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까지도 사용하여 길을 인도하십니다.(행15:36-41)
2023, 11/26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행15:36-41절 말씀으로“하나님은 우리의 허물까지도 사용하여 길을 인도하십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가을이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벼 수확도 끝났고 첫눈도 왔고 기온도 영하로 떨어져 이제 겨울로 들어섰습니다. 농부가 가을걷이를 통해서 1년 동안의 수고를 보상받게 되는데, 여러분들은 1년 동안의 결실을 어떻게 맺고 있는지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올 한해 가을에 풍성한 결실을 수확하는 것처럼 여러분의 삶에서도 결실을 풍성히 거두시고, 신앙에서도 풍성하게 거두어서 영육 간에 풍성한 결실을 거두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계획을 세워도 그걸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36절)
둘째로, 우리의 허물도 하나님은 뜻을 이루는 방편으로 사용하십니다.(39절)
셋째로, 사적감정으로 주의 일이 중단되어서는 안 됩니다.(40-41절)
사랑하는 여러분!!!
년 초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계획을 세우고 반드시 목표를 이루겠다고 다짐도 합니다. 그러나 목표를 이룬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도 있는데, 그러나 목표를 이룬 사람도 실패한 사람도 그 이면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와 계획에 개입하셔서 당신의 선한 뜻대로 인도해 가신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당연히 믿지 않을 떼지만, 믿는 사람들도 입으로는 시인하면서 행동으로는 부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이 역사를 분명히 믿어야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잘못하고 실수하는 것까지도 하나님은 당신의 선한계획을 이루시는데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일을 할 때 어떤 일이 있어도 내 감정으로 주의 일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정말 주의하고 경계해야합니다. 내 감정 때문에 주의 일이 지체되고 중단되어 공동체가 무너지면 하나님은 그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이걸 명심하시고 항상 주의 은혜 안에서 겸손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말씀을 따라가면서 우리의 허물까지도 사용하여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한다는 것을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계획을 세워도 그걸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36절)
본문 36절 말씀함께 읽겠습니다.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아멘.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를 마치고 돌아와 예루살렘교회를 통해‘이신칭의’라는 가장 중요한 교리를 얻어낸 후 다시 2차 선교를 떠날 계획을 세웁니다.
1차 전도여행에서 약 2년간에 걸쳐 2,240㎞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울 때 복음을 받았던 사람들이 신앙생활은 잘하고 있는지, 교회가 부흥되고 있는지 여러 면에서 궁금했을 겁니다. 지금 같으면 핸드폰으로 상황판단을 하는데 문제가 없겠지만 당시는 그런 시절이 아니라서 당연히 찾아가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바나바에게 선교지방문을 제안했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바나바와 의견충돌로 헤어져 각각 선교를 떠나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사실 이번 선교여행을 통해서 유럽을 복음화 시키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때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르고 에베소로 들어가려고 했지 않았겠습니까?
당시만 해도 유럽선교는 천하의 사도바울일지라도 아마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도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아니 훨씬 그 이전부터 바울을 통해 유럽선교를 계획하셨고, 그래서 그의 아시아선교를 막고,(행16:6) 드로아로 불러 유럽으로 건너가도록 환상가운데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는데, 우리가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일을 추진해도 그것을 결정하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시라는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그 계획을 성취내지는 실패케 하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계획들을 세우고 추진할 때 어떤 경우는 실패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만큼 정말 세밀하게 정확한 계획을 세우지만 보기 좋게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전혀 준비없이 어떨 결에 시작했지만 아주 성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잠16: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들이 올해 2023년을 시작하면서 여러 계획들을 세웠을 것입니다. 사업을 확장하려 했지만 오히려 쪼그라든 경우도 있고, 빚을 얼마를 갚고 어떻게 하겠다고 계획했지만 오히려 빚이 늘어나고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계획을 세우지 않았는데도 좋은 집으로 이사 가거나, 귀인을 만나 좋은 일이 생겼을 수도 있고, 또 사업이 잘되고 자녀가 잘 되며, 횡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인생 내 맘대로 다 할 것 같지만 내 맘대로 안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에 내 맘대로 안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바로 하나님생각에 내 생각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에 철저하게 하나님 뜻에 순종하며 나를 맞추어 가면 하나님께서 내 삶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아니 어떤 누가 내 인생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데 그 사람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있답니까? 당장 내게 월급을 주는 회사 사장에게도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데 하물며 내 인생을 설계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맞추려고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잠3:5-6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때문에 내 계획이 실패하고 어려움이 가중되어도 너무 실망하지는 마시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의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은 또 다른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40살 때 고센 땅에 갔다가 자기 동족이 애굽사람에게 괴롭힘 당하는 것을 보고 분을 참지 못하여 그를 죽여버렸는데, 그러나 대가는 너무도 컸습니다.
왕자의 위치를 박탈당했고, 죽음을 피하여 멀리 미디안으로 도망가서 무려 40년이란 세월을 목동으로 고생하며 살아야했습니다.
이렇게 모세의 계획과는 달리 동족을 사랑해서 편들었던 대가가 너무도 혹독했을 때 모세는 절망과 좌절 속에서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부터 모세를 향한 또 다른 계획을 실천에 옮기셨는데, 이걸 볼 때 모세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시작과 성공을 위한 발판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의 꿈과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그 자리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수립되고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것을 볼 때 내 계획이 깨지고 실패한 것이 꼭 실망하고 낙심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선한 길로,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의 계획은 실패가 있어도 하나님의 계획의 실패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계획을 세워도 그걸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고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둘째로, 우리의 허물도 하나님은 뜻을 이루는 방편으로 사용하십니다.(39절)
본문 3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미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아멘.
사도바울과 바나바는 마가요한과 동행할지 여부를 두고 크게 다툼이 일어났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마가가 1차 전도여행 때 두 사람과 동행했다가 밤빌리아 버가에 도착하여 특별한 사정도 없이 그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에 바울은 그와 동행할 수 없다고 했고, 바나바는 그의 생질이라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함께 동행하지고 주장하여 둘이 심하게 다투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다투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이 길로 두 사람이 헤어져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내륙으로 들어가 1차 선교지역을 거치면서 결국 유럽으로 건너갔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간 이후 바나바의 소식은 끊어지고 맙니다.
여러분!!! 언뜻 보면 큰일도 아닌 것 같은데 교회지도자가 대판 싸우고 헤어졌습니다. 이걸 볼 때 우리주님 외에 완벽한 사람이 없으니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고, 그러니 형제가 실수하고 허물이 보여도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공동체를 지켜가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은 당대 최고의 지도자고 동역자로 이 두 사람의 갈등과 결별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실망과 아픔을 주었고, 교회공동체의 힘을 약화시켜 복음전파에 큰 차질을 가져왔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연 사람들의 예상대로 복음전파에 차질을 빚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두 사람의 갈등과 결별은 더 좋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전화위복이 된 것입니다. 둘이 헤어진 후 사도바울은 가는 곳마다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하여 1차 때보다 더 크고 많은 성과를 가져왔습니다.
여러분!!!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바울과 바나바의 인간적인 약점, 다시 말해 싸움과 결별까지도 복음이 더 강하게 확장되고, 당신의 뜻을 이루는 방편으로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두 사람의 싸움과 결별은 좋은 결과를 낳을 수가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 두 사람의 약점을 사용하여 놀라운 결과를 이루셨는데, 이처럼 하나님은 사역자들의 허물까지도 자기의 크신 뜻을 이루시는 방편으로 사용하신 것을 볼 때 이런 능력의 하나님을 우리가 어찌 믿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롬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약점이 있고, 누구나 잘못하고 실수도하며, 또 형제와 싸우기도 하고, 심지어 교회지도자까지도 허물을 보이고 잘못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좌절하고 주의 일을 중단하거나 교회를 떠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약점이 있다면 고치도록 노력하고, 형제에게 허물이 있다면 감싸야합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좌절해서도 안 되고, 주의 일을 망설여서도 안 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많은 허물이 있음에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으로 여러분의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어 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로, 사적감정으로 주의 일이 중단되어서는 안 됩니다.(40-41절)
본문 40-4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아멘.
말씀드린 대로 바울과 바나바가 대판 싸운 후에 따로 복음을 전하러 떠났는데, 바나바는 바울과 결별한 후 마가를 대동하여 자기 고향 구브로로 가버렸습니다.
이런 바나바를 볼 때 사도바울이 대단히 허탈하고 무력감에 빠졌을 것이 분명한데도 바울은 주의 일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수습을 잘합니다.
이 같은 바울의 모습에서 우리는 큰 교훈을 받게 되는데, 개인적인 일이나 감정 때문에 주의 사역이 위축되거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감정은 지극히 일시적이지만 주의 일은 영원하기 때문이며, 또한 주의 일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초월해서 이루어져야할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일은 우리의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해야하고, 오늘 바울과 바나바처럼 개인감정이나, 1차 전도여행 때 버가에서 돌아간 마가처럼 개인사정 때문에 주의 일이 영향을 주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감정적인 동물이다 보니 영향을 전혀 안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보다는 개인적인 감정과 사정을 우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으로 사적인 감정이 통제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신앙인들이 사적감정이나 개인사정으로 우선해야할 사역에 대한 의욕이 꺾이고 포기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특히나 형제들 간의 갈등으로 봉사와 헌신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가끔씩 교회 일도 그렇고, 노회 일할 때도 맘 상하고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지만 하나님 앞에 내 감정 앞세울 수가 없어서 마음을 바꿀 때가 참 많습니다.
오늘 사도바울도 개인적인 감정과 섭섭함 때문에 감당해야 할 사명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감정은 감정이고, 하나님 일과는 별개입니다.
여러분!!! 회사에서 사장에게 섭섭한 마음이 있다고 회사 안 나갑니까? 일 안합니까? 아니죠, 섭섭한 마음은 마음이고 일은 일입니다. 섭섭한 마음 때문에 일을 안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일 역시 우리의 개인적 섭섭함이 있다고 방치해서도 안 되고, 그만두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섭섭하고 속상할 때가 없을까요? 아마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은 될 것입니다. 만약 그때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걸 중단한다면 어찌될까요? 아찔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섭섭하다고, 말 안 듣는다고 우리를 돌보시는 일을 중단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심한 죄를 지어도 여전히 동일하게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십니다.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도 아닌 형제들 간에 섭섭한 것을 앞세워 주의 일을 중단하고, 미룰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혹여 그런 일이 있다면 마음을 바꾸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인의 자세고, 신앙인의 기본적인 소양입니다.
그래서 좀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나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