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원제: Disputatio pro declaratione virtutis indulgentiarum)를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城)교회(Wittenberg Schloss Kirche) 의 출입문에 붙였다. 그리고 1518년 2월에는 이에 대한 해설서를 발표하 였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이 95개 조를 로마서 1:17의 칭의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그 이유는 루터가 칭의의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고 나서 종교개혁을 시작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루터는 칭 의의 개념을 점차적으로 이해했다. 그는 자신이 1519년 시편을 두 번째 강해하면서 충분히 이해했다고 말한다(LW 34, 337). 둘째, 이러한 이해는 루터의 신학을 칭의의 관점에서 너무 좁게 이해하는 것이다. 루터에게 있 어 로마서 1:17은 하나의 성서구절이지, 이것이 그의 성경 전체는 아니다.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에서 면죄부의 오용에 대해서 문제제기 했을 때 에는, 로마서가 아니라 마태복음의 신학에 의존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루터는 1517년 2월 24일 ‘성 마태의 날’에 마태복음 11:25-30을 설교하 서, 면죄부는 “죄를 짓도록 허락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화 시키는 면허”라고 비판한다. 둘째, 논제 제 1조에서 마태복음 4:17을 인용 하면서, 참된 죄사함의 의미를 제공한다. 곧 죄사함은 교황이 판매하는 면 죄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된 회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셋째, 루터는 마태복음 16:18-19과 18:18절을 통해 교황이 면죄부를 발행해서 죄를 사할 수 없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루터는 천국의 열쇠가 베드로에게 주어진 것 이 아니라, 제자들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천국 열쇠는 ‘땅에서’ 권한을 갖고 있지, ‘하늘에서’ 어떤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 그렇 기 때문에, 교황에게는 ‘죄사함’의 권세가 없다는 것이다. 죄사함의 권세는 오직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라고 말한다. 넷째, 루터는 면죄부를 남용하 도록 가르치는 사제들이나 교황의 행동을 ‘가라지’라고 말한다. 이 단어는 신약성서에서 오직 마태복음에서만 사용되었다(마 13:24-30). 이러한 이유 들로 95개조 반박문은 루터가 마태복음의 신학적 사상 위에서 형성한 것 이라고 말할 수 있다.
I. 문제 제기
마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城)교회(Wittenberg Schloss Kirche)의 출입문에 붙인 소위 ‘95개조 반박문’(원제는 Disputatio pro declaratione virtutis indulgentiarum[면죄부(免罪符)의 능력과 유 효성에 대한 토론]-이하 ‘반박문’)은1)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 다. 그러나 루터는 이것을 처음부터 개혁하려는 목표를 갖고 쓴 것이 아니다. 그는 ‘반박문’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리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부터 그리고 그 진리를 밝게 드러내려는 열망에서 아래의 논제들은 문학 석사이며 신학 석사인 마틴 루터에 의 해 비텐베르크에서 공개적으로 논의 될 것이다. 루터는 그곳에서 이 주 제들에 대해서 강의하도록 공식적으로 임명 받았다. 그는2) 직접적으로 토론에 참여할 수 없는 자들에게는 편지로 토론하기를 요청한다.”3) 루터의 말대로 ‘반박문’은 첫째, 진리를 사랑하고 그것을 밝게 드러내려는 그의 열망에서 시작된 것이다. 둘째, 이것은 공개적으 로 논의하려는 의도에서 기록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 논의가 일반 대중들과 함께 논의하려는 의도를 가지려는 것보다는 라틴어를 읽고 쓸 수 있는 학식이 있는 자들과 논의하려는데 그 초점이 있 었다. 셋째, 루터는 면죄부와4) 관련된 여러 주제들에 대해서 강의 하도록 공식적으로 임명 받았다. 곧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 수로서 학자적 양심을 갖고 면죄부 문제에 대해 연구해 왔다. 면죄부 남용에 신학적인 큰 문제가5) 있음을 밝히려는 루터에 게 근원적인 힘을 제공한 것은 바로 성서이다.6) 이 점은 루터가 1518년 2월에 발표한 ‘반박문의 해설’(원제는 Resolutiones disputationum de indulgentiarum virtute)에서 자신의 근거는 “성서에 있으며 성서로 부터 주장될 수 있는 것” 7)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분명히 밝힌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루터가 말한 ‘성서’를 로마서 1:17을 근거 로 한 ‘칭의론’적 렌즈를 통해 이해하려고 한다. 이러한 이유는 루터가 로마서 1:17에서 ‘칭의론’을 발견하고, 이 ‘칭의론’이 종교 개혁의 열쇠이며 출발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8) 그래서 ‘반박 문’에 대한 연구도 ‘칭의론’과 연관시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9)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 루터의 신학 사상을 너무 편협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루터 자신 도 로마서 1:17의 ‘하나님의 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해 성경 전체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지만,10)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 구절만 성서의 구절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곧 루터에게 있어 성서 안에 로마서 1:17이 있는 것이지, 로마서 1:17이 그의 성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루터는 로마서를 강의하기(1515- 1516년) 이전에, 이미 시편을 먼저 강의하였다(1513-1515년). 둘 째, 루터가 로마서 1:17의 ‘하나님의 의’를 깨닫고, 비로소 종교개 혁을 시작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루터는 ‘반박문’을 쓸 때에도 면죄부 판매의 수입금이 교황에게 들어간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자신이 이런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은 의지나 의 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연하게 시작된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증인이라고 말한다.11) 셋째, 칭의에 대한 구체적인 깨달 음의 시기이다. 루터는 ‘반박문’을 발표할 시기에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기초적인 것을 획득하였다. 곧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는다” 12)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자 신이 칭의에 대한 사고가 더욱 완벽하게 무장된 시기를, 시편에 대해 두 번째 강연을 시작한 1519년이라고 말한다.13) 곧 ‘반박문’ 을 발표하고 나서 점진적 이해를 통해서 칭의의 개념을 구체화 했다는 것이다. 결국 루터에게 있어 칭의론은 중요하지만, 그렇다 고 루터의 모든 신학을 칭의론에 귀결시키려는 노력은 오히려 루 터를 편협한 신학자로 유도하는 지름길이다. 루터가 ‘반박문’에서 면죄부의 남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때에 그의 구체적인 사상적 토대는 로마서보다는 오히려 마태복음에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루터는 1517년 2월 24일 ‘성 마태의 날’에 마태복음 11:25-30를 설교하면서, 면죄부는 “죄를 짓도록 허락하 는 것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화 시키는 면허”라고 비판한 다.14) 곧 루터는 다른 성인의 날이 아닌, 바로 ‘성 마태의 날’에 마태복음의 본문을 갖고 면죄부의 문제점에 대해 설교하였다. 둘 째, ‘반박문’의 라틴어 원문에는 성경 두 구절을 직접 인용했다고 언급했는데, 하나는 마태복음 4:17이고, 다른 하나는 고린도전서 12장[28절]이다(78조).15)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반박문’ 논제 1조, 곧 첫 시작을 마태복음 4:17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셋 째, ‘반박문’ 논제 1조처럼 마태복음의 인용을 구체적으로 암시하 지 않았지만, 마태에서만 사용된 단어들을 루터가 사용한 것이다. 곧 마태복음 13:25의 ‘가라지’(11조)와 16:19의 ‘교회의 열쇠’(60조) 를 사용한 점이다. 결국 ‘반박문’에는 마태의 사상적 흔적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루터가 그 만큼 마태복음을 중요하게 생각했 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루터의 저서 전체에서 시편 다음으로 마태복음의 인용 빈도수가 제일 많다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하지 만 시편이 150편이고, 마태복음이 28장으로 되어 있는 것을 고려 하면 마태복음이 더 중요하게 사용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16) 마태의 흔적은 ‘반박문’에서 루터에게 중요한 사상적 토대를 제 공한다. 첫째, 마태복음 4:17은 참된 죄사함의 의미를 제공한다. 곧 죄사함은 면죄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중요한 근거로 사용되어, 면죄부의 무용성을 주장한다. 결국 이것 은 어떻게 하면 영혼이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냐는 문제와 관계 된 것이다. 둘째, 마태복음 16:19은 교황이 면죄부를 발행해서 죄 를 사할 수 없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루터는 ‘반박문’에서 교황의 권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교황에게는 ‘죄사함’의 권세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