨긴 것을 알고 사람을 시켜 가져오라고 했다. 만일 검을 주지 않으면 그를 죽이라고 했다. 간장이 검을 꺼내서 보여주려고 하자 그 검이 스스로 칼집에서 튀어나오더니 청룡으로 변했다. 간장이 그것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사람들은 간장이 검의 신선으로 되었다고 의심했다. 사자가 돌아와 보고하니, 합려가 탄식하며 그 후로는 막야를 더욱 보물로 여겼다. 막야검은 오나라에 남아있다가 나중에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후 600여 년이 지난 서진(西晉) 왕조 때 승상 장화(張華)가 견우성과 북두칠성 사이에 자주색 기운이 있는 것을 보고 천문과 도참을 잘 아는 뇌환(雷煥)이란 사람을 불러 물었다. 뇌환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보검의 정령으로서 예장군(豫章郡) 풍성(豊城)에 있습니다.” 했다. 장화가 즉시 뇌환을 풍성의 현령으로 임명하니, 뇌환이 풍성의 현령으로 부임하여 옛날의 감옥 터를 파게 하여 한 개의 돌로 된 함을 얻었다. 그 함의 크기는 길이가 여섯 자가 넘고 넓이는 석 자였다. 그 함을 열어보니 그 안에 두 자루의 검이 들어 있었다. 이 칼들을 남창 서산의 흙으로 닦으니 칼날의 눈부신 광채가 살아났다. 한 자루는 장화에게 보내고 남은 한 자루는 자기가 허리에 차고 다녔다.
華報曰:「詳觀劍文,乃『干將』也。尚有『莫邪』,何為不至?雖然,神物終當合耳。」其後煥同華佩劍過延平津,劍忽躍出入水,急使人入水求之,惟見兩龍張鬣相向,五色炳耀,使人恐懼而退。以後二劍更不出現,想神物終歸天上矣。今豐城縣有劍池,池前石函,土瘞其半,俗呼石門,即雷煥得劍處。此乃「干將」「莫邪」之結末也。後人有《寶劍銘》云:「五山之精,六氣之英﹔鍊為神器,電燁霜凝。虹蔚波映,龍藻龜文﹔斷金切玉,威動三軍。」
장화가 말하기를, “칼에 새겨진 문양을 상세히 살펴보니 이 칼은 곧 간장검이다. 아마 막야검도 있었을 터인데 어찌하여 보내지 않았는가? 비록 지금은 떨어져 있다 하나 신물은 결국 마땅히 같이 있게 될 것이다.” 했다. 그 후에 뇌환이 장화와 함께 칼을 차고 연평(延平) 나루를 지나는데 칼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급히 사람을 시켜 물속으로 들어가 찾게 했으나 그들은 다만 두 마리 용이 갈기를 세우고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며 서로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두려워하여 물 밖으로 나왔다. 이후로 두 검은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신령스런 물건이 끝내 하늘로 올라갔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풍성현에 검지(劍池)라는 연못이 있고 연못 앞의 흙 속에 반쯤 묻혀 있는 석함이 있다. 사람들이 석문(石門)이라 부르는데 곧 뇌환이 칼을 얻은 곳이다. 이것이 간장과 막야의 결말이다. 뒤사람이 <보검명(寶劍銘)>을 지어 이르기를, “다섯 산의 정기와, 여섯 기운의 빼어난 것이, 단련되어 신령한 칼이 되었는데, 번개가 번쩍이고 서리가 맺힌 듯하다. 무지개 무늬와 물결 무늬, 용 무늬와 거북 무늬가 새겨져 있고, 쇠를 자르고 옥을 가르니, 위세가 삼군을 진동시켰다.”라고 했다.
話說,吳王闔閭既寶「莫邪」,復募人能作金鉤者,賞以百金。國人多有作鉤來獻者。有鉤師貪王之重賞,將二子殺之,取其血以釁金,遂成二鉤,獻於吳王。越數日,其人詣宮門求賞。吳王曰:「為鉤者眾,爾獨求賞,爾之鉤何以異於人乎?」鉤師曰:「臣利王之賞,殺二子以成鉤,豈他人可比哉?」王命取鉤,左右曰:「已混入眾鉤之中,形製相似,不能辨識。」鉤師曰:「臣請觀之。」左右悉取眾鉤,置於鉤師之前,鉤師亦不能辨。乃向鉤呼二子之名曰:「吳鴻,扈稽!我在於此,何不顯靈於王前也?」叫聲未絕,兩鉤忽飛出,貼於鉤師之胸。吳王大驚曰:「爾言果不謬矣!」乃以百金賞之。遂與「莫邪」俱佩服於身。
한편, 오왕 합려가 이미 보검 막야를 얻고, 다시 쇠갈고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에게 상으로 많은 돈을 주겠다고 했다. 나라 사람들이 많이 갈고리를 만들어 바쳤다. 그때 어떤 갈고리 장인이 왕의 상금을 탐내어 두 아들을 죽여서 그 피를 쇠에 칠하여 갈고리 두 개를 만들어 오왕에게 바쳤다. 며칠이 지나서 그 사람이 궁문으로 찾아와 상금을 달라고 했다. 오왕이 말하기를, “갈고리를 만들어 바친 사람이 많은데 너만 홀로 상을 달라고 하니, 네가 만든 갈고리가 다른 사람의 것과 다른 점이 있는가?” 하니, 그 갈고리 장인이 말하기를, “신은 대왕의 상을 받기 위해서 저의 두 아들을 죽여 갈고리를 만들었습니다. 어찌 다른 사람의 갈고리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오왕 합려가 갈고리를 가지고 좌우에 말하기를, “이미 여러 사람의 것과 섞여 버려 그 모양이 비슷하니 가려낼 수가 없구나!” 하니, 그 갈고리 장인이 말하기를, “신이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했다. 좌우에 있던 시종들이 많은 갈고리를 모두 가져다가 그 갈고리 장인 앞에 늘어놨으나, 그도 역시 가려낼 수가 없었다. 그러자 갈고리를 향하여 두 아들의 이름을 부르기를, “오홍(吳鴻)아, 호계(扈稽)야! 내가 여기 있는데 어찌하여 대왕 앞에 혼령을 나타내지 않느냐?” 하니, 외치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두 개의 갈고리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그 갈고리 장인의 가슴에 달라붙었다. 오왕 합려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네 말이 과연 틀리지 않았구나!” 하고, 많은 돈을 상으로 주었다. 마침내 오왕 합려는 막야검과 함께 그 갈고리를 몸에 차고 다녔다.
其時楚伯嚭出奔在外,聞伍員已顯用於吳,乃奔吳,先謁伍員。員與之相對而泣,遂引見闔閭。闔閭問曰:「寡人僻處東海,子不遠千里,遠辱下土,將何以教寡人乎?」嚭曰:「臣之祖父,效力於楚再世矣。臣父無罪,橫被焚戮。臣亡命四方,未有所屬。今聞大王高義,收伍子胥於窮厄,故不遠千里,束身歸命。惟大王死生之!」闔閭惻然,使為大夫,與伍員同議國事。吳大夫被離私問於伍員曰:「子何見而信嚭乎?」員曰:「吾之怨正與嚭同,諺云:『同疾相憐,同憂相救。』驚翔之鳥,相隨而集﹔瀨下之水,因復俱流。子何怪焉?」
그때 초나라 백비가 나라 밖으로 달아나, 오원이 오나라에서 이미 중용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즉시 오나라에 들어와 먼저 오원을 찾았다. 오원은 그를 맞이하여 눈물을 흘리며 마침내 합려를 만나게 해주었다. 합려가 묻기를, “과인은 동해의 외진 곳에 있소. 그대가 천 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이곳을 찾은 것은 장차 과인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요?” 하니, 백비가 말하기를, “신의 조부 백주리(伯州犁)와 아버지 백극완(伯郤宛)은 두 대에 걸쳐 초나라에 온 힘을 다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의 부친 백극완은 아무 죄도 없이 불길에 횡사하였습니다. 신은 목숨을 구하여 사방으로 떠돌아다녔으나 몸을 맡길 만한 데가 없었습니다. 지금 들으니 대왕께서 높은 의기로 불운한 오자서를 거두셨다고 하여,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몸을 묶어 목숨을 의탁하려 하오니 오직 대왕께서 죽이거나 살릴 것입니다!” 했다. 합려가 불쌍하게 생각하여 백비를 대부로 삼아 오원과 함께 정사를 의논하게 했다. 오나라 대부 피리가 조용히 오원에게 묻기를, “그대는 뭘 보고 백비를 신뢰하십니까?” 하니, 오원이 말하기를, “나의 원한은 바로 백비의 원한과 같습니다. 속담에 ‘같은 병을 앓으면 서로 동정하며 같은 근심이 있으면 서로 도와준다.’고 했습니다. 놀란 새는 서로 뒤를 이어 모이며, 여울의 물도 함께 흐릅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괴이하다고 하십니까?” 했다.
被離曰:「子見其外,未見其內也。吾觀嚭之為人,鷹視虎步,其性貪佞,專功而擅殺,不可親近。若重用之,必為子累。」伍員不以為然,遂與伯嚭俱事吳王。後人論被離既識伍員之賢,又識伯嚭之佞,真神相也。員不信其言,豈非天哉!有詩云:「能知忠勇辨奸回,神相如離亦異哉!若使子胥能預策,豈容糜鹿到蘇臺?」話分兩頭。再說,公子慶忌逃奔於艾城,招納死士,結連鄰國,欲待時乘隙,伐吳報讎。闔閭聞其謀,謂伍員曰:「昔專諸之事,寡人全得子力。今慶忌有謀吳之心,飲食不甘味,坐不安席,子更為寡人圖之。」
피리가 말하기를, “그대는 사람을 겉만 보았지, 그 사람의 내면은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백비의 관상을 보니 눈은 매 같고 걸음걸이는 호랑이 같습니다. 그의 성격은 탐욕스럽고 간사하여 공로는 독차지하고 멋대로 사람을 죽일 것입니다.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를 중용했다가는 반드시 그대에게 해가 될 것입니다.” 했다. 오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침내 백비와 함께 오왕을 섬겼다. 뒷사람이 피리가 오원의 현명함을 알아보고, 또 백비의 간사함을 간파한 것은 그가 참으로 귀신같이 관상을 본 것이라고 논했다. 오원은 피리의 말을 믿지 않았으니,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시가 있어 이르기를, “능히 충용한 자와 간특한 자를 알았으니, 피리는 귀신같이 관상을 보는 이인이었다! 만약 오자서로 하여금 미리 방비하도록 했다면, 어찌 사슴들이 소대에 뛰어놀게 했겠는가?” 했다.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 공자 경기(慶忌)는 애성(艾城)으로 도망쳐서 결사대를 모으고 이웃 나라들과도 연락을 취하면서 때를 기다려 틈을 타서 오나라로 쳐들어가 원수를 갚으려고 했다. 합려가 그 소식을 듣고 오원에게 말하기를, “전날에 전제를 얻어 대사를 이룬 일은 전적으로 그대의 힘이었소. 지금 경기가 오나라를 도모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으니, 내가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겠고 자리에 앉아 있어도 편하지 않소. 그대는 다시 나를 위해 힘을 써 주시오.” 했다.
伍員對曰:「臣不忠無行,與大王圖王僚於私室之中,今復圖其子,恐非皇天之意。」闔閭曰:「昔武王誅紂,復殺武庚,周人不以為非。皇天所廢,順天而行。慶忌若存,王僚未死,寡人與子成敗共之,寧可以小不忍而釀大患?寡人更得一專諸,事可了矣。子訪求謀勇之士,已非一日,亦有其人否乎?」伍員曰:「難言也。臣所厚有一細人,似可與謀者。」闔閭曰:「慶忌力敵萬人,豈細人所能謀哉?」員對曰:「是雖細人,實有萬人之勇。」闔閭曰:「其人為誰?子何以知其勇?試為寡人言之。」伍員遂將勇士姓名出處備細說來。正是:說時華岳山搖動,話到長江水逆流。只為子胥能舉薦,要離姓字播春秋。
오원이 대답하기를, “신이 불충하고 행실도 없지만, 대왕과 함께 왕료를 사가에 유인하여 죽였습니다. 지금 다시 그의 아들마저 죽인다면 그것은 하늘의 뜻이 아닐 것 같아 걱정됩니다.” 하니, 합려가 말하기를, “옛날에 주(周) 무왕이 은나라의 폭군 주왕(紂王)을 죽이고, 다시 주공이 주왕의 아들 무경(武庚)을 살해했으나 주나라 사람들은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소. 하늘이 폐한 것을 하늘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이오. 경기가 만약 살아 있다면 왕료는 아직 죽지 않은 것과 같소. 과인은 그대와 함께 성패를 같이 하고 있거늘, 어찌 조그만 인정 때문에 큰 화근을 자라나게 하겠소? 과인이 다시 한번 전제와 같은 사람을 얻으면 일은 해결될 것이오. 그대가 지혜와 용기를 갖춘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은 이미 하루 이틀이 아니니 또한 사람이 있지 않겠소?” 했다. 오원이 말하기를, “말씀드리기 어려우나, 신이 잘 알고 지내는 한 천인이 있습니다. 거의 함께 꾀해 볼 만한 사람입니다.” 하니, 합려가 말하기를, “경기는 힘이 만 명을 대적할 수 있는데, 어찌 천인이 그를 도모할 수 있겠소?” 했다. 오원이 대답하기를, “그가 비록 천인이지만 실은 만인을 대적할 만한 용기를 가진 사람입니다.” 하니, 합려가 말하기를, “그 사람이 누구요? 그대는 어떻게 그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시오? 시험 삼아 과인을 위해 말해 보시오.” 했다, 오원은 마침내 그 용사의 성명과 알게 된 내력을 자세히 말했다. 이야말로, “말할 때는 화악산이 움직이고, 그 말에는 장강도 거꾸로 흐르는 듯하다. 단지 오자서가 천거했기 때문에, 요리의 이름이 춘추시대에 전하게 되었다.”라고 했다.
伍員曰:「其人姓要名離,吳人也。臣昔曾見其折辱壯士椒邱訢,是以知其勇。」闔閭曰:「折辱之事如何?」員對曰:「椒邱訢者,東海上人也。有友人仕於吳而死,訢至吳奔其喪。車過淮津,欲飲馬於津。津吏曰:『水中有神,見馬即出取之,君勿飲也。』訢曰:『壯士在此,何神敢干我哉!』乃使從者解驂,飲於津水,馬果嘶而入水。津吏曰:『神取馬去矣!』椒邱訢大怒,袒裼持劍入水,求神決戰。神興濤鼓浪,終不能害。三日三夜,椒邱訢從水中出,一目為神所傷,遂眇。
오원이 말하기를, “그 사람의 성명은 요리(要離)인데 오나라 사람입니다. 신이 전에 그가 초구흔(椒邱訢)이라는 장사를 욕보이는 것을 보고, 그의 용기를 알았습니다.” 하니, 합려가 말하기를, “그가 어떻게 욕을 보였소?” 했다. 오원이 대답하기를, “초구흔은 동해 가의 사람인데, 그의 벗이 오나라에서 벼슬하다가 죽었습니다. 초구흔이 문상을 위해 오나라로 가는데, 수레가 회수 나루에 이르러 말에게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나루를 지키던 관리가 말하기를, ‘물 속에 귀신이 있어 말을 보면 나와서 잡아갑니다. 그대는 말에게 물을 먹이지 마시오!’ 했다. 초구흔이 말하기를, ‘장사가 여기 있는데 어떤 귀신이 감히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겠는가!’ 하고, 즉시 종자를 시켜 말을 풀어 나루에서 물을 먹이게 했다. 말이 과연 울더니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루를 지키는 관리가 말하기를, ‘귀신이 말을 끌고 들어갔소.’ 했다. 초구흔이 대로하여 웃통을 벗고 칼을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 물귀신과 결전을 했다. 물귀신이 파도를 일으켰으나 끝내 초구흔을 해치지 못했다. 사흘 밤낮이 지나서 초구흔이 물속에서 나왔는데, 한쪽 눈을 귀신에게 다쳐 애꾸눈이 되었다.
至吳行弔,坐於喪席,訢恃其與水神決戰之勇,以氣凌人,輕傲於士大夫,言詞不遜。時要離與訢對坐,忽然有不平之色,謂訢曰:『子見士大夫而有傲色,得無以勇士自居耶?吾聞勇士之鬥也,與日戰不移表,與鬼神戰不旋踵,與人戰不違聲,寧死不受其辱。今子與神鬥於水,失馬不能追,又受眇目之羞,形殘名辱,不與并命,而猶戀戀於餘生,此天地間最無用之物。且不當以面目見人,況傲士乎!』椒邱訢被詈,頓口無言,含愧出席而去。要離至晚還舍,誡其妻曰:『我辱勇士椒邱訢於大家之喪,恨怨鬱積,今夜必來殺我,以報其恥。吾當僵臥室中,以待其來,懼勿閉門。』妻知要離之勇,從其言。
초구흔이 오나라에 도착하여 조문을 하고, 자리에 앉아 물귀신과 싸움을 벌인 용기를 과시하며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사대들에게 오만한 태도로 불손한 말을 했다. 그때 요리가 초구흔과 마주 앉아 있다가 갑자기 불평한 기색을 띠더니 초구흔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사대부들에게 오만하게 굴면서 어찌 용사라고 자처할 수 있는가? 나는 용사란 싸움을 할 때는 하루 종일 싸우고도 얼굴에 아무런 기색을 띠지 않아야 하고, 귀신과 싸울 때는 발길을 돌리지 말아야 하며, 사람과 싸울 때는 흰 소리를 하면 안 되고, 차라리 죽을지언정 치욕을 당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지금 그대가 귀신과 물속에서 싸우다가 말을 잃고도 추격하지 못했고, 또한 한쪽 눈을 잃은 치욕을 입어 몸은 상하고 이름을 욕되게 하고도 목숨을 내던지지 못하여 오히려 남은 삶에 연연하였으니, 이것은 천지간에 가장 쓸데없는 물건이다. 그러면 사람을 마땅히 보지도 못할 것이거늘 하물며 선비들을 오만하게 대하겠는가?’ 했다. 초구흔이 요리에게 욕을 먹었으나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원한을 품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요리가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그의 아내에게 당부하기를, ‘내가 오늘 상갓집에서 초구흔이라는 용사를 욕보였는데, 그가 원한을 품고 나갔으니 오늘 밤에 틀림없이 와서 나를 죽여 그 수치를 보복할 것이오. 나는 마땅히 방안에 꼼짝하지 않고 누워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두려워서 문을 잠그지 마시오.’ 했다. 요리의 용기를 잘 알고 있는 그의 아내는 그의 말을 따랐다.
椒邱訢果於夜半挾利刃,逕造要離之舍,見門扉不掩,堂戶大開,直趨其室。見一人垂手放髮,臨窗僵臥,觀之,乃要離也。見訢來,直挺不動,亦無懼意。訢以劍承要離之頸,數之曰:『汝有當死者三,汝知之乎?』離曰:『不知。』訢曰:『汝辱我於大家之喪,一死也﹔歸不關閉,二死也﹔見我而不起避,三死也。汝自求死,勿以我為怨!』要離曰:『我無三死之過,爾有三不肖之愧,爾知之乎?』訢曰:『不知。』要離曰:『吾辱爾於千人之眾,爾不敢酬一言,一不肖也﹔入門不咳,登堂無聲,有掩襲之心,二不肖也﹔以劍承吾之頸,尚敢大言,三不肖也。爾有三不肖,而反責我,不可鄙哉?』
초구흔이 과연 밤중에 예리한 칼을 들고 요리의 집으로 달려와서 보니, 대문과 방문이 열려 있어서 거침없이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한 사람이 침상에서 손을 늘어뜨리고 머리를 풀고서 창문 곁에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초구흔이 살펴보니 바로 요리였다. 초구흔이 온 것을 보고도 꼿꼿하게 움직이지 않고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초구흔이 칼로 요리의 목을 겨누며 따지기를, ‘너는 죽어야 할 세 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을 아느냐?’ 하니, 요리가 말하기를, ‘모른다.’ 했다. 초구흔이 말하기를, ‘너는 사대부의 초상집에서 나를 욕보였다. 그것이 네가 죽어야 할 첫 번째 이유다. 너는 집에 돌아와서 집의 대문을 닫지 않았으니 두 번째 이유다. 나를 보고도 일어나서 피하지 않았으니 세 번째 이유다. 너는 스스로 죽기를 원했으니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하니, 요리가 말하기를, ‘나는 죽어야 할 세 가지 잘못이 없지만, 너는 부끄러워야 할 세 가지 못난 점이 있다. 너는 아느냐?’ 했다. 초구흔이 말하기를, ‘모른다.’ 하니, 요리가 말하기를, ‘내가 너를 수많은 사람 앞에서 욕을 보였건만 너는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이것이 첫 번째 못난 점이다. 남의 집에 들어올 때 기침도 하지 않고 대청에 오르면서 소리도 내지 않고 엄습하려는 마음을 가졌으니 두 번째 못난 점이다. 칼로 나의 목을 겨누면서 오히려 큰소리를 치니 이것이 세 번째 못난 점이다. 네가 세 가지 못난 점을 가지고 도리어 나를 꾸짖으니 비열한 놈이 아니냐?’ 했다.
椒邱訢乃收劍嘆曰:『吾之勇,自計世人莫有及者,離乃加吾之上,真乃天下勇士。吾若殺之,豈不貽笑於人?然不能殺汝,亦難以勇稱於世矣!』乃投劍於地,以頭觸牖而死。方其在喪席之時,臣亦與坐,故知其詳。豈非有萬人之勇乎?」闔閭曰:「子為我召之。」伍員乃往見要離曰:「吳王聞吾子高義,願一見顏色。」離驚曰:「吾乃吳下小民,有何德能,敢奉吳王之詔?」伍員再申言吳王願見之意。要離乃隨伍員入謁。闔閭初聞伍員誇要離之勇,意必魁偉非常,及見離,身材僅五尺餘,腰圍一束,形容醜陋,大失所望,心中不悅。問曰:「子胥稱勇士要離,乃子乎?」
초구흔이 즉시 칼을 거두며 한탄하기를, ‘나는 세상에서 내 용기에 미칠 자가 없다고 자부했는데, 요리의 용기가 나보다 위에 있으니 진실로 천하의 용사다. 내가 만약 너를 죽인다면 어찌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겠는가? 그리고 너를 죽이지 못한다면 또한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불리지 못할 것이다.’ 하고, 칼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 스스로 머리를 창문에 부딪쳐 죽었습니다. 초상집에서 요리가 초구흔을 욕보일 때 신도 또한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자세히 압니다. 어찌 요리가 만인의 용기를 가졌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했다. 합려가 말하기를, “그대는 나를 위해 그를 불러 주시오.” 하니, 오원이 즉시 요리를 찾아가 말하기를, “오왕께서 그대의 높은 의기를 전해 듣고, 한번 접견하기를 원하오.” 했다. 요리가 놀라서 말하기를, “나는 오나라의 미천한 백성인데, 무슨 덕과 능력이 있다고 감히 오왕의 부름을 받들겠습니까?” 하니, 오원이 다시 오왕이 보고 싶어 한다는 뜻을 전하자, 요리가 오원을 따라서 들어와 알현했다. 합려는 처음에 요리의 용기를 칭찬한 오원의 말을 듣고, 요리는 필시 체구가 아주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요리를 보니 키가 겨우 다섯 자 남짓하고 허리의 둘레는 한 묶음인데 생김새는 매우 추하고 더러워서 크게 실망하여 마음속으로 기쁘지 않았다. 합려가 묻기를, “오자서가 요리를 용사라고 칭했는데, 바로 그대인가?” 했다.
離曰:「臣細小無力,迎風則伏,負風則僵,何勇之有。然大王有所遣,不敢不盡其力。」闔閭嘿然不應。伍員已知其意,奏曰:「夫良馬不在形之高大,所貴者力能任重,足能致遠而已。要離形貌雖陋,其智術非常,非此人不能成事,王勿失之!」闔閭乃延入後宮賜坐。要離進曰:「大王意中所患,得非亡王之公子乎?臣能殺之。」闔閭笑曰:「慶忌骨騰肉飛,走踰奔馬,矯捷如神,萬夫莫當,子恐非其敵也!」要離曰:「善殺人者,在智不在力。臣能近慶忌,刺之,如割雞耳。」
요리가 말하기를, “신은 몸이 가냘프고 작으며 힘이 약하여 바람이 앞에서 불면 자빠지고 뒤에서 불면 엎어지는데 무슨 용기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대왕께서 신을 보내신다면 감히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하니, 합려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원이 이미 그 뜻을 알고, 아뢰기를, “무릇 좋은 말이란 그 체격이 우람한 데 있지 않고, 귀하게 여기는 바는 힘이 능히 무거운 짐을 지고 멀리까지 갈 수 있으면 됩니다. 요리의 생김새가 비록 보잘것없지만, 그 지혜와 수단은 비상해서 이 사람이 아니면 일을 이룰 수가 없으니 대왕께서는 그를 잃지 마십시오.” 하니, 합려가 이에 요리를 뒷 궁궐로 맞아들여 자리에 앉게 했다. 요리가 앞으로 나와 말하기를, “대왕께서 근심하는 것은 죽은 전왕의 아들 때문이 아닙니까? 신이 능히 그를 죽일 수 있습니다.” 했다. 합려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경기는 몸이 나는 듯이 민첩하고 달리는 말보다 빠르며 용감하고 날쌔기가 마치 귀신과 같아서 만 명의 사내도 당할 수 없는데 그대가 경기를 상대할 수 없을까 걱정이네!” 하니, 요리가 말하기를, “사람을 잘 죽이는 것은 지혜에 있지, 힘에 있지 않습니다. 신이 능히 경기의 곁에 접근하여 찔러 죽이는 것은, 닭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했다.
闔閭曰:「慶忌明智之人,招納四方亡命,豈肯輕信國中之客,而近子哉?」要離曰:「慶忌招納亡命,將以害吳。臣詐以負罪出奔,願王戮臣妻子,斷臣右手。慶忌必信臣而近之矣。如是而後可圖也。」闔閭愀然不樂曰:「子無罪,吾何忍加此慘禍於子哉?」要離曰:「臣聞『安妻子之樂,不盡事君之義,非忠也﹔懷室家之愛,不能除君之患,非義也。』臣得以忠義成名,雖舉家就死,其甘如飴矣!」伍員從旁進曰:「要離為國忘家,為主忘身,真千古之豪傑!但於功成之後,旌表其妻孥,不沒其績,使其揚名後世足矣。」闔閭許之。
합려가 말하기를, “경기는 현명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며 사방의 망명객들을 모아들였는데, 어찌 그가 오나라에서 온 사람을 쉽게 믿어서 그대를 곁에 두겠는가?” 하니, 요리가 말하기를, “경기가 망명객들을 모아들이는 것은 장차 오나라를 도모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이 거짓으로 죄를 짓고 도망쳤다고 하며, 대왕께서 신의 처자를 죽이고 신의 오른팔을 자르시면 경기는 틀림없이 신을 믿고 가까이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 후에 가히 도모할 수 있습니다.” 했다. 합려가 근심스레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그대는 죄가 없는데 내가 어찌 차마 그런 처참한 짓을 그대에게 하겠는가?” 하니, 요리가 말하기를, “신은 듣기를, ‘처자의 즐거움을 편안히 여겨서 군주를 모시는 의리를 다하지 않는다면 이는 충성이 아닙니다. 집안의 일을 생각하여 군주의 근심을 없앨 수 없다면 이는 의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신이 충성스럽고 의로운 사람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으니, 비록 온 집안사람이 죽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엿처럼 단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했다. 오원이 곁에 있다가 나서며 말하기를, “요리가 나라를 위해 집안을 버리고, 주군을 위해 몸을 버리려고 하니, 참으로 천고의 호걸입니다. 다만 요리가 일을 이룬 후에 그의 처와 가속들을 위해 정문을 세우고 그의 공적이 사라지지 않도록 기록하여 이름을 후세에 드높일 수 있게 해준다면 족할 것입니다.” 하니, 합려가 허락했다.
次日,伍員同要離入朝,員薦要離為將,請兵伐楚。闔閭罵曰:「寡人觀要離之力,不及一小兒,何能勝伐楚之任哉!況寡人國事麤定,豈堪用兵?」要離進曰:「不仁哉王也!子胥為王定吳國,王乃不為子胥報仇乎?」闔閭大怒曰:「此國家大事,豈野人所知?奈何當朝責辱寡人!」叱力士執要離斷其右臂,囚於獄中,遣人收其妻子。伍員嘆息而出。群臣皆不知其繇。過數日,伍員密諭獄吏寬要離之禁,要離乘間逃出。闔閭遂戮其妻子,焚棄於市。
다음날, 오원이 요리와 같이 입조하여 요리를 장군으로 추천하고 군사를 청하여 초나라를 치자고 했다. 합려가 꾸짖기를, “과인이 요리의 힘을 보니 한낫 어린아이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어찌 초나라를 정벌할 임무를 맡길 수 있겠소? 하물며 과인이 가까스로 나라를 안정시켰는데 어찌 군사를 일으킬 수 있겠소?” 하니, 요리가 앞으로 나와 말하기를, “대왕은 어질지 못하십니다! 자서(오원)는 왕을 위하여 오나라를 안정시켰건만 대왕은 자서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줄 생각이 없으십니까?” 했다. 합려가 대로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국가의 대사인데 어찌 시골 사람이 알겠는가? 어찌하여 조당에 나와서 과인을 질책하여 욕보이는가?” 하고 무사들에게 소리쳐 요리를 잡아 그의 오른 팔을 자르게 한 후에 감옥에 가두었다. 다시 사람을 보내 그의 처자를 잡아오게 하였다. 오원이 탄식하며 조당에서 물러 나왔다. 여러 신하는 아무도 그 연유를 몰랐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오원이 비밀리에 옥리에게 요리를 너무 엄격하게 감금하지 말라는 명했다. 요리는 그 틈을 타서 도망쳐 나왔다. 합려가 즉시 그 아내와 자식을 죽여서 그 시체를 거리에서 불태웠다.
宋儒論此事,以為殺一不辜而得天下,仁人不肯為之。今乃無故戮人妻子,以求售其詐謀,闔閭之殘忍極矣!而要離與王無生平之恩,特以貪勇俠之名,殘身害家,亦豈得為良士哉?有詩云:「祇求成事報吾君,妻子無辜枉殺身。莫向他邦誇勇烈,忍心害理是吳人!」要離奔出吳境,一路上逢人訴冤,訪得慶忌在衛,遂至衛國求見。慶忌疑其詐,不納。要離乃脫衣示之。慶忌見其右臂果斷,方信為實,乃問曰:「吳王既殺汝妻子,刑汝之軀,今來見我何為?」
송나라 때 유생이 이 일에 대해 논하기를, 무고한 왕료 한 사람을 죽여 왕위를 차지한 것도, 어진 사람이라면 차마 하지 못할 짓인데, 오늘 다시 죄 없는 요리의 처자까지 죽여서, 그의 간교한 계책을 실현코자 했으니, 합려의 잔인함은 그지없구나! 그리고 요리는 평생에 합려에게서 아무런 은혜를 입은 적이 없는데, 용감한 협객이라는 이름을 탐하여, 자기의 몸을 해치고 집안을 망하게 했으니, 그 역시 어찌 좋은 선비가 되겠는가? 라고 했다. 시를 지어 이르기를, “오로지 일을 성사시켜 임금에 충성하고자, 무고한 처자를 죽이고 자신도 죽었다. 이런 일을 용맹하고 충성스럽다고 다른 나라에 자랑하지 말라! 잔인하고 도리에 어긋난 오나라 사람이다!” 했다. 요리가 오나라에서 달아나면서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경기가 위(衛)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물어 알게 되었다. 마침내 위나라에 가서 만나주기를 청했으나 경기가 속임수를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요리가 즉시 옷을 벗고 자기의 몸을 보여주었다. 경기는 요리의 오른팔이 잘린 것을 보고 비로소 사실로 믿었다. 경기가 묻기를, “오왕이 이미 너의 처자를 죽였고 네 몸에 절단형을 가했는데, 지금 나를 무엇 때문에 찾아왔는가?” 했다.
離曰:「臣聞吳王弒公子之父,而奪大位,今公子連結諸侯,將有復仇之舉,故臣以殘命相投。臣能知吳國之情,誠以公子之勇,用臣為嚮導,吳可入也。大王報父仇,臣亦少雪妻子之恨!」慶忌猶未深信。未幾,有心腹人從吳中探事者歸報,要離妻子果焚棄於市上,慶忌遂坦然不疑。問要離曰:「吾聞吳王任子胥伯嚭為謀主,練兵選將,國中大治。吾兵微力薄,焉能洩胸中之氣乎?」離曰:「伯嚭乃無謀之徒,何足為慮?吳臣止一子胥,智勇足備,今亦與吳王有隙矣。」
요리가 말하기를, “신은 오왕이 공자의 부친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아 간 일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공자께서는 제후들과 연결하여 장차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남은 목숨이나마 의탁하러 왔습니다. 신은 오나라의 사정에 밝으니 참으로 공자님의 용기로 신을 향도로 삼는다면 능히 오나라에 들어가 크게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 왕이 되고, 적게는 신 역시 아내와 자식들의 원한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했다. 경기가 그래도 아직 깊이 믿지는 않았다. 오래지 않아, 오나라의 사정을 정탐하러 갔던 심복이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요리의 처자가 과연 오왕에게 살해되어 그 시체가 거리에서 불태워졌다고 했다. 경기가 마침내 안심하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요리에게 묻기를, “나는 오왕이 오자서와 백비를 책임자로 임명하여 군사들을 훈련하고 장수들을 선발하여 오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군사들은 미약하니 어찌 능히 가슴속의 원한을 풀 수 있겠는가?” 하니, 요리가 말하기를, “백비는 모무한 자인데 어찌 족히 걱정거리가 되겠습니까? 오나라의 신하는 오직 자서(오원) 한 사람뿐입니다. 그는 지혜와 용기를 겸비했지만, 지금은 또한 오왕과 틈이 생겼습니다.” 했다.
慶忌曰:「子胥乃吳王之恩人,君臣相得,何云有隙?」要離曰:「公子但知其一,未知其二。子胥所以盡心於闔閭者,欲借兵伐楚,報其父兄之仇。今平王已死,費無極亦亡,闔閭得位,安於富貴,不思與子胥復仇,臣為子胥進言,致觸王怒,加臣慘戮,子胥之心怨吳王亦明矣。臣之幸脫囚繫,亦賴子胥周全之力。子胥囑臣曰:『此去必見公子,觀其志向何如,若肯為伍氏報仇,願為公子內應,以贖窟室同謀之罪。』公子不乘此時發兵向吳,待其君臣復合,臣與公子之仇,俱無再報之日矣!」
경기가 말하기를, “자서(오원)는 곧 오왕의 은인이고, 그들은 임금과 신하로서 서로 의지하고 있는데, 어찌 틈이 있다고 말하는가?” 하니, 요리가 말하기를, “공자께서는 다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십니다. 오자서가 온 힘을 다해 합려를 도운 까닭은 군사를 빌려서 초나라를 정벌하여 그의 부친과 형의 원수를 갚으려는 것입니다. 지금 초나라 평왕은 이미 죽었고, 비무극도 역시 죽었는데, 합려는 왕위를 차지하여 부귀에 편안해하고 있습니다. 오자서를 위해 원수를 갚아 줄 생각이 없는 오왕은, 신이 오자서를 위해 진언을 하자 분노를 일으켜 신에게 참혹한 형벌을 가했습니다. 오자서가 마음속으로 오왕을 원망할 게 분명합니다. 신이 다행히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자서가 빈틈없이 힘을 써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오자서가 나에게 부탁하기를, ‘이번에 가면 반드시 공자를 만나서 그가 어떤 뜻을 지녔는지 살펴보고, 만약 공자가 기꺼이 오씨 가문을 위해 원수를 갚아주겠다면 원컨대 공자를 위해 내응하여 지하실에서 동모하여 선왕을 죽인 죄를 속죄할까 하오!’ 했습니다. 공자께서 이번 기회를 틈타 군사를 동원하여 오나라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 사이에 합려와 오자서가 다시 합치게 되어, 신과 공자님의 원수는 모두 다시 갚을 날이 없을 것입니다.” 했다.
言罷大哭,以頭擬柱,欲自觸死。慶忌急止之曰:「吾聽子!吾聽子!」遂與要離同歸艾城,任為腹心,使之訓練士卒,修治舟艦。三月之後,順流而下,欲襲吳國。慶忌與要離同舟,行至中流,後船不相接屬。要離曰:「公子可親坐船頭,戒飭舟人。」慶忌來至船頭坐定,要離隻手執短矛侍立。忽然江中起一陣怪風,要離轉身立於上風,借風勢以矛刺慶忌,透入心窩,穿出背外。慶忌倒提要離,溺其頭於水中,如此三次,乃抱要離置於膝上,顧而笑曰:「天下有如此勇士哉?乃敢加刃於我!」
요리가 말을 마치자 큰 소리로 울면서 머리를 기둥에다 부딪쳐 죽으려고 했다. 경기가 급히 그를 제지하며 말하기를, “내가 그대의 말을 따르리라! 내가 그대의 말을 따르겠다!” 하고, 마침내 요리와 함께 애성(艾城)으로 돌아가서 요리를 심복으로 삼아, 그를 시켜 사졸들을 훈련하게 하고 전선을 만들게 했다. 그런지 석 달 후에 강물을 따라 내려와서 오나라를 습격하려고 했다. 경기와 요리가 같은 배에 타고 진군하여 중류에 이르렀을 때 뒤따라오던 배들이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 요리가 말하기를, “공자께서 뱃머리에 친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뱃사람들을 경계하여 타이르십시오.” 하니, 경기가 뱃머리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고, 요리는 한 손으로 짧은 창을 잡고 경기를 모시고 섰다. 갑자기 강 가운데서 일진광풍이 불자 요리가 몸을 돌려 바람을 향하여 선 다음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창으로 경기를 찌르자 창이 경기의 심장을 꿰뚫고 등 뒤로 튀어나왔다. 경기가 요리를 거꾸로 잡고 그 머리를 물속에 빠뜨리기를 세 번 하고, 이에 요리를 무릎 위에 앉히고 돌아보며 웃으며 말하기를, “천하에 어찌 이 같은 용사가 있는가? 어찌 감히 나를 창으로 찌를 수 있는가?” 했다.
左右持戈戟欲攢刺之,慶忌搖手曰:「此天下之勇士也。豈可一日之間,殺天下勇士二人哉!」乃誡左右:「勿殺要離,可縱之還吳,以旌其忠。」言畢,推要離於膝下,自以手抽矛,血流如注而死。
경기의 좌우에서 창과 극을 잡고 요리를 찌르려고 하자 경기가 흔들며 말하기를, “이 사람은 천하의 용사다. 어찌 하루 동안에 천하의 용사를 둘이나 죽일 수 있겠는가!” 하고, 이어서 좌우에게 경계하기를, “요리를 죽이지 말고 그를 놓아주어 오나라에 돌아가게 해서 그의 충성을 기릴 수 있도록 하라!” 하고, 말을 마치자, 요리를 그의 무릎에서 밀어내고 스스로 가슴에 꽂혀 있던 창을 뽑아내니, 피가 콸콸 쏟아져 죽었다.
不知要離性命如何,且看下回分解。
요리의 목숨이 어찌 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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