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려면 행간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내용을 말씀하셔서 원본글을 퍼 놓고 하나 하나 저의 의견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산님께서 많은 고민과 습사 분석을 통하여 하나의 동작도 엄밀하게 한 뒤에야 말씀하시는 분이란건 잘 알고 있습니다. 온깍지카페에서 사법논의를 하던 시기부터 글을 통해 익히 보며 지내왔으니까요. 저도 궁금한건 작은것부터 하나하나 물어보았거든요.
지금이야 별절이라고 하지만 전에 활을 배우면서 있는힘 없는힘 다해서 밀고 당기며 쏘아보니 저절로 고자채기가 되고 뒷손은 뒤로 휙 뿌려져 호랭이꼬리 같이 되기도 하고 뒤로 휙 뿌려지기도 하곤 하더군요. 그리쏘면 흔들려서 안된다고 선배들한테 지적을 받기도 했고요. 이런것들도 어쩌면 저하나만의 생각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연구라는게 더해지면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겠죠.
한산님께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가며 별절은 찾아내고 철전사법을 복원하셨다고 하시는 것은 치하받아야 마땅한 일입니다. 1930년대 활쏘는 영상처럼 활을 힘껏 쏘아보면 그렇게 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현재의 활터에서는 그런 모습이 시수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겨 사라져 버린지 오래되기도 했습니다.
☞ “시수에 걸림돌이 된다” 이 지점을 주목합니다. 책 「조선의 궁술」 사법편을 보면 “이 妙法묘법과 奇術기술과 神技신기를 發揮발휘하여 國位국위와 國光국광을 나타내었음은 공인하는 바” 라고 하여 국위와 국광을 드러내었다고 우리의 궁술이 위대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국위와 국광을 드러낼 때 활쏘는 재주로 드러내었을까요? 아니면 활을 쏘기 위한 바탕이 되는 정신을 앞세우고 활을 쏘아서 국위와 국광을 드러내었을까요?
세상사람들은 시수로 무엇이든지 증명하라고 하는데 그것이 일정부분 틀린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사물의 본질을 꿰뚫고 진실에 접근하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순서를 따지자면 내지정 외체직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지궁시심고입니다. 마음으로 도와 덕을 완수하고자 하는 충정이 우러나서 몸과 마음을 바로해서 활을 쏘다보니 별절이 만들어 졌고 별절로 오랫동안 맹렬정진하다 보니 쏘는 족족 다 맞출수 있어서 국위와 국광을 드러내었지 무슨 턱밑살대 게발각지로 쏘아 맞추어서 단수 동개고 명궁되어 국위와 국광을 드러낸 것이 아니란 말씀을 드립니다. 맞추는 것으로 말하면 컴파운드 보우가 유리하고 리커브가 국궁보다 훨씬 우월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고 사이재도 사이관덕을 이룰수 있느냐? 절대로 절대로 양궁으로는 우리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윤성근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본질은 마음이 먼저고 시수는 나중이다. 덕자본야요 재야말자니라 하신 말씀이 딱 맞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실전되었다고 하던 철전사법이 정사론이 발견되면서 어떻게 쏘는 것인지 알려지게 되었는데 어디에도 지금 별절사법이라고 하는 방식으로 쏘아야 한다고 명시해 놓은 곳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사예결해에도 그렇게 쏘아야 한다고 명시한것은 없는것 같고요. 사결에 극력견전의 대목이 있고, 쏘는 모습을 묘사한것이 별절에 대한 기록 전부가 아닐까 합니다.
☞ 정사론과 사예결해의 행간을 읽어내지 못하신 것이지 어르신들께서 다 글 속에 다 써 놓았습니다. 사예결해 5해에 전수별이후수절이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사예결해의 저이미복을 설명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는 것이 저이미복이다? 저이미복을 실현하려면 우리몸을 어떻게 가져가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시면 별절이 어떻게 쏘아져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한산이 설명 드렸잖습니까? 책 「조선의 궁술」에 설명이 미흡하여 잘 모르겠거들랑 사예결해와 정사론에서 똑같은 항목을 찾아보시고 그것이 무엇을 설명했는지 교차비교 해보시면 정확한 의미를 알아낼 수 있다고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헷갈릴까봐 미리 한산이 비교설명을 다 해 드렸습니다. 마음이 없어서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지요.
정사론의 고고원원과 사예결해의 좌액활여가 같은 내용의 다른표현이고, 정사론의 견지소답이 사예결해의 저이미복이다. 고고원원 견지소답을 실현하는 것이 좌액활여 저이미복을 이루는 것이고 이것이 정사론에서 말하는 전거정원이고 척계광이 말하던 전추태산이다. 다 설명 해 놓았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뿐, 총기 없지 아니한 사람이 십수년을 고민해서 얻어낸 진전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한 번 슥 읽고 지나가면서 이해할 수 있으면 정말로 뛰어난 사람일 것입니다.
이러한 속에서 한산님께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시면서 외체직내지정하는 몸자세에 고고원원하는 거궁자세 + 조선의 궁술 신사입문지도에 쓰여진 줌손을 반대쪽 눈위로 들어 당기라는 기록을 참고하여 죽머리를 내전하여 오두에 두어 어깨로 힘을 받게 하고, 전거정원하고 후거집방하며 리를 행하면서 양손을 여요한의하고 깍지를 시위를 끊듯이 쏘면 멀리까지 화살을 보낼수 있게 되며 이렇게 발시할때 두손이 앞뒤에서 불거름으로 지고 엉덩이를 치게되는 철전사법을 발견하셨다고 하셨고 이를 회원들께 알리며 전파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각고의 노력을 통해 발굴해낸 철전사법에 대해 자부심이 크시겠지만 이를 알리고 전파하는 과정에서 한산님께서 공부하신 내용과 다른 방식으로 공부하신 활꾼들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다른 의견을 내면 매우 거칠게 대하신것은 기억하십니까?
☞ 세상사람들에게 중학생 정도의 상식이면 다 알 수 있는 것을 지나가는 말로 슥 물어보면, 어문대답을 하는 사람을 부지기수로 만납니다. 무거운게 먼저 떨어지느냐? 가벼운게 먼저 떨어지느냐? 하고 물어보면 거의 절반가량이 무거운게 먼저 떨어진다고 대답합니다. 아무생각 없이 엉터리 대답을 하는 것은 애교로 봐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과 이해득실로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전파하는 것은 범죄행위이기 때문에 철저히 응징을 해야 합니다. 종교적 목적(거짓 신념)을 위해서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는 거짓주장을 일삼는 무리들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그들이 농민이 힘들게 일해서 생산한 먹거리와 노동자가 피땀흘려 만든 물건을 향유할 권리가 있을까요? 우리 활쏘기가 턱밑살대 게발각지로 쏘아 국위와 국광을 드러내었다고 주장하고 이순신 장군께서 턱밑살대 게발각지로 왜적을 물리쳤다고 주장하며 전통 정통궁술 별절을 패대기 사법이니 쌍놈사법이라고 폄훼하는 무리들에게 한산이 개활을 쏘는 개명궁이라 했다고 뭐 그리 불만이십니까? 틀린 이야기 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면서기주제에, 법 안지키는 행자부장관놈을 발가락 때만큼도 안여기던 한산인데, 얼마든지 응수해 줄 수 있습니다. 모래시계 검사로 날리던 홍발정 준표 경상남도지사가 교통약자 이동증진에 관한 특별법을 안지키면서 장애인콜택시를 안만들어 주길래, 갈구고 싸워서 장애인 콜택시 빼앗아 교통약자들에게 돌려주며 불의와 싸우는데 이골이 난 한산으로서, 우리의 전통 정통궁술 별절이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턱밑살대 게발각지를 국궁이라 사기치며 행세하는 잡놈들쯤이야 얼마든지 갈구고 욕해줄 수 있습니다. 당연히 욕하고 내쳐야지 인인군자 아닙니까? 불의를 보고 침묵하는 자야 말로 비겁한 놈들인데 왜 한산이 비겁한놈들 부류에 끼여야 합니까? 나는 못합니다. 안합니다.
맹자가 왕되어 말리는 신하 없고, 지아비되어 말리는 지어미 없고, 형되어 말리는 동생 없으면 사람구실 할 놈 한놈도 없다 했는데, 대한민국 국궁장에서 4만명이 턱밑살대 게발각지로 쏘고 한산 혼자서 별절로 쏘아 욕먹는다 해도 별절이 틀렸으면 모를까 틀리지 않았다면 1:4만으로라도 싸워서 바로잡아야지요. 그게 정의고 도덕이고 의기남아가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 결과로 활꾼들 사이에서 철전사법을 거론하면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일쑤이고, 막상 그렇게 활을 내면 활을 패대기치는거냐며 조소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저야 사범이란 명분으로 그런 소리를 말없이 눌러버리고 있지만요.
그래서 어렵게 찾아내고 복원이라고 할 정도까지 완성시킨 철전사법만을 사법이라고 하고 타인의 사법은 개법이라고 하기 보다는 철전사법이 기본원칙이며, 이 원칙 범위내에서 두손의 높이를 수정한다던가하여 유엽전을 쏘는 방법으로 발전시키고, 별절에 매이지 않으면서 뒷손을 뒤로 빼는 방식으로 편전을 쏘는 방법 이런식으로 철전사법의 범위를 확대해서 전파한다면 보다 많은 이들이 "아하! 우리나라 사법이 원래 철전사법이 기본사법이었구나"하고 깨닫고 이를 배우고 여기에 터잡아 유엽전도 배우고 편전도 배우게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생각에서 짧은 소견을 피력했던 것입니다.
웅천현감 이춘기공도, 부북일기에 200시 200중을 하셨다는 두 형제분도 모두 철전사법으로 철전을 그렇게 쏘셔서 명궁소리를 들었던 것일까요? 정사론에도 창하는 사람이 높은 소리를 낼때 하는것처럼 다리를 구부려가며 쏜다고 했는데 철사연분들은 이순신같은 이들이 과연 그렇게 멋지지 않은 모습으로 정량궁을 쏘았겠느냐고 하며 그림에 나온 정량궁 가르치는 모습을 잘못된 것으로 말씀하신 기억이 있지 않으신가요? 정량궁으로 활쏘는 사람의 용력을 시험하는 것이니만큼 모두가 갖은 노력을 다해 육량전을 120보 이상 멀리까지 보내려고 했다는데 왜 철사연에서는 멋진 자세로 바로서서 철전사법을 구사했을거라고만 지레짐작을 하셨는지요?
☞ 부북일기에 朴繼叔박계숙(1569〜1646), 朴就文박취문(1617〜1690) 父子부자를 말씀하십니까?
정사론 6장에 遠望宇宙之洪荒원망우주지홍황 而腦如鳴鷄之聳이뇌여명계지용 頸경 躍如약여 唱夫之技股升高一聲창부지기고승고일성, 멀리 광활한 우주를 바라보듯 머리는 닭이 훼를 칠 때 목을 빼 올리듯 하고, 도약하는 듯 몸의 자세는 唱창 잘하는 사람이 큰 소리를 낼 때 넓적다리로 받쳐 올리는 모양과 같이 한다. 이것을 말씀하십니까?
형제가 아니라 부자지간이고, 닭이 훼를 칠 때 자세히 보시면 다리를 뻗대고 온몸의 힘을 다해서 목을 길게 뽑으며 꼬끼오~ 훼를 칩니다. 다리를 구부리지는 않지요.
정량궁 쏘는 그림을 말씀 하셨는데, 어떤 그림을 말씀해 주시는지 정확하지 않아서 답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예전에 대한궁술원 장영민원장이 용약전진으로 육량전을 보냈다며 주장하고, 뛰어가다 멈춰서 활을 멀리 쏘는 동영상을 올린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화살을 멀리 보낼려면 강력한 힘으로 쏘아서 에너지를 화살에 많이 실어 보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물리학적으로 발사각도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제자리에 서서 온 힘을 다해서 별절로 몰아쏘기도 버거운데 뛰어가다가 멈추어 서서 43.2°의 정확한 각도로 발시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연습이 필요할까요? 수많은 연습을 한다고 해도 발시각도를 정확히 잡기도 어렵거니와 달려가면서 극한으로 만작하기도 어렵습니다. 활쏠줄 모르는 사람이 육량전을 멀리 보내기 위해서 온갖 잡동작을 섞어서 쏜 것을 표현해 놓은 것을 육량전을 쏘는 전형으로 오해한 것 중에 하나라고 봅니다.
별절사법서인 정사론이나 사예결해에 그런 내용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용약전진으로 육량전을 보내서 멀리 보내기는 어렵습니다. 한산이 육량전을 만들어 쏘아보았더니 용약전진으로 쏠때보다 상하전후좌우를 반듯하게 하고 쏘았을 때 훨씬 멀리 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말로만 생각으로만 할 게 아니라 실제 몸으로 실험을 해 보고 그 결과치에 따라 이야기하는게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기록에 나온 명궁들은 정량궁으로 육량전을 잘 쏘아서 명궁소리를 들은것이 아니고, 유엽전을 잘쏘는 신기를 보였기에 명궁소리를 듣고 승진하거나 했을 겁니다. 정조대왕도 육량전 잘쏘았다는 기록은 없던데, 궐내 활터나 장용영 등에서 유엽전을 쏘았을 것 같지 않습니까?
☞ 정사론에, 금군에 활을 배우러 오면 오호 무른활로 3년을 습사를 시켜서 근골이 갖추어진 장정은 육량을 배우러 보내서 무과를 보고 장수가 되게 하고, 근골이 약한사람은 장전을 쏘아서 하급무관이 되게 했다는 이야기에서 보듯이, 3년을 별절을 공부했는데 몸이 허약하여 막막강궁을 당길수 없어서 장전을 쏘긴 하지만 그 궁체를 바꾸어서 장전(유엽전)궁체 따로 있고 애기살 궁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기본바탕이 육량전을 쏘기 위해서 별절을 공부했고 그 바탕위에 장전을 쏘았기 때문에 장전이나 유엽전이나 편전 모두 별절로 쏘았음이 분명합니다.
윤성근님도 아시다시피 턱밑살대 게발각지로 한 번 배우면 평생 궁체가 굳어져서 못고치지 않습니까? 3년을 별절로 공부했는데 갑자기 장전이라고 하여 다르게 쏠 여지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별절로 쏘았다고 생각하는 근본이유가 예기사의에 의해서 도덕적 기반을 가진 활쏘기는 별절밖에 없기 때문에 군신이 모여서 활쏘기 대회를 해도 전부 별절로 쏘아서 승부를 가렸지 턱밑살대 게발각지로 쏘았다가는 수행이 덜된 쓰레기로 취급을 받아서 그들의 세계에서 영원히 배척당하던 사회이기 때문에 도저히 별절 이외에는 따로이 궁체가 있을 여력이 없던 시절입니다. 예기 사의에서 설명을 잘 해 놓았잖습니까? 持弓矢審固 然後 可以言中지궁시심고 연후 가이언중, “별절로 쏜 화살중에 맞은것만 시수를 쳐 주었다.”고. 그 시절에는 턱밑살대 게발각지로 쏘아 맞춘 것은 시수에 안쳐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철사연에서 연구하고 있는 철전사법 다시말해 육량전사법이 별절로만 쏘았다고 단정할 만한 근거나 기록이 있는건가요?
☞ 사예결해에 前手撇而後手絶전수별이후수절로 쏜다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정사론에는 전거후집으로 쏜다고 수없이 강조하고 있구요.
큰활을 별절로 쏘아 힘차게 내려쏟고 엉덩이를 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바로 이런데에서 타인들은 의문을 갖고 물어보고 과연 그것이 맞는 것인가 하고 반문하게 됩니다.
☞ 별절로 쏘아보지도 않고 무리가 있다고 어찌 단정을 하십니까? 큰 활을 별절로 쏘아보시고 또 지나방식으로도 쏘아보시고, 일본활 유미같이도 쏘아보세요. 그리고 그 차이점을 설명해 주십시오. 한산은 쏘아보니 우리활만큼 맹렬하게 고자가 팽그르르 돌아가지는 않습디다. 일본활 유미는 낙시대 휘두르는 것 같이 느릿느릿 돌아가구요, 청나라활은 고자가 돌기는 하는데 우리활만큼 빠르게 돌아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느리게 돌아가더라도 고자가 돌아가는게 화살이 더 맹렬히 날아갔습니다. 책 「조선의 궁술」에 하삼지가 풀리고 윗아귀가 밀리면 화살이 덜간다는 말이 청나라 활이나 일본활 유미에도 적용이 되었습니다.
저같은 경우, 육량전사법 즉 철전사법은 용력을 키우고 시험하기 위한 사법이라 보고, 그 사법을 익힌 사람은 어떤 활이나 도구라도 능숙하게 몸을 쓰고 힘을쓰는 능력을 갖췄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 저는 활배우려는 신사들에게 시간이 오래 걸릴수 있으나 건강하고 아픈곳 없이 오래도록 활을 즐기며 쏘는 활꾼이 될 의향이 있으면 배우고 그렇지 않으면 내게 배울 생각을 하지 말라고 먼저 일러주고나서 몸쓰는 법부터 익히게 하려고 외체직내지정하는 몸자세에 고고원원하여 전거정원하고 후거집방하는 '리' 를 여력으로 추사전신하는 법을 배워 구사하게끔 하고 있어서 우리 신사 3명은 높이 든 활로 멀리까지 화살보내는 것에 치중하여 습사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제가 보기에 몸과 힘쓰는 법이 익숙치 않으면 몇달이 지나도 유엽전쏘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기본사법을 갖추지 않은자가 유엽전쏘며 과녁두드리는 재미에 빠지면 젊은날의 장언식 공처럼 몸이 망가지는 일은 불보듯 뻔한 일이니까요. 또 육량전사법을 익힌 사람에게 약간 수정한 유엽전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기에 서둘러 가르치지 않습니다.
앞서 한산님께서 사예결해 가전편에 引之之時 兩手齊擧 其高無下於耳上을 이해하신 과정을 기술하셨는데 그분들이 채록할 당시에 육량전을 쏘신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유엽전을 쏘느라 약간의 변형을 통해서 쏘고 있었는데 그날 두 손을 들은 높이가 이마 앞쪽에 있는데 그 손은 귀아래로 내려오게끔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또 그렇게 쏘는 것을 보고 기록한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 일것입니다. 한산님처럼 그렇게 심오하게 보지 않고 '아! 두손을 앞으로 거드는데 두 손 높이가 귀아래로 내려가지 않게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두손의 높이에 따라 근육과 뼈마디 움직임이 조금씩 달라지곤 하는것 이해합니다. 하지만 글귀 하나를 때로는 그냥 단순하게 쓰였다고 받아들일수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의 글자대로 '당길때에 양손을 모두 드는데 그 높이가 귀위보다 아래가 아니다(즉, 이마높이거나 그 이상 높이라 추정)'라고 읽으면 내용이 달라지는가요?
☞ 글의 행간을 읽어내는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예결해에 좌액활여와 흉허복실을 붙여놓았는데 그 연유를 아시겠습니까? 二. 身。胸虗腹實。左腋豁如。(신。흉허복실。좌액활여。), 좌액활여를 안하고는 흉허복실을 실현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근한 예로 한산이 매번 강조했지요. “발시후 줌손과 활장이 불거름으로 떨어지게 쏜 활이 제일 잘 쏜 활”이라는 대목이 책 「조선의 궁술」을 읽어내는 키워드라구요. 궁체의 종별 11개 항목을 가장 정확히 지켜서 쏘면 발시후 줌손과 활장이 불거름으로 맹렬히 떨어지고 화살은 줌뒤로 떠서 들어와 맞게된다구요. 내가 활을 쏘았는데 쏘고 나니 줌손이 불거름으로 안떨어지고 화살이 줌뒤로 떠서 들어와 맞지 않으면 궁체의 종별 11개 항목을 정확히 지키지 않고 쏜 활이고 그것은 책 「조선의 궁술」대로 쏜 활이 아니다. 이렇게 이해하라구요.
引之之時 는 만작할때를 말하는 것 아닙니까? 세상사람들이 거궁할때라고 주장을 하는데, 거궁은 좌액활여로 이미 나와 있는데 무슨 좌액활여를 했는데 줌손과 각지손 위치가 귓바퀴에 와 있습니까? 이것부터 벌써 한페이지만 넘어가면 앞페이지 이야기를 까먹는 치매걸린 사람들의 사법서 해석이 아니겠습니까?
정사론에 거지고고원원 거궁을 하라고 하고 사예결해에 좌액활여라고 이미 설명이 되어 있는데, 거궁은 이미 만세거궁을 한 후 활을 가득벌려 만작을 할 때 그 위치가 귓바퀴(눈꼬리)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를 하는 부분인데 왜 여기서 거궁위치가 귓바퀴에 있어야 한다고 되돌아가서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까?
거궁위치는 고고원원 좌액활여 만세거궁을 해서 광배근을 최대한 늘이는 동작이고, 그 다음 견지소답 저이미복으로 광배근을 끌어내려 어깨를 최대한 낮추고 만작을 하는데, 각지손 높이가 귓바퀴(눈꼬리) 밑으로 내려가면 안된다고 강조를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행간을 잘 읽어내는 집중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뒷손을 높이 당겨도 앞손높이가 과녁을 향해 낮춰져 있고 거리는 120보라면 화살대는 귀보다 아래에 위치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화살을 멀리까지 보내는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또 과녁을 잘 맞추던 이춘기공이 과녁을 안쏘고 멀리보내기만 하느라 화살대를 귀때기 위에 닿도록 활을 높이 들어 조준한것이 아니라면 그 글귀는 어떤 의미로 쓰여졌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단순명쾌하게 해석하는 것도 필요하고 그런 의견에 귀기울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소소한 점 한 두가지 때문에 훌륭한 성과로 나타난 철전사법이 다른 활꾼들에게 욕먹거나 비난과 조소를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 멍청한 것들이 별절로 쏠 줄도 모르면서 별절을 난도질하는데 그냥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라구요? 그래서 오냐 오냐 다 받아주면 기고만장해서 턱밑살대 게발각지가 조선의 궁술 최강궁체라며 온갖 사기를 치고 개지랄을 다 떠는데 그것을 모른척 봐 주고만 있어야 그게 대인배의 풍모라구요?
발여호미라고 해서 손바닥이 하늘을 보고 떨어져서 각지팔이 호랑이꼬리같이 축 늘어져야 한다고 엉터리로 가르쳐도 모른척하고 입을 다물라구요? 당장에 사예결해의 우수 수배향서와 충돌하고 어깨 회전근개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는 사람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침묵하는게 정의고 도덕이고 합리적이라 주장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모쪼록 헤아리시고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이거나 훌륭한 이치일수록 널리 이해하고 품어안을 대상과 폭이 넓고 많을수 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살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갈릴레오가 세상의 이치를 밝혔어도 세상이 받아들이는데 4갑자 200년이 더 걸렸습니다.
별절이 망하는데 2갑자가 걸렸습니다. 하지만 별절이 회복되는데 최소한 1갑자는 걸리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한산이 거칠게 반항하면 반갑자 30년 정도만 하면 되지 않을까요? 희망을 가져 봅니다. 그 사이 욕은 제가 다 먹을께요 여러분 께서는 별절로 열심히 연마하여 사이재도 사이관덕을 이루십시오.
첫댓글 행간을 읽어내라 하시고 그 내용도 설명하시는데 그런 연관성을 따지지 않더라도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수 있도록 쓰는 것이 글이지 무슨 커다란 비의가 있다고 행간에 숨겨놓아가며 글을 쓰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행간타령도 언론사등에서 유식한척하고 누군가의 글이나 말을 해석하여 옮기는 과정에서 자기의 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타당성을 부여하려고 하는 말장난 아닙니까? 옛사람들이 꼭 행간을 살펴봐야 뜻을 알수 있도록 했을까요? 한자쓰는 중국인들은 모두 행간을 읽어가며 대화를 하는가요? 너무 넓고 깊게 해석하면 겉에 보이는 것조차도 놓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 "화살을 오른손 식지위에 놓는데 뒤는 높고 앞은 낮아서 그 모습이 지붕의 서까래와 같다. 활을 당길때에는 두손을 가지런히 드는데 그 높이가 귀위쪽보다 내려가지 않는다.- 손을 높이 들면 왼쪽어깨가 낮아져서 몸의 자세가 바르게 된다- 이제 팔꿈치의 힘으로 당기되 활시위가 아래쪽으로 향하는 것은 절대로 피하고, 또한 손가락 힘으로 끌어서 벌려도 안된다." 이렇게 읽으면 안됩니까? 마치 활을 쥐고 화살을 메겨서 들어올려 당기고 쏘는 모습을 순서대로 기록해놓았는데 이걸 그대로 안읽고 윗글과 연관지어가며 읽
어야만 이해가 되는 겁니까? 저는 단순하게 읽는 것이 독자나 글쓴이나 모두가 원하는 것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쉬운길이 지름길이 되고 핵심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요.
한산이 드리는 설명이 무엇이 마음에 안드십니까? 경상도 머스마의 과격함이 마음에 안드십니까? 천성은 불계라고 못고치는 부분이 있으니 가려서 들으시면 됩니다. 세상이 얼마나 넓고 할일도 많은데 하찮은 한산을 붙잡고 이리 고생합니까? 꼴보기 싫으면 안보면 되는데 말입니다. 달을 가르키면 달을 보면 됩니다. 한산의 손가락이 몽탕하거나 삐삐정하거나, 구부러졌거나 똑바르거나 한것을 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활쏘기가 별절로 쏘았고 그 별절을 세상에 드러냈다는 것이 중요하지 한산의 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별절을 익혀서 사이재도에 오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별절을 설명하는 한산의 꼬라지가 더럽어서 못보겠으면 안보면 되는 일입니다.
어차피 별절을 부정하는 무리들은 한산이 아무리 곱게 부드럽게 설명을 해도 비난하고 욕할 것이기 때문에 구지 그들을 위해서 가면쓰고 힘들게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차피 한 인생인데 생긴대로 내 성질대로 살다가 가게 될겁니다. 그게 천도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산 단 한가지가 맘에 안듭니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고 하는 말씀.
물어보는 이도 나름 연구해보고 묻지 않을까요?
천성은 불계라 하시지만 글쓰기는 말하는 것과 다르니 충분히 바꿔 말할수 있지 않을까 싶구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