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근래에 컴속에서 과거 즐겨두던 바둑 프로그램을 발견하고 설치를 했다. 그리고 요 며칠
일과후에 한수씩 즐긴다.
거두절미하고 어제둔 몇판의 바둑중 두판의 기가막힌 대국이 있어 하나를 소개한다.
대국을 하다보면 잘두는이도, 시원찮은이도 많은데 요번의 상대는 매우 빡빡했다.세력
을 형성하는 포석부터 노련한 공수의 행마에 까지.. 상대는 진리같은 수로만 토닥토
닥 압박해오고 갑갑한 오원은 우짤수 없이 밀리는 수만 두다보니.. 가랑비에 옷 젖는
다고 어느듯 당연히 비세가 되어 버렸다.
형세는 점점 기울어가고... 오원은 답답하기만 하고... 이대로 두어가면 조용히 지는
그림만 나오고... 승부의 세계인 바둑에선 그런 얌전한 대국은 아무도 두지않는다. 형
세를 만회 해 볼라꼬 속칭 승부수라는 무리수를 둬가기 시작했는데 상대는 그의 도인
같은 냉정함으로 받아내서 오원의 바둑은 더욱.. 거의 지리멸렬이 되어 버렸다.
흐흐흐..... 자조의 실소가 나온다. 그렇다고 이대로 돌을 던지는건 대국자로서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래서 우선 늘려있는 대마를 하나한나 수습해가기 시작
하는데... 상대는 도무지 타협이 없다. 가차없이 자르고 고립시켜 요절을 낼 요량으로
압박해오는데... 오원은 상대의 무리수에 대한 응징을 진땀을 흘리며 받아냈고... 하
나를 수습하면 또다른 대마가 사지로 몰리고... 정말 지독한 대국이 되어 버렸다. 무
리수는 통하지 않으면 이처럼 곳곳에 헛점이 생겨 커다란 부담의 혹덩이가 되어 버리
는 것이다.
각고의 노력으로 대충 수습을 했으나 마지막으로 우측상단 대마하나가 심각한 생사의
위기에 몰려 버렸다. 이미 기운형세라 상대는 적당히 살려줘도 이기는데 꼭 잡아야 겠
다는듯 곳곳의 헛점과 맥점을 파고들며 피박해 들어오는데.. 사실 내가 보기에도 활로
가 없고 거의 빈사지경... 쳐다보고 있자니 이리저리 얼키고 설킨체 집하나없이 늘려
있는 대마가 처량하기 짝이 없다. 대마는 불사라 혔는디... 이리도 허무하게 장렬히
전사하는구나..... 싶다.
그러나 오원도 과거 동네바둑이지만 잡바둑에선 꽤 명성을 얻었었다... 절단을 내려
덤벼오는 상대에게 은근히 오기가 생긴다...
죽음의 문턱에서 삶을향한 장고의 수읽기에 들어갔다... 바둑은 종반이라 이미 다 굳어
져 있고 마무리가 안된 상단쪽을 머리에 쥐가나도록 수를 분석해 나갔고 결국 상단변의
특성을 활용한 실낱같은 희망의 수를 찾아냈다... 찾긴 했지만 이것이 수가 너무깊어
아름아름 하고 영 살린다는 자신이 없다... 조심스레 그곳에서 활로를 찾는수를 둬가
기 시작했고... 초읽기에 몰려 마지막 십초를 또각또각 세어 오지만... 이미 마음이
비워진 오원의 뇌리엔 냉정함이 서려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막강해 보이는 상대의
세력속에서 헛점을 하나하나 공략해 나갔다. 점점 사활이 형상화되고.. 이윽고 연결을
해가자 상대는 삶을 허용치않고 약간의 무리를 감수하며 과감히 끊어온다... 그 끊은
한수... 이한수에서 오원은 상대의 오기를 느꼈다... 이기는 바둑이 아닌 대마를 꼭
잡아버리겠다는... 하지만 역사의 반전은 바로 이 오기에서 시작되는것 아닌가?... 그
러니까 끊을 당시엔 그런 반전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단지 오원은 살기위해 가로막
은 한점을 매섭게 추궁해 내렸고... 상대는 아래의 막강한 세력을 믿고 거침없이 늘
여내렸을 뿐이다 그기엔 오기도 스며있다 쓸데없는... 그러나 필 받으면 부려지는 오
기... 우리는 돌부처 이창호가 아니다 대국자는 공들인 대마를 절대 쉽게 놓아주지 않
는다 그것이 대국심리이고 승부와의 별도로 기싸움인것이다.
그기다 상대는 아래에 강력한 원군이 벽을 이루어 모든면에서 유리해 보인다. 쫒고 쫒
기며 두말은 외통수순으로 내려선다. 그끝편에는 상대는 완벽한 원군이 기다리지만 오
원은 떨어져놓인 딸랑 두개은 돌뿐... 그러나 한수싸움에서 이어지기만 하면야... 그
런데 대충읽은 수로는 모행마로 연결되는 원군의 약점때문에 잘림을 보강하려면 한수
부족이된다. 우.... 역시 안되는수인가... 실망으로 잠시 뇌리에 만감이 교차한다.
던지기전 마지막 수읽기로 하나의 가정을 해 본다 모행마된곳에 잇지말고 건너뛴수 사
이를 무조껀 이어서 수를 늘리면?...... 순간 앗!... 하고 탄성이 나온다. 수가 발견
된것이다 자충의 묘수... 상대는 오원의 약점인 모행마를 절대 자를수 없다. 자충때문
에 자를수가 없다가 묘수인것이다. 카카카..... 순간 통쾌의 웃음이 나온다.
이어서 거침없이.. 다이랙터로 돌을 놓아가고 그 묘수를 못본 상대도 거침없이 늘여내
린다.
묘수가 있는 오원에게는 상대의 놓여지는 돌들이 한없이 즐겁다. 결국엔 비명횡사하여
오원의 집을 늘려주는 착한 돌들인것이다. 이윽고 흑백의 두말은 절대 잡히면 안되는
승부를 가르는 대마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원은 회심의일착인 모행마약점을 보강하지 않고 뛰어진수 사이를
이어버렸다. 그리고 순간.... 앗!.. 하는 상대의 비명이 여기까지 들리는듯 하다. 초
읽기가 이어지는데도 수가 놓이질 않는다. 완벽해 보이던 잡는수가 묘수 한방에 오히
려 통체 잡혀 버리고 그로인해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겨오던 바둑이 한순간에 역
전되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버린것이다.
순식간에 승리를 놓치고 패배가 되어버린... 상대는 지금 그 믿기지않는 현장을 처참
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을것이다.... 한창 날리던때 이창호는 대마를 잡지를 않고 이
기기만 했다던가... 대마를 잡는 수순에는 바로 이런 묘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
문이 아닐까 싶다.
상대의 기분이 처참한 만큼 오원의 기분은 통쾌하다. 이것이 상대성 질량 불변의 법칙
이라면 말이되나?...
하여간 당시의 내 기분이니까 초 치진 말길 바란다.
절대절명의 순간에서 묘수 한방으로 형세를 일거에 역전시킨 이 통쾌함... 바둑을 두
면서 빼놓을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젠 바둑을 이기건 지건 별 의미가 없다 사활을 건 집요한 싸움에서 승리한것 그것이
면 족한것이다.
대국은 끝났고 오원은 십년 스트레스가 한방에 휙~ 하고 날아갔다.
아!... 역전의 바둑이 즐겁다.
09.11.5. - 오원-
첫댓글 노가다후 느끼는 통쾌함인가... 암튼 스또레스 해소되니 좋은거네..
과거 한때... 바둑을 꽤 즐겼었는데.... 인자는 별로 재미는 없고 그냥 심심풀이로....... 삿갓도 생각있으면 타이젬 바둑이니까 들어오셔... 한수하게.....
을매나 통쾌했으면 상대성이나오고 질량불변의법칙 까정나올꼬....입꼬리가 살짝올라가는 소리없는 통쾌한 웃음이 연상되는구만
기싸움 시작되면 상대의 실수가 곧 나의 행운.... 상대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 흐흐...... 애기가의 바둑예기는 태공들의 낚시예기 만큼 소재도 많고 재미가 있제..
삭제된 댓글 입니다.
백년에 절반을 넘겨 살았응께......... 산은.. 날씨가 추워징께 슬슬 귀찮아지네...ㄹㄹ
벌써 오십이 넘었나?? 난 나만 오십 넘고, 오원은 아직 40대인줄 알고 있는데......ㅎ
푸.. 하..하하.... 아..... 오원 사십대때에는 북한산을 그냥... 뛰어 다녔었는디... 오십이 된께 벤치에 앉아 담배피는 할배들이 남의예기 같질 않어....
대단한 모임이제..... 세월을 일 이년이 아닌... 십 이십년을 넘나들고.. 산들을 놀이터삼아 오르내리고... 우리가 필시 仙友會 모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