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은 혼자서도 잘 살아가지만,
초보 농부의 손길이 아주 조금은 필요하다.
벌통에 여왕벌이 생존해 있고 산란을 하고 있는지,
벌집이 부족해 분봉(여왕벌이 일벌을 데리고 집을 나가는
경우)이 날 확률이 없는지,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내검(벌집 검사)을 한다.애플리케이션 개발자 김태훈(39)씨는
벌통에서 여왕벌이 사라져서 난감한 적이 자주 있었다.
태어난 뒤 혼인비행 과정에서 새에게 먹혔거나,
산란율이 떨어진 여왕벌을 일벌이 공격하거나,
여왕벌 실종의 이유는 사실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여왕벌이 없으면 산란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벌통의 영속성을 지켜줄 수 없다.여왕벌이 산란을 잘 하고 있음을
확인한 다음에는 벌통 관리만 잘 하면 된다. 나의 경우 수벌 애벌레를
죽이는 것이 내검의 주목적이었다.
이 무슨 무서운 말이냐면, 벌통에 벌을 괴롭히는 해충인
응애가 기생하기 시작하면 위험한데, 응애는 수벌 방에
주로 산다는 박진 어반비즈서울 대표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실제로 양봉할 때 응애를 유도하기 위해
수벌 방을 이용하기도 한다.수벌 방은 수벌이 태어나는 방이다.
여왕벌은 벌집 빈방에 알을 낳는데 더듬이로 방 크기를
재 큰 방에는 무정란인 수벌을 낳고,
작은 방에는 유정란인 일벌을 낳는다.
보통 일벌 방이 더 많지만,
벌집 가장자리는 수벌 방도 꽤 있다.
어느 방을 만드는가는 벌들 마음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수벌과는 친하지 않다.
응애도 문제지만, 수벌이 여왕벌과 교미를 할 뿐
일을 안 하고 꿀만 축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또 수벌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가 길쭉하고 날씬한 여왕벌이나 작지만 귀여운 일벌과
달리, 눈과 배가 모두 검은데다, 큰 수벌은 파리같이 생겼다.
수벌 방은 평평하게 입구가 봉해진 일벌 방과 달리 볼록하게
마감돼 있다. 터뜨리고 싶은 욕망을 쉽게 자극한다.
그래서 수벌 방을 발견하면 내검칼로 콕콕 찔러
애벌레를 죽였다. 다섯 달 동안 큰 탈 없이 벌을 친 건
응애를 막기 위한 개미산 처리를 잘 해서겠지만,
깔끔하게 수벌 수를 조절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이런 날 보고 누군가는 “양봉하러 다닌다더니 살생을 하러
다녔구나”라고 탄식했다. 옆 벌통 주인인 직장인
임채훈(34)씨는 나와 달리 수벌을 죽이지 않았다.
임씨는 가족들과 뉴질랜드에 가서 양봉을 할 계획이 있다.
응애 방제도 중요하지만, 생명이니 태어나는 것이 순리고,
일벌이 수벌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