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교직 추억 하나
(나의 교양 부족)
지난 35년 6개월간의 나의 도덕교사로서의 교직에 있어서 가장 뼈저리게 후회되는 장면들이 바로 나의 교양부족이다. 물론 내가 그리 나쁜 교사는 아니었다. 보통의 교사로서 기본적인 소양은 객관적으로 있었다. 그래도 지난 과거를 회상하면 등골에 땀이 저린다.
교사라는 생활은 보통 시민들이 하는 직업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다른 직종에 비하여 나름 여러모로 여유가 있고, 공립이든 사립이든 입직경로가 만만치 않다. 아무나 하는 직업이 아니다. 서울대학교를 나와도 소정의 교사자격증이 없으면 지원도 할 수 없다.
특히 도덕교사는 담당 과목 자체가 시종일관 교양과 직접 관련이 있는 교과이다. 도덕수준은 물론 교양의 품격이 남달리 우수해야 한다. 현직에 있을 땐 이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하루하루 보통의 교사로 보낸 셈이다. 나는 바로 이 점이 엄청 부끄럽다.
예를 들면 다른 교사들이 동료나 누구를 뒷담화로 평가할 적에 채점이야 자유로이 할 수 있게 하더라도 참여하는 평가용어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남들이 비속어를 쓰더라도 도덕교사인 나는 따라하면 곤란하다. 그냥 듣는 것이 상책이다. 만약 내가 따라하면 나의 직분을 망각한 것이다.
좀 더 객관적으로도 살펴보자. 설사 맞장구를 치더라도 차후의 점수는 공개하면 할수록 냉혹하다. 그리고 내가 당한 경우의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소개도 함께 해보고자 한다.
사립에 근무할 적에 일반 대학원을 진학하고 싶었지만 현직에 있다 보니 힘이 들었다. 첫 번째 학교는 밀양 시골이라 포기하고 7년째 두 번째 학교는 대도시 부산이라 근무학교에서의 허락만 있으면 진학이 수월했다.
교사 경력 8년째 되는 1989년 11월, 당시 재직학교의 학교장에게 90학년도 일반대학원 진학에 대하여 허락을 구하려고 하니 불가하다고 하여, 그해는 그만 두고 다음해인 91학년도 3월에 허락이 필요 없는 교육대학원에 진학을 하였다. 그러하다보니 순수철학전공의 하얀 가운의 문학 석사가 되지 못하고, 철학교육전공의 푸른색 가운의 교육학 석사가 되었다. 목적하는 바가 아니라 내심 자존심이 상했지만 하는 수가 없었다.
일반대학원은 2년이지만 교육대학원은 수학기간이 2년 6개월이다. 1993년 늦은 여름, 논문이 통과되고 푸른색 가운의 교육학 석사를 마칠 즈음 철학교수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오던 중 안면은 있지만 수업 인연이 없는 서울대학교 출신의 영미분석철학전공자에도 마저 인사를 하려고 그의 연구실에 들렀다.
이분은 이상하게도 교육대학원 강좌가 없었다. 영미분석철학에 대하여 수강신청을 하고 싶었지만 아예 할 수가 없었다. 연구실에 있는 후배들이 그 교수에게 교육대학원에 대하여 물어보니 그 교수가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교육대학원!! 그거 대학원도 아니야. 교사들이 자격 갱신하려고 오는 그런 곳에 불과해.’ 이렇게 말했다니 진짜 미쳐도 한창 미친놈이다.
그래도 모교에서의 마지막 인사라 여기고 노크하고 들어가 졸업 전 인사를 하려고 왔다고 했다. 그도 나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었다. 1954년생으로 그는 내보다 한 살 많고, 나의 후배들이 몇 번 지나가는 말로 교육대학원에 고등학교 교사로 있는 선배가 공부하고 있다고 하여 그도 나를 익히 알고 있었다.
나는 인사를 올린 후 이렇게 말했다. ‘모교에 근무하는 교수님들 덕분에 공부를 무사히 마치고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추후에도 자주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뭐, 올 필요 없습니다. 안 와도 됩니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너무 황당했다. 영미분석철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로 아시아 최고의 학부출신이고 서울대학교 철학박사인 그가 이런 하등 바퀴벌레 같은 소리를 하다니, 모교에서의 나의 마지막 장면이 너무나 황당했다.
모교에서 철학교육전공으로 석사는 수료했지만, 나는 뭔가 부족하여 1994년 3월 한국교원대대학원에 진학하여 철학교육으로 다시 석사를 수료했다. 교원대에서 나의 지도교수와 이야기를 하던 중 내가 나온 모교학부를 물어 알려주니 나의 모교에 근무 중인 박O태 교수인 그 영미철학교수에 대하여 아느냐고 물었다. 명성으로만 안다고 하니, 나의 지도교수인 조O민 교수가 그 박 교수는 자신의 서울대학 동문 후배인데, 청주교대에 있다가 부산에 있는 나의 모교로 갔다고 했다. 청주교대? 청주교대라면 초등교사양성대학이다. 초등에 철학교수???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나의 모교 교육대학원 덕분에 졸업하면서 철학교사자격증도 신청하여 받았다. 교원대에서도 자격규정에 학부에서의 전공과 대학원에서의 전공이 동일하면 해당교사자격증 신청이 가능하다고 기재가 되어 있었다. 94년 입학당시 명칭은 교원대대학원이지만 교원대다 보니 교육학 석사과정으로 교육대학원인 셈이다. 철학교사자격증은 그냥 인사기록카드에만 기재가 되고 정년까지 도덕과 윤리만 가르치고 나왔다. 정말 아쉽다. 도덕과 윤리, 철학은 같은 주제라도 다루는 DNA가 다른데 말이다.
아무튼 그 영미분석철학교수도 그 당시 나에게 조그만 더 신경을 썼다면 도덕까지는 아니더라도 교양의 품격을 얼마든지 올릴 수가 있을 턴데 말이다. 교직에서 나도 이런 찬스를 많이 놓친 것이다. 특별히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나의 마음만 정리정돈하면 되는데 그런 품격의 계단에 쉽게 오르지를 못했다.
사립 고등학교에서 윤리교사로 21년 근무 후에, 공립으로 옮겨 정년까지 도덕교사로 있었다. 사립이든 공립이든 교사라면 어느 정도의 높은 품격의 교양이 있어야 한다. 더욱이 도덕교사라면 그 품계를 더 높여야 할 것이다. 더구나 서울대학교이라면 국립대학으로 수재들이 가는 곳이고 국비지원으로 공부를 하였으니 도덕적 품성계발을 당연히 별도로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통의 서민대중들이 납세한 돈으로 공부를 해 놓고 그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모르는 행태를 해서는 안 된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행위이다.
그 교수나 나나 아무쪼록 아쉬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