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먹고 알 먹고
김하임
시작은 이러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늘 주위 사람 배려로 산 세월이 많았으니 무언가 나도 이웃을 위해 해야 할 것이 남은 듯했다.
은퇴 후 봉사할 것 중 찾는 중 내가 원하는 몇 가지를 알아보았다. 뉴스를 보니 다문화가정의 부모가 자녀의 학교생활을 돕고 싶어도 언어와 문화적 소통이 안 되어 어렵다고 한다. 그 다리 역할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외국 부모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일도 할 수 있다. 내가 사는 지역의 시청을 찾아가 봉사 담당자를 만나 상담을 하니 아직 준비되지 않아 어느 것도 할 수 없다는 답이었다. 단순히 아이들 학습을 돕는 것 외에 업무가 많은 그들은 내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여력이 없었다. 몇 년이 더 지나 지자체마다 그런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었을 때는 내 열정은 이미 다른 곳에 마음을 싣고 흘러가고 있었다.
내게 아파트 생활이란 편리함이 많으나 늘 아쉬운 것은 내게 손바닥만 한 땅이 있어 마음대로 이럭저럭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럴 수 있다면 챙 넓은 모자를 쓰고 큰 주머니가 있는 앞치마를 입고 호미와 삽을 들고 땅을 일구는 것이다. 아침이면 긴 호스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위로 솟구쳐 떨어지는 물을 밭에 넉넉히 주고 싶다. 땅도 없고 전원주택에 사는 것도 아니고 이사 갈 수도 없는데 어떻게 흙과 살아갈 수 있을까.
내 아이들이 어릴 때 살던 동네는 5층 아파트였다. 한 달에 한 번, 자치적인 주민 활동으로 아파트의 꽃밭에 있는 잡초를 뽑자는 날이 있었다. 직장에 출근하는 내게는 힘든 상황이었다. 다른 집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지 참여는 다섯 명 안팎으로 미미했다. 그래도 위 아래층을 오르내리며 마주쳐야 하고 참여 못 하는 미안함도 전할겸 동네 슈퍼에 부탁해 오후에 요구르트와 약간의 간식을 전하는 것으로 내 몫을 땜질하던 것이 생각났다.
필요하니 묘수가 생겼다. 내가 사는 아파트 동은 드나드는 문이 동북향이고 앞의 넓은 터는 큰 미루나무가 여러 그루가 있어 문 방향에 있는 꽃밭은 햇빛이 지나가는 정도이다. 우리 동 목련은 제일 늦게 피었고 수국의 잎은 허연 점박이로 무성할 뿐 꽃도 보기 힘들었다. 그대로 방치되어 혼자 피고 지는 잡초도 적고 돌무더기만 눈에 띈다. 마음 주면 내 것이지 어디 내 땅이 따로 있겠는가.
발동이 걸렸으니 해보는 건데 ‘아니, 꽃밭인 줄 알았더니 자갈밭이네.’ 돌을 마냥 걷어 내며 척박해진 땅에 무언인가 심을 수 있을까 싶었다. 울타리 식물은 잎이 별로 없고 딱딱한 줄기만 남아 마른 막대기가 되어 있으니 몽땅 뽑아 버렸다. 응달에 조금이라도 햇볕을 쬐게 해주려면 가리는 것이 없어야 좋을 것 같았다. 다음은 양재동 꽃시장에서 퇴비 이십 포대를 사다 뿌렸다. 꽃모종도 부지런히 사다 나르느라 봄이면 며칠을 갔다 왔다 혼자 바빴다. 어느 해는 관리실에서 아파트의 보도 블럭을 새로 하고 난 후 붉은 벽돌을 주며 꽃밭의 가장자리를 하도록 했다. 다른 동과 달리 우리 동은 내가 일꾼이었다.
첫해는 한해살이, 다음 해는 알뿌리 식물, 세 번째 해는 야생화를 심으며 해마다 밑에서 올라오는 자갈을 계속 걷어 내며 꽃을 심고 가꾸니 꽃밭의 모양새가 잡혀갔다. 거친 땅에 심은 노란 수선화와 알록달록 히아신스 향기가 부드러운 바람에 살랑거리며 이른 봄을 알렸다. 큰 나무에서 벚꽃이 피어나고 철쭉, 목련이 다음 차례를 기다린다. 꽃 명찰을 세워 준 여러 종류의 백합은 꽃대를 일 미터 넘게 밀어 올리고 저마다의 빛깔로 분칠을 하며 진한 향기를 내뿜을 시기가 온다. 학원 가는 아이들이 종알거리고 경로당 오가는 할머니들이 곱다고 한마디씩 거들면 점점 화려한 계절이 펼쳐진다.
이제는 신이 나서 집에 있는 물건을 꽃밭으로 날랐다. 어항, 화분, 장식물을 내다 놓으며 점점 내 꽃밭이 되어갔다. 여름이면 뜨거운 해가 머리 위로 솟기 전에 긴 호스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물을 주었다. 챙이 넓은 모자 쓰고 주머니 큰 앞치마 입고 잡초를 틈만 나면 부지런히 뽑았다. 주위 사람이 건네주는 인사보다 내가 행복했다.
이렇듯 새해가 되어 봄이 올 때쯤이면 마음이 바빠졌다. ‘언제쯤 양재동 꽃 시장에 가서 퇴비를 더 사다가 흙과 함께 도툼하게 올려 줘야 할까' 하는 생각이 올라오고 '어느 동 화초를 얻어다 옮겨 심을까' 그려보고 '사람 손이 덜 가고 피고 지고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등등 점점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데 장애물은 엉뚱한 곳에서 생겼다. 뒷말로 훈수를 잘 두던 분이 하고 싶었나 보다. 얼른 넘겨주었다.
욕심 내던 분은 한 해가 지나 이사 갔다. 아무도 나서는 이 없으나, 나는 손을 놓았으니 몇 년 사이 꽃밭 가득 피고 지던 꽃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잡초가 우세하다. 그런데 얼마 전 TV에서 부모는 농사지어 자녀를 대학 보냈고 그녀는 고향으로 귀농하여 잡초와 함께 농사짓는 것을 보았다. 제초제로 풀을 없애버리고 비료를 주는 것보다 뽑지 않고 내버려 둔 잡초 밑에서 벌레가 생기고 저절로 먹이사슬이 형성되어 서서히 땅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꿩 먹고 알 먹고’ 아닌가. 우리 동 꽃밭도 그들처럼 잡초 밑으로 벌레가 모여 땅이 회복되어서 귀한 벌, 나비가 날아들기를 바란다. 챙모자 다시 쓰고 나서고 싶어지는 날이 온다면 팽개친 삽을 찾아 예쁜 모종 심고 싶어 양재동으로 달려갈지 모르니까 말이다.
첫댓글 아파트단지에 한때나마 나만에 꽃밭을 가꾸며 행복을 키우고 계셨군요.모자쓰고 앞치마 두르고 땀흘리며 보냈던 꽃밭.
손 놓고 있으니. 잡초가 무성해지고 벌레가 모이고 땅이 회복되는 자연이 순리가 대단한 발견이되네요.
향복한 추억 다시 찾으삼!
다시 살아날 여룸숲의 꽃밭,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