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밥상을 지키는 사람들] (5) 신안군 암태도 장고마을 서문득 씨 ‘갈파래국’
남도매일신문 2022.04.21(목)
떠난 자와 남겨진 자…인연이 추억에게 전하는 위로
푹 우려낸 국물에 비법 된장, 다진 홍고추·마늘 더하면 군침이 절로
기분 좋은 식감과 향…뭉근하게 오래 끓여야 제맛인 기다림의 미학
예부터 전해오는 장고마을의 독특한 장례음식 ‘갈파래국’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남쪽 섬에 따스한 봄바람이 부는 어느 날, 24살 새댁인 서문득 씨가 슬픔을 마주한 부고였다. 신안 암태도 장고마을에서 친정엄마가 오랫동안 치매를 앓았던 할머니를 뒷수발했기에 가족들은 할머니의 죽음을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한 마을에서 살고 있는 문득 씨는 장례를 치르기 위해 서둘러서 친정집으로 갔다.
“상두계에 빨리 연락해서 돼지를 잡으라고 해라.” 상주의 목소리가 재촉한다. 장고마을에서는 오래 전부터 장례가 생길 때 서로 상부상조하기 위해서 상두계를 만들었다. 옛말에 “송장은 더럽다고 해서 먹을 게 있어야 사람들이 모여든다”라고 해 초상이 나면 돼지를 잡는 게 이 마을의 풍속이다.
남자들은 상주집의 마당에서 몸집 큰 돼지를 잡아 털을 뽑고, 내장을 꺼내고, 부위별로 자른 후 가마솥에 물을 부어 삶는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 잘 익힌 돼지고기를 상두계원들이 바로 썰어서 맛을 보면 여자회원들은 맘이 바빠진다.
초상집에 빠져서는 안 되는 ‘국’을 끓여야 하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를 삶아낸 육수에 살코기와 뼈다귀 그리고 간, 염통, 허파 등 내장 부위들을 묶어서 함께 끓이는 가마솥에 반드시 들어가는 재료가 있다. 바로 ‘갈포래’이다.
유족을 위로하러 온 조문객들이 갈포래국을 드시면서 “뜨거워도 시원하니 맛있다”라고 하는 소리가 40여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문득 씨의 귓전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구전으로 전해 들은 건데 초상날 때면 반드시 갈포래국을 끓여 먹었어요.” 정확한 연유는 모르지만 예부터 초상날 때 삼일장 내내 갈포래국을 먹는 것은 장고마을의 관행이자 독특한 장례문화이다.
마을 형태가 길쭉하다고 해서 그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추측되는 장고리는 밀양박씨와 김해김씨가 해남에서 이 섬마을로 오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1688년경 마을이 형성될 때, 단고리, 장고리를 합해 ‘진구지’라 했는데 일제 강점기에 마을이 나눠졌다.
장고리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것은 ‘소작쟁의기념탑’이다. 이곳은 일제 치하에 암태도 지주의 부조리에 맞서 소작농들이 온몸으로 저항했던 소작쟁의 무대였다. 의로운 농민들의 혼이 살아 숨 쉬는 곳이기에 섬이지만 어부보다 농부가 더 많다. 농토는 기름지고 바다는 제철 어종이 풍부하며 특히 뻘이 좋아서 장고마을 뻘낙지는 신안에서 가장 부드럽고 연하기로 손꼽힌다.
장고마을 청정 바다는 제철 어종이 풍부하며 특히 뻘이 좋아 이곳에서 나는 뻘낙지는 신안에서 가장 부드럽고 연하기로 손꼽힌다.
이런 청정 바다에서 나는 것 중에 ‘갈포래’는 먹을 게 없는 섬마을에서 두고두고 해서 먹는 귀한 식재료이다. 장고리는 과거 목포에서 뱃길로 2시간 이상 걸리던 낙후된 섬이었는데, 2019년 천사대교의 개통으로 20여 분 만에 뭍을 오갈 수 있게 되면서 섬의 환경이 변했다. 갈포래가 옛날처럼 많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령화, 인력 부족으로 채취하기가 어려워졌으며 이제는 시중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더군다나 편리한 장례식장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장례음식으로 필수였던 갈포래국은 점점 그 설 자리를 잃었고, 이제는 마을 주민들이 제삿날이나 해장국으로 끓여 먹는 정도이다.
장고마을 사람들이 즐겨 먹던 ‘갈포래국’의 정식 명칭은 ‘갈파래국’이다. 갈파래는 해조류로서, 가느다란 파래와 달리 상추 모양처럼 생겼다. 국립수산과학원 수산종자육종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전 연안에는 ‘갈파래속’에 속한 종이 14종이 있는데, 식용으로는 잎파래, 납작파래, 격자파래, 창자파래, 가시파래가 있다. 장고리 사람들이 갈파래의 잎이 넓다고 말하는 걸 보면 ‘납작파래’로 추측된다.
10-20대 시절의 문득이는 무더운 7-8월이 되면 동네 앞 개펄로 나가곤 했다. 또래 친구나 동네 분들과 함께 질척한 뻘밭을 50분 정도 걸어가는데, 이맘때 나는 ‘갈파래’를 채취하기 위해서이다. 썰물 때, 갯바위 아래에 붙어있는 넓적하니 어른 손 한 뼘 길이로 자란 초록색 갈파래는 채취하기에 딱 좋다. 갈퀴 같은 양손으로 바위에 붙어있는 갈파래를 뜯어 남자들은 지게에 져 오고 여자들은 머리에 이고 온다.
“갈포래를 민물에 씻어버리면 바슬바슬하고 삭아버려.” 어른들의 가르침대로 갈파래를 바닷물에 씻은 후, 동네 곳곳에 있는 바위에 널어서 말린다. 거무튀튀한 바위가 초록색으로 뒤덮인 모습은 이 철에만 볼 수 있는 동네의 진풍경이다.
짭짤한 간기가 없어질 때까지 말리면 갈파래는 변신한다. 시각적으로는 녹색에서 누리끼리한 색으로 변하고 촉각적으로는 뻐센 느낌이 부드러워진다. 잘 말려서 자루에 담아두면 장마철에 눅눅해져도 썩지 않고 변색돼도 괜찮으며 묵히면 묵힐수록 좋다.
오래 전부터 친숙했던 갈파래의 맛을 기억하고 그 추억을 잊지 못하는 문득 씨는 음식에 대한 눈썰미가 있어서 친정어머니의 손맛을 잇고 있다. 지금도 지인에게 주문을 해 놓아서 갈파래가 집에서 떨어지는 일이 없다. 그의 갈파래국은 집 울타리에만 머물지 않고 김장 등 마을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고향 사람들의 성화와 같은 주문으로 부활하고 있다.
친정어머니의 손맛을 이은 서문득 씨의 ‘갈파래국’은 집 울타리에만 머물지 않고 마을 행사때마다 고향 사람들의 성화와 같은 주문으로 부활하고 있다.
큰 솥에 돼지고기 다리 하나를 통째로 넣고 센 불에서 5시간 정도 삶는다. 말린 갈파래는 물에 잠시 담가두는데 실제 맛을 보면 미역과 비슷하다. 불린 갈파래는 약 8시간을 푹 고아야 한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많이 안 끓이면 뻐셔. 갈파래는 끓이면 끓일수록 부드럽고 퍼지지도 않고 맛있어.”
갈파래는 오랫동안 불맛을 만나야 거세고 뻣뻣한 질감이 부드러워지는데 신기하게도 흐물흐물 퍼지는 법은 없다. 돼지고기와 갈파래가 우려낸 국물에 잡내를 제거하고 감칠맛을 내는 비법은 된장에 있다. 문득 씨의 된장 만드는 법을 들여다본다.
집 한켠에 마련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짚을 깔고 메줏덩이를 올려 꾸덕꾸덕해질 때까지 말린다. 큰 대야에 메줏덩이가 서로 닿지 않게 사이사이 짚을 촘촘하게 채운 후, 이불을 덮어 둔다. 흰곰팡이가 생기면서 잘 띄워지면 공중에 매달아서 건조시킨다. 방에서 냄새나는 메주를 피하기 위한 그만의 묘안이다. 정월이 되면 갱엿, 말린 함초와 뽕잎, 건표고버섯, 북어머리, 대추를 담은 자루를 항아리의 밑바닥에 놓고 그 위에 메줏덩이를 넣은 후, 검정숯, 건고추, 수은을 해독시키기 위한 망개뿌리를 띄워 장을 담근다.
서문득 씨만의 비법이 가미된 된장과 간장은 ‘갈파래국’의 맛을 좌우하는 신의 한수다.
진한 검정색, 짠맛과 단맛의 조화, 오묘한 향이 나는 장은 보통의 조선간장과 다르다. 한 달 가량 지난 후, 장을 분리한 메주로 담근 된장을 먹어보면 양념을 해놓은 듯 맛깔스럽고 구수하다.
갈파래국의 맛을 좌우하는 이 된장이 신의 한 수다. 된장의 구수한 향을 살리기 위해 먹기 직전에 풀고, 칼칼하면서 깔끔한 국물을 위해 고춧가루 대신 싱싱한 홍고추를 짓이겨서 넣는다. 다진 마늘과 생강도 넣어 좀 더 끓이면 맛있는 냄새에 먼저 끌리는 갈포래국이 완성된다.
하루 정도 공을 들여야 완성되는 갈파래국은 들어가는 재료나 양념이 간단하지만 오래 끓여야 제맛을 내기에 기다림이 필요하다. 모양새는 시래기 같은 갈파래와 돼지고기를 넣은 된장국 같다. 기다렸던 만큼 기대가 큰데, 국물은 살짝 매우면서 개운하고 쫄깃한 돼지고기와 부드러운 갈파래가 씹히면서 휘감아 도는 기분 좋은 향은 새로운 맛의 발견인 유레카! 아주 생소하지만 이 갈파래국 맛의 첫인상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해풍에 잘 건조한 갈파래는 약 8시간 동안 푹 고아야한다. 여기에 다진 홍고추와 마늘을 넣어 칼칼하면서도 매콤한 국물을 완성한다. 하루 정도 공을 들여야 완성되는 갈파래국은 오래 끓여야 제맛을 내는 기다림이 주는 미학이다.
바다가 풍족하게 내어준 갈파래는 장고마을 사람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넉넉하게 채워줬다. 갈파래국은 위로한다. 살아남은 자들이여, 오래 묵힐수록 좋고 아무리 오래 삶아도 모양이 변치 않으며 그 맛 그대로 유지하는 갈파래처럼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오늘도 꿋꿋하게 걷고 오래오래 맛있는 인생을 살아가길 응원한다.
<남도밥상탐험대=최지영·남정자·박기순·조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