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 매뉴얼 요약/정조 꿈이 서린곳/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매화줄기의 끝자락에 맺힌 꽃망울 같은 형상/창경궁과 분리 :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개조하면서 두 궁궐의 후원에 담장을(1933) 쌓아 지금처럼 분리 됨. 전당(왕,왕비,상왕,대왕대비)합각(전당의 부속건물)/재현(왕실가족)누(관)정/창경궁 동물,식물원화 :1909,11,1~1910,11완공 이등방문/완공식 10,26일 하얼빈 死,불참.
- 아시아 3대 아름다운 궁전 : 중국의 이화원(6대, 청 건륭제, 서태후, 1750년, 1998년 세계문화유산)/일본 계리궁(경도, 17c)
- 후원 해설 처음 한사람 : 정조 5년 1781년 - 3정승 및 신하들 대상(표암 강세황의 호가유금원기)/마름모 담장문양(일본식), "ㅁ"자 문양(한국전통문양)/창덕궁 공사 감독관 문인/건축과 조경에 인문정신을 담으려는 왕들의 깊은 속내 뜻.
1. 후원 들어가는 인사말
역사, 문화, 자연의 아름다움이 살아 숨쉬는 창덕궁에 오심을 환영하고, 이곳 후원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매우 아름다운 정자와 연못이 어우러져 1997년 12월 6일 UNESCO(파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90분동안 후원 관람을 함께 할 우리문화 숨결 궁궐길라잡이 양은석입니다. 한가지 당부 말씀 드리겠습니다.
후원에는 곳곳에 위험요소(연못과 비탈길 등)가 있어 안전사고에 주의하시고 저보다 먼저 앞서가지 마십시오.
2. 후원의 개요
후원은 태종 6년 1406년 (4월 9일 동북쪽에) 해온정(解풀해,慍성낼온,亭정자정, 태종이 작명)을 짓기 시작,
세조때 본격적으로 확장(동쪽 민가 73채, 북쪽 58채 헐음), 성종때 창경궁 영역까지 확장했고, 연산군 때 담장을 북쪽으로 100척(27m) 넓혔습니다. 임란때 모두 불타고(20년간 공터), 1610년 광해군 때 재건, 인조 때 완공했습니다. 그후 숙종, 정조, 순조, 순종 때 개보수, 증축 해 오늘에 이르고 있음. 숙정순순, 1자 : 27cm
후원은 창덕궁 총면적 145,000 여평 중 95,000평, 나무종류 160여종 그중 70그루가 300년이 넘는 고목, 누각 18채와 정자 22채, 연못 5개 등이 있으며 백악산의 응봉(매봉우리) 아래 자리하고 있는 왕실의 정원, 임금이나 세자의 공부공간, 임금 휴식공간입니다.
* 1975년 후원 수종 조사 : 300년 이상 57수(느티 37, 은행 2, 회화 2, 주목 10, 밤 2 , 측백 2, 향 1, 매화 1, 다래 1, 주엽 1 등)
3. 후원의 명칭
조선초에는 "제왕의 숲"으로 상림원(上林苑)이라고 했고, 궁의 뒤쪽에 있다 해 후원, 궁안의 정원 내원, 임금의 허락없이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정원 금원, 궁 북쪽에 정원 북원, 임금의 정원 어원 ,고종 때 관청이름으로 비원사(秘숨길비院집원司맡을사), 일제강점기 비원(광무8년 1904,7,15,苑나라동산원)등 다양하게 불리어지나 후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시도록 부탁드립니다. 주합루로 이동하시겠습니다. * 창순루(蒼푸를창 荀풀이름순樓다락루), 정조) : 성정각과 중희당 사이
4. 주합루와 부용지 일원/정조(1776,3.10~1800,6,28)
정조가 1776년 3월 즉위 후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개혁정치 위해 만든 보좌기관, 비서실적 성격 공간입니다. 일제강점기 연회장(1904년 러일전쟁 자축연 행사장)으로 활용되는 등 수난 겪음./내규장각 1781년 전각으로 이전(이유 : 후원에 있어 이용이 불편)
가. 주합루(宙집주合합할합樓다락루, 종부시소속관서, 족보관장)와 규장각(奎별규章글장閣누각,집각) : 1776년 9월건립/강화 행궁 외규장각(1782년 2월,1866년병인양요 297권 도난 6000궝 불탐-병인박해가 원인 제공, 2011년 154년만에 반환)/북쪽
2층 주합루는 천지 우주가 통하는 집(우주가 하나되다)으로 당저(그 당시 임금, 정조)의 어진을 모신 곳이고,현판은 정조 25세 글씨
1층 규장각(숙종 어필)은 문장을 담당하는 하늘의 별인 규수(성)가 (밝게) 빛나는 집으로 왕실도서관이자 학술, 출판기관으로 8만여 장서를 봉모당(역대 임금의 어제, 어필, 그림 보관), 열고관(루,정조.청서적 보관,閱검열할열古옛고館집관), 개유와(皆다개有窩움집와,중국(청)도서 2만권), 서고(우리나라 도서)에 보관 했고, 이안각(移安閣은 책을 포쇄하는 공간입니다/규수(성) : 서쪽 일곱별 중의 하나./각(1층), 루,관(2층)/주합루;천지 우주가 하나로 합해지는 다락집/규장각-이왕직- 경성제대 도서관-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1776~2016,240년)/규장각 서얼학자(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서이수 등)
* 포쇄: 젖거나 축축한 책 등을 바람에 쐬고 말리는 일.
나. 어수문(魚고기어水門)/촉의 유비(현덕)와 제갈량 고사인 "수어지교(水魚之交)"에서 유래한 것으로, 즉 임금과 백성,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물고기가 물없이 살 수 없는 것에 비유한 것으로 정조의 민본정치 철학을 보여주는 문임 /삼국지, 위조조, 오손권, 촉유비(관우,장비,제갈량,27세)/촉 유비에게 제갈공명은 물고기에게 물이 있는 것과 같다.
- 화계 중앙에 어수문을 만들어 주합루로 오를 수 있도록 만들었고/ 어수문 가운데는 임금이 좌우 소문은 문, 무반이 통행
- 좌우 문이 낮은 이유는 허리를 굽혀, 겸손한 마음으로 들어오라는 의미.
- 한마리 잉어부조상 : 중국 황화상류에 용문이라는 깊은 협곡이 있는데, 이 협곡을 올라서야 잉어가 용으로 승천한다는 등용문전설/어수문 창방에 청룡,황룡그림-등용문 전설/어수(漁水):군신, 부부/봉(수컷),황(암컷)
다. 취병(푸른병풍,翠물총새취屛병풍병) : 푸른 병풍처럼 만든 울타리로 주합루담장.나무는 대.사철나무,향주측
라. 부용지(부용:만개한 연꽃,芙蓉,池연못지,정조1776년):가34.5X세29,4m 화강암 장대석을 쌓아 만든 연못.
- 부용지에서는 하늘(우주, 天)을 상징하는 둥근 섬, 땅(地)을 상징하는 네모난 연못에, 인간(人)을 상징하는 정자의 장주석이 발(탁족-내 잘못이다. 두다리를 물에 담그고 발딲음)을 담금모습에서 천원지방(天圓둥근원地方), 천지인(천원지방의 동양적 세계관), 음양론 사상(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을 엿 볼 수 있음
- 부용지에서는 1.혜경궁 홍씨 화성행차 후 연회, 2. 정조와 정약용 활쏘기, 3. 정조와 규장각 관원 시짓기(정조와 오제순 등 규장각 각신(초계문신) 27명) 연회 행사 열림 : 활이나 시를 잘못 쏘거나 지으면, 벌로 배(채주금범- 채색이 아름다운 비단배)에 태워져 둥근 섬에 놓여짐.
- 부용지 한 귀통이 물고기(물과 물고기) : ① 임금과 신하의 위계질서 표현 ② 변변치 못한 사람이 자라 큰 인물이 됨을 표현(어변성룡) ③ (과거 응시자들이)잉어 부조상을 보며 장원급제를 빌었음/놀이배를 띄우고 낚시질을 함
* 수입구(水入口) : 물을 넣는 입구 : 용두 조각/부용지의 원래 이름 : 태액지(太液진액池연못지, 연지(蓮연연池)
* 함담(菡연꽃함,연꽃봉오리담) : 연꽃이 아직 피지 않은 상태- 반대 부용/정약용 부용정가(부용지에서 상화조어(賞상줄상花釣낚시조魚-꽃구경하고 낚시질 하는 것)
마. 부용정(芙연꽃부蓉연꽃용亭정자정, 열무정 자리에)/내전(內殿대궐전) 역할한 곳. 상량문 정조가 직접 씀
- 연못에서 피어난 한송이 연꽃에 비유되는 정자로, 정자를 위에서 보면 亞자형(연꽃이 활짝 핀 상태)
- 숙종(1674,8.23~1720,6.8)33년 1707년 택수재로, 정조 1776년 개축하면서 부용정으로 부름
- 1795년 2월 종친(임금의 가까운 친족)과 산하들을 초청 혜경궁 홍씨 회갑연/정자 높은곳(임금),낮은곳(당상관), 흙바닥은 당하관 자리/화성 봉수당 1차, 부용정 2차, 창경궁 명정전(정전) 3차/유네스코 문화유산 97년 12월 등재
- 지붕에 항아리 모양 절병통
* 부용정 상량문 : 대장괘(大壯장할장卦점괘괘)의 견고한 상(象)을 취했다고 적혀 있음. 대(大)은 양(陽볕양)을, 장(壯)은 왕성하다는 뜻으로, 부용정이 "임금의 자리" 임을 뜻. 나머지 공간은 "가인괘(家人卦)의 한 집안. 안팎이 모두 바른 상을 견주었다." 적혀있음. 가인은 한 집안 사람들을 즉 "신하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개축된 정자."
바. 사정기비각(四井우물정記기록할기陣진칠진)/예전 열무정 부근
세조(6년 1460년)가 창덕궁으로 이어하며 두 조카(영순,오산군)와 네왕자에게 부용지 부근에 좋은 우물이 있으리라 짐작 찾도록 지시했고 4개 우물를 발견했는데 (마니,파리,유리,옥정) 왜.호란을 거치며 두개는 없어졌고 숙종(사정기) 때 남은 두개를 보수정비했던 그 내용(사정기)을 비각에 새긴게 사정기비각임.
* 사정기 : 세조 때의 일과, 자신이 보수정비한 내용을 글로 적은 것.
사. 서향각(書香향기향閣집.누각각,1776.9) 서향은 책의 향기, "책향기가 나는 집" 초기 서재로 건립 후 이안(移옮길이,安)각(신주.어진을 옮겨 모신다)으로 부르다, 서향각으로 개칭 : 임금,왕실관련 자료소장, 서향각봉안총목(철종)
- 용도 : 어진과 어필, 어제(임금이 지은 글)등을 4개월마다 말리던 포쇄(폭서)소, 책을 보관 하던 곳(서고), 체험공간(정조 비와 순정효황후 윤증순 (1911,6.4)이 친잠례를 하던 곳-누에치던 곳, 1911년 일제는 양잠소라는 안내판)으로 사용, 친잠권민(親친할친蠶누에잠,勸권할권民) 현판 있음- 누에 치는 어친잠실, 잠신제(황후가 제주가 되어 누에의 신, 누조에게 제사 지냄)
* 정조(1776,3,10~1800,6,28)의 부인들 : 효의왕후 김씨, 의빈성씨(문효세자1782~1786,4세(5살) 死), 가순궁(당호) 수빈박씨(순조,1822,12,26,보경당 死)/순조 창경궁 집복헌 出, 원빈 홍씨(X), 화빈 윤씨(1녀)
* 순정효황후 윤증순 : 부 윤택영 친일인사,큰아버지 윤덕영(경술8적) 친일파,오빠 윤홍섭 독립운동, 윤증순 독립자금 및 학비지원/경술8적(이완용,윤덕영,민병석,박제순,고영희,조종응,이병무,조민희)/이윤민박 고조이조
아. 천석정(天石亭, 1776년 이후) : 천석은 백성의 풍년기원, “풍년이 든다”는 뜻. 누마루에 시원한 바람과 밝은달을 의미하는 제월(비갠날 밝은 달)광풍(맑은 햇살과 시원한 바람)관(루)(정조글씨 추정) 현판이 걸림, 정조,신하들과 독서, 효명세자 공부공간/제월광풍(시원한 바람과 밝은 달,도량이 넓고 시원시원 함)
자. 영화당(映비칠영花堂집당)/꽃과 어울리다./편액명은 영조30년 1754년 60세 때 쓴 어필
- 1610년 광해군 때 건립(이 일대 건물 중 가장 오래 됨)후 숙종18년 1692년 재건
- 왕이 친림(임금이 몸소 나옴)해 식년시 전시문무과 시험과 특별시인 알성시 등 조선후기 대표적인 과거시험장소 (차일치고 300명 응시)/춘당대시/정조의 영화시사(춘당대에서 과거시험 보는 선비들을 노래한 것)
- 이외에 영화당 앞마당 춘당대는 1. 왕과 왕실,신하들의 연회와 휴식공간, 2. 임금, 신하, 병사들의 말타기, 활쏘기 연습장소. 3. 망배례(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 또는 연고가 있는 쪽을 향해 절하는 례-명(1368-1644)태조(주원장),신종(주익균),의종(주유검) 등에 대한 사대주의 례), 4. 기우제 등 국가의 공식, 비공식 행사를 치르는 야외 공간/호위는 북영(훈련도감) 군사들이 함.
- 고대소설 춘향전의 남자 주인공이 누구죠? 이몽룡 장원급제 장소,그때 시제가 춘당춘색고금동(春塘못당春色古옛고今이제금同) :직역 춘당의 봄기운과 색깔이 예나 지금이나 같다. 의역 "임금의 은혜가 예나 지금이나 같다."
* 시험 전날 밤 꿈에 도사(道士)가 몽룡에게 현몽(現나타날현夢꿈몽)히여 춘당춘색고금동 이라 해,기이 여겼는데 다음 날 시험장 시제가 동일 해,장원급제 했다는 꿈같은 이야기가 전함.
- 춘당대(춘당대)시 장원급제한 대표적인 인물로 다산 정약용(2등)/남양주 조안면, 초정 박제가(1794년,북학의)
- 경복궁에 경회루 같은 서총대(춘당대)를 연산군 1505년 짓다 중종반정(1506년 9월 2일)으로 완공하지 못함.
- 궁궐지(숙종, 고종 1907년,궁궐의 명칭, 위치, 연혁 등을 적은 책) 선조, 효종(춘덩대만궐래), 현종, 숙종의 편액 걸려 있다고 전하나 현재 무. 선효현숙편
- 영화당 담장 회문,구름문양(신선들이 사는곳),용.박쥐(복,벽사,다산) 기와/영춘문 담벼락모양-콩떡 담벼락
- 정조 활쏘기(문무에 탁월) : 50발 중 49발 명중. 일부러 한발은 맞추지 않음.
- 서총대(瑞상서로울서蔥파총臺돈대대) : 연산군12년 1505년, 석대와 정자를 짓다 중종반정(1506년 9월 2일)으로 완공하지 X, 높이 2.7m(10척), 1000명이 앉을 수 있는 정자, 돌난간(용조각), 감독관 100명, 인부 수만명, 연못에 배를 띄움.
* 영조(1724,4.8~1776,3.10.21대)/51년 7개월 재위, 부인 6명, 자녀 2남 7녀, 원릉(구리)/정비 정성왕후 서씨,자식無/계비 정순왕후 경주김씨, 노론벽파, 순원왕후(노론시파, 안동김씨) 간택,자식無, 순종때 수렴청정/연호궁 정빈이씨,효장세자(진종, 1728,死),화순옹주/선희궁 영빈이씨,노론벽파,사도세자 1남(장조,이선,영조38년 1762,5,21 임오화변으로 28살 창경궁 선인문앞 ,子 정조가 효장세자 아들로 입적 22대 임금으로 즉위,화평.화협,화완옹주3녀, 1764, 9, 69세死, 서오릉 수경원, 정자각, 비각 연세대내/귀인 조씨,화유옹주/숙의 문씨(폐출 됨),화령,화길옹주 2녀.
사도세자(이선,장조,장헌세자,남인.소론)는 정순왕후와 숙의문씨 등과 사이 안 좋음.
* 춘당대(서총대) : 성종 때 한 줄기에 아홉개의 가지가 달린 상서로운 파가 자라났다 해 붙인 이름.
5. 애련(연꽃을 사랑하다)지 일원/숙종18년 1692년(1674~1720) 군자의 성품을 닮은 경치에 숙종과 장희빈의 사랑이야기가 서린 상림10경 중 한곳/인경왕후 김씨(김만기 딸,서인,숙종6년1680,20살死,익릉),인현왕후 민씨(명릉,서오릉,민유중딸,1701,8,14일 35세死,서인),인원왕후 김씨(1687-1757, 명릉,경주김씨,김주신,노론벽파)/(희빈장씨(22살 입궁,장렬왕후 조씨 1688년 소개,1701,10.43세死,1688 경종出, 경종13세),숙빈최씨(연잉군,육상궁,서인,평민出),명빈박씨(연령군)
가. 불로문(숙종18,1692년,不老門, 늙지 않는 문, 임금의 불로장생,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문) : 하나의 화강암 통돌을 깎아 세운 문, 홈을 팠던 흔적은 예전 문을 달았던 것. 지금은 메워 짐. 임금 평균수명 47.3세. 왕비 49,5세. 임금 단명이유(과로로 인한 스트레스와 운동부족), 한번 통과시 60년 수명연장(1갑자).경서체(유교경전을 찍어냈다 해 경서체임(선조 때)
나. 애련정(愛蓮연밥련亭정자정)/숙종18년 1692년건립. 편액명은 숙종이 이름 붙였는데 송나라 주돈이 애련설에서 인용.
- 이름지은 이유 :숙종은 “애련정기”에서 “연꽃은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끗하여,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 밝힘.
- 원래는 연못 한가운데 섬을 만들고 정자를 세웠다 하나, 현재는 섬이 없고 정자는 연못 끝에 걸쳐 있으며, 숙종과 장희빈의 사랑이야기가 서려있는 아름다운 정자.지중축도(地中築쌓을축島섬도)
-기둥위쪽과 창방 아래 아름다운 낙양(각)장식이 있고,낙양(파련각의 장식물)은 액자기능, 문양은 당초문(넝쿨)
다. 애련지(愛蓮연밥련池못지)/숙종18년 1692년 만듬, 숙종(서오릉내 명릉, 고양 용두동)이 이름 붙임.연꽃이 불교 상징 해 연꽃 제거 : 0모 대통령,0모 대통령 기독교인, 각료 한분 연꽃은 불교 상징한다 하자 제거. 하나 연꽃은 유교는 청빈,불교는 윤회(극락),도교에선 신령시런 꽃(팔선녀 중 하선고가 지닌고 다님)을 상징/수련 식재/토종 연꽃은 홍릉에
라. 어수당(광해군때 건립) –봉림대군(효종)이 송시열과 북벌정책 논의/신하. 학자들과 학문논의.대접. 애련지와 작은 못(長方池) 사이 有
마. 금마문 : 의두합 정문, 한나라 미앙궁에 있던 문 중 하나로 문옆에 금(金)으로 만든 말(馬)이 세워져 있어 붙은 이름 , 금마 " 책 의미", 안에 왕세자가 있음을 상징. 순종때 차가 통행할 수 있게 만듬. 문지방 없어짐.
바. 의두합(倚기댈의,의지할의,斗북두성,閤쪽문합)
숙종 18년 1692년 이안(移安齋)재(신주,어진 모심) 자리에 효명세자가 1827년 재건,
의두합은 효명세자가 규장각에 등을 기대는 북향집으로 지었고
효명세자 대리청정(헌종때 익종,고종때 문조로 추존 정전에 모셔짐)당시 공부방으로 책 수만권보관/의두합십경시傳
"의두"는 북두(칠)성에 기대어 번성하고 화려한(경화京華-번화(번성하고 화려한)한 서울)한양(서울)을 바라보다/고종때 "동국여지비고
- 의두합 마루 상단에 아무 거리낌없이 유유자적하며 즐겁게 지낸다"라는 기오헌(奇부칠기傲거만할오,軒추녀헌/거(오)만한 기개를 맡긴다) 현판이 걸림/원래는 의두합으로 현재는 기오헌(마루부분만 지칭)으로 부름.
- 의두합은 할아버지 정조를 닮으려는 효명세자(11세 즉위, 논어 떼고 맹자학습)의 개혁정치 꿈이 서린곳
* 기오헌 의미 : 거침없이 호방한 마음을 기탁한다.
* 효명세자(이영,1809,8.9-1830.5,6.21세 死) : 정조 다음으로 조선후기 개혁정치, 노론벽파 혁파, 실추된 왕권회복 위해 노력, 문예 부흥노력, 궁중음악(영지, 온화무, 정재무,춘앵무)정리, 각혈로 21세(22)로 단명(대조전 출, 희정당 망)/대리청정(19세,1827.2~1830,5/헌종 7세(8살) 즉위(1834~1849,6,6, 중희당 죽음)/영온정춘/수릉(경기 구리시 동구릉,신정왕후와 합장릉,24대 헌종의 父)/동구릉-도성 동쪽에 9개 무덤(건원릉,현,혜,목,숭,원,경,수릉)
* 순조 11세 즉위(인릉) : 안동김씨 세도정치 60년(권력집중, 민란초래), 노론 시파에 시달림, 순원왕후(인릉,순조계비) 김씨(김조순,안동김씨), 풍양(현 양주)조씨(신정왕후 조씨,82세死 조만영, 철.고종때 수령청정)/붕당정치(호평 : 세력 균형) : 동서남북인,노소론/조선 비운의 세자들(소현세자(이왕,1612~1645,4,26 창경궁 환경전 급死,34세,삼배구고두례),사도세자(이선,장헌세자, 장조,1635~1762,5,21 임오화변 死, 창경궁 선인문,28살),효명세자(이영,1809,8.9~1830.5.6 각혈로 희정당死,22살,효명은 효성스럽고 명민하다는 뜻. 문학.에술적 능력 탁월)
사. 운경거(韻운치운磬경쇠경,居살.있을거) :“시(詩시시)와 음악(音소리음樂)이 있는 집“. 정면 1칸반, 측면 1칸짜리 백골(白骨,단청을 하지 않은 집)집,반은 온돌, 반른 마루. 궐내에서 제일작은 팔작지붕 건물. 마루밑에 5개 구멍 나있고 책과 악기보관, 궁중제례악 정리 등 공간. -효명세자가 독서,음악을 즐기며 휴식을 취한 공간.
6. 뽕나무 : 400년 천연기념물/조선 농상(農농사농,桑뽕나무상)장려. 농은 농사, 상은 뽕나무상, 누에 친잠례親蠶누에잠禮예절례,왕비),후원을 비롯 전각(대궐전,집각) 도처에 뽕나무 있었는데 세종1423년에는 창덕 1000그루, 현재100그루, 조선은 누에를 쳐서 비단을 짜는 것을 매우 중요시/친경례(親친할친,耕밭갈경禮예절례,왕)/商헤아릴상/경북 3590그루
7. 관람지(觀볼관纜닻줄람池연못지,반도지)/고종(관람지,관람정), 순조(폄우사,승재정), 인조(존덕정)때 건립
- 관람의 의미 “닻줄(배를 돌에 메는 줄로, 정박하는 것)을 내려 놓고 경치를 감상하다.”
- 장방형(직사각형) 연못 2개와 원형 연못 1개 연못(반도지)가 있었으나, 고종21년 1884년 연회를 하려고 하나로 만든 이래 곡선형 한반도형 모양으로 변함. 반도지(관람정앞 연못)명칭도 관람지로/존덕정 앞은 반월지(半절반반月池연못지)
- 물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역행적 구조의 연못.
가. 관람정(궁궐지에는 선자정,扇부채선子亭, 1884년,고종 추정) :부채꼴형 정자로 합죽선을 편 듯한 모양, 관람정 편액이 나뭇잎 모양(파초). 부채선,부채자, 여섯개 기둥, 장마루(송판이 길게 느러진 판,일본양식), 평난간(무늬가 없는), 낙양장식, 청나라풍 정자.
나. 폄우사(돌침폄,愚어리석을우,榭정자사,1827년) : 편액(건물 이름)명 폄우는 “어리석은 자에게 돌침을 놓는다”(어리석음을 고치다), “임금이 자신을 되돌아 봐 어리석음을 깨우쳐 덕을 높이라.” 는 뜻. 마루방과 온돌방, 효명세자 독서, 공부공간(서재)/ 정조의 폄우사 사영시, 효명세자 시
다. 승재정(勝이길승,在있을재,亭정자정): 경치가 빼어나다/효명세자와 관련있는 청나라풍 정자,단청有
- 1820년 초정(초가 지붕, 풀이나 갈대로 지붕을 인 정자)/1820년 이후 전각 세워짐. 1830년 동궐도에 보이지 않음. 궁궐지 1907년에 보임. 농수정(연경당, 단청 無)과 비슷한 청나라풍 정자
* 궁궐지 : 숙종,고종(1907)년 편찬(전5권) -조선 궁궐에 전각 명칭, 위치, 연혁 등을 적은 책.2권이 창덕궁
라. 존덕정(尊높을존,德큰덕,亭정자정)/인조22,1644년 현종 귀국하던 해 건립, 육우,육면정-존덕정으로/만주족 건축양식
- 1636년 병자호란때 청에 볼모로 잡혀 같다가 온 봉림대군(효종,1649,8년 억류)이 심양의 고궁 대정전(1625년,대정전 겹처마)을 보고 온뒤 건립
- 봉림대군이 인상적으로 봄. 인조 그대로 반영 건립/소현세자(이왕,1612~1645,2,18일 귀국, 9년간 선양억류(1637,2~1645,2,18) 4월 26일 2달만에 죽음, 인조 병문안 위해 40,44년 국내 다녀감.심양관, 44년 북경체류시 독일 선교사 아담샬(천문학자)과 교류-천구의,천문서,천주상 선물받음,서학보급에 애착, 묘는 고양 소경원, 부인과 두아들 제주 유배후 인조에게 죽음당함, 소현세자 조선과 청간 외교창구 역할.
- 겹처마, 이중마루(안마루-우물마루, 평난간, 바깥마루–장마루(일본양식), 亞자 난간), 24개 기둥.
- 우물반자 보개천정 중앙에 쌍룡(황룡과 청룡)이 여의주(용 턱밑에 있는 영묘한 구슬)를 희롱하는 그림-왕권의 지엄함 상징/청태조(1,누르하치),태종(2,홍타이지),세조(3대 북경으로 수도 이전, 순치제)
- 존덕정 현판 글씨 : 현종이 씀(현종 심양에서 출생, 존덕정 지은 해 1644년 귀국. 명(1368-1644))
- 존덕정 창방에 게판(54 줄)/정조 말년 1798년 12월 3일 쓴 만천(백성)명월(정조)주인옹(정조 호)자서 : “ 모든 하천에 달이 뜨지만, 하늘에 있는 떠있는 달은 하나이고, 그 달이 나(정조)니까, 왕권은 지엄(엄)하다.”는 것.
*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어르신네옹自序차례서, 만천명월주인이 쓴 글) :만천(백성),명월(정조)/정조22년 1798,12.3/정조 호/만개 개울에 비친 밝은 달/애민사상
- 모든 하천에 비치는 달의 주인이, 바로 자신(정조)이다. -민본정신, 자부심이 넘침.
- 백성을 만천에 비유하고, 자신은 그 위에서 만천을 비추는 명월로 생각.
- 모든 하천을 비추는 밝은 달빛(명월)은, 바로 군주(정조)다.
- 일영대 : 해시계를 받쳤던 것(존덕정 바로 석교 옆)/왕자 걸음 시범/은행나무 250년(공자가 행단(杏살구나무단壇제터단, 은행나무가 있는 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고사)/석교 : 홍예교, 동자주 연봉
마. 취규정(聚모일취,奎별이름규,亭정자정.인조18년 1640년) : 임금과 신하(규장각 학자)들의 휴식과 독서공간
취규는 “별들이 규성으로 모여들다. "학자,인재들이 모여 들어 천하,나라가 태평해짐"
규성(수)은 28개 별자리 중 문장관장 별. 초익공,홑처마,팔작지붕,우물마루,우물천장
* 상수리나무 : 임란때 의주로(1592,4,30) 피난한 선조가 입맛을 잃었는데, 도토리묵을 먹어보고 반한데서 유래. 이후 상시 수라상에 올랐다 해, "상수라"로 부르다, 나중에 "상수리"가 되었다고 한다.
떡갈나무는 떡갈나무잎으로 떡을 싸 먹어서/신갈나무는 신갈나무 잎으로 짚신바닥을 깔아서.
* 임진왜란(1592,4.3) : 부산 동래성(송상현),부산진(정발)/숭례문(가토 기요마사), 흥인지문(고니시 유키나가)
동상진정해 승가 흥~고
* 인절미 : 인조가 병자호란(1636)으로 남한산성에 들어갔고, 세상이 혼탁하고 어지러워 입맛을 잃었는데, 하루는 인절미를 먹고 압맛을 찾았으며,그 이후 절미(임서방 만든 자른 떡)로다 절미로다 하며 계속 즐겨 먹었다. 하루는 이 떡을 만든이가 누군지 묻길래, 임서방이 만들었다 고하니, 이를 임절미 임절미라 부르다, 인절미가 되었다 함.
이행리/이춘/이자춘/이단(이성계)
* 활쏘기에 능한 조선 임금들 : 태조 대대로 무인집안 신궁, 세조는 태조의 환생이란 말을, 영조는 고희가 넘었는 데도 과녘 중앙을 명중시킴, 정조는 50발 중 마지막 한발을 "넘치느니 부족함이 났다" 며 일부러 한발을 빗나가게 쏨(정조실록)
* 임금의 하루 : 4~5시 기상(축인시)-타락죽(송아지젖+쌀미음)- 상참(5시,매일) or 조참 4회(6시, 5,11,21,25일)-10시 15분 아침식사(미음)-경연,국사처리-4시15분 율무밥 식사-경연,국사처리-7시40분 콩밥 저녁식사 -경연,국사처리-보통은 11시 취침 - 12시 40분 백반에 미역국 식사
* 정조의 효심 : 정조는 재위(1776,3,10~1800,6,28) 24년동안 궁밖 나들이 66회 증 수원 화성 행차 13회(연 2.75회)(1년전부터 농산정에서 준비, 홍씨가 멀미가 심해 가마메는 연습). 화성능행반차도(원(현륭원, 융릉)행을묘정리(정리자)의궤, 당시 기록화의 백미), 1795년 윤 2월 9~16일 8일간, 1795년은 1. 정조 재워 20년, 2. 사도세자, 3. 혜경궁 홍씨 회갑이 겹친 해로 화성 행차를 했는데(창덕궁~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봉수당에서 1차, 부용정에서 2차, 창경궁 명정전(정전)에서 3차 등 회갑연, 가는 길마다 어머니 뒤에서 말타고 호위, 노량진 용양봉저정 휴식, 시흥행궁 1박, 의왕 사근참 행궁 휴식,수원화성 화서문해서 1박 2일 중 가는 곳 마다 먼저 가서 쉴자리, 음식 맛보고 어머니에게 대접 함. 수원화성 봉수당(회갑연, 정조침전), 장락당(혜경궁 홍씨 침전), 현륭원(융릉) 사도세자 참배, 청계천 능행행차도200m.
- 인정(밤10시,28번 타종-28개 별자리에게 주무시겠다 알림)/파루(새벽4시,33번 타종-33개 부처에게 하루를 편하게 살게 해달라 告)
- 임오화변 영조38년 1762년 윤5월13일 사도세자 뒤주에 갇혀 9일만인 21일死(28살,정조11세), 화성 현륭원(융릉)에 묻힘/나경원의 고변(1762, 5,22)
8. 옥류천영역/인조14년 1636년 가을 조성, 1636년 음11월에 병자호란 發/내원상화계축쟁재축
임금의 휴식공간이자 신하들과 유상곡수연 등 연회(소요암은 인조1636년 병자호란 직전 가을에 조성한 곳으로, 어느 한곳에 집중되지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정원)
가. 취한정(翠푸를취寒찰한亭정자정, 추위를 견디고 푸르름을 유지하는 정자)/소나무 숲이 울창해 여름에도 한기가 도는 정도로, 경치가 좋고 아름답다/숙종46년 1720년 이전 건립/숙종이 취한정의 아름다움을 읊은 어제(임금의 글)취한정제(제목제)영(읊을영)시 전함.
- 원래는 마루바닥에 방이 있었으나 현재는 무, 개방된 형태. 홑처마 팔작지붕
- 용도 :왕이 옥류천 우물에서 약수를 마시고 돌아갈때 쉬었다가는 용도(독서,휴식)로 지어진 소박한정자
나. 농산정(籠/대그릇농,山,亭) : 농이 짙은 푸르름(숲,산)으로 둘러 쌓여있는 정자로 인조 14년 1636년 건립.
- 정조 농산정에서 4번 재숙(정조16년.20년 1792,1796년 3월 18일)
- 정조 1796년 3월 19일 명 마지막황제 의종(주유검) 기신제(능에서 제사) 지냄. 신종(임란 원병파견,주익균)
- 1. 화성행차 준비, 2. 순조 음관(남행관)의 학문 시험장소, 3. 혜경궁 홍씨 회갑기념 화성행차 가마메는 연습 후 가마꾼들에게 수라간 생과방에서 과일,음료,떡 등 대접, 온돌방.부엌이 있어 양측에 방화벽,굴뚝 有, 순조,효명세자 시 전함.
- 내원상화갱재축(內苑나라동산원賞상줄상花賡이을갱載실을재軸굴대축,정조1792 임자년3월21일 택수재,농산정/계축년 1793,3,20, 옥류천 소요암)- 정조가 규장각 각신들과 술잔을 주고 받으며 나눈 시문을 모은 두루마리(꽃구경,낚시,술잔을 띄워 놓고 시를 읊음)/초계문신(정조때 138, 헌종1846,7년 56명):정약용,정약전,김조순,홍석주,김재찬,채홍원 등
- 내원상화임자 갱재축(신하 27명과 농산정,택수재에서 시를 읊음, 오제순 등), 내원상화계축 갱재축(소요암, 40여명 시를 읊음, 정미시, 서정수 등)
다. 태극정(太클태,極다할극,亭정자정,인조14년 1636년)/운영정(雲구름운影그림자영亭)-태극정/사방에 문이 달려 있었으나 현재는 無, 평난간, 절병통/태극정 앞 작은 연못 有(태극정 지당)/운태
- 숙종의 상림3정기에서 태극정 경치 평하길 “곁에는 못을 파서 물을 대고, 돌을 뚫어 천류(川流, 흐르는 물,물길)를 끌어 들였는데, 규모는 크지도 사치스럽지도 않으나, 경관은 쇄려(맑고 아름답다)하다”고 극찬/ 태극(太極) : 하늘과 땅이 나눠지기 전의 세상, 만물의 원시상태. 정조의 태극정시/灑깨끗할쇄,麗아름다울려
라. 청의정(淸맑을청,義옳을의,亭정자정,인조14년 1636년, 맑은 잔물결)/어정 고종 때 만듬/작은 연못 有.
청의는 “맑은 물결, 물이 맑다”는 뜻. 주자의 시 “맑은 물결을 감상하는 정자”에서 인용
- 1. 장방(직사각)형 논 가운데 초정 설치, 천원지방 사상(초정은 원형, 논은 네모짐)
- 2. 궁궐에서 유일한 초가지붕/팔각(지)의 초가지붕 정자/천지인 3요소 구비 :원형지붕(천),팔각(지),방형(인)
- 3. 1830년대 동궐도에 16채의 초가와 연못 보임/* 친경례(親耕밭갈경 禮,임금) : 백성들에게 농사 권장하는 례
4. 창경궁 춘당지 11개 내농포와 정자 앞에 논 조성 : 임금이 직접 벼 이앙, 수확 후, 볏짚으로 지붕 이엉 함 :1. 농사의 소중함을 백성들에게 일깨워 주는 것과 2. 한해 농사의 풍,흉년을 가늠 해 보는 목적 등
- 상림삼정(제왕(황제와 임금)의 숲에 정자 3개) : 청의정, 태극정(운영정), 소요정(탄서정)
- 정조 시 2편과 선조 어필(현판)이 있었다 하나 不傳/ 천장 중앙 연화문양, 초석에 파련의 화려한 연화문양
마.소요정(逍거닐소遙멀요亭정자정, 인조14년 1636년) : 탄서정에서 소요정/임금이 신하들과 연회 및 휴식공간
소요는 "천천히 자유롭게 거닐다“,"구속없이 천천히 노니다.”,임금이 국사를 다 잊고 천천히 거닐며 해방된다."
- 탄서정(歎읊을탄逝갈서) : 물처럼 세월이 빠르게 흘러감을 탄식하다/숙종의 “소요관천”, 정조의 “소요정과 소요정유상”, “소요정기“, 순조의 “소요관천(신하들과 연회내용 적은 글)” 등 소요정의 경치를 읊은 시 남김/탄소
바. 옥류(옥처럼 맑은 물)천 소요암(위이암) 주변/인조14년 1636년 가을 조성
- 임금이 신하들과 유상곡수연 등 각종 연회와 휴식을 취한 공간.
- 고종이 이등방문 초정(1906-7년, 65,66세), 연회 베푼 장소/이등방문(1906,3.3~1909,6,14/1909,10,26,하얼빈 死, 안중근)
- 소요암에 새겨진 “옥류천” 글씨 : 인조의 친필.
- 유상곡수연 : 상류층의 유희로, 흐르는 물위에, 술잔을 띄워 시를 짓는 것, 벌주 : 잔이 앞에 올 때 까지 짓지 못하면 한 잔 더 마심.
- 계곡 석교아래 바닥에 태극무늬, 옆에 주목(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나무, 겉과 속이 모두 붉어 "벽사"의 나무. 목재가 잘썩지 않아 "관", "활" 만드는 재로로 사용)(택솔성분 - 항암치료제, 당뇨,막걸리 담글때
- 위이암 : 강세황의 "호가유금원기" (扈뛰따를호駕멍에가遊놀유禁금할금苑나라동산원記기록할기, 정조5년1781년 9월 3일) : 정조가 가마를 타고 신하들에게 후원해설한 내용을 표함 강세황(시,서,화에 당대 최고)이 기록한 글
- 1숙종(19대,1674,8,23~1720,6.8, 숙종16년 1690)의 오언절구 어제시:옥류천 일대 아름다운 경치를 읊음
飛(날비)流(흐를류)三(석삼)百(일백백)尺(자척)/옥류천 폭포에 흩날리는 물은, 삼백척(약 80m)높이
遙(멀요)落(떨어질락)九(아홉구)天(하늘천)來(올래)/저멀리 떨어지는 물은, 구천(하늘)에서 내리네.
看(볼간)是(바를시)白(흰백)虹(무지개홍)起(일어날기)/떨어지는 물을 보니, 흰 무지개 일고
翻(날번)成(이룰성)萬(일만만)壑(골학)雷(우뢰뢰)/골짜기마다, 천둥과 번개소리 가득하네.
* 참고) 오언절구(4귀절 5글자) : 기승전결의 4구로 된 오언시/심한 과장적 표현(물줄기 삼백척, 물이 하늘에서 내린다)이 있지만 숙종의 감성(감수성 풍부), 넓고 큰기개 호연지기 표현으로 봐 주시면/골짜기마다 천둥소리 : 숙종의 장희빈에 대한 애증 표현이 아닐까나 ?/호연지기 : 출전 맹자의 상편, 거침없이 넓고 큰 기개, 넓고 큰 원기.
9. 능허정(凌능가할능虛빌허亭정자정,숙종17년 1691년)/상림(제왕의 숲)원에서 가장 높은 산정상, 울창한 나무들에 둘러 쌓여 외부와 격리된, 장식이 거의없는 사모지붕의 소박한 정자/숙종, 천성동 계곡, 백운사, 효명세자 예필
- 능허는 “허공에 오르다”로 "정신세계가 세속을 초월한다"는 뜻/능허모설 : 능허정에 해질녘 눈내리는 광경
* 산단 : 산신령에게 제사 지내는 제단이 있었고, 인조 기우제(항아리에 물과 도룡뇽 넣고 항아리를 두드리며) 지냄.
* 빙천(氷얼음빙川) : 유상곡수연 行/연경당으로 물 흘러감.왕실관련 불교,토속신앙 행함/토속신앙 행사 백운사 부군당에서/천성동계곡(맑은 물소리)
* 숙종 : 청심정(1688),능허정(1691)/희우정(1690),애련정(1692),영화당(1692),택수재(1707),취한정(1720)
10. 청심정(淸맑을청心亭)/취규정지나 좌측위치 비공개,숙종14년(1688,명예혁명) "천수정"에서 청심정으로
- 임금이 밤에 달구경도 하고 시를 지었던 정자/숙종이 사계절을 노래한 “사시제영”, 정조가 비갠 날 밝은 달을 노래한 “청심제월(淸心薺月)”, 순조가 밝은 보름달을 노래한 “청심완월(淸心玩月)”
- 석연지인 "빙옥지(氷얼름빙玉구슬옥池연못지) : “ 얼음처럼 차갑고, 맑은 물이 고인다.”는 뜻
거북이는 정자를 바라보고 들어가는 형상, 꼬리는 힘찬기상, 등에는 빙옥지라는 글자가 음각돼 있음
11. 가정당(嘉아름다울가靖꾀할정堂집당,구 수정전 터)/대조전,경훈각 뒤편에 있음/덕수궁에서 1920년 옮겨 옴/추양,천장문
- 임금 국사처리(편전), 경사시 몇몇 신하와 소연(소연회장소), 순종 병상時 쾌차기도 올림(1926년 4월,요양,25일 대조전 死).
12. 연경당(演멀리흐릴연,慶경사경,堂집당,보물 1770호) 영역/예전 진장각(역대 임금과 중국 황제의 어진을 모신 곳)" 터
- 연경은 경사스러운 것을 연출하다" 뜻/연경당 효명세자(익종)의 어진 모셔 놈.
- 예전 진장각 터에, 효명세자(1809,8~1830,5,이영)가 아버지 순조에게 진작례(진찬(進나아갈진爵벼슬작禮예절례, 왕과 왕비에게 술과 음식을 올리며 가무를 공연하던 행사(영지무, 온화무, 정재무, 춘앵무), 왕권강화책 일환)을 올리기 위해, 1828년 사대부집을 모방해 지은, 122칸의 민가형식의 집으로, 단청하지 않음. 궁가(宮家,궁궐에 버금가는 왕족의 집,운현궁)양식에 가까운 집 /영온정춘
- 주자가례에 따라 남자공간 사랑채, 여자공간 안채, 독서,서고,손님접대 공간 선향재, 외국사신 연회공간 농수정(가묘역할)
- 일반 사대부집과 다른 점 : 가묘 없고. 안방 옆 부엌없고, 반빗간이 설치 된 점.
- 고종 연간(1865) 증축, 외국공사 접견, 연희공간 등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됨, 순원왕후 김씨 탄신 40주년 진작례(내진연), 효명세자 사후(1830,5.6) 순조(1800~1834)가 말년 지냄
- 1917년 대조전 화재시 순종(이척,이강)과 순정효왕후 윤증순이 연경당 피신.
참고)- 순원왕후 김씨 : 순조 계비, 효명세자母,안동김씨,김조순,인릉,노론시파,순화궁 경빈김씨 간택, 헌.철종 때 각 7년, 3년 수렴청정, 1857년 대조전 양심합에서 死,인릉,내곡동
- 농수정(濃짙을농,繡수놓을수,亭정자정) : 가묘역할. 신주 모심. 고종,순종사진(1884년 3월 10.13 지운영.퍼시발로웰),외국사신 연회 공간(이등방문) 등
- 가묘(家廟사당묘,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사당)가 없고, 안방 옆에 부엌이 없고, 반빗간(통벽문 안, 음식준비, 빨래, 방 3개와 부엌으로 구성. 방문은 띠살문)이 설치된 점이, 일반사대부 집과 다름
- 진연(進나아갈진宴잔치연) : 조선후기 궁중잔치의 하나. 외진연은 왕의 생일, 내진연 왕비나 대비 등 내명부 축하잔치
- 궁중잔치 종류: 진작, 진찬, 진연/태(兌바꿀태), 기둥중심(內 툇마루, 外 쪽마루/장락문앞 下 연못: 장방지(長方모방池연못지)
가. 장락문(長樂門, 긴 즐거움, 장수)/솟을대문(가마.말 통행), 연경당 정문옆 풍기대/달의 정령 : 석분에 토끼와 두꺼비
- 장락(長樂)문은 "오래도록 즐거운 삶을 누리고 싶은 월계(자리를 건너 뛰어 위로 올가감)의 문" 으로, 신선처럼 아무런 근심 걱정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염원을 담은 문.
- 현판 글씨는 달나라에 신이 산다는 "장락궁(중국 서안, 시진핑 주석 고향)"에서 가져온 이름으로, 작자미상. 연경당을 신선이 사는 집으로 비유한 셈/ 신선이 사는 월궁이라, 석교를 오작교, 흐르는 물은 “은하수”로 비유, 석합 하단,윗면 네모서리에 달의 정령 토끼, 두꺼비(달나라, 신선세계) 4마리( 3마리는 들어오는 모습, 한마리는 나가는 모습)가 놓여 있음.
* 정령 :만물의 근원을 이루는 신령스러운 기운/장락문 안 左 화장실과 마굿간,右행랑은 남자들 묵던 공간
나. 장양문(長陽볕양門,사랑채 정문)과 연경당, 안채 : 오래 볕이 드는 문, 외벽는 나무판벽, 오른쪽은 사랑채(남자공간, 현판은 연경당), 좌측은 안채(수인문, 여자공간, 평대문), 남자 사랑채와 여자 안채 사이 쪽문(외부 손님이 왔을 때 신발수 손님수 확인 용도), 사랑채와 안채 구분 담장이 있고, 연경당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사랑채와 누마루는 온돌,
사랑채와 안채는 방이 내부 툇마루로 연결 되어 있음. 안채 마루방은 여름, 온돌방은 겨울
* 금(거문고 금)슬(비파슬) : 금슬이 금실로/부부간에 금실이 삐그덕 걸일때 마주보고 눈마춤을 하면 금실이 좋아짐/거문고와 비파 소리가 잘 어울림.
- 노둣돌(하마석) : 말에서 내릴 때 내딛는 돌/길상문 합각 : 수,복 문자 무늬/행랑에는 청지기 거주
- 명료대(노주석, 화광대, 정(뜰)료(횃불)대, 불우리) : 관사,사찰,서원 앞마당을 밝히던 것(등불)/솔잎, 송진
다. 선향재(善香齋, 독서의 향기, 좋은 향기, 선한 향기) : 1865년 고종건립 추정.
1. 독서, 2. 서재 겸 응접실 : 문인(손님) 접대, 3. 벽장 : 서고(서책 보관)/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 당시 고종.명성황후 잠시 피신.
- 청나라풍 전벽돌을 사용한 벽 : 온돌 사용한 함실(函함함室집실,아궁이)이 있어 좌우 전벽돌(흙을 구워 방형,직사각형으로 만든 벽돌)벽이고 벽에는 문양(테두리 회(뇌)문, 안은 연화문)전 장식.
- 서향집이라 차양을 달았는데 러시아식 동판지붕에(강릉 선교장, 여운형 동진학교 터,1900년 이근우 건립.1911년 재정난 폐교) 햇빛조절을 위해 도르래를 달아 조절/러시아 기술자가 만듬/ 청수정사( 문인들 공간)/석연지(돌로 만든 연못, 물을 넣고 연꽃키움) :사랑채 앞마당. 연꽃재배, 현재는 무. 선교장 :시인과 풍류객이 찾는곳. kbs 숨터컬렉션에서 시청
*강릉선교장의 열화당(사랑채):러시아공사관에서 선물로 동판차양 만들어줌 뒤에 합성수지 기와,현재는 동판차양으로 복원함
- 머름위에 있는 문은 창문, 머름 없는 것은 문/느티나무에 흠집 낸 부분에 돌(예전에 괴석이 세워졌고 느티나무가 자라 지금모습 유지)
* 궁궐안에 나무를 심으면 : 1. 자객이 숨어들어 경호 곤란,2. 困 곤할곤, 나라,왕조가 어려워짐. 閑 한가할한,막을한, 번성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될게 없다. 망한집.3. 나무가 바람에 넘어질 위험, 4. 집의 정기 빼앗김 등으로 심지않음.
* 마사토 : 1. 배수, 2. 도적방지, 3. 벌레방지, 4. 채광 등
라. 농수정(濃짙을농繡수놓을수亭정자정,1865년 건립추정, 단청 無) : 마치 매가 날개를 편 것 같이 날렵한 모습으로, 농수란 " 짙은 빛으로 수를 놓다." 늘 녹음에 감싸여 있는 아름다움을 빗댄 말. 계단옆 좌우에 향로 2개(가묘), 벽돌은 청풍, 가묘(민가 사당)역할. 바로 너머에 승재정 있음
- 외국사신 접대(이등방문 등), 고종21년 1884년 3월 10일,13일 순종의 열번째 생일(3월 5일)을 맞이해 지운영(지석영 형,최초의 사진사)과 미 퍼시발 로웰(명왕성 발견 천문학자, 외교관)이 농수정을 배경으로 촬영한 고종(이명복,이재황,이희)과 왕세자 순종(이척,이강) 사진첩 있음/이희공, 이강공은 경술국치 후 이왕직(1910,12.30)에서 부여한 작위명/1882년 조미수호조약 보빙사 파견 답례차원으로 옴
마. 희우정(喜기쁠희,雨비우亭정자정, 인조23년 1645년 초당으로 건립한 취향정, 뒤에 희우정) ;임금의 독서,휴식공간. 표암 강세황의 제자 김홍도(1791년)가 정조 어진 그림,동참화사(얼굴은 다른 화가(김득신)가 그림,주관화사)
- 숙종16년 1690년 가뭄(3월 말)이 심해 기우제(4월 28일)를 올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려, 가뭄이 해갈되자 이를 기념, 지붕을 기와로, 정자 이름을 희우정으로 개칭
* 강세황 : 조선후기 화가이자 평론가. 김홍도 스승, 영조의 부름 받아 61세 정계 입문. 호가유금원기, 진경산수화, 인물화,서양화법
* 동참화사(몸통그림), 주관화사(용안그림)/어진제작(도사 왕 생존시, 추사 왕사후 그림, 모사는 원본 베낌)
* 단원 김홍도 : 충북 괴산 연풍현감(종6품)/괴산 연풍면, 순조 1806년 死
13. 요금문, 경추문
가. 요금문(서정문) : 내시, 궁녀들이 병이 들거나 늙어, 내관.궁녀 생활을 마감하고 퇴궐할 때/ 갑신정변시 경우궁(1일), 계동궁(1일, 청 원새개에게 민비 군사요청)으로, 고종,명성황후 피신시/운현궁 행차시/인현왕후 폐서인 출(왕비에서 서인으로 강등,기사환국,1689,4,24 22세,남인집권,송시열 제거).입궁(갑술환국,1694,4,12 ,27세,경복당,서인집권)/김천불령산 청암(푸른바위)사 3년, 안동별궁 감고당 2년,/궁궐에 쓰일 얼음 들어오는 문(빈전 5개월 얼음과 미역 쓰임)/왕실살림을 관장하던, 궁내부대신 이왕직(이왕가 궁궐 업무일체를 관장하던 관서, 초대 민병석(경술8국적),이재극,한창수,민영기)장관 관사/사망 한달전 내보냄/시신, 무수리, 하인들 통행.
* 국상에 미역 나듯이 : 미역 빈전 습기조절/강희안,강희맹 집안 : 한강 얼음채취권 200년/동빙고(제사용,옥수동 두모포, 10,244정 저장),서빙고(왕족,양반 서빙고동 둔지산 백목동 파출소 위치, 134,974정 저장, 동빙고의 12배), 빙고에 얼음 50%+짚을 채운경우 6개월 경과해도 거의 100% 잔존, 당시 빙고는 목빙고 이었음.
* 창덕궁 내빙고 : 요금문안에 2개 有, 종5품 자문감 소속, 영조때는 종6품, 2만여정 보관, 영조 이후 좌의정 김상로의 건의로 경제성을 고려 목빙고에서 석빙고로 바뀜. 신축년 정조때부터 얼음 운반의 어려움으로 양화진 이전.
* 참고) 숙종(1674.8~1720.6) - 인현왕후 민씨(서인, 민유중 딸,1701년 8월 14,게장, 35세死,)-희빈 장씨(정옥정,대빈궁, 1701년 10월,무고의 옥 43세 사약 받고영휘당 死,인현왕후와 8살 차이. 경종 13세,)/인경황후 광산김씨(김만기 딸,20살 1680년 死,서인,익릉),인현왕후 여흥 민씨(민유중 딸,35세 死, 서인, 명릉),인원왕후 경주김씨(김주신 딸, 노론벽파,1757년, 명릉)/희빈장씨(대빈묘,경종 13),숙빈최씨(연잉군,1694,9.13),명빈박씨(연령군)
- 숙빈 최씨(무수리 출신, 육상궁, 최복순, 파주 소령원) : 밤에 궁녀들 방은 모두 불이 꺼져 있는 데 오직 방 하나만 불을 밝히고 있었고 인현왕후 민씨의 만수무강 기원 축원을 드리는 것을 마침 지나던 숙종의 눈에 띄어 숙종과 인연-보경당(후궁들 처소)에서 1694년 9월 13일 연잉군 영조 출산
- 인조(1632,3,20~1649,5월, 26년 2개월) 계비 장렬왕후(자의대비)조씨(양주(풍양) 남인출신, 자식 무) : 장옥정 궁에 22살 1685년 들임.휘릉(구리시 동구릉), 경종 1688년 10월 出, 조대비 1688년 死
- 예송논쟁과 환국정치
. 예송논쟁 : 상복을 얼마나 입느냐를 두고 서인, 남인이 대립한 사건.
* 원칙(조선시대 상례) : 상복의 규정은 죽은자와의 관계에 따라 그 기간과 종류가 구분 됨.
죽은 아들이 장남인지 아닌지에 따라 차이 有.
가. 1차 기해예송(현종 즉위년 1659년) : 서인 1년(송시열 등), 남인 3년 주장- 현종 서인 손 들어 줌.
효종이 죽자 자의대비(인조 계비, 장령왕후) 조씨가 상복 입는 기간을 놓고 서인 1년과 남인 3년이 대립한 사건으로 현종은 송시열(서인) 손을 들어 줌 -서인집권(기년복)/효종에 대한 복상문제로 서,남인 대립,서인승리
즉 효종을 장남으로 인정하는 경우 왕모의 상복은 3년, 장남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는 기년(1년)에 해담 함.
나. 2차 갑인예송(현종 15년 1674년) : 서인 9개월, 남인 1년 - 현종 남인 손 들어 줌, 남인집권
효종의 비(인선왕후)가 죽자 서인 9개월, 남인 1년 주장(대공복), 현종 남인 손 들어 줌. 남인집권.
효종을 장남으로 인정하는 경우 왕모 상복기간 1년(남인, 효종이 종통을 이었으니 인선왕후 또한 장자의 부인으로 봐야한다는 것), 인정하지 않는 경우 왕모 상복기간 9개월(대공복, 서인)
2. 환국정치
가. 경신환국(경신대출척, 숙종15년 1680년) : 2차 갑인예송으로 정권 잡았으나 경신대출척으로 남인들 실각(허적의 옥사,허견 의 기름천막도용사건 등 남인 축출) - 서인집권(김만기(김만중,사씨만정기 형)의 딸 인경왕후, 호조판서 민유중(여흥 민씨)의 딸 인현왕후)
*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1661~1680) :숙종 즉위 6년 20살에 死.광성부원군 김만기(김만중, 사씨남정기 형)의 딸/국상중에 인현왕후 입궁(간택 無)
나. 기사환국(숙종15년,1689년,기사년에 일어난 환국) : 장희빈 소생 2개월된 경종 원자정호문제 대립. 송시열(서인) 저항(이유 : 숙종에게 원자정호가 너무 이르다 상소,인현왕후 혼인한지 7년) 송시열 제주유배 후 정읍에서 사약(83세) 받음, 서인 노론축출(김수항,김수흥, 홍치상 死, 100여명(이조판서 남용익, 호조판서 유상운, 병조판서 윤지완, 공조판서 심재, 대사간 최규서 등)귀양, 삭탈관직). 인현왕후 민씨(민유중의 딸, 서인) 폐서인(왕비에서 서인으로 강등-이유 : 투기사 심하다.인현왕후 생일날 강등 됨) 돼 출궁(요금문)되어 현 풍문여고 안 안동별궁 감고당(이후 도봉구로 현재는 여주 명성왕후 생가터에 有, 숙종이 민유중을 위해 지어줌)에서 혼자 2년, 경남 김천시 증산면 불령산 청암사 보광전(극란전의 남별당, 민씨 1일 대웅전에서 1,000배)(직지사 말사) 3년 지냄. 병들림.- 남인집권(목래선 좌의정, 김덕원 우의정, 민종도, 민암, 목창명, 이의징 등)
* 원자정호문제 : 원자정호는 세자예정자를 정하는 일(왕자의 명호(이름을 내리는 것, 작위)/왕비아들은 "~대군"으로, 후궁의 아들은 "~군"으로, 보통은 5~6세 정해짐. 이균(경종)에게 원자정호 내림, 원자는 대부분 세자가 됨, 원자명호 내린지 5일만에 종묘사직(하늘과 조상에게 알림)에 고함/정호 내려진 후 대로 송시열 숙종에게 원자정호가 나무 이르다 상소 - 송시열 식틸관직하고 궁밖으로 내침(제주유배) - 남인세력(승지 이현기, 이외 윤빈, 교리 남치훈, 이익수 등) 불안 - 정읍에서 83세 사약 죽음./서인축출(송시열, 김수항, 김수흥, 홍치상 등 18명 死, 59명 귀양, 대사간 이유, 지평 원성유, 헌납 이의창, 이이명, 김만중 등 26명 삭탈관직 등 100여명 축출 됨)
* 인현왕후 민씨 폐비저지 상소 : 노론 오두인, 박태보,이세화 등 86명 - 박태보, 이세화, 오두인 등 국문 후 위리안치 혹은 귀양 보냄.1689년 5월 폐비시킴. 희빈 장씨 왕비 책봉, 이균을 원자에서 세자에 책봉 함.
* 장옥정(~1701) : 역관 장경과 종사에서 出, 5촌 당숙 장현(역관), 경신환국시 남인세력과 장렬왕후 자의대비 조씨(인조 비)의 동생 조사석(남인계열-남인지지 받음/장씨 어머니가 조사석 소개-조사석과 내연관계)과 종친인 동평군(궁중과 연결-종친들의 지지 받음- 동평군 소개자는 오빠 장희재) 선혜청 제조 "항" 도움으로 입궁 및 왕비에 책봉 됨, 1688년 10월 27일 이균(경종) 出(숙종 즉위 14년만에), 1686년 숙종의 총애 종4품 숙원, 정2품 소의, 원자정호 다음 해 경종 세자책봉 및 장씨 왕비책봉 됨.
* 청암사(靑푸를청,巖바위암寺절사, 바위에 푸른이끼 늘 낀다 해 "푸른바위"라 이름 붙임).858년 도선국사 창건 1150년 된 고찰
- 비구니 사찰 130명, 숭가대학
- 경남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불령산 자락, 직지사 말사(가람, 불교의 도를 닦는 곳)로 구한말 궁녀들이 기금조성 건립, 한말 상궁들이 찾아와 기도 드림.
- 청암사 대웅전 청기와. 이중처마, 팔작지붕, 정면 3칸, 측면 3칸, 外 금단청, 內 모로단청
- 숙종15년 1689년 5월 기사환국으로 폐서인이 된 인현왕후 3년 숨어 지낸 곳. 청암사 보광전(극락전 남별당), 대웅전에서 1일 1000배
다. 갑술환국(숙종20년, 1694년) : 남인축출, 인현왕후 민씨 환궁(요금문), 왕비로 복귀, 장옥정 왕비에서 희빈으로 강등. - 노론과 소론 집권
* 무고의 옥(신사환국, 신사대출척, 巫무당무蠱독고 獄옥옥,취선당에서 인현왕후 저주사건. 숙종27년 1701,10) : 장희빈 사약(경종13세)받고 死,장희재 처형, 허목, 윤휴, 윤선도 관직박탈 함. 무고(저주를 행한다는 뜻, 창경궁 취선당 서쪽에 신당을 차리고 인현왕후 저주하는 행위 함)
나. 경추문(秋, 서문) : 평상시 닫아 놓고, 비상시 군사동원때 개방하는 문.
다. 금호문 : 일반신하들(승정원, 홍문관 관리) 통행 문, 갑자사화(1504,3,20), 인조반정(1623,3,21), 임오군란(1882년 6월 10일), 송학선 의거(1926, 4월 28일 오후 1시 순종 인산일 문상차 방문한 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재등실,1919~1927) 칼로 찌름)시해 등이 발발한 곳/ 고급과도로 찔러 1명 死, 1명 중상/사토(좌등호차랑,일본인민회 이사), 타카야마(고산효행,국수회 부회장),이케다(지전장차랑, 경성부협의회의원) 3인 탑승 사이토(재등실) 제거 실패/1927년 5월 1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30세 死. 6,10만세운동 전주곡
라. 건무문(북장문, 광지문) : 갑신정변시(1884년 12월 7일) 개혁파가 도주한 문.
마 .영춘문 : 불로문앞, 창경궁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
바. 자시문(후원입구, 성정각 동문.명 신종,홍매화), 망춘문(朢보름망,후원입구 창경궁 가는문, 성정각 동문)
14. 천연기념물 194호 향나무 : 수령 750년, 2010년 9월 2일 콤파스 태풍, 최대풍속 40m/초당, 선원전 제례(향기가 강해서)에 쓰임. 높이 6m, 줄기 둘레 4.3m, 동서 5~6m, 남북 2~3m.1830년 동궐도에 보임, 현재 향나무는 고려의 행궁, 서원 등이 있던 자리에 있었던 약 향나무(140살)임/고려 남경(현 청와대 자리)
* 향나무의 3가지 속설 : 향기는 정신을 맑게, 뿌리는 물을 맑게, 잡귀. 액운을 물리침.
* 향나무 속설 two :향나무 750년이면 원숭이로, 1000년 되면 용이 됨/그런 연유인지 향나무가 대코 원숭이 형상으로 변함, 북쪽 죽은 나무가지, 바닥에 닿은 부분에 有
* 창덕궁 천연기념물 : 300~400년 회화나무(돈화문) 8그루, 650년 다래나무(신선원전), 400년 뽕나무(관람지)
15. 의풍각(儀거동의,豊풍년풍,閣집각,舊 경복전 영모당 터) : 재궁(장례용 관,황장목은 노란빛을 띤 양질의 소나무), 제사용품 보관/ “-” 자형 맛배지붕, 왕실창고, 재궁(梓宮, 왕실에서 미리 제작하여 준비 해 두었던 장례용 관) 등 제사용품(제사용 그릇, 도구 등) 보관.
* 재궁 : 황제, 왕, 황후, 왕비의 관으로, 2005년 7월 24일 언론 공개.이구(영친왕(이은) 둘째아들, 마지막 황태손, 일본 프린스 아카시아호텔 화장실 2005,7,16 死, 희정당 영결식 2005 7,24)장례식과 영친왕 부인 이방자(마사코) 장례식(1989, 4,30 死)에 쓰임. 재궁은 장생전에서 제작, 의풍각에 보관, 황장목 관을 수십(99번)번 옻칠 함/의친왕(이강),독립운동 대동단
이상으로 창덕궁 후원영역의 해설은 여기까지 입니다.
후원 관람은 즐거우셨는지요? 우리문화 숨결은 창덕궁을 비롯 해 경복,창경,경운,경희궁,종묘에서도 무료해설을 하고 습니다. 저희 홈페이지에 들어 오시면 해설을 예약 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궁궐길라잡이 양은석 이었습니다.
- 참고사항 정리 -
1. - 용마루 : 취두, 취미 - 새머리(독수리, 봉(암컷)황(수컷)모양/내림마루 : 용두(용 머리)
- 추녀(귀)마루 : 잡상 - 불경의 힘으로 잡귀, 액운 퇴치, 명 소설 서유기(오승은)에 등장하는 현장의 제자들/대당사부(현장), 손오공(원숭이), 저팔개(돼지),사오정(하천괴물 사자), 삼살보살, 마화상(말),이구룡(입이 2개),천산갑(포유동물의 하나), 이귀갑(허리 앞뒤로 튀어나온 짐승),나토두(작은 용,곰)/서유기(신비스럽고 괴이.상한 소설)
2. 신의왕후 한씨 : 개경 묘, 방우,방과(둘째 정종, 후릉, 개성 묘),방간,방원(태종 즉위 1400년 11월 13일, 천도 1405년 10월 11일)/신덕왕후 강씨 : 정릉,흥천사, 방번, 방석(의안대군)
1차왕자의 난(1398,8,25,무인정사) : 방원의난 - 방석, 정도전 제거/2차 왕자의 난(1400,1,28) : 방간 유배, 박포 제거.
* 조선왕릉 42기( 남한 40, 북한 2기(신의왕후 한씨(개성), 정종(방과,1398,9~1400,2))의 릉(개성)
- 개경천도 : 1399년 3월
3. 후원 정자 건립시기별 정리
- 인조 : 인조 때 정자가 많이 건립된 것은 소현세자가 북경(청 세조 북경으로 수도 이전)의 궁관제도를 보고 인조에게(1642년, 44년 국내 잠시 귀국, 1645년 2월 18일 완전 귀국 동년 4월 28일 死, 서인들에 의해 독살설) 소개 그대로 슝내 냄.
탄서정(소요정 인조14년 1636), 운영정(태극정,1636), 청의정(1636), 옥류천, 어정(고종) 등
관덕정(1642), 심추정(1643), 존덕정(인조22년 1644), 취향정(희우정, 인조23년 1645), 벽하정(청하각, 인조24년 1646), 취승정(낙민정, 1647), 관풍정(인조 25년 ,1647)
- 숙종
청심정(천수정, 숙종14, 1688), 희우정(숙종16, 1690), 능허정(숙종17, 1691), 애련정(숙종18 1692). 영화당(숙종18,1692), 대보단(숙종30, 1704), 척뇌당(숙종33 1707), 택수재(숙33 1707), 취한정(숙종 46년 1720)
- 정조 : 규장각(1776), 부용정(1792), 봉모당(열무당터에 건립, 임금 글씨 보관)
- 순조 : 의두합, 운경거(순조27,1827), 연경당(1828, 진경각터), 승재정(1820년) 폄우사(순조 1820)
- 고종 : 관람정(고종11,1884), 관람지
4. 영조(1704년 4월 8일 ~ 1776년 3월 10일) : 51년 7개월 재위. 부인 6명, 자녀 2남 7녀
정성황후 서씨, 정순왕후 경주김씨(노론벽파)/정빈 이씨(1남 1녀, 진종-효장세자), 영빈 이씨(장조-사도세자, 선희궁, 노론 벽파, 1남 3녀), 귀인 조씨, 숙의 문씨.
5. 후궁들 직위 : 빈(정1품)-귀인(종1품)-소의(정2품)-숙의(종2품)-소용(정3품)-숙용(종3품)-소원(정4품)-숙원(종4품)-상궁(정5품)- 종5품(상복,상식)
6. 순원왕후 안동김씨(노론시파)-효명세자(1809~1830)-24대 헌종(8세 즉위)
순조 계비(1800~1834)신정왕후 풍양조씨,효현왕후-효정(명현)왕후 남양홍씨-경빈 김씨,숙의 김씨(딸1),정빈윤씨
7. 조선 왕릉 42기 : 남한 40기, 북한 개성에 2기(신의왕후 한씨묘, 정종(방과) 후릉)
- 정종 : 1398, 9 ~ 14002, 개경천도 1399년 3월
8. 1406년 북쪽에 인소전(仁昭殿)-1408년 문소전 개칭(태조와 신의왕후 한씨 신주 모심, 태조 1408년 창덕궁 별전 死)
세조5년 1405년 영무정(부용지 부근)-세조13 1467년 신모정(新茅亭)-세조14 1468년 무일정(武逸亭) 연산군 1504년 성균관으로 이전
9. 석빙고에 얼음 보관시 잔존기간에 대한 실험 : 충남 장동순 환경공확과 교수
가. 얼음 100% 채운 후 6개월 경과 : 얼음량 48.2% 잔존.
나. 얼음 100% + 짚을 채운 후 6개월 경과 : 얼음량 81.6% 잔존.
다. 얼음 50% 채운 후 6개월 경과 : 얼음량 61.5% 잔존 .
라. 얼음 50% + 짚을 채운 후 6개월 경과 : 얼름량 99.6% 잔존.
* 당시 이촌에 있던 것은 목(나무)빙고로 현존 하지 않음. 석빙고로 남아 있는 것은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 석빙고가 있음. 경주 이외에 안동, 청도, 창녕에 석빙고 有. 이곳에 있는 이유는 특산물 진상(낙동강 은어 등)
* 동빙고(제사용). 서빙고(왕족/양반)
10. 창덕궁 몽답정(영조때 훈장 김성응이 지은 정자, 夢꿈몽踏밟을답,亭정자정) : 신선원전 훈련도감 북영안에 있는 정자로 앞에 장방지 有. 영조가 대보단(황단)에 올라 이를 보고 몽답정이라 이름 지어 현판을 걸음. 현재는 모답정이 바위에 사가으로 새겨져 있음.
- 괘궁정(掛걸괘弓활궁,亭정자정, 1849년) : 훈련도감 북영 군사들이 활을 쏘던 터에 세워져 정자 이름이 괘궁정. 창덕궁 신선원 옆 정자 북영(北營경영할영) : 훈련도감 본영(훈련도감 사령부 235칸) - 창덕궁 경비부대 : 경기 속오군 중 건장한 군사를 선발 겨울철 3개월간 북영에서 경비 근무.
11. 신선원전
신 선원전 | ||||||||
괘궁정 | ||||||||
잔 디 밭 | ||||||||
의효전(순명효황후민씨) | ||||||||
몽답정 | ||||||||
바위에 몽답정 새김 | ||||||||
12. 대보단(大報갚을보壇제터단, 황단) : 숙종 30년 1704 12월 21일 설립(1704,10,3~12월 21일), 임란 때 원병을 보내 준 명 신종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만듬. 650년 된 천연기념물 다래나무 좌측 터(대보단 터 표지판에서 바라볼 때 좌측).
- 요금문 위 별대영 터에 위치
- 처음에는 매년 1회 명나라가 멸망한 3월에 제사 지냄.
- 영조 25년 1749년 보수 후 명태조(서달), 명신종(이여송), 명의종(범경문)도 제사 지냄 : 왕의 기일(죽은날, 기신제), 즉위 일에도 망배례(창덕궁 정전, 경희궁 숭정전, 창덕궁 춘당대 등) 지냄 (망배례 참여 인원 정조 20년 156명, 정조 24년 239명)
- 제사 시 장단 세우고, 황색 지붕에 삼면에 장막을 친 휘 황방장을 만들어 신탑과 신좌를 두고 의식 진행.
- 사직단 모방, 다능 두른 낮은 담장인 유와 담장 장을 만듬.
- 사직단 보다 1단 높은 4척, 사방 넓이 25척, 사면 계단 9급, 유장은 사면이 37척, 외장을 쌓아 행인들이 들여다 보는 것을 막음.
- 영조때 보수시(영조 25년 1749년) 바깥 담장 동쪽에 신좌 신탑 보관 봉실 3칸과 재계 장소인 재전 3칸.
담장 밖 남서쪽에 향실, 전사청 5칸, 재생청 2칸, 악생청 45칸, 남쪽 담장에 중문 열전문, 외곽문인 공복문 설치 함.
- 대보단 설립의 의의 : 종묘 훼손을 막고 청의 간섭 예방 - 중화(中和)의 계승보다 왕의 권위 강조 수단으로 활용.
13. 훈련도감(훈국) : 선조 26년 1593년 설치. 초기에는 임시기구로 후에는 상설기구화.
설치와 동시에 재정관서인 양향청 설치. 주요 업무로는 의복, 무기, 비품 등 물자조달과 급료 지급, 살림살이 등.
- 초기 : 포수(砲돌쇠뇌포手손수)로만 구성(일본군의 조총 위력확인 후 포수양성 필요성으로 설치)
- 명나라 척게광의 기효신서(병서)의 삼수시법을 바탕으로 포(砲,돌쇠뇌포)),살(殺죽일살),사(射쏠사)수의 삼수군으로 편성.
- 훈련도감의 조직 : 본영, 서(西)영, 남(南)영, 북(北)영, 하도감(下都도읍도監살필감, 흥인지문(동대문)과 광희문(동소문)) 사이 훈련원 동쪽에 390칸 건물, 염초(함초)청.
14. 연경당 선향재 동판지붕) : 우리나라에 2개 有.
- 강릉 선교장 : 강을시 운정동, 몽양 여운형 동진학교 터. 영조 1703년 효령대군 후손 이내번이 건립.러시아 기술자가 만듬. 용비어천가, 고려시 등, 책, 그림, 글을 소장. 초당의숙(강릉시 초당리) :여운형 영어교사
- 사랑채 열화당 : 이근우 건립.
15. 절병통(節마디절甁항아리병桶통통) : 대궐집(전각)이나 육모.팔모정자 등의 지불마루 가운데에 올리는 항아리, 탑모양의 장식 기와. 절병통 하단 좌대, 석재 절병통, 나비문양/암기와 (넙직한 직사각형), 수키와(필통모양 긴 직사각형), 수막새에는 박쥐문양, 암가새에는 수자문양
예)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 창덕궁 부용정, 상량정 등
16. * 베흘림 : 항아리모양, 위.아래로 갈수록 좁아짐.
* 민흘림 : 사다리꼴모양, 장방형(사각) 기둥에서 아래로 갈수록 넓어짐
17. 명소설 서유기(西遊놀유記)/오승은
- 명나라 소설로 신비스럽고 괴이, 괴상한 소설
- 저자 : 오승은(吳承恩)
- 주인 : 현장 삼장과 현장의 종자 손오공
- 손오공 : 돌에서 태어남
도술을 부려 천제의 궁전을 발칵 뒤집은 죄로 500년 동안 오행산(五行山)에 갇혀 있었는데 삼장법사가 지나다 구출해 줌.
- 저팔계 : 돼지, 머리가 단순하고 낙천적.
- 사오정 : 하천의 괴물로 사자
- 현장의 제자들은 모두 요괴들이 방해를 하늘을 날고 물속에 잠기는 갖가지 비술로 극복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 해 그 공적으로 부처가 된다는 내용의 소설
- 서유기는 7c 현장법사가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북인도 대승(大乘탈승)불전을 구하고 돌아온 고난의 사실에 입각 함.
- " 대당삼장법사취경기 "는 당나라 설화 - 송나라 때 허구요소 + 신괴한 요소 + 낭만적.환상적 분위 요소 + 삼장법사의 제자들.
- 오승은 "대당삼장법사취경기" 토대로 확대생산 해 서유기(현실세계의 추악한 면과 통치게급의 타락상을 반영한 해학, 풍자, 유머러스, 윤회의 인과응보 사상, 불로장생의 신선사상 등) 완성.
서유기 3구성 : 손오공의 내력/현장법사가 불전을 구하러 가는 일/81난(難)을 만나는 과정.
18. 창경궁 시민(백성이 이익되게 하는 집)당 : 세자 침전, 조선후기 세자의 수조(세자가 신하들의 조하를 받던 곳)당
- 세자 대리청정 및 정무를 보던 곳.
- 공궁의 세자궁 역할 : 경복궁 중건(1868) 시기 = 계조당, 자선당, 비현각
19. 사도세자(1735~1762,5,21,임오화변, 28살) : 창경궁 선인문, 27세 死
사도(思생각할사,悼슬플.설워할도, 생각하니 슬프다)세자(영조가 시호 내림), 장헌세자(정조가 시호 내림0, 장조, 이선, 현륭원(율릉), 영조 42세 때 낳음, 소론게 당론서인 "현기고"에 사도세자 정신병(우대,우울증) 언급. "대천록"에는 사도세자가 중관, 내인, 노속 등 100여명 죽인 사실 기술, 나경언(궁중 별감 출신)의 사도세자 비방 10조목(고변)(1762년 5월 22일)
20. 조선의 폐비 8명
1. 문종비 현덕왕후 권씨 : 세조가 왕위찬탈 후 폐비시킴. 단종의어머니, 숙종 때 신원 됨.
2. 성종 게비 폐제헌왕후 윤씨 : 성종 7년 7월 연산군 낳음, 왕비책봉 문제로 인수대비와 갈등, 성종 10년 폐출 됨. 성종 13년 사사 됨. 연산군 10년 신원, 중종 때 페위 됨. 연산군이 아들.
3. 폐비 연산군 부인 신씨 : 연산군이 폐위되어 왕자군으로 지위 격하, 신씨도 폐비 됨. 페세자 "항".
4. 중종 원비 단경왕후 신씨 : 중종 정비. 신수근의 딸. 연산군 페위에 소극적인 이유로 중종 즉위 일주일만에 페서인 됨. 인왕산 치마바위 설화, 숙종 때 추복 됨. 단경왕후 시호 받음.
5. 광해군부인 폐비 문성군부인 유씨 : 광해군 폐위로 왕자군으로 격하 됨, 폐세자 "질"
6.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 민씨 : 서인 노론게열 호조.병조판서 민유중의 딸, 여흥 민씨, 간택없이 왕비에 책봉 됨. 자식없이 35세 1701년 8월 죽음, 장희빈(43세)과 8살차이. 서인, 인현왕후의 양자로 삼아 원자 이균(경종) 정호(호칭을 정하는 것. 예)~ 대군, ~군 등)문제로 서.남인 대립. 1689년 5월 인현왕후 생일날 기사환국(남인집권)으로 폐서인(서인(평임)으로 강등) 되어 경암 김천 청암사에서 3년, 사가 안동별궁 감고당에서 2년 지냄. 병걸림.
인현왕후 사가에서 막대한 자금 들여 숙빈최씨 후원.인현왕후 영조 낙점, 영조 즉위 후 성모왕후로 추앙받음. 인현왕후 숙빈최씨(인현왕후 저주했다 무고) 협력 해 장희빈 몰아내고 사사 시킴(경종 13세)
7,숙종 제 2계비 옥산부대빈장씨(희빈장씨, 대빈궁, 장옥정 ~ 1701) : 남인계열이라는 이유로 명성왕후(현종의 비) 눈밖에 나 궁밖으로 퇴출. 인현왕후의 배려로 종 4품 숙원으로 궁에 입궁, 정 2품 소의당시 이균(경종) 1688년 10월 27일 낳음. 정1품 희빈으로 승격, 원자정호문제로 인현왕후 내치자(1689년 5월 기사환국) 왕비 책봉 되고 원자 균도 세자에 책봉 됨. 숙빈 최씨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했다고 무고로 1701년 10월 사약 받음, 경종 13세, 페서인 되지는 않음.
8. 고종의 정비 명성왕후 민씨(민자영) : 2번 국상(1882년 6월 10일 임오군란시, 충주 피신/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 2년 후 국상,경운궁에서), 1895년 친일 김홍집 내각 명성왕후 민자영 폐서인 시킴. 아들 순종(이척, 이강), 민씨 지밀상궁 엄씨 도움으로 1896년 1월 경복궁 건천궁에서 경운궁으로 고종과 순종 탈출, 신원, 국상(1897년)
21. 기타
- 경술8적 : 이윤민박 고조이조(이완용, 윤덕영, 민병석. 박제순 고영희,조조응, 이병무, 조민희)
- 을사오적 : 이이 박이권(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이근택, 권중현)
- 이왕직장관(1910년 12월 30일) : 민병석, 이재극, 한창수, 민영기
22. 표암 강세황의 "호가유금원기" (扈뛰따를호駕멍에가遊놀유禁금할금苑나라동산원記기록할기, 정조5년1791년)
정조가 가마를 타고 신하들에게 후원해설한 내용을 표함 강세황(시,서,화에 당대 최고)이 기록한 글.
- 정조가 신하들과 후원 유람 행사한 내용과 의를 밝힌 글
- 시기 : 정조 5년 1781년
- 기록 : 당대 시.서,화 삼절이자 후대 예원(藝재주예苑나라동산원)의 총수(總거느릴총帥장수수)로 평가 받는 표암 강세황(김홍도 스승, 김홍도 1806년 순조 때 死)
- 행사 성격 : 정조의 집권 초반기에 친정체제 구축을 위한 규장각의 완비, 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어진도사 긍에 기여한 근신들의 노고 치하 차원 자리 - 정조는 노고 치하 차원으로 후원 유람으로 은전 베품.
- 유람 행사는 격식이 없는 즉흥적 행사로 상화조어연(賞상줄상,花꽃화釣낚시조漁고기잡을어宴잔치연)이 아닌 단순한 사적(私사사로울사的과녘적)이고 자로유로운 놀이(遊놀유)로 판단 됨.
* 상화조어연 : 꽃구경과 낚시, 시짓기 등 행사의 개최시기와 형식, 참가자격 등의 틀을 갖춘 궁중 연회.
- 유람 동선 : 옥류천, 만송정, 존덕정, 평우사, 태정문 일대로 추정
* 옥류천 묘사 내용 : 소요을 두른 담장, 위이암(소요암)의 형상, 태극정 앞의 지당(池연못지塘못당, 연못, 1830년 동궐도에 보임)
* 태극정 앞의 지당(연못) : 고종황제 즉위 40년 (1903)을 경축하는 칭경예식 원유회장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옥류천 정비과정에서 철거 된 것으로 추정
* 망춘정 일대 : 조각된 담장으로 둘러 싸임. 담장내부에는 육면정 구조에 망춘정이, 초석은 백옥으로 조각 됨. 천향각 추정 낭루가 인접해 있음.
* 폄우사 행각과 태청문과 이를 두른 담장을 묘사.
23. 부군당(府관청부君임굼군堂집당, 부근당, 부강당, 부군거리) : 서울 경기도 지역에서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神귀신신堂)/당제, 굿, 한양의 각 관청에 설치하고 신을 모신 곳. 예)무신.풍요신적 성격, 당제.당굿(무당)/봄.가을에 제사 지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