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윈도(Show window) 그리스도인
---(팟캐스트 방송)---
http://cdn.podbbang.com/data1/chunsd/190526.mp3
---(감우(甘雨) 라디오/TV)---
http://gamwoo.tv/천수답의-새벽묵상일요칼럼-쇼윈도-(Show window)-그리스도인/
때로 그대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 궁금하다면 그대가 홀로 기도하는 사람인지 생각해보라. 기도는 그대가 무엇을 향하고 무엇을 바라고 사는 사람인지 말해준다. 은밀한 개인기도 없이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성공적으로 살아갈 사람은 전혀 없다. 기도의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가 필요한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마치 이혼 도장만 안 찍었지 마지못해서 살아가는 쇼윈도 부부들처럼 그렇게 생명력 없는 신앙 생활을 근근이 유지해 나간다. 곧 떨어져 나갈 끈처럼 명맥만 유지할 뿐 언제, 어떻게 끊어질 것인지 위태하다. 이런 상태가 혹시 우리 이야기는 아닌가?
지금은 기도 할 때이다. 그 무엇을 다 포기하고서라도 기도를 회복 할 때이다.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로 나가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를 보여 달라고 간절히 찾고 또 찾을 때이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기도의 제단을 쌓고 하루 종일 일터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며 잠자리에 들기 전 모든 죄를 고백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고백하지 않은 죄가 없도록 매 순간 우리는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오늘 밤에 주님이 오신다는 사실이 확정되었다면 그대는 지금처럼 기도 하겠는가? 지금처럼 편안히 누워서 잠을 잘 수 있겠는가? 그대의 영혼은 과연 안전하고 든든한가?
지금 가장 열렬하게 활동하는 지치지 않은 일꾼들이 있다. 그들은 잠을 자지 않고 헌신적으로 움직인다. 목표를 세우고 전략을 짜며 만족한 결과를 얻고 기뻐한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군병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열성 있는 일꾼들은 사단과 그의 사자들이다. 사단은 이 시대에 성공적으로 일하고 있다. 교인들의 영혼에 수면제를 놓고 젊은이들을 세속적인 문화와 스포츠 그리고 예능에 빠져들게 한다. 저들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엄숙한 사실에는 무관심하고 눈앞에 보이는 오락과 일시적인 쾌락에 몰입하고 있다.
기도는 죄를 죄는 기도를 멈추게 한다고 했다. 지금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없다. 기도가 우리의 생애에 가장 소중한 위치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노력하자. “어떤 사람도 기도 없이는 하루나 한 시간도 안전하지 못하다.”(쟁투, 530) 선교 사업에 있어서 모든 실패, 인생의 모든 쓰라림, 모든 말씀의 무지와 무감각에는 거기에 반드시 빠지지 않은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기도 없이 시작한 사업이나 일들이었다.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기도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믿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기도의 사람 조셉 얼라인은 자신이 우유배달부 보다 늦게 일어나는 날이면 자기를 자책했다고 한다. 그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자기보다 훨씬 오래 산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 해에 일천 번의 설교를 했다는 웨슬리는 평생을 네 시에 일어나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종교 개혁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분주한 삶을 살았던 루터는 교황권의 압박이 더욱 심하게 조여 올수록 하루에 두 시간씩 기도하며 바쁠 때는 기도의 시간을 더 늘렸다고 한다. 불교의 땅 미얀마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한 아도니람 저드슨, 무학자였지만 세계적인 설교자였던 디엘 무디, 초등학교 3학년이 최종 학력이었으나 수천 페이지의 감동적인 원고와 수십 권의 책을 펴낸 엘렌지 화잇 그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기도의 삶이 그대의 신앙을 말해준다. 주님과의 은밀한 기도 없이 자신이 그리스도인인줄 착각하지 마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주님께서 기도 없이 하루를 시작했을까? 주님께서 기도 없이 그분의 사역을 진행하셨을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한 때 진지하게 주님께 묻기도 하고 듣기도 하던 사람들이 영적 권태기를 겪으면서 신앙에서 떨어져 나간다. 주님을 찾는 일도 드물고 가끔 한 번씩 발작적으로 기도 자리를 찾곤 하지만 그것마저도 신통치 않다. 형식적으로 엎드리지만 간절함이 없고 이내 자리를 떠나고 만다. 아, 어찌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을 살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고 고백할 수 있겠는가?
이제 이런 쇼윈도 신앙을 정리하자! 우리의 영혼의 겨울이 오기 전에 속히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한 번 영적 각성의 골방으로 들어가 주님과 대면해 보자. 성령의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내 영혼을 향한 말할 수 없는 탄식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