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폐개혁에 대해서
2. 화폐개혁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
3. 화폐개혁과 선진국, 통일의 관계
4. 철석같은 선입견이 가장 두렵다
5. 화폐개혁 = 물가상승, 이라는 오해
6. 물가에만 집중하면 안되는 이유
지난 주말을 껴서 일본에 잠시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짧은 일정 동안이었지만,
일본의 물가가 우리나라보다 싸게 느껴지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빠뜨리고 온 치실을 사러 잠깐 들렀던 다이소 매장(100엔숍)의 여러 가지 물건들은 대부분 한국보다 싸게느껴집니다.
들른 김에 자명종시계, 계산기 등도 샀는데 모두 100엔입니다.
슈퍼마켓에서 과자류의 가격을 봐도 한국보다 비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후딱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들렀던 요시노야(덮밥 체인점)에서는 밥, 소불고기, 구운생선토막, 된장국, 짠지가 곁들여진 정식세트를 먹었는데 490엔이었습니다.
현재 환율로 5,400원 정도 되는군요. 역시 한국보다 싸게 느껴집니다.
이 집에 290엔(3,200원)짜리 쇠고기덮밥 메뉴가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처럼 20년이 넘는 일본의 장기불황은 소비자물가 중 상당수를 우리 한국보다 더 싸게 만들어놓았습니다.
일본의 1인당 GDP가 45,900달러(2011년 기준)로 우리나라 22,400달러의 두 배를 넘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일본의 물가가 정말 싸다는 사실을 더욱 절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일본인들이 행복해졌을까요?
돈을 쓰는 소비자 입장만 생각한다면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돈을 쓰는 소비자인 동시에 물건을 생산해서 팔아야 하는 생산자들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에서 만들어내는 생산품의 판매가격이 한국(소득수준이 절반도 안되는 나라)보다 더싸지도록 하락하는 동안,
생산자로서의 일본인들은 기나긴 고통을 느껴야 했습니다.
이처럼 ‘경제’라는 구조 안에서 우리 모두는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입니다.
매우 단순한 이 사실을 망각하면 안되겠지요.
일찍이 케인즈가 이 점을 지적한 바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읽힌 로버트 라이시의 책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를 비롯하여 여러 경제학자들이 주로 신자유주의 이론의 논리적 맹점을 지적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사실을 적시한 바 있습니다.
이 때 주로 문제 삼았던 것은 기업들의 착각이었습니다.
기업들이 근로자들의 임금을 계속 깎고서 좋아하는 것은 착각이다,
근로자들은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들인데, 그들의 임금을 계속 깎기만 하면 어떻게 되는가,
당장은 기업의 이익이 높아져서 좋아하겠지만, 결국은 경제 전체의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심각한 경기불황과 기업들의 파산이 될 것이다,
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결국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제위기(공황)는 바로 이들의 예측대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이 글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은연 중에 우리 한국인들 대부분이 그동안 기업들이 해온 것과 똑 같은 착각을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오로지 ‘물가’에만 집중하는 태도는 우리 모두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라는 단순한 사실을 망각한 것이 아닐까요?
흔히 장바구니 물가(생활물가)가 너무 높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장바구니 물가만 잡으면 만사가 오케이일까요?
만약 그런 것이라면 경제의 운용이 참 쉬울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처럼 20년 동안 물가가 하락하기만 한다면(전혀 상승하지 않는다면) 만사가 오케이,라고 한다면 경제의 운용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하지만 한국경제가 그와 같이 흘러간다면 ‘생산자로서의 우리’에게는 죽음과 같은 고통이 가해질 것이기에 경제의 운용이 간단치 않고, 고민을 더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물론 저는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저의 글과 책을 계속 봐오신 분이라면, 제가 디플레이션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줄곧 펴왔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것입니다.
오늘 이 글은 그동안 ‘화폐개혁’이라는 주제에 대해 줄곧 써온 글을 마무리짓는 글입니다.
화폐개혁은 분명 우리나라의 100년지대계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화폐개혁이 꼭 필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반대를 많이 보게 됩니다.
이러다가 나라의 100년지대계로서 꼭 필요한 일을 그르칠까봐 걱정돼서 이처럼 여러 편의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경제사학자인 킨들버거는 어느 책에선가(아마도 경제강대국 흥망사인 듯),
프랑스가 과거 19세기에 벌어졌던 강대국간의 경쟁에서 탈락한 이유 중 하나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과도한 우려’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최근 몇 년간 이 구절을 거듭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 하면 지금 독일이 그와 꼭 같은 과오를 범하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프랑스는 자국에서 18세기에 벌어졌던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대한 기억 때문에 ‘인플레이션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끝내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21세기인 지금 독일은 지난 20세기초에 자국에서 벌어졌던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대한 기억 때문에 역시‘인플레이션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끝내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문에 현재 진행중인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매우 소극적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겉으로 드러나는 부작용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저의 분석에 대해 의아해할 분들이 계실 듯 합니다만, 지금 쌓이고 있는 부작용이 앞으로 노정되기 시작하면 양상이 매우 분명해질 것입니다)
결국 앞으로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경제사학자들은 독일에 대해서도 프랑스와 똑 같은 평가를 내리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나라 역시 꼭 같은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됩니다.
과거 박정희 정부 시절 이래 1990년대초까지 우리나라는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주택가격 상승)을 경험했습니다.
1998년 이후 객관적인 경제여건과 인플레이션 양상 자체가 분명히 변했건만(금년 들어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대에 계속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 때의 인상이 워낙 강렬하게 우리 국민들의 뇌리에 박힌 나머지 심각한 판단착오를 빚게 만들고 있다고 봅니다.
이 때문에 꼭 필요한 나라의 100년지대계를 그르치게 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그릇된 확신은 무엇보다 본인과 가족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게 것이므로,
이런 분들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자신의 지식이 어디서 온 것인지, 객관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인지 재삼 돌아봐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새로나온 책 링크: 착각의 경제학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articleId=2362109&bbsId=D115&searchKey=daumname&sortKey=depth&searchValue=%EC%84%B8%EC%9D%BC%EB%9F%AC&y=-1090&x=-781&pageIndex=1
http://agora.media.daum.net/my/list?key=WWrolAUSdZE0&group_id=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