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의 이름으로
최순희
슬금슬금 안개비가 내리고 있다. 뿌연 안개비는 때론 바람에 쫓겨 달아났다 다시 제자리인양 돌아온다. 안개비에 시야가 가린다. 자동차 속력을 늦춘다. 목적지가 가까워져 오자 안개가 걷히고 가랑비로 바뀌었다. 어제부터 슬슬 내리던 봄비다. 검정 바지에 흙탕물 묻힐까 봐 바짓가랑이 거머쥐고 주차한 차를 돌아보니 빗물이 슬픈 눈물처럼 가랑가랑 흘러내리어 바퀴에 따라온 황토를 씻겨주고 있다. 고모는 이 비 오는 날에 절간으로 무슨 호출이람.
영화사, 영화사 가는 길은 몸치 굵은 노송과 수목들 울울한 숲길도 아니고 옷깃 여미며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서는 고색 짙은 일주문도 보이지 않는다. 작은 절 문 좌우에 사천왕상 두 분이 우람하게 버티고 계신다. 좌측 사천왕상은 성난 듯 두 눈 부릅뜨고 우락부락한 모습으로 목에는 푸른 목수건 느슨하게 매고 무릎 덮이는 초록 갑옷 커다란 맨발에 오른손은 눈 가까이 불끈 쥐고 왼손에는 삼지창 쥐고 우뚝 서 계시고, 우측 사천왕상은 꽉 다문 입이며 부라린 눈에 노란 목수건 두르고 맨발에, 길쭉길쭉한 손톱이 유난히 드러나는 큰손으로 검은 돌덩이 하나를 가슴 위로 번쩍 들어 올리고 하늘하늘 나부끼는 금색 진홍 녹색의 구름 띠를 전신을 두르셨다. 영화사 도량에는 대웅보전도 관세음보살전도 미륵불전도 구름 위에 앉았는가. 대웅전을 향해 합장하고 절했다. 두 개의 석등이 불전으로 인도한다. 흰색 자주색 조롱조롱 달린 초롱꽃이 초록 손 벌려 가랑비를 만지고, 잔디는 목욕하여 파릇파릇 생기가 돌고 조팝나무는 하얀 쌀 튀밥을 잔뜩 뒤집어썼다.
소박한 법당에는 석가여래부처님 광배가 소리 없이 빛을 발하는데, 후불탱화 부처님 좌우에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서 계시고 뒤쪽에는 부처님 십 대 제자들이 옹위하고 계신다. 흰 사기 호롱불이 작은 불을 밝히고, 소담스레 담은 떡과 과일이 불전에 보기 좋게 진설 되어 있다. 진홍색 분홍색의 초파일 연등이 머리 위에 줄지어 달려있고 불자님들 일심으로 기도드린다. 춤추는 촛불은 제 몸을 태우고 피어나는 향불은 업장을 사르리. 관세음보살부처님 발치의 양란들은 나비 같은 꽃을 피워 부처님만 뵙지 말고 저 봐 달라 눈짓한다. 불자님들 정성인가 향로며 다기들이 반짝반짝 번쩍번쩍 빛을 낸다.
회색 절 옷에 반듯하게 빗은 머리 묶어서 올리고 오른 손목에 나무염주 팔찌하고 108 염주 돌리며 고모가 절을 한다. 두 손 모아 합장하고 무릎 꿇고 엎드리며 정성 모아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연호하며 늙지도 젊지도 않은 우리 고모가 부처님께 절 올린다. 먼 데서 온 손님 보곤『지혜의 등불』 법문과 회색 방석 내민다. 100배를 했는지 200배를 했는지 고모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지극한 기도는 소원성취기도인가. 사바세계 일체중생 행복을 염원하는 기도인가. 불의의 사고로 병고로 안타깝게 이 세상 떠나신 영가님들 극락왕생 기도인가. 가사 장삼 두르신 큰스님 작은 스님 들어오시어 초하루 법회 시작되었다. 목소리 쩌렁쩌렁한 큰스님도 찔레꽃 닮은 젊은 스님도 비구니 스님, 스님 신도 다 함께 천수경을 기도한다.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천수천안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대다라니
고모가 눈감고 천수경을 외운다. 문득 옛날 학창시절 들은「천수대비가」가 떠오른다. 신라 경덕왕 대에 다섯 살 여자아이가 갑자기 눈이 멀어 그 어머니와 아이가 천수대비 앞에 무릎 꿇고 노래를 부르며 자비를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올려 마침내 아이가 눈을 뜨게 되었다는 아름다운「천수대비가」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 그 하나를 덜어 주시기를 원한 간절한 기도여. 참회게 기도 때부터 고모가 운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손수건을 꺼내어 고모 손에 쥐여주었다.
아석소조제악업 개유무시탐진치
종신구의지소생 일체아금개참회
살생한 죄업을 오늘 참회합니다
도적질한 죄업을 오늘 참회합니다
사음한 죄업 거짓말한 죄업 발림 말한 죄업
이간질한 죄업 나쁜 말 한 죄업 탐애하는 죄업
성내어 지은 죄업 어리석어 지은 죄업
참회합니다 참회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강산이 몇 번을 변해도 참회게 천 번 만 번을 외워도 내 죄업은 티끌만치도 줄어들지 않구나. 관세음보살!”
“고모, 고모가 자꾸 우시니 나도 눈물 나요!”
“윤희야 넌 울면 안 돼. 네가 무슨 잘못 있다고.”
깜짝 놀라 눈물 뚝 그치는 우리 고모, 여래십대발원 문을 큰소리로 읊는다.
여래십대발원문
원아영리삼악도 원아속단탐진치 원아상문불법승
원아근수계정혜 원아향수제불학 원아불퇴보리심
찔레꽃 닮은 작은 스님이 쇠북을 치신다. 덩~~~ 덩~~~ 덩~~~
종소리의 여운이 메아리처럼 길게 울려 퍼져나가는데 고모는 가슴에 두 손 합장하고 미동도 하지 않고 눈 감고 있다. 저 울림은 먼 지하 지옥 간에까지 닿아 죄 많은 중생 구제하여 주실 것 같구나.
발원이귀명례삼보
나무상주시방불 나무상주시방법 나무상주시방승
“저기 좀 보거라 저기 좀 보거라!”
명부전 층층이 놓인 영가 위패 한곳에 고모 눈이 꽂히는데 <밀양 박씨 덕자 영가>이다.
“너희 친고모이니라.”
“고모는, 그럼 고모는?”
“나는 가짜 고모였니라. 나는 가짜 고모였니라.”
세상에 가짜 고모도 있단 말인가? 할머니가 버선발로 뛰어나가 반기던 고모는, 고모 오면 제일 큰 닭 모가지부터 비틀던 아버지는, 시누이 비위 맞추느라 쩔쩔매던 엄마는···. 아, 그럼 고모는 우리 친고모 죽고 고모부에게 시집온 부인으로 그럼 새 고모인가. 새 고모란 이름이 너무도 생경하다. 아니야. 고모는 그냥 우리 고모일 뿐이야.
법회 끝나고 큰스님 작은 스님 내려가시고 대중 보살님들 점심 공양하러 요사채로 가시고, 석가모니부처님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좌우에 대동하시어 내려 보고 계시는 법당에서 겁도 없이 자신이 가짜 고모였노라 고 떠벌릴까. 장마에 강물이 넘치듯 저수지 제방이 넘쳐나듯 고모 눈에 눈물이 폭포수를 이룬다.
“고모, 고모 이상해. 오늘 맘 잡고 우는 날로 잡았어요?”
“그래 윤희야. 우는 것도 오늘, 그만 우는 것도 오늘이다!”
고모는 명부전에 향을 사르고 정성스레 차를 올린다. 나는 고모 따라서 본적도 없는 친고모께 덤덤히 인사드렸다. 고모는 <밀양 박씨 덕자 영가> 위패를 하염없이 올려다본다.
형님! 형님! 나 이제 허깨비 탈 벗을라요. 죽이든 살리든 형님 맘대로 하시오. 아니지요. 이젠 내 맘대로 할 거요. 빈말 아니고 참말로 맘대로 살겠소. 내 몸뚱이 내 맘대로 하자는데 어느 누가 시비할 거며 어느 누가 막을 거요, 형님도 어림없소. 윤희야 보아라, 단디 들어라. 내 이름은 본디 박영자, 박덕자는 형님 이름. 나이도 두어 살 차이밖에 안 되고 형님 밀양 박씨, 나도 밀양 박씨 박가이고 형님 이름 박덕자 나는 박영자, 그때는 박덕자도 박영자도 상관없이 귀찮았어. 그러나 인제는 허깨비 이름 던져버리고 나를 찾을 것이여. 왜 이리 바보로 살았든가 복장치고 넘어가겠네. 이제는 남은 인생 덤으로 사는 여생인데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저녁 햇살처럼 얼마나 남았으리오.
“아버지가 이름까지 죽은 고모 이름 쓰라 하셨소?”
얘야 큰일 날 소리 하지 마라, 오라비가 시킨대도 들을 내가 아니제. 자식 묻고 나니 혼도 빠지고 부처님도 씨앗이라면 돌아앉는다는데 형님 이름 그대로 살려주면 내 새끼들 잘 살펴줄까 싶어 그냥 있었지. 삼십 년을 형님 이름으로 살았으면 나도 할 만치 했느니. 그러나 이제는 하루를 살아도 내 이름으로 살란다. 저승 명부에 내 이름 없어 백 년이 지나도 나 안 데려갈까 봐 겁이 난다.”
“고모, 죽은 고모가 자기 이름 쓰라고 밤마다 머리 풀고 나타나 윽박질렀소? 바보천치도 아니고 세상천지 그런 법이 어디 있대요. 하나둘을 못 세어도, 낫 놓고 기역을 몰라도 천지 만물 중에 천금같이 중한 게 바로 내 몸인데, 내 이름 버리고 어찌 죽은 사람 이름으로 살았단 말씀이오? 말 같지도 않은 말에 어이가 없어 뒤로 넘어가겠소. 그래도 그 이름자 안 잊고 심중에 간직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장하시구려. 새 고모. 새 고모한테 정나미 뚝 떨어져 이젠 고모 암만 불러도 나는 아니 오겠소.”
벌떡 털고 일어나는 나를 붙잡는 고모 손을 모질게 뿌리쳤다. 법당을 나서는 내 눈앞이 흐릿하여 구두를 겨우 찾아 신고 돌계단을 내려오자 황급히 뒤따라온 고모가 눈물로 나를 껴안았다. 고모는 내 손을 잡고 대웅전 좌편 오층석탑 아래로 데려갔다. 가랑비가 멎고 말간 햇살이 석탑을 비추고 있었다.
윤희야 제발 내 말 좀 들어 보거라. 내 흉중에 깊이 박힌 가시 뽑아주고 가거라. 부친 병구완 십여 년에 거덜 난 살림살이 곤궁하여 외동딸 밥 굶길까, 홀아비에게 후딱 보내버린 시집. 소가 지나가도 까르르 웃고 샛노란 개나리꽃에 화들짝 놀라며 흩날리는 살구 꽃잎에 새가슴 두근두근하던 꽃 같은 열여덟에 시집이라고 와보니 네 살 계집아이가 암팡지게 쪼그리고 있더라. 사람들이 내가 엄마란다. 열여덟 내가 듣기도 끔찍한 계모란다. 그 꼴에 걸음도 근근이 걷고 말도 할 줄 모르면서 옆에만 가면 ‘실어 실어! 가, 가, 엄마아!’ 하고 소리치더라. 업어주면 나을까 싶어 포대기 찾아들고 등짝 갖다 대니 내 등을 떠밀며 포대기를 빼앗아 깔고 앉아 대가리를 흔들며 손도 안 댔는데 처맞은 듯이 울어대니 한 줌 정이라도 붙일 때가 없더라. 네 살 가시나가 주둥이가 짧아서 밥을 줘도 도리질 죽을 줘도 도리질, 이러면 먹을까 저러면 먹을까, 상전 위하듯 받들어도 옆에만 가도 고개 돌리며 밀어내니 애쓴 본치 없이 사람 성질만 돋우더라. 예쁨도 지가 하고 미움도 지가 만드는데 어린것이 계모라고 깔보는 것 같아 머리 위로 빈 주먹질 골백번도 더하고 긴 한숨 신세 한탄 허공으로 날리며 눈 흘기며 살다 보니 내 눈은 사팔뜨기 되고 입은 튀어나와 돼지 입 닮아가니 이 노릇을 어이할꼬. 지가 뭐 애기씨라고 발자국 따라다니면 떠먹이려 애를 써도 찾느니 지 어미니. 엄마! 엄마! 엄마 보고 싶어! 엄마 보고 싶어! 눈만 뜨면 방으로 정지로 헛간으로 어미 냄새 찾아 눈 뒤집고 헤매더라. 어린 것이 불쌍하기도 하고 설마 저 배때기 고프면 처먹겠지 내버려 두어도 서푼도 안 되는 가시나가 지독스레 말 안 듣고 사람 성가시게 하니 한번 봐도 밉상인데 그 꼴 온종일 보려니 내 눈에 가시가 서고 볼수록 밉상이더라. 미움이 미움 보태 눈덩이처럼 커지더라. 먹기 싫은 밥은 윗목에 밀쳐 놨다 나중에 먹지마는 사람 싫은 거는 어찌할거여. 꽃도 미우면 곱게 안 보이는데 사람 빤히 넘겨보는 네 살짜리 가시나가 왜 그리 영악하고 싸가지로 보이는지. 밤 지나고 아침이면 계모라도 엄마인데 내 마음자리 뉘우치고 고슬고슬한 쌀밥 담아 억지로라도 떠먹이려 옆에 가면, 밥그릇 밀어내고 청승맞고 기승스런 그 울음 어지간해야 정이 들지. 마음 한쪽으로 팥쥐 엄마 될까 겁나고 장화홍련 계모 될까 덜컥 무섭기도 하고 이러다 독사 같은 인간 될까 두렵기도 하더라.
천리만리 달아나는 마음인데 짐승도 병들며 거두는데 하물며 서너 살 아이인데 맘 자리 고쳐먹고 옆에 가며, 죽은 어미만 찾아 나만 보면 객식구처럼 밀어내고 도리질을 하니 나도 그만 심사가 뒤틀려 심통만 늘더라. 내 몸은 하나인데 내 마음은 신작로 두 길로 갈라지듯 두 마음이 되어 하루에도 열두 번 천당과 지옥이 한자리에서 싸우고 있더라. 저만 울었나, 전실 자식 떠맡은 내 팔자 고달프고 서러워 남몰래 눈물 바람이니 낳은 정 못지않은 기른 정도 있다는 걸 소견 없는 새댁이 어찌 알랴. 칠 년 가뭄같이 메마른 내 가슴 어디에 정이 들고 어느 구석에 사랑 샘이 고일까. 잠자리 내 옆에 자는 것도 내사 싫고 미운데 자다가 무망중에 내 젖가슴 찾을 때는 기겁할 노릇에 탁 때려서 그 작은 손 모질게 떨쳐내어 지더라. 우리 집 남정네 인정머리 없기로 시냇가 차돌에 비길까. 생전 가야 어미 떨어진 어린 자식 밥 한술 떠먹일 줄도 모르고, 안아서 토닥토닥 어미 보고픈 설움 달래줄 줄도 모르더라. 남의 집 아이 보듯 배고프면 밥 먹을 테지 예사로 말하더라. 첫아이 해산하고 산후병 얻어 먼저 간 전처 못 잊어서 가시나에게 돌리는 원망이 음울한 그 얼굴에 덮여 있었으니 나면서부터 우는 게 여태 운다고 재수 없는 새끼 취급하였지. 바쁜 농사일에 억장 무너지게 아이와 씨름하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마음도 힘들고 몸도 고달픈 여편네 보고도 모른 척하는 남정네 미워 꼴도 보기도 싫은데, 내 홀어머니 무거운 빚 시나브로 갚아주며 양식 이어주고 땔나무 대준다는 기별에 어영부영 그냥 넘긴 세월이더라.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이 세월을 어이 보낼까, 눈엣가시 같은 전처 새끼 데리고 어찌 살거나? 무거운 절 못 떠나고 가벼운 중이 떠난다는데 정나미도 안 붙는 이 집구석 언제 벗어나려나? 남정네도 첫정 준 전처 흔적 여태 끊어내지 못한 듯 보여 찬물에 기름 돌듯 내 마음 붙이고 설 자리가 보이지도 않더라. 에라 모르겠다. 도회지 가서 공장을 다닐까, 식모를 살아도 이보단 맘고생 덜하고 살겠지. 이 집구석 떠나려고 남몰래 보따리 챙겨놓고 기회를 엿봐도 도무지 달아날 새가 없어 엉거주춤 있었니라. 구만리로 마음이 들떠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허파에 바람만 들어 겨우 숨만 내쉬고도 살아지더라. 붉게 타는 진달래꽃에 내 아픔을 묻고 담장에 붙어 피는 능소화에 서러움을 새기며 뒷산 두견이 울음이 간장에 스며들어 잠 못 이루는 밤은 길기만 하였지. 달걀찜 해주면 두어 술 목구멍에 넘기더라만 암탉이 낳은 달걀 한 개도 안 남기고 장에 들고 가버렸지. 십 리 장날에 허적허적 간고등어 두 손 사서 들고 목도 마르고 허기도 지고 아픈 다리 끌고서 집구석에 들어서니 난데없이 구 친정 오라버니 계셨네. 마당에서 숨 할딱이는 가시나를 안고서.
“동생아 이 노릇을 어찌할꼬? 동생아 이 생명을 어이할꼬! 죽은 동생 두고 간 아이 생각나서 한걸음에 찾아 왔더니 피골이 상접하여 배가 등가죽에 붙었고 갈비뼈로 셈을 해도 되겠네. 민들레 홀씨보다 가벼운 몸 바람에 날려가지 않고 저승차사에 손목 잡혀 저문 강을 건너려 하네. 검은 천으로 돛단 뱃머리에 참새 같은 가녀린 날갯죽지 불쌍하게 접고서 이 세상 하직하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삼도천을 건너가려 하네!”
네 살짜리 가시나가 밤낮없이 보채더니 어미 따라 가버렸나. 밥풀떼기 입에 안 넣고 병든 병아리 모양 오뉴월 풀같이 누웠기에 숟가락 두 개로 입 벌려 미음 한 종지기를 겨우겨우 떠 넣은 게 어제가 아니던가. 조막만 한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감은 눈두덩은 푸른빛을 띄우고 입술은 거무죽죽 식은 팥죽색이고 참새같이 새근대던 숨결은 이미 멎었는지 들리지 않더라. 울면서도 꽉 쥐고 있던 조가비 같은 두 손은 이 세상 아무것도 쥐지 않으려 열 손가락 좍 펴져 있더라. 가시나야 가시나여, 이리 가면 어찌하누? 미워하던 계모지만 죽기까진 안 바랐다. 밥도 주고 죽도 주고 나는 너를 학대하지도 않았고 때리지도 않았고 죽으라고 하지도 않았니라. 그런데 희한하게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고 무섬증이 나서 그 가시나 옆에도 가기 싫은 심사이니 얼굴 들고 오라비 보기 미안하니 딱한 이 노릇을 어이할꼬. 밤이고 낮이고 그리도 찾아 헤매던 지 엄마 찾아가겠지. 지 엄마가 밥 떠먹이면 옴쏙옴쏙 잘 받아먹겠지. 어린 것이 누굴 닮아 그리도 영악하고 독한지고. 오라비 남아서 당신 손으로 죽은 아이 묻어주고 떠나면서 간곡히 당부하신 말씀은 귀를 막아도 들리더라.
“제왕도 못 늘리는 게 인간의 수명인데 어쩌리오. 이 세상 태어날 때 삼신할미께 받은 수명이 지 손톱 반달보다 짧아서 이렇게 간 것을 어이하리. 동생아 아이는 저 엄마 찾아갔으니 잊어버리고 산 사람은 살아야제. 내 새끼 낳고 살다 보면 다 잊고 살게 되느니라.”
나도 검은 머리 인간인데 오라비 속마음을 어찌 못 헤아리랴. 그러나 밥의 미같이 메주콩에 하나 섞인 검은콩 같던 그 꼬맹이, 객식구 밀어내듯 한사코 나를 밀어내든 야멸차든 그 가시나 퍼뜩 잊어가더라. 거치적거리는 게 없으니 이렇듯 편할 줄이야, 밥그릇 들고 따라다니며 먹어라 입 벌려라 애원하지 않아도 되고, 끔찍스러운 계모 소리 듣지 않고 사람들한테 애 말랐네 굶겼네 하는 음해도 듣지 않고, 남의 눈치 봐가며 애써 떠먹이는 척 안 해도 되고. 듣지도 않는 남정네한테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지 않아도 되고, 눈 흘기지 않아도 입 튀어나오지 않아도 살아지는 세월이더라. 절대로 끝없을 것 같던 전처 자식 치다꺼리 그만하면 끝나는 것을 왜 진작 몰랐을까. 이만하면 살게 되는 것을 왜 안달복달했을까. 내사 한 달도 안 지나 죽은 그 가시나 홀랑 잊히더라. 그러나 그것이 머지않아 나에게 시퍼런 비수로 되돌아올 줄이야 어리석은 여자가 어이 알았으리. 눈앞의 보기 싫은 거적때기 치워진 것만 보였지 눈멀고 귀먹어 한발 두발 다가오는 불행의 발자국 소리는 꿈에서도 못 들었어라. 그것은 너무도 무서운 인과응보였어. 겨우 맘 붙이고 그만하면 살아지는 그즈음에.
입덧이 오더니 오매불망 기다림에 날 가고 달 가니 조금씩 내 배가 불러오고 아들일까 딸일까? 내 태중에 자리 잡고 노는 새끼 어찌 그리 어여쁠까. 들썩들썩 배 내 발길질에 깜짝 놀라면서도 두 손으로 다독이며 그래 잘 먹고 잘 놀아야지. 무럭무럭 어서 커서 보고 싶은 니 얼굴 보자꾸나. 전날에 떠나려고 그리던 도회지 공장도 식모도 다 잊히더라. 먹는 음식 가려먹고, 앉는 자리 가려 앉고 날 가고, 달 차며 뱃속의 새 생명만 일구월심 기다려지더라. 열 달 다 채우고 내 배 아파서 내 살갗 찢으며 삼신할머니 점지해준 내 새끼 낳으니 눈에 넣어도 안 아프고 온종일 끼고 봐도 보고지고 어여쁘고, 밤새도록 울며 보채 장등한 아침에도 내 새끼는 세상에 하나뿐인 달덩이고 복사꽃이고 나비이더라. 불행의 징조인가 자랄수록 죽은 배다른 저 언니를 닮아갔지. 그 가시나 벌써 잊고 사는데 하필이며 그 가시나 닮는단 말인가. 모색이고 키 꼴이고 야윈 것까지 닮았네. 입도 짧고 짧아서 어미 애간장 다 녹이더라. 저 한입 먹이려고 온갖 짓 다 하여 꼬막 같은 입 벌려 겨우 두어 술 받아먹으면 그렇게 고맙고 예쁠 수가 세상천지 어디 있을까. 달걀은 전부 내 딸 차지. 찌고 삶고 후라이하고, 전복죽 소고기 죽 찹쌀떡 수수 경단 저 한입 먹이려 안 해 본 음식이 없어라. 이 노릇을 어찌하랴 나이도 네 살, 우유랑 과자랑 초콜릿 사서 장에 갔다 나는 듯이 허둥지둥 돌아와 사립문을 들어서니 내 새끼 병든 병아리 모양 할딱이며 숨 모두고 있더라. 이 목숨 너에게 주리, 내 숨길 네게 다 부어주리, 내 수명 떼어내어 네게 붙여주리.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일월 성신님, 세상의 신이란 신은 다 부르며 눈물로 애원하며 울며불며 매달렸건만 가뭇없이 사그라지는 바람 앞의 등불이더라. 간다는 말도 없이 다시 오겠다는 기약도 없이 작은 숨길 거두어지고 말더라. 아비 어미가 벌겋게 눈뜨고 지키고 있는데, 손이야 발이야 애걸하고 있는데, 내 새끼를 허락도 없이 어미 품에서 날름 빼앗아 이승을 지나 저문 강 검은 배에 태워 데려가려 하다니 세상에 어느 어미가 가만있으랴. 내 손으로 원수 갚으리.
저승차사 나오시오! 내 새끼 앗아가며 나는 당신 새끼 못 뺏을까! 이 어린 것 어디가 그리도 탐이 나서 이리 일찍 데려간단 말이오. 비루박에 똥칠하는 늙은이도 많은데 삼신 할망구 미쳤소? 망구가 망령 났소? 아이들 입안에 든 사탕 뺏어가듯 장난으로 내 새끼 홀랑 앗아가요. 그렇게 금방 데려갈 걸 뭣하려 점지해주었소?. 늙은이가 주책없이 노망났소, 아니지 재미난 구경 없어 내 새끼 가지고 장난치오?
부모는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단 말 내 어찌 알리요. 당해봐야 알지 어찌 알리요. 남의 사정 이해하는 것과 눈앞에 캄캄절벽 당하여 보는 것은 찬양치 차이, 이제야 알았노라 강물이 모인들 내 눈물만 하리! 두견새 울음이 내 피 울음만 하랴. 구곡간장 애간장이 나보다 더 녹을까, 보이는 게 없고 겁나는 게 있으랴. 분함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아 부글부글 치미는 이 분노, 이 억울함의 원인이 누구더냐 세세히 따져보았지. 그래 오-옳타, 바로 당신이었소! 당신이 아니며 누가 이러겠소? 아무리 후처가 눈엣가시기로 어찌 내 새끼를 앗아가요? 내가 괘씸하면 나를 벌주지 어린것이 뭔 죄가 있다고 생목숨을 앗아가요?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까지 당신 저주하겠소. 귀신이 되었으면 극락이든 지옥이든 당신 지은 업장만치 받으면 그만이고, 제삿날 걸음 하여 차려주며 주는 대로 묏밥이나 받아먹고 흔적 없이 떠날 것이지 어디 감히 앙큼하게 금쪽같은 내 새끼에게 음흉한 손모가지 댄다 말인가? 아나 떡이요 택도 없지. 이젠 묏밥도 찬물 한 그릇도 구경 못 할 줄 아시구려. 조상도 조상 나름이지 이녁이 대접받을 조상이던가. 형님은 무슨 빌어처먹을 형님, 나 죽인대도 형님 하기 싫소. 소금 팍팍 뿌리고 젯상 때려 엎었으니 당신 새끼 끌어안고 구천을 떠도는 억겁의 원귀나 되시구랴!
아, 고모 얼굴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서운 얼굴로 변해갔다. 거친 숨결이며 앙다문 입이며 번뜩이는 매 같은 눈이 바로 나를 덮칠 것만 같다. 엉겁결에 무섬증이 느껴졌다.
“고모, 죽은 고모가 그 아이 데려가는 걸 보기나 하셨수?”
보나 마나 척하면 알지 죽은 전처 아니면 누가 그런 못된 짓 하겠냐? 저고리 동정 맞춰봐야 알고 버선목 뒤집어봐야 알겠냐?
“고모, 제발 진정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발끈하는 고모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자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두 번째 아이가 내 뱃속에서 꿈틀했을 때 어찌나 놀라고 겁이 나든 지 동지섣달 칼바람보다 부엌칼 든 시커먼 도둑놈보다 더 무섭더구나. 이 아이도 앞서간 두 아이처럼 가뭇없이 네 살에 죽으면 어쩌나? 겁이 나서 촛불 밝히고 정화수 뜨다 놓고 빌고 빌었지. 삼신할머니 비나이다! 비나이다! 방정맞게 함부로 놀린 입 천만번 잘못했소. 삼신할머니 점지하신 이 생명 귀하게 받겠으니 미련한 이 어미 한 번만 용서하소서. 젯상 뒤엎은 일이며 죽은 사람 음해하고 악담한 일들이 불현듯 생각나서 무섬증이 들더라. 형님 내가 잘못했소. 정말 잘못했소. 형님 새끼 살갑게 안 돌본 내 죄 맞아요. 병아리 같은 새끼 억지로라도 떠먹여 곡기를 이어가야 했는데 때때마다 밥투정 보기 싫어 먹으라고 디밀고 밥 주는 시늉만 내었지요. 미워도 사랑 한 줌 넣은 죽이라도 붙들고 먹였다면 말라 죽진 않았을 터인데, 달걀 다 팔지 말고 계란찜 하였다면 먹었을 터인데, 정말이지 꼬라지 뵈기 싫어 먹든지 말든지 내 몰라 했었소. 형님, 어떡하며 형님 노여움 풀릴까요. 어찌하며 내 잘못 용서해 주시리까. 들쑥날쑥 본데없는 인간이 기른 정 낳은 정을 알기나 했으리오. 형님, 내 새끼 살려주소. 내 새끼 지켜주소! 재발하고 미친년 어미는 갈지 말고 형님 못 잊는 남정네 옛정 생각하여 한 번만 용서하소. 형님 시키는 일 뭐라도 하겠소. 재발하고 내 새끼 이번만은 살려주소!
병고 십여 년에 살림 거덜 내고 세상천지에 두 모녀 달랑 남기고 우리 부친 돌아가실 때보다 더 울고 매달렸어. 형님 친정인 구 친정집을 찾기로 했지. 내 새끼 목숨 붙잡으려면 뭔 짓인들 못 할까 불 속에라도 뛰어들지. 처음으로 형님 친정 문전에 들어서니 네 할머니가 마치 당신 죽은 딸 살아온 듯 놀라서 꼼짝을 못하시고, 오라버니는 동생 왔냐 하고는 닭 잡으러 가셨지. 네 할머닌 먼저 간 당신 딸 애통한지 날 붙잡고 한참을 우시고선 음전한 오라버니댁 불러 인사시키고, 너희 삼촌 집에 기별해라 애들 다 건너오라 하시어 식구들 다 모이고 크고 작은 조카들 차례로 절 시키며 고모님이다 니들 고모 오셨다 하셨지. 새 고모라고도 않으셨지. 조카들 인사받다 하마터면 기겁하여 뒤로 넘어갈 뻔하였으니, 4살배기 오라버니 막내딸이 세상에나 쪼그만 계집애가 우리 큰딸 환생한 듯, 작은딸 살아난 듯 어찌 그리 판박일까. 동생 시장하다고 더운밥 빨리하라고 오라비 성화를 하셨지만 나는 따신 쌀밥도 국물 진한 백숙도 어물어물 억지로 목구멍에 넘겼더니라.
“그런데 고모는 집에 올 때마다 옷이며 과자 내 것만 많이 사 왔는데? 미운 가시나인데.”
미운 가시나? 이 심사를 어이할꼬. 변덕스러운 이 마음을 어이할꼬. 오라버니 막내딸이 오나가나 어른어른 눈에 밟혀 우리 큰딸로 보이고 가슴에 묻은 작은딸로 보이니, 엄마도 올케도 눈치 못 챘겠지만 내가 그길로 병이 났었지.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내 두 딸이 배고프다고 울며불며 보채는 통에 내 입에 밥이 들어가랴 죽이 들어가랴 물 한 모금도 목구멍에 넘기기 어렵더라. 음식을 전폐하고 산에도 오르고 죽으러 강에도 가고 미쳐서 날뛰었지. 동네 사람들은 죽은 가시나 둘이 신내림 왔다고 수군거리고, 인정머리 없던 남정네가 또 마누라 잃을까 겁이 났던지 이 병원 저 병원 끌고 다니며 신약 들이부어도 효험 하나 없으니 이 노릇을 어이하랴. 답답하며 우물 판다고 점집 찾고 무당 불러 못 먹고 못 입어서 구천을 떠도는 두 어린 영가를 위한 해원굿 씻김굿 치방굿을 조왕에 안방에 마당에 벌리고 벌렸지. 미치니 겁도 없이 사방팔방 돈 꾸어 원대로 큰 굿판 작은 굿판 벌였더니라. 불쌍하게 죽은 내 두 딸 위해선 무엇이 아까우랴. 불쌍하게 간 내 두 딸을 위해서 무엇이든 해주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더라.
빚쟁이로 몰려 옴짝 못하고 날 죽여주소, 하고 송장같이 누워있을 때 구 친정 오라버니가 바람결 소문 들었는지 황소 한 마리 팔아 빚 청산 해주시고, 보신 약 한재에 염소 한 마리 잡아서 깨끗이 손질하여 가마솥에 불 넣어주고 탈탈 털고 가셨지. 점잖은 오라비가 식구들 원망이야 구박이야 그 얼마나 들었을꼬. 세상에 소 한 마리가 어디라고 농가 밑천 아니던가. 뒷일이 하도 걱정되어 눈치 보러 친정 가니 엄마는 오라비가 귀신에 씌어서 읍내 노름판에 그 큰 황소 날렸다며 차돌에 바람 들며 석돌만도 못하다고 한탄지탄 하시며 노름에 미치며 손모가지가 끊겨도 그냥 한다더라며 앞날 더 걱정하셨고 오라비 부부는 철천지원수 되어 아예 말문 닫고 살더라.
“오라비요 뭣땀시 이런 큰일을 벌리셨소? 인간 노릇 사람 구실도 못 하는 가닥 다른 동생인데 못 본 체하시지 그러셨소.”
“동생아, 다시는 그런 말 말거라. 사실이지 내가 먼저 간 그 동생에게 아무것도 못 해줘서 두고두고 가슴에 한이 남아있는데 다시 또 험한 꼴 어찌 보겠냐. 한 번이라도 동생한테 힘이 되고 싶었다. 누가 뭐라캐도 니는 내 동생아이가. 나는 이제껏 삼시 세끼 밥 묵는 일에 코 꿰여 옆 눈 한번 못 팔고 살았는데 동생 병 나으면 만사가 잘 된기라. 고맙다!”
억하심정으로 다닌 구 친정에서 천당도 지옥도 내 안에 있고 인과응보 없다고 그 누가 말하랴. 업장도 내가 짓고 공덕도 내가 짓는 것을 그제야 알았더라. 항아리에 장아찌 우듬지 돌 눌리듯 가슴속 켜켜이 쌓였던 원망이며 서러움이 봄날에 잔설 녹듯 슬슬 녹으면서 내 가슴앓이 화병 거두어지고 그렇구나, 부처님이 참회하라고 그 아일 보내셨구나. 먼저 간 두 딸 대신 가까이 온 귀한 내 손님인 줄 그제야 알겠더라. 너 보러 가고 엄마 보러 가고 부처 닮은 오라비 보러 구 친정 가는 발걸음 잦아지더라. 틈틈이 부처님 찾아뵈옵고 지장보살 전에 죄 많은 어미가 우리 큰 딸 작은 딸 불쌍한 어린 영혼 극락왕생 빌고 또 빌었단다. 윤희야, 옛날에는 참회 기도가 참 고통스러웠는데 이제는 법당에서 법문을 들으며 마음이 맑아지는구나.
참회게
아득히 먼 그 옛부터 제가 지은 모든 악업
탐애하고 화를 내고 어리석은 때문이오며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지어왔기 때문이오니
모든 것을 남김없이 저희 이제 참회합니다.
고모가 웃는다. 아침이슬 머금은 유월에 피는 하얀 치자 꽃처럼 은은한 향기가 묻어난다. 설과 추석 그리고 할머니 생신에 고모부 고모 고종사촌들과 함께 화사한 한복 입으시고 친정 오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솜씨 좋은 우리 고모 특히 뜨개질을 잘하여 스웨터야 조끼야 가방이야 철 따라 예쁘게 떠서 나 입혀놓고 빙그레 웃으셨지.
두 달 뒤 고모가 나를 불렀다.
“바라봐라, 윤희야 내 새 주민등록증이다. 고모 참 잘했지?”
감격에 목메 ‘박영자’라고 인쇄된 새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며 고모는 큰상 받은 아이보다 더 기쁜 얼굴에 발갛게 홍조까지 띠고 있다.
“우와! 사진이 정말 잘 나왔다. 이것 보고 염라대왕이 이제 고모 이름 똑똑히 알겠네.”
“참말로 백 살이 넘도록 나 안 데려갈까 걱정했다. 윤희야, 고모 많이 늙어 주머니마다 휴지 넣어 다니고 밥 먹다 밥 질질 흘려도, 물 마시다 사레 걸려 기침 캑캑하여도, 했던 말 열두 번 하고 너 이름 잘못 불러도 타박하지 말고 얼굴 안 잊어먹게 간간이 고모 찾아와야 한다. 네 동생 녀석들 고모한테 잘못하면 본때 있게 꾸짖고 알겠지.”
“그럼, 내가 큰누나니까 고모 나한테 다 일러. 쟤들 나한테 걸리면 죽었어!”
“내가 딸 하나는 엄청 잘 두었다니까!”
눈가에 잔주름을 지으며 활짝 웃는 고모 모습이 참 아름답다. 찔끔 묻어나는 내 눈물 보이지 않으려고 고모를 껴안았다. 어느새 고모 키가 줄어들었고 몸집도 작아짐이 느껴졌다. 고모! 고모 정말 잘 하셨어요. 진작 그렇게 해야 했을 일이었어요. 한평생 농사일에 거칠어진 고모 두 손 부여잡은 내 손이 사금파리에 베듯 아파졌다.
“누님, 어머님이 많이 편찮으십니다!”
“뭐라고?”
“독감 끝인데 갑자기 나빠지셨어요.”
“독감에······.”
“누님, 누님을 자꾸 찾으십니다!”
고종사촌 휘의 전화이다. 잠결에 받은 전화가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반사적으로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다.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거실로 나왔다. 바깥은 아직 캄캄하니 어둡다. 윙- 바람이 창문을 썰렁하니 건드리고 지나갔다.
“윤희야!”
나를 부르는 고모의 다정한 음성이 들렸다. 황급히 창문을 드르륵 열었다.
“고모! 고모!”
얼마 전 전화했을 때 감기가 질질 끈다기에 몸살 나기 전에 영양제 맞으시라고 신신당부하고 내달에 선운사 동백꽃구경 같이 가기로 약속도 하였는데. 우리 고모 이제 겨우 예순하고 다섯인데. 울컥 침도 못 넘기게 목젖이 아프다. 가랑비 같은 눈물이 줄줄 흐른다.
“고모, 나도 고모 무지 사랑했어요!”
끝.
* 대한불교 조계종 숭림사. 『지혜의 등불』 천수경.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