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스뉴스=변진희 기자] 김영훈이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자백’ 속 김영훈은 조연이었지만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며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악역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사이코패스라 불릴 만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악역, 아픈 과거로 인해 흑화된 악역, 명예와 권력을 위해 악행을 일삼는 악역 등 다양하다. 이 가운데 tvN 드라마 ‘자백’에서 김영훈이 맡은 박시강은 전직 대통령의 하나뿐인 조카이자 국회의원으로, 온갖 비리를 실감은 악인 그 자체였다. 김영훈은 회를 거듭할수록 이기적이고 비열한 행동과 표정으로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아냈지만, 그만큼 캐릭러틀 훌륭히 표현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자백’은 일사부재리(어떤 사건에 대해 판결이 확정되면 다시 재판을 청구할 수 없다는 형사상 원칙)라는 법의 테두리에 가려진 진실을 좇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임희철 작가는 탄탄한 스토리 전개, 치밀한 복선과 반전,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었고, ‘마더’로 연출력을 입증한 김철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몰입을 높였다. 더불어 이준호, 유재명, 신현빈, 남기애, 윤경호, 문성근 그리고 김영훈까지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열연을 펼쳐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다.
제니스뉴스와 김영훈이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카페에서 ‘자백’ 종영 인터뷰로 만났다. 극은 다소 어두웠지만 현장 분위기는 밝고 즐거웠다는 김영훈이 작품을 준비한 과정, 배우들과의 관계, 차기작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Q. 드라마에 대한 호평이 많았어요. 잘 마친 기분이 어떠세요?
너무 좋은 분들과 작품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행복했어요. 분위기가 너무 좋았던 현장이라, 그게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감독님께서도 워낙 배려가 많으셨고,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도록 컨트롤해주셨어요. 촬영감독님이 에너지가 좋으셔서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셨어요. 제가 어린 나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선배들이 많은 현장이었는데요. 선배들이 중심을 잘 잡아서 이끌어주시고, 후배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잘 따라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Q. 워낙 뛰어난 연출력을 지닌 김철규 감독과 함께했는데요. 직접 작품에 임해보니 어떻나요?
워낙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든 감독님이셔서, 우선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고요. 항상 연기자들에게 놓인 상황들을 빠르게 캐치하고 이야기해주시더라고요. 어떤 결로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감독님께서 다가오셔서 조용히 이야기해주셔서 큰 도움이 됐고요.
▲ 김영훈 (사진=레드라인)
Q. 그동안 악역을 많이 맡아왔지만, 이번 박시강 캐릭터는 시청자들의 미움을 유독 많이 받았어요. 아쉽진 않았나요?
악역이 즐겁지만은 않지만, 작품에서 악역이 하는 역할이 있잖아요. 저는 최대한 감독님과 작가님이 의도한 스토리에 집중해서 연기하려고 했고, 어려울 때는 감독님께 여쭤보고 상의했어요. 대사에 ‘폭발한다’라는 지문이 많았어요. 화내고 소리 지르는 감정 신이 많았죠. 어떻게 하면 시청자분들이 야비한 캐릭터로 느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얍삽한 표정도 많이 지었고요(웃음). 드라마에는 권선징악이 많이 그려지잖아요. 욕심을 내서 캐릭터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희화시켜서 연기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박시강은 용서받을 수 없는 정말 나쁜 사람이거든요. 동정심을 갖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계속 나쁜 사람으로 시청자들에게 기억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시청자들에게 미움을 받은 것에 대한 아쉬운 점은 없어요. 오히려 캐릭터를 제가 잘 표현해서 미워해주시는 거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요(웃음).
Q. 그래도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인물의 감정이 이해가 돼야 하잖아요. 박시강이 왜 그렇게 나쁜 사람이 됐을까 고민해보지는 않았나요?
박시강이 나이는 많지 않지만 권력을 쥐고 살아가고 있잖아요. 제가 살아보지 않은 삶이기 때문에 대본을 보고 연기했고, 좋은 선배들이 정말 많았기 때문에 도움을 구하고 따라가려고 했어요. 저의 연기를 선배들이 잘 받아주신 덕분에 모자란 점이 채워졌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작품 초반에는 정치인들이 연설하는 영상, 뉴스 등을 많이 찾아봤어요. 여러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고 참고했고, 설득력 있게 연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연구했어요. 또 선거 유세를 할 때는 대중에 친근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있더라고요. 박시강이 시장에서 유세하는 장면에서 써먹었죠.
Q. 배우 윤경호 씨와 무명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다고요? 같은 작품에서 만나 감회가 남달랐겠어요.
예전에는 극장에서 무대세트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자격증이 있을 정도로 많이 했거든요. 당시에 경호는 연극을 하고 있었고, 저와 함께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무대를 만들곤 했어요. 저도 조금씩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고, 연극을 주로 하던 경호가 어느 순간 방송에 나오는 거예요. 워낙 열심히 하는 친구인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송을 보면서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 영화 시사회 취재 영상에서도 경호가 멋있게 멘트를 하고 있고, 신기했죠. 그러다 이번 드라마 리딩 때 만나서 너무 반갑게 인사했어요. 경호가 사람들에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형을 만났는데,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라면서 좋은 말도 많이 해주고, 이번에 같이 맞붙는 신이 없어서 “다음에는 형이랑 꼭 겹치는 장면이 있으면 좋겠다”라고도 했어요.
▲ 김영훈 (사진=레드라인)
Q. 20년간 연기를 해왔는데요. 그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어떤가요? 잘 해오고 있는 것 같나요?
되돌아보면 우여곡절이 참 많았어요. 마음처럼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어서 힘들었던 적도 많고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 덕분에 좋은 드라마도 찍고, 이런 인터뷰로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거죠. 아직까지는 연기하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저는 계속 기다리는 입장이거든요. 잠깐이든, 계속이든 저는 연기를 계속 하고 싶어서 찾고 있어요. 지금은 또 ‘자백’을 잘 마무리 짓고 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Q.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요?
예전에는 ‘이 길이 나랑 맞지 않나?’, ‘내가 너무 연기를 못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를 찾아주시는 분이 없어서 ‘내가 매력이 없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고요. 그러다가 또 ‘내가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게 너무 많은데’, ‘내가 하고 싶은 연기가 너무 많은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힘든 마음은 현장에서 이겨내려고 했어요. 선배, 후배, 감독님, 스태프들을 만나 작품을 만들어가는 게 너무 좋아요.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나 에너지를 얻으면서 ‘연기하길 잘했다’라는 마음도 들고요. 연기는 계속 해야죠.
Q. 곧바로 ‘닥터룸’ 촬영에 들어가게 됐어요. 준비는 잘 되고 있나요?
‘닥터룸’은 의학 드라마예요. 아직 자세한 이야기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할 수 없지만, 병원에서 일하는 변호사 역할을 맡았어요.
Q. 바쁘게 작품 활동을 하려면 체력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겠네요.
저 체력은 완전 좋아요(웃음). 따로 운동은 하지 않지만 ‘자백’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남산타워를 매일 갔어요. 마음도 다잡고, 생각도 정리할 겸 갔죠. 드라마 초반에는 제가 나오는 장면이 많지 않아서 남산을 오르면서 연설하는 장면의 대본을 외웠어요. 대본이 엄청 길어서 남산을 오르며 계속 연습했죠. 연설문 내용인데다 가끔 소리를 치기도 해서, 주변에서 이상한 시선으로 보실 때도 있었어요(웃음). 촬영할 때 “프롬프터 준비해드릴까요?”라고 여쭤보시는데, 제가 당당하게 “없어도 괜찮습니다”라고 했죠.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을 외워서 해서 바로 촬영이 끝났어요.
Q. 또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요?
멜로를 정말 좋아해요.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그런 역할을 못 해봤어요. ‘자백’ 촬영감독님이 “너는 치정멜로를 하면 좋겠다”라는 말을 해주셔서 “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어요(웃음). 코미디 욕심도 있고요. 악역도 워낙 다양하니까 다음에는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힘이 느껴지는 그런 악역에 도전하고 싶어요.
Q. 남은 올해의 목표는요?
계속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고, 제가 열심히 맡은 캐릭터를 잘 표현하는 게 목표예요. 계속 저는 최선을 다해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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