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이일호의 시 세계 삶의 궤적과 생명성 그 시적 진실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가난의 변’과 삶의 궤적 현대시의 발상 동기는 한 시인이 살아온 삶의 궤적(軌跡)에서 여과(濾過)한 불망(不忘)의 체험들이 현실적인 사물이나 관념과 교감이 될 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형상화하는 것이 통례(通例)로 나타나는 경향을 자주 대하게 된다. 이렇게 유추한다면 한 시인의 삶은 시를 창작하는 데는 절대적인 발상요인이 되고 이를 소재나 주제를 취택하는 것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체험의 중요성은 어제 오늘의 담론(談論)은 아니지만 우리의 모든 시인들이 자기의 체험을 중시하고 시적 진실의 탐구에 적용하는 것은 우리들의 실생활(real life)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 이일호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바람의 季節』을 일별(一瞥)하면서 문득 이러한 상념을 떨칠 수 없는 것은 이일호 시인이 현재 삶의 현장인 미국 이민 생활이 그의 시적 구도와 주제의 상황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책머리에’에서 ‘삶의 흔적 없는 수렁에 빠진 줄을 미쳐 몰라 높고 푸른 하늘만 바라보며 겁 없이 뛰던 아름다운 젊음이 있었고, 불혹을 지나 떠나는 이민의 과정에 교활한 유혹과 누명과 사기에 걸려 넘어지고 죽도록 질긴 병까지 얻어 신음하는 낭패한 삶도 있었다.’라는 비장(悲壯)한 언술을 통해서 그가 간직한 체험의 진수(眞髓)가 시로 승화(昇華)하는 과정을 소상(昭詳)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슬픔에 본적(本籍)이 있더냐 그냥 넘어가는 고지서 없듯 허약한 놈 쩔쩔매어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감기처럼 다정하다 삶이 뒤둥그러지는 가파른 언덕에 선 이민자의 발에 비가 내린다 이 작품「가난의 변」 전문에서 읽을 수 있듯이 그는 ‘이민자’의 애환(哀歡)이 함축(含蓄)되어 있어서 그의 현실적인 모습과 시적 심경(心境)을 잘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삶이 / 뒤둥그러지는 / 가파른 언덕에 선 // 이민자의 발에 / 비가 / 내린다’라고 그의 ‘가난’을 절규(絶叫)하듯이 분사(噴射)하는 화자(話者-persona)의 어조(語調-tone)를 간과(看過)할 수 없게 한다. 이러한 그의 궤적은 삶에 관한 더욱 확고한 입지(立志)를 명징(明澄)하게 설정하는 계기가 되었고 ‘사람들 사이에서 / 느끼는 맛이야말로 / 맛중의 맛 삶의 참맛이지요(「감각기관 1」중에서)’라는 삶에 관한 진미를 음미(吟味)하게 된다. 이일호 시인에게서 다시 삶에 관한 상념은 계속된다. ‘골동품의 거리를 헤매며 / 골동품을 만나 보는 것은 / 지나버린 시간을 못내 못잊는 / 삶의 조각 여행이다(「잃어버린 상념」중에서)’라는 단정으로 삶을 정의하고 있다. 大河無聲 ‘큰 강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유유히 흐를 뿐이다 이제 불혹(不惑)을 넘어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언덕에서 개나리봇짐 내려놓고 소나무 등걸에 드러누워 먼 바다를 동경(憧憬)하며 삶을 관조(觀照)하고 싶다 험한 협곡(峽谷)을 지나고 들판을 가로지르며 사태(沙汰)와 더불어 홍수(洪水)와 더불어 장강은 그렇게 만리(萬里)를 흐른다 세월을 따라 은은하게 흐르는 한 줄기 가락 그런 곡조를 읖조리고 싶다 이일호 시인은 이 작품「시작노트 1」과 같이 ‘이순을 바라보는 언덕’이 지금 현재의 삶이 지나가는 과정이다. 그는 ‘이순’의 시간을 맞으면서 ‘먼 바다를 동경(憧憬)하며 / 삶을 관조(觀照)하고 싶다’거나 ‘세월을 따라 은은하게 흐르는 / 한 줄기 가락 그런 곡조를 / 읖조리고 싶다’라는 간절한 기원의식을 현현함으로써 그의 삶을 어느 단계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관조하는 삶으로 변환(變換)시키고 있다. 또한 그는 ‘大河無聲’이라는 심리적인 진솔한 메시지를 분출하여 우리들의 공감을 유로(由路)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주(註)를 붙여서 적시(摘示)했듯이 ‘지혜로운 사물의 참모습과 나아가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고요한 마음으로 비추어 보면서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숙성(熟成)된 인생관을 토로(吐露)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인식은 작품「주름」에서 ‘흐르는 세월이 / 구름 같다고 해도 // 조용히 눈을 감고 / 매만지며올 걸 // 삶의 가닥을 따라 / 얼굴 한 복판에 // 가로 세로 깊이로 / 마냥 흐르네’와 같이 그의 삶은 시간성(세월)과 밀접한 상관성으로 실재적(實在的)인 시적 구도의 설정과 함께 진실을 탐색하고 있다. 2. ‘고독한 생존’과 생명성 이일호 시인은 다시 이와 같은 삶의 궤적에서 획득한 체험들이 이제는 상당한 지적(知的)인 경지에서 감응(感應)하는 시정신과 시적 메시지의 창출(創出)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생명성의 추구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누군가 말했듯이 ‘생존이란 일종의 투쟁이다. 요컨대 생존이란 승리를 유지함을 뜻한다’고 준엄(峻嚴)하게 일러 주고 있다. 맨 처음 울면서 왔을 때는 왜 울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악착같이 울었어 아니 울으면 눈물이 마를까봐 눈물이 마르면 죽는줄 알고 똥 싸고 울고 배고파 울고 생존의 눈물이었어 이후 사는 중량에 치어 눈시울을 뜨겁게 부비면서 억지로 울었어 아니 울으면 감정이 마를까봐 감정이 마르면 사는 줄 몰라 부르르 떨고 혀를 깨물고 고독한 생존이었어 --「슬픔의 뿌리 2」전문 아이들이 자라면서 안개 속으로 어렴풋이나마 사람 사는 길이 보였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성장하여 집을 떠나 살게 되면서 진정 아름다운 삶은 어떤 것일까 지나 온 삶을 가감 없이 바라보는 자연스러운 생각이 살며시 자리를 잡았습니다 --「자각」중에서 그렇다. 이일호 시인의 심저(心底)에서 숙성된 존재와 생명성에 관한 시적 정황(situation)은 ‘생존의 눈물’과 ‘고독한 생존’을 위한 현실과의 화해이거나 융합(融合)을 전제로 하는 그의 인생관 내지 가치관의 정립을 위한 지적 투쟁이었다. 그는 ‘생존’이라는 현실적 실재에서는 울음과 눈물이 공존하고 인내의 고독이 언제나 동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적인 갈등요인들이 ‘자각’을 통해서 인식하기 시작하는데 결국 ‘사람 사는 길이 보였습니다’거나 ‘진정 아름다운 삶은 어떤 것일까’라는 진정한 생존의 의미를 탐색하고자 하는 그의 시법(詩法)을 이해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이일호 시인의 ‘자각’은 인생에서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의 재정립을 위한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 궁극적으로 시적인 진실을 탐구하기 위한 지향점(指向點)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프랑스의 소설가 R. 롤랑이 말한 ‘생명만이 신성하다. 생명에의 사랑이 가장 첫째 가는 미덕(美德)이다’라는 언지(言旨)와 같이 우리들은 그 신성한 생명을 통해서 만유(萬有)의 자연과 더불어 인간성을 회복시키고 존재의 심오(深奧)한 문제에까지 시적으로 접근하려는 시의 본령(本領)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돌팔매로 던진 돌멩이 하나 파문을 남기며 물에 잠겼습니다 끝없는 동심원이 꼬리를 물고 시간이 빠져든 흔적도 없이 파문은 그 수심을 알지도 못하고 수면을 벗어나지도 못하는 채 동그랗게 제자리를 진동하면서 깊은 가슴을 겹겹으로 일렁입니다 --「공명」전문 아주 잔잔한 심성(心性)의 발현이다. ‘시간에 빠져든 흔적’이 ‘파문’을 일으키지도 않고 조용하다. 어쩌면 이일호 시인이 간구(懇求)하는 철학적인 개념의 ‘깊은 가슴을 겹겹으로 / 일렁’이게 하는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작품 전체에서 풍기는 시적인 멋은 이러한 관조의 보편적인 의식이 현현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아주 예민한 많은 감정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오관(五官)을 자극하고 / 자연의 섭리(攝理)에 순응하는 사고(思考)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 어떻게 순수한 글을 쓸 수 있을까? / 서정(抒情)은 우리들의 마음에 자리잡은 문학의 고향이다. / 우리는 그것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삶을 관조(觀照)하며 / 삶을 향유(享有)하는 숙명적 속성을 갖는다.(「시작노트 2」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사고’와 ‘삶을 향유하는 숙명’이 바로 그가 구현하려는 생존과 생명성의 중요한 진실이 되는 것이다. 3. 향수와 ‘이민자의 뒤안길’ 이일호 시인은 이와 같은 이민 생활을 통해서 그의 정서와 사유의 골간을 형성하는 것이 향수(鄕愁)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고국을 떠나서 이방인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다양하게 감지(感知)하는 생활 속에서 고향과 고향의 인연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당연한 심리작용일 것이다. 고향은 내 생명의 원천(源泉)이며 내가 자라난 생활의 터전이며 혈통(血統)의 중요한 인연이 담긴 곳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곳이기도 하다. 옛날 고시(古詩)에서는 ‘호나라 말은 언제나 북쪽을 향해서 서고 월나라 새는 나무에 남쪽으로 향한 가지를 골라서 앉는다(胡馬依北風 越鳥巢南貴)’는 것과 같이 향수에 대한 일상적인 집념과 함께 시적인 발현(發現)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가 ‘타향살이 몇 해던가 / 옛 노래 같은 이민의 삶에서 / 아직도 셋방살이를 못 벗는 / 두 딸 아비의 이사 보따리에서 / 어쩌다가 툭 터져나온 종이별 / 좁은 방한 가운데 밥상으로 /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종이로 접은 별」중에서)’거나 ‘이민자의 뒤안길 // 구겨진 휴지들이 / 바람 부는대로 / 이 모퉁이 저 모퉁이 / 씻으며 간다(「인간」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이러한 향수의 근원은 ‘이민의 삶’에서 저절하게 살아온 체험은 더욱 그를 향수의 시적 원류(源流)로 형상화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봄이 오면 바람을 기다리며 양지바른 고향 땅에 민들레 핀다 여름이 오기도 전 민들레꽃 지면 하얀 꿈 우산으로 펼치고 바람을 기다린다 봄이 가는 계절이면 언제나 바람을 타고 떠나는 망향의 꿈 흘러가는 유랑의 길섶에 노랑꽃 흐드러지면 바람이 눈을 뜬다 --「바람의 季節」전문 보라. 이시집의 표제시(表題詩)가 되는 이 작품은 바로 그가 오매불망(寤寐不忘)하는 ‘고향 땅’의 바람이 ‘망향의 꿈’으로 또는 ‘유랑의 길섶’으로 이미지가 승화하기 까지 그에게서 추출된 절규(絶叫)나 분출(噴出)이 얼마나 애절(哀切)한 심적인 고통인가를 짐작하게 한다. 그는 작품「잃어버린 시간」중에서도 ‘시간은 지금 어디로 오는거냐 / 너는 지금 어디로 가는거냐 / 바람은 오늘도 고향을 스쳐간다’거나 작품「도시의 뒷길」중에서 ‘고향집 텃밭에는 / 대추나무에 걸린 연에도 / 평화로움이 푸른 하늘아래 / 나비처럼 팔락거렸고 / 뒷동산에는 한가로움이 / 사방에 널려 있었다.’ 또는 작품「만하탄의 봄」중에서 ‘소 울음 / 언덕마루에 흩어지면 / 달래 무릇 씀바귀 봄 향기 가득 // 우리 누나 앞치마로 달려 들던 봄 / 풀피리 불어대던 봄 있었다’는 향수의 언어는 그에게 내재(內在)된 향수의 진원지가 고향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문풍지 떨고 찬바람 드는 윗목 밤 공기 깨는 다듬이 소리 잠결 도려내어 세월을 걷는 추적추적 궂은 비 어머니 눈물 지붕을 파고드는 고달픈 음성 뿌리 깊은 향수인가 먼- 고향의 표정 --「향수」전문 이일호 시인은 이 작품과 같이 ‘향수’에 대한 형상화는 ‘문풍지’와 ‘다듬이 소리’와 ‘세월’과 ‘어머니의 눈물’ 등이 복합적으로 형성된 ‘고향의 표정’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일찍이 플라톤이 언급한 ‘원류에 대한 동경..... 영원의 고향에 대한 거리감에 앓는 것, 그리고 그 곳으로 귀향하려는 노력, 그것이 향수’라는 것을 실감(實感)하게 한다. 이러한 향수의 저변(底邊)에는 ‘어머니’가 상존(常存)하고 있음도 그냥 간과할 수 없는데 ‘한밤중 잠결에도 문득 깨어서 / 잡초 덮인 산 허리를 돌고 돌아서 / 형 묻은 곳 찾아가 황토를 쓰다듬는 어머니 // 어머니는 귀신들렸다고 무서워 떨면서도 / 어머니 뒤를 몰래 밟고 따라 다녔다--중략-- // 이제 이 세상에 아니 계시고 / 남아 있는 모정이 모진 바람 되어 / 마른 내 가슴 쪼개 놓는다(「어느 날의 일기」중에서)’거나 ‘고생 끝 / 가신 어머니 생각 // 씻을 수 없어 / 십만 리 저편 하늘 바라봅니다(「잊지 못하여」중에서)’와 같이 ‘어머니’에 대한 모정이 시적 상황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그의 향수는 고향과 어머니에 관한 이미지가 정서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오늘의 석학 이어령 교수가 향수는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아름답게 보인다. 먼 데서 쳐다봐야 한층 더 붉게 보이는 단풍과도 같다고 말한 것처럼 이일호 시인의 향수는 이민 생활에서 절실하게 체험한 이방인 또는 이국에서 인식된 우리들 인간 본연의 정(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자연 교감 혹은 서정적 자아 이일호 시인은 자연과 인간이 상호 감응하는 서정시인이다. 그가 주변에 지천으로 대할 수 있는 자연이 바로 그가 지향하려는 생존과 합일(合一)을 이루는 시적 상황이며 여기에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본질을 교감하려는 서정적 자아(自我)를 투영(投影)하는 시법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서정성은 먼저 자연 현상에서 탐색하는 경향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계절적인 감각이 뚜렷하게 현현되어서 시간성과 자연의 변화에서 명민(明敏)한 사유의 정점(頂点)을 부각(浮刻)시키는 효과를 이해하게 된다. 숲길을 걸으면 종종 이름 모를 풀꽃을 만난다 작고 단순한 풀꽃에는 순박한 어여쁨이 맺혀 있다 조화로움을 오롯이 갖추어 핀 작고 신선한 풀꽃에 반한다 나뭇잎에 부서지는 햇빛에 곱게 피는 순정한 풀꽃에서 까맣게 잊었던 모습을 본다 아름다운 마음을 본다 --「숲속의 꽃」전문 이 작품에서는 ‘순정한 풀꽃’의 이미지가 ‘숲속’이라는 아늑하고 안정된 공간이라는 그의 정감(情感)은 ‘까맣게 잊었던 모습’과 ‘아름다운 마음’을 인식하게 되고 깨우침의 의식으로 흐르고 있다. 이러한 ‘조화로움’은 이일호 시인이 ‘숲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投與)하는 투사(投射-project)하는 시적 전개를 구현하고 있다. 고 김준오 교수의「詩論」에 의하면 시인이 모든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그것을 내적 인격화하는 동화(同化-assimilation) 원리와 시인은 정체가 없기 때문에 그가 계속해서 어떤 존재를 채우는 것,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投與)하는 투사의 원리, 두 가지의 감상적 오류(誤謬)를 설명하고 있다. 대체로 우리 시인들은 이 두 원리에 의해서 자신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자연의 한 형태가 될 것인지, 아니면 자연 밖에서 자연을 관찰할 것인가 하는 것은 개개의 체험과 사유의 지향점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1)기척도 없이 어느새 달려온 봄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고 수선화는 바람에 흔들거린다 (2)구월이 가고 시월에 물든 가을이 저만큼에서 십리는 앞서서 간다 이일호 시인은 작품 (1)「봄의 외출」과 (2)「가을에는」중에서 그가 계절적인 자연 감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서정적 자아의 원형(原形)은 독일의 극작가 F. 쉴러의 ‘소박(素朴)한 시인’의 개념과 연결시킬 수 있는데 시인은 ‘자연으로서 존재’하든가 혹은 ‘상실한 자연을 추구’하든가 두 개의 경우로 나누어서 보면 전자는 소박한 시인이며 후자는 감상적인 시인이라고 했다. 또 쉴러는 시인이 순수한 자연으로서 있는 동안에는 순전한 감성적인 통일체로서 또는 전체가 조화된 존재로서 행동하며 감성과 이성, 사물을 접하는 능력과 자율적인 행동 능력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대립되지 않는 상태에서 활동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일호 시인은 순수 자연을 인간과 접목(接木)시키는 순정적인 서정성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연 서정시에는 「나뭇잎」「잃어진 계절」「꽃물감」「돋나물」「버들꽃」「감나무 일기」「폐허에서」「추억의 강」「할미꽃」등 많은 시편들에서 친자연의 감응과 조우(遭遇)하면서 서정적 자아를 탐색하고 있다. 이제 이일호 시집 『바람의 季節』에 대한 시읽기를 마무리 해야겠다. 그는 이민의 삶이라는 환경의 변화에서 체득한 체험적 상상력이 어떤 고뇌와 갈등의 요인들을 조화롭게 화해하고 앞으로 미래에 설정되어야 할 불확실성의 가치관 설정에 대한 기원이나 지향점을 표출하는 생존과 존재의 생명성을 탐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면서 그는 향수에 대한 의식이 강렬하게 분사하면서도 친자연관에 시적 진실을 투영하거나 창조하는 시법을 높이 평가하게 한다. 그러나 시는 철학자 호라티우스의 시론처럼 아름답기만 해서는 안 되며 우리들의 마음을 뒤흔들어야 하고 또 듣는 이(혹은 읽는 이)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찍이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인 보들레르가 말했듯이 시는 항상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 자체 속에 이상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이 있기 때문에 우리 시인들은 자신의 현재에서 회상하는 체험의 반추(反芻)나 성찰(省察)을 통해서 다시 정립하는 미래의 지향성을 적시하는 시정신이 필요하게 된다. 이일호 시인도 이러한 관점(觀點)을 참작해서 다음 시집에서는 더욱 숙성되고 승화한 형이상시(形而上詩)의 경지를 접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