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해방기
진선이
“이번 휴가 어디로 갈까?” 신랑이 물었다.
“글쎄, 날도 더운데 그냥 집에서 쉬면서 영화 보고 독서하며 뒹굴뒹굴 쉬면 안 될까? 그리고 각자 하고 싶은 것 하는 시간으로 갖는 건 어때?” 자영업 하는 우리 부부는 일을 함께하다 보니 24시간 붙어 있는 시간이 많다. 내심 이번 휴가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2년 동안 코로나로 여름휴가를 휴가답게 보내지 못한 신랑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자 휴가 갈 장소를 물색해 보라며 말을 건넨다. 직장인처럼 연차가 없기에 휴가가 길진 않지만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에 주어지는 황금 같은 휴가를 2년 동안 통째로 날려버렸으니 몸이 근질근질할 만도 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코로나가 걱정되었다. 일상을 벗어나 자연으로 떠나는 즐거움도 맛보고 싶었지만, 올 휴가는 집에서 보내면서 정신과 몸을 편히 쉬는 북캉스로 계획을 잡았다. 읽을 책도 미리 준비해 두었다.
젊은 피가 한창 끓어 불타오를 때는 열정을 발산하기라도 하듯 무조건 집을 떠나 즐거움을 밖에서 찾았다. 집을 떠나 새로운 것을 보고 즐기는 흥분과 기쁨으로 넘쳐 마음은 휴가 가기 전부터 들떠 휴가 날짜보다 먼저 떠나가 있었다. 그때는 더워도 더운지 몰랐고 피곤해도 피곤한지도 모르고 생기 넘치게 돌아다녔다. 지금은 나이 탓일 수도 있고 열정이 식은 것일 수도 있지만, 이제는 조용히 즐기는 휴가가 좋다.
휴가는 출근하기 위해 몸이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늦잠도 늘어지게 잘 수 있다. 끼니때 맞춰 먹지 않아도 되고 배고프거나 먹고 싶을 때 아무 때나 먹어도 되니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가 있다. 시간이 주는 여유로움이 휴가가 주는 쉼의 매력이다. 잠시 쉬면서 일상을 내려놓고 매일 하는 규칙적인 삶에서 벗어나 평소에 하지 못하는 것을 누리는 것 또한 휴가가 주는 다른 재미이며 참맛이기도 하다.
올 휴가는 주말을 끼여 5일이고 토요일은 아들 생일이다. 생일이어도 유일하게 미역국을 끓이지 않는 날이다. 아들은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 신랑은 아침부터 아무것도 하지 말고 무조건 쉬란다. 여름 중 가장 덥다는 7월 말에 태어나 더위를 온몸으로 느끼며 태어난 날이다. 26년 전 그땐 나도 힘들고 아들도 힘든 날이었다. 아들은 늦잠을 자게 놓아두고 신랑과 한산 영화를 보러 나가며 아들에게는 영화 끝나는 시간에 마쳐 점심 같이 먹자고 약속을 잡았다.
점심을 먹자 아들이 “엄마 이렇게 더운 날 나를 낳으라 고생했어. 오늘은 엄마를 위한 날이야.” 아들 한마디에 여름 햇빛에 아이스크림 녹듯이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지금부터 오후 스케줄은 자기한테 맡겨 달란다. 오늘은 엄마를 위해 시간을 쓰겠다며 운전해서 아들이 데리고 간 곳은 마곡에 있는 서울 식물원이었다. 여러 번 같이 오자고 했던 곳인데 이제야 내가 시간을 냈다. ‘휴가라 좋긴 좋다’라는 생각을 했다. 식물원에 있는 나무들은 더운 날씨에 잘 자라는 밀림 나무들과 지중해 나무들로 이루어져 온실은 생각보다 더웠다. 키가 큰 나무들과 더위는 마치 밀림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더워도 좋았다. 우리 가족이 건강하게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가 넘쳤다.
온실 나무들을 보고 실내로 들어오니 작은 화초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화초를 좋아하는 신랑은 예쁜 아이들을 보며 싱글벙글한다. 집에 데려갈 아이들을 잔뜩 골라 담았다. 신랑 얼굴에 미소가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걸 바라보는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았다.
아들은 드라이브하고 멋진 카페에 가서 커피도 한 잔 마시자며 파주에 있는 카페로 우리를 데려갔다. 서울에선 보기 드문 카페 크기에 놀랐고 많은 사람이 있음에 두 번 놀랐다. 식물원에서 보았던 큰 나무들이 카페 여기저기에 있어 분위기도 좋았다. 카페에 앉아 창밖 풍경을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며 시간을 즐기는 것도 나름 마음이 평온했다. 커피를 마시며 즐기고 있는데 카톡이 울렸다. 같은 날 휴가를 맞은 시누이 가족은 짐을 꾸려 아침부터 장흥 캠핑장에 가서 즐기고 있다며 사진을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사진을 보니 살짝 가고 싶은 마음과 부러움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렸다. ‘부러워하면 지는 건대’ 카페 흔들의자에 앉아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에 취해 있노라니 저녁밥이 하기 싫어졌다. 전화기를 들어 캠핑 간 시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거기 놀러 가면 저녁밥 주나?”
“먹을 것은 충분하지만 혹시 모르니 올 때 삼겹살 조금만 사와.”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전화를 끊고 우리 가족은 망설임 없이 시누네가 있는 캠핑장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약 20분쯤 달리니 맑았던 파란 하늘이 회색빛으로 물들며 먹구름을 잔뜩 물고 있다. 가는 도중 소나기를 만난 덕에 더위는 한풀 꺾었다. 카페에서 한 시간 삼십 분쯤 달려 캠핑장을 찾아 꼬불꼬불 좁은 산길을 올라갔다. 산 위에 올라와 아래로 펼쳐지는 전경을 보니 오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넋을 잃게 만든다. 비는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다 올 듯 말 듯 하며 가랑비를 흩날렸다.
캠핑장은 내 안의 감성을 자극했다. 푸르른 초록 속에 우산 위로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이 귀를자극하며 운치 있게 한 몫 거들었다. 비가 그치니 하늘과 나무 사이로 운무가 깔리며 분위기 끝판왕으로 치달았다.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내리자 캠핑장 주변에 꼬마전구에 불이 켜지며 캠핑장 분위기를 한껏 끌어 올렸다. 남자들은 숯불을 지피고 저녁 준비로 바빴다. 조카는 캠핑 의자를 내어 주며 앉아 쉬라고 했다. 쉬며 마시는 한 잔 커피에 분위기 젖어 밥을 먹기도 전에 배가 불렀다. 배부른 저녁과 편안함을 주는 자연 속에서 함께 웃는 가족이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내 안에 행복이 가득했다. 하루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고 최고의 쉼이었다.
휴가 첫날이다. 휴가라고 생각하니 평소보다 몸이 늦게 반응했다. 일할 때는 6시와 7시 사이에 일어나 매일 하는 루틴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시계는 9시가 넘었는데도 눈에 무거운 철을 올려놓은 듯 눈꺼풀이 들어 올려지지 않았다. 그대로 누워 음악을 틀었다. 오늘은 월요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누워 있는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너무 좋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침대에서 뒹굴며 음악을 듣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배가 불러야 행복감이 두 배겠지 싶어 늦은 아침 이른 점심을 준비해 신랑과 맛있게 먹었다. 매달 인터넷 TV에서 무료로 주는 만 원권 영화 티켓을 받아 여유롭게 쥐라기 공원 영화를 한 편 봤다. 영화가 끝나자 신랑은 나갈 채비를 했다.
“이번 휴가는 각자 하고 싶은 것 하기로 했으니 너에게 시간을 줄게. 너 하고 싶은 것 해.”하며 신랑은 밖으로 나갔다. 아들도 공부하러 가고 집에는 혼자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시간인가. 또 한 번 너무 좋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이제 즐기기만 하면 된다. 옆에 있는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이제부터 나를 위한 휴가 시간이 시작되었다.
커피 마시며 책을 읽다 갑자기 노래가 부르고 싶어졌다. 내가 생각해도 난 즉흥적인 면이 있다. 한참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 소싯적 얼토당토않은 꿈을 꾸며 업으로 삼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현실과 꿈은 아주 멀다는 것을 나이를 먹고 철들어 가며 알게 되었다. 모든 신경이 노래에 쏠려 있을 때는 마이크 잡고 노래하고 싶어 노래방을 들락거렸다. 여전히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지만 노래 부르는 꿈을 접어 둔 지 오래다. 노래로 꿈을 펼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재정과 알량한 실력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참 좋은 세상이다. 노래방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노래방처럼 부르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노래방보다는 흥이 떨어지긴 하지만 혼자 즐기기에는 손색없는 시스템이 있다. 유** 노래방 반주를 틀고 블루투스 마이크를 켜고 핸드폰으로 녹음하면 끝이다. MZ세대 노래는 잘 모른다. 입에서 가사가 빙빙 돌고 화면에 띄우는 가사 보지 않고도 입에 착 달라붙는 노래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예전에 좋아하며 노래방 가면 자주 불렀던 노래를 선곡했다. 노래 10곡을 쉼 없이 부르니 혼자 흥에 젖었다. 들어주고 손뼉 쳐 주는 관객이 없어도 난 지금 이 무대의 주인공이다. 나만 들을 수 있는 내 목소리의 노래다. 녹음된 노래를 다시 들으니 만족할 만큼 잘 부른 노래는 아니다. 목소리가 예전에 비해 맑지 않고 음정 박자감도 살짝 떨어졌다. 녹음된 목소리가 왠지 낯설었다.
어떤 일이든 꾸준히 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고 오히려 퇴보하고 녹슬기 마련이다. 노래를 부르지 않으니 노래가 잘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노래는 아직 포기 못한 나의 꿈이다. 꿈은 나이와 상관없다. 그렇다고 요즘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에 나가 가수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럴 만한 실력에 소유자도 아니다. 단지 노래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내 목소리로 녹음한 음반을 갖고 싶은 것뿐이다. 난 여전히 노래 부르는 나를 꿈꾸고 있다.
휴가가 주는 여유로운 시간이 마음마저 여유롭게 만들어 혼자 있는 나를 바라보게 하고 날 노래 부르게 한 휴가 첫날이었다.
휴가 이튿날 이른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설 준비를 했다. 난 외출을 할 때 습관적으로 챙기는 것이 있다. 그것은 책이다.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고 30분 이상 걸리는 외출을 한다거나 1박 2일 짧은 여행을 갈 때면 책을 가지고 간다. 가져간 책을 읽을 때도 있고 읽지 않고 그냥 가지고 오는 경우가 생길지라도 무겁게 책을 챙긴다. 책이 없으면 왠지 허전하고 뭔가를 놓고 온 기분이 든다. 어쩜 책에 대한 강박감인지도 모르겠다.
가방에 책 2권 넣고 우산 커피 즉석카메라까지 챙기니 가방 안이 미어진다. 책을 가방에 넣으며 살짝 망설였다. 오늘 갈 곳이 서점이기에 분명 그곳에 가면 1권 이상의 책을 사서 올 거라는 것을 예상한다. 디지털 세상에 살면서도 핸드폰으로 보는 디지털책은 책을 보는 느낌이 덜해 종이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가서 책을 사더라도 가는 도중에 읽을 것이 있어야 마음이 편해 가방에 책을 넣고 집을 나섰다.
책 읽으며 가기에는 운전을 하는 것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버스보다 흔들림이 적은 지하철을 타러 걸어가다 버스정류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서울 시내를 다닐 때 도로가 막히는 것을 고려해 시간 여유가 없을 때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편이다. 오늘은 휴가가 주는 시간적 여유를 만끽하며 바깥 풍경을 보며 가고 싶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운전할 때보다 여유로움이 생긴다. 운전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 놓고 눈을 돌려 여기저기 세상 구경을 할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이 주는 매력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3분쯤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버스에 몸을 싣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 잠시 내리다 그치는 소나기인 줄 알았는데 목적지에 와서 내릴 때까지 비가 왔다. 지하철을 탔으면 보지 못할 풍경이다. 버스 창문으로 비가 스쳐 지나갔다. 양화대교 밑으로 한강이 보였다.
휴가 때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어 일부러 하루 시간을 빼두었다. 오늘 목적지는 서대문에 있는 한옥에 꾸며진 독립서점이다. 한옥 독립서점은 평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운영하고 있다. 주말에 운영한다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일하는 나로서는 평일에 간다는 것은 엄두 낼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휴가 때 꼭 가보고 싶은 서점으로 콕 찜해 두었다. 비 오는 화요일 휴가가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다. 주말 말고 평일에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인 셈이다.
한옥 서점은 지하철 5호선으로는 서대문역 3호선으로는 독립문역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처음 가는 곳이라 정확한 위치도 모르고 SNS에 올려진 주소만으로 찾아가는 길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하차하니 길 건너편에 독립문이 보였다. 여기까지 와서 독립문을 보고 가지 않으면 서운한 마음이 들 것 같아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건너 빗속에도 당당하게 서 있는 독립문을 향해 걸어갔다. 며칠 후면 77주년 광복절이다.
독립문은 서재필을 중심으로 독립협회가 우리나라 영구 독립을 선언하기 위해 국민의 헌금으로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세운 것으로 광무 2년(1898)에 완공하였고 1979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독립문을 본 후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신 순국선열 위패가 있는 독립관에 들러 묵념을 올렸다. 오늘의 평온함을 있게 해준 감사의 묵념이었다. 얼마나 불러보고 싶은 대한독립 만세였을까. 이곳에 와 잠시 서 있는 동안 마음이 숙연해졌다. 순국선열분들의 희생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서 있는 것이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 밖에 다른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가꾸고 지키는 것이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길이다.
독립문에서 나와 빗속에서 한옥 서점을 찾아 20분을 헤매다 비와 함께 서점에 들어섰다. 한옥 서점은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고즈넉함과 고풍스럽게 멋스러움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분위기를 한 층 더 해주었다. 서점을 둘러보고 읽을 책 3권 사고 비로 인해 살짝 추워진 몸을 따뜻하게 해준 차를 갖고 서점 다락으로 올라갔다. 다락 위로 올라가니 작은 마당이 보였다. 마당에 핀 꽃과 나무는 비를 맞으며 나를 반갑게 맞아주며 활짝 웃고 있었다. 다락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어디를 보아도 한 폭의 액자 속 그림 같았다. 이 장소, 이 시간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진심 담긴 마음으로 이런 한옥이 오래도록 보존되어 오래 머물러 주기를 바랐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것을 나이를 하나씩 보태며 알아가고 있다. 다락에 앉아 옛 선비가 된 마음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더 머물고 싶었지만, 폐점 시간이 되어 마음을 접고 다락에서 내려오며 생각했다. ‘언제 여기를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래서 더 아쉬웠다. 한옥 서점에 마음을 두고 온 두 번째 휴가 오후였다.
휴가 셋째 날 북캉스 꿈은 깨졌다. 휴가인 걸 안 친구들은 맛있는 점심 같이 먹자며 전화했다. 책은 다음에 읽고 나오라고 성화다. 친구들의 말을 무시할 수 없는 게 내 입장이다. 늘 미안하고 빚진 마음이 친구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일이 일찍 끝나는 직업이 아니기에 평일에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런 날 위해 친구들은 대부분 내 스케줄에 일정을 맞춘다.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 단체 카톡 창에는 “너만 시간 되면 돼”라는 글이 남는다. 만나는 것부터 여행 가는 것까지 배려해 주는 고마운 친구들이다. 이런 친구들에게 쿨하게 시간을 내 줄 수 있는 날이 있다면 그건 휴가 날이다.
북촌에서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점심을 배불리 먹고 커피숍에 앉아 그동안 밀린 수다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배도 부르고 날씨도 좋고 그냥 앉아 있기 아까웠다. 친구 중 A가 북촌이 처음이라 하여 산책 삼아 북촌 구경에 나섰다. 친구 A는 아직 서울에 이런 곳이 남아 있는지 몰랐다며 발길 닿는 곳마다 연신 예쁘다고 말했다. 난 A가 이곳 풍경을 오래도록 기억하기를 바랐다. 걷다가 북촌 풍경이 그려진 엽서가 눈에 띄었다. 예쁜 엽서에 담긴 북촌 풍경 세 장을 사서 각자 자기 마음에 드는 엽서를 골라 가졌다. 작지만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 북촌 기와를 오래도록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골집 기와가 떠올랐다.
시골집은 기와장이 올려진 지붕에 아궁이가 있는 한옥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거기에 있어서인지 난 한옥을 좋아한다. 할머니가 쌀을 씻어 가마솥에 안쳐 놓으며 아궁이에 불을 지펴 불을 때는 것은 내 몫이었다. 마른 깻단이며 고춧대는 불을 때는 좋은 불쏘시개 재료였다. 가마솥 밥을 태우지 않고 밥을 하는 것은 불 조절에 있었다. 난 불 조절의 명수였다. 누룽지와 숭늉을 좋아하시는 할아버지를 위해 딱 한 끼 드실 만큼의 누룽지가 알맞게 누를 수 있도록 불을 조절하며 땠다. 가마솥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면 할머니는 솥에 얹어 찔 달걀찜 그릇을 들고 오셨다. 솥뚜껑을 열고 밥 위에 달걀 그릇을 올려놓고 뚜껑을 닫았다. 가마솥에 들어간 달걀찜은 밥 뜸을 들일 때 약한 불로 때는 수증기 열로 익혔다. 할머니의 달걀찜은 특별한 것이 없는데도 부드럽고 입에서 살살 녹았다. 그때 먹었던 기억으로 가끔 만들어 먹지만 가마솥이 아니여서인지 할머니의 손맛을 따라갈 수 없다.
불을 때며 아궁이 앞에 앉아 불 멍을 하는 것도 좋아했고 불 땔 때 타고 있는 나무를 휘젓는 막대기로 장단을 맞추며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했다. 여름이면 마당에 핀 봉숭아 잎을 따서 백반을 넣고 찧은 봉숭아 잎을 손톱에 올리고 비닐로 덮고 실로 꽁꽁 싸매 주었던 할머니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봉숭아 물이 첫눈 올 때까지 손톱에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던 어린 소녀가 있었다. 시골집 마당에 감나무와 모과나무는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내어 주었고 가을이면 풍성한 먹거리를 내어 주었다. 대청마루에 앉아 구름 지나가는 모습 나뭇가지에 앉아 울어대던 새 소리, 들판에 초록 벼가 노랗게 익어 바람에 일렁이던 모든 것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겨울이 오기 전 할아버지와 함께 문풍지 바르던 것까지 기억 저편에 있던 파편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시골집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곳은 15계단쯤 올라가는 옥상이었다. 낮에 옥상은 할머니의 것이었지만 밤에 옥상은 나만의 사색 공간이었다. 어둠이 짙게 내려 불빛이 없는 옥상 평상에 누워 별빛을 감상하기에 딱 좋은 핫한 장소였다. 까만 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은 어떤 보석보다 예쁘고 아름다웠다. 수없이 펼쳐진 별자리 이름을 다 알지 못해도 멀리서 반짝이는 별을 보며 별 너머 세계를 동경했다. 윤동주 시 별 헤는 밤 서시, 서정주 시 국화 옆에서 유치환 행복 등 시를 읊고 낭송하며 동경했던 나의 별들이 있었다. 지금은 되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니 이제 나도 나이 들어가나 보다. 이제 시골집도 세월의 시간을 이기지 못해 현대식으로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아직 그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고맙다.
북촌에 나무 대문은 한옥에 기품을 말해준다. 오랜 시간의 흔적으로 사람 손길이 닿으면 나무가 뿜어내는 빛깔이 있다. 새로 짓거나 보수해서 내는 나무의 빛깔과 전혀 다른 색의 빛을 낸다. 지붕 기와 선을 따라 흐르는 곡선도 아름답다. 맑은 파란 하늘 아래 멋스럽게 서 있는 북촌 한옥을 바라보며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옛것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대로 멋이 있고 옛것은 예스러움으로 나름의 빛을 발한다.
오래 걷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말랐다. 잠시 다리 쉴 곳을 찾아 팥빙수 메뉴를 정해 놓고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올여름 처음으로 먹은 팥빙수였다. 어느덧 친구들이랑 놀다 보니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친구 B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 사무실 근처에 있다며 우리 밥을 사달라며 전화했다. 친구 B 남편은 흔쾌히 오케이를 했고 우린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멀지 않은 거리여서 걸어가려다 택시와 버스를 고민하다 버스를 타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퇴근 시간과 맞물린 시간이라 버스 안은 몸을 틀지 못할 정도로 혼잡했다. 버스에 마지막으로 올라탄 우리는 버스 앞문을 겨우 닫고 출발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거리는 5분 남짓 가는 거리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탄 퇴근 버스를 얼마 만에 타 보는지 헤아려 보았다. 집과 일터가 가까워 도보로 출퇴근하기에 혼잡한 시간에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은 지 벌써 15년이 넘었다. 버스 타고 잠깐 가는 5분 사이에 20대 초 각자 부푼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 온 나와 친구들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시골티 팍팍 났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 애썼던 우리의 젊은 날이 있었다. 의지할 곳 없는 우리는 서로서로 의지하며 서울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았다. 치열했고 힘겨웠던 시간을 지금 이 친구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견뎠을까 생각하니 버스 안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순간이었다. 버스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며 내일이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마지막 휴가를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